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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섬기는 주향교회는 광주 북구 용봉동 비엔나레 정문근처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1999년 개척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차를 타고 담양에 올 때 마다 느꼈던 한 가지는 담양읍내로 진입하기 전 어느 차든 신호대기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멈춰서 창밖 11시 방향를 보면 복민교회가 눈에 들어옵니다. 누구든 보아야합니다. 저는 복민교회를 바라 볼 때 마다 복 받은 거룩한 백성들이 모인 복민교회 왜 이렇게 좋노!! 누가 보든 교회 보는 것 자체가 전도요..... 보는 것 자체가 은혜다 생각했습니다.
교회도 위치가 한 목 하는데 정말 복민교회가 그렇습니다. 평소에 존경해서 이 목사님 부족한 저를 초청해주셔서 넘! 감사하고.... 장로님 넘! 좋고..... 모든 성도님이 넘 좋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사람이 복을 많이 받은 복민 교회와서 설교하니 무한 감사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고 헌신하지만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가? 우리는 다 하나님아버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목사인 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얼마나 하나님아버지를 알고 있는가?
육신의 부모에게 필요한 것 있으면 우리자식들이 아빠 용돈! 용돈! 손 내미는 것처럼 뭐! 달라고 요청만 했지 복 주신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깊이 알고 있을까? 이런 부분에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아버지께서 부족한 저를 보시고 승권아! 네가 얼마나 아버지마음을 알고 있느냐 그러실 것 같습니다.
3년전 일곡중앙교회에서 파워전도세미나가 있어서 참석했는데 함께 성경공부했던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휴식시간 목사님 하신 말씀이 아빠기도를 알고 계시느냐 말씀하신 겁니다. 목사님 하신 말씀이 전주 어느 교회가 아빠기도로 통해 큰 변화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갈4: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이 바로 간절한 아빠기도라는 겁니다...... 기복신앙처럼 뭐 좀 달라며 아버지께 보채는 기도하지 말고 그냥 “아빠” 를 부르데 우리가 복식 호흡하며 노래 부르는 것처럼 심령 깊숙한 배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로 마음을 드리며 아빠! 부르짖어 기도 해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음날 새벽 다른 제목기도를 하지 않고 오직 아빠 아빠만 불렀습니다. 20분했을까요? 평소 기도 할 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그날 따라 아버지를 부르는데 정말 주님이 나를 위로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 중요할 것 같아요 저는 교회에서 이 복음송가를 자주 부릅니다.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이라는 복음송가입니다.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
저는 43살 때 둘째와 12년 차이 나는 아들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6년 전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막내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장소가 교회 앞 아파트 입구에서 였습니다. 사고당일 기독병원에 친구목사가 뇌졸중으로 병실천장만 쳐다보며 오늘내일 죽음만 기다리는 친구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지금 이 친구목사는 죽어 천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친구심방하고 오는데 교회아파트 앞에서 사람들이 둘러싸여 있는데 사고가 분명한거예요 얼굴은 보이지 않고 옷을 보니 아들이 입었던 옷이 보이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하고 차를 세우고 가서 봤더니 피투성이가 된 아들이 땅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제가 현장에서 지켜본 것입니다...... 그런데 사고 난 아들 모습이 조금 전에 보았던 친구 목사처럼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것과 같은거예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정신없이 아들을 끌어 안으려고 하니까 주변사람들이 웅성웅성 쳐다보며 하는 말이 이런 상태에서는 몸을 만지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피 흘린 아들을 보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저는 아무런 생각없이 피흘린 아들을 끌어안고 불렀습니다. 충은아! 아빠다! 아빠다 하나님아버지를 불러봐라 어서! 어서!....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애타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눈이 완전히 뒤집어져 죽어있는 상태 있는 아들 눈이 돌아오면서 하나님아버지를 부른 겁니다. 그래 됐다 걱정마라 이제 살았다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119차에 옮겨 병원에서 두달 동안 치료했습니다.....
지금 한쪽 귀는 완전히 잃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지금은 중학교 1학년으로 건강하게 잘자라 얼굴이 넘! 잘생겨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충은아! 연예인해라”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해서 밥 잘 먹고 학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들만 보면 그져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복 후 지금 철없는 아들의 행동은 어느 자식과 똑 같이 말썽 부리고 자라갑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릅니다..... 심하게 꾸중도 합니다........매를 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로써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눈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끌어 안은 모습이 동영상처럼 지나가는 겁니다. 어느 때든 하루를 마치고 저녁 사택에 돌아오면 평온한 모습으로 자는 아들 모습을 봅니다. 철없는 자식 행동은 아들을 본 순간 다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냥 얼굴을 봐도 사랑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얼굴 한 번 더 만져주고 또 만지고 나옵니다. 제가 아버지가 되어 자식을 보는 마음입니다.
이런 자식을 제가 양육하고 있지만 목사인 저 또한 지금 생존해 계시는 어머님께 불효한 철 없었던 지난 과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어머님을 모시지 않고 여동생이 어머님을 모시는데 여든 한 살이십니다. 권사님으로 평생 한 교회만 30여년 섬기시던 어머님이 광주로 오셔서 아들이 섬기는 교회에 오셔서 마지막 봉사하신다고 새벽예배 빠지지 않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저는 27살에 신학을 했으니까 좀 늦게 신학을 했어요 신학공부를 하기까지 하나님아버지께 그리고 육신의 어머님께 불효를 많이 한사람입니다. 지금도 어머님을 대할 때 마다 어머님기도 때문에 이 불효자식 주님 잘 믿게 해준 것 감사한데 목사까지 됐으니 그져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님 간곡한 말씀에 마지못해 억지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례 받아도 철없는 세상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서 권사님이 심방 와서 예배드리면 왜! 그렇게 싫었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어디 하나님이 있냐며 하나님이 계시면 보여달라고 하고 하나님을 믿을려면 내 주먹을 믿으라며 그렇게 강팍한 청년 때가 있었습니다.
군대를 가게 됐는데 저는 3년 군대생활을 하면서 세 번 죽을 고비가 있었습니다. 처음은.... 이등병 때 영하 25도 넘은 전방고지에서 빼치카에 물을 채우는 일을 이등병인 제가 하는데 계곡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을 바게스로 떠다 내무반 빼치카 물통에 물을 채우는데 그만 물을 트다가 계곡 얼음판에 미끄러져 제 몸이 얼음판 밑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빙판을 잡은거예요! 한겨울 빙판인 계곡 얼음 판 밑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넘 엄청나서 방판을 놓았다하면 그대로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려 주려주셨습니다. 간신히 얼음판 위를 붙잡고 올라 왔다는 것이 지금도 생각하면 신기합니다.
두 번째는...제가 축구를 좋아하는데 성탄절 날 한겨울 고르지 못한 운동장에서 중대 대항 축구를 하는데 헤딩 하다가 발을 헛딛어 내 진탕으로 쓰려져 의식을 잃어버렸습니다. 깨어보니 내무반인데 제가 살아 있는 겁니다.
세 번째는...... 고참 때 전방 고지 방책선에서 근무할 때인데 선임하사하고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임하사가 야구 방망이보다 더 큰 몽둥이로 방어 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 머리를 친 겁니다. 그냥 맞았어요. 그 후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내무반 위에 누워 있는 거예요 저는 이렇게 세 번이나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제대 후에 어느 날 여름철인데 한복 바느질을 하신 어머님께서 치마를 입으셨는데 어머님 무릎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허벅지에 피멍이 들어 있는 흔적을 제가 본 것입니다. 어머님! 이 허벅지에 왜 이런 피멍이 생겼습니까? 넘어지셨는가요?.... 여쭈어도 바느질만 계속하시고 대답이 없으십니다. 계속 여쭈었더니 어머님 조용히 하신 말씀이 교회에서 시간을 정해 놓고 권사님들과 함께 철야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기도하셨던 날짜를 봤더니 말년 때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때와 어머님이 피멍이 들 정도로 기도했던 시기와 일치한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머님께서 피멍이 들 정도로 자기 살을 꼬집으며 하셨던 기도는 자나 깨나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한 저! 아들 돌아오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제대 후 예수님을 진짜 만나고 거듭나 알게 된 것은 군대생활 때 세 번 죽을 고비를 구사일생으로 살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 기도 덕분에 내가 살게 되었구나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확신한 것은 중보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일으키는가를 알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예수님 믿기 전에 불효했던 지난 과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낳아서 지금까지 길러주신 어머니의 마음도 조금씩 알 것 같더라구요 그러나 지금도 어머님 앞에 있으면 목사이지만 왜 그렇게 작아지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하는 복민성도여러분!!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셨는가를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400년동안 고통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 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약속의 땅을 정해주시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시키셨습니다. 이 기간은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보여주셨던 기간이었습니다.
출19: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이때가 출애굽한지 삼개월 째입니다. 자기백성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택한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업었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업어보호 하듯 인도했다는 말씀입니다. 이후 하나님은 광야 40년 여정 먹을 것 입을 것 의식주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40년 생활이 마칠 때에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아버지사랑을 보여주신 줄 아십니까? 출애굽 하여 시내 산까지는 업어서 사랑을 보여주셨지만 하나님아버지께서 철부지한 백성들을 보시고 부족하셨던지 이 백성을 내가 이제는 안아서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있어요 앞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거센 토착민들과 영적싸움을 해야 하겠기에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입어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아서 데리고 가겠다는 것입
니다.
신1:31...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요
이런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눈치를 채고 말을 잘 들으면 좋은데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 얼마 되지도 않아서 어떤 모습으로 변해 버렸습니까?
삿2:10......그세대의 사람도 다 그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후에 일어난 다른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한 이방인처럼 행세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아버지께서 자기백성을 버리십니까? 변함없는 하나님아버지사랑을 다시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이사야 49:15-16.....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 만큼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자기백성을 금쪽 같이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완악한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아버지를 얼마나 외면했습니까? 그것은 구약성경 마지막책 말라기1:2..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사 때질 하면서까지 등을 돌렸습니다. 이후 어떻게 됐나요 400년 동안은 하나님 침묵의 시간으로 흘렀습니다. 구약성경이 끝나버렸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지만 구약 신약이 나누어지는 400년기간은 이스라엘백성의 방황기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기에 갈바를 알지 못해요 애타게 불러도 대답 없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이런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보다 못해 참고 또 참고 하다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은 자기백성을 위해 마지막카드로 독생자인 예수를 보내시고 십자가 제물 되도록 까지 하나님아버지 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좀 보겠습니다. 함께 읽은 본문을 ‘탕자의 비유’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주인공은 둘째 아들 곧 탕자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면 주인공은 둘째 아들이 아닌 탕자아들이 돌아오기를 목이 긴사슴처럼 기다린 아버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든지 우리가 주인공을 알려면 그 얘기의 결론을 보면 압니다.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소설 한 권을 읽어도 주인공은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엑스트라는 칼만 지나가면 윽하고 쓰러져 죽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총 몇 번 맞아도 다시 살아나 끝까지 마무리를 장식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도 11-24절은 둘째 아들이야기입니다.(큰아들 등장하지 않음) 그런데 25-32절은 맏아들이야기입니다.(둘째아들 등장하지않음)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한 분이 계십니다. 누구입니까? 그분은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아들이 초점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주인공은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깊은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둘째아들을 보십시오 이 아들은 패역한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는데 유산을 달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 없이 유산을 주었습니다. 아들이 유산가지고 나가 사업을 해서 배로 남겨 돌아 왔으면 좋은데 땀 한번 흘려보지 않은 아들 허랑 방탕 했습니다. 허랑 방탕은 한마디로 세상쾌락을 즐기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술집과 기생들과 지내며 돈을 마음대로 뿌리고 낭비했습니다. 이 정도로 살면 성경에는 패역한 자라고 했습니다.
신21:18-21....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패역한 아들을 아버지가 끌고가 사람들이 왕래가 빈번한 성읍에 데리고 가 아버지는 장로님!... 네 아들입니다. 이 놈이 너무나 말을 듣지 않아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고쳐 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돼 데려왔습니다. 그러니 이 아들을 돌로 쳐 죽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입니다. 율법대로 한다면 본문에 등장한 둘째 아들 같은 인간은 아버지가 고소하지 않아도 동네사람들이 알게 되면 둘로 쳐 죽일 놈입니다.
패역한 둘째 아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 돈이 다 떨어지고 화려했던 생활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민생고는 해결해야지요 생명은 연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구걸하다 한 집에 들어가 먹을 것 만 주면 일 하겠습니다 라는 심정으로 돼지를 치지만 흉년이 들어 돼지가 먹는 쥐업 열매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아십니까?.... 원래 유대인들에게는 돼지를 키우는 일은 율법상으로 금지 되었다는 것 말입니다. 돼지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더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돼지를 키우는 일을 이 둘째 아들이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자존심이나 존엄성 자체까지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둘째아들은 완전 밑바닥입니다.
자존심까지 잃어버린 둘째아들 스스로 돌이켜 회개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들을 기다렸던 아버지를 보십시오 패가 망신하고 완전히 돼지만도 못한 패역한 아들이 돌아오는데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형체만 보고도 자기아들을 알아봅니다. 그가 아무리 누더기 옷에 바짝 말라서 형체도 걸음 거리도 달라졌어도 아버지는 그를 알아봅니다. 그리고는 측은이 여겨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20절....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 장면은 그져 우리가 쉽게 상상하고 지나갈 말씀이 아닙니다. 그 안에 더 깊은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20절하반절에 “달려가” 이 단어 헬라어 원어에는 전력질주 했다는 말이 더 맞습니다. 지금 아버지는 가만히 있어도 아들이 아버지 앞에 와 무릎을 꿇고 빌게 될 것인데 아버지는 아들을 향해 달려갔을까요? 그것도 전력질주 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아들이 불쌍해서가 아닙니다.
보세요! 자식을 기른 부모로써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자식이 잘못하여 불효를 했을 때 부모는 화가 나서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 이놈아! 불호령을 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집에 없을 때는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지금 밥이나 먹고 있는지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그러나 막상보이면 과거의 원한과 섭섭한 것들이 와락 올라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드라마 같은 데서는 나쁜 짓하고 돌아오는 자식을 보면 아버지는 먼저 문 닦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와 때리고 결국 부둥켜 안고 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버지는 처음부터 달려가지는 않아요.
그러나 오늘본문에 나온 아버지를 보세요 측은히 여겼다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측은히 여겼다는 것은 단지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이 불쌍했다는 그 이상의 뜻입니다.
아들의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불길한 감정을 느끼고 아들을 살리려는 열정과 집착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패역한 아들이지만 이 귀한생명을 살리고자하는 아버지열정을 볼 수 있어요 왜 전력질주 했는지 아십니까? 아들을 성읍사람들이 먼저 알아보면 혹시나 돌로 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에 읽었던 신명기 21장 기억하시지요 패역한 아들을 동네사람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돌로 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동네사람들이 먼저 알기 전 아들을 보호하기위해 전력 질주한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더 멀리 보고 누구 보다 더 더 빨리 달려 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달려가서 그 아들의 목을 안았습니다.
대개 반가우면 우리는 가슴을 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버지 보세요 장성한 아들을 늙은 아버지가 안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기서 쓰인 목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생명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단 칼에 죽일 수 있는 것이 목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목을 안았다는 것은 그 아들의 생명을 보호하기위해 아버지의 보호 본능적 행동입니다. 여전히 아버지는 아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살리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다시 찾은 아들에게 어떻게 해줍니까?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천사처럼 대접합니다. 22-23.....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아버지는 그져 둘째 아들 보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이 먼저 심판 하실 것 같죠 아닙니다. 너는 타향에서 뭐! 했냐 내가 준 돈 어디다 섰느냐 왜 이런 꼬라지로 왔느냐 묻지 않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실길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에게 신분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종으로서가 아니라 아들로써의 신분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푸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은 알면서도 끝까지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아버지가 아들을 막연히 기다리고 전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둘째 아들에게 확 나타나서 만난 것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큰 아들을 보세요 큰아들이 밭에서 일하고 집에 왔을 때 집에서 잔치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을 불러 물어보았습니다. 뭔일이냐! 그랬더니 종이 하는 말이 당신 동생이 돌아와서 아버지가 잔치를 벌였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큰아들이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달립니다. 그랬더니 큰아들이 한말을 보세요? 29-30절....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그런데 여러분 이 큰아들이 둘째 동생이 먼 나라에 있었는데 그가 창녀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오늘 나타난 둘째 동생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둘째아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큰아들에게 이미 이야기 한 것입니다.......그러니까 큰아들이 알지요? 결국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어디서 뭐했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사서 알아 봤는지 소문으로 알아 봤는지는 모르지만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아들이 더 화가 나고 이렇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다 알면서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자녀가 아직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자녀가 있습니까?....... 내가 전도하고자 가슴으로 끌어안고 있는데 아직까지 주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한 태신자가 남편 아니 친구가 있습니까?....... 기다리십시오...... 거부해도 또 노크하고 기다리십시오 우리 하나님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우리가 왜 못 기다리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작년입니다. 16년 전 7년 동안 목회했던 거제소랑교회에서 초청장이와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이 교회는 제가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교회가 80년이 넘는 교회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곳에서 시무하면서 목사안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소랑교회는 전형적인 어촌교회로 자자일촌하는 그런 형태를 갖춘교회이기에 작은 일하나라도 근방 펴져 건강한교회로 성장하는 것이 쉽지 않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사랑 받을만한 교회인가하면 지금 인도에 여섯교회를 개척하여 경남노회에서 가장 모범된 교회로 지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좋은 소문이 들려오는데 임직행사 초청을 받고 10년 만에 가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 들어갔더니 성가대원들이 연습하고 있는데 한 성도님이 저를 향하여 뛰어 오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제가 목회했을 때 이은미라는 학생회어머님이신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여학생이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볼 때 마다 앞으로 교회를 위해 정말 헌신할 여종이 되겠구나 생각했죠 그러면서 제 마음은 언제나 은미 어머님을 전도할 수 없을까 기도하는 중에 이슬비 전도편지를 꾸준히 보냈습니다. 마을 안에서 만났을 때 서로 인사하고 주고 받았던 인상을 메모했다가 전도엽서에 기록하는 거예요 한 주 아니면 두 주 건너 꾸준하게 보냈습니다. 교회 나오시라고도 하지 않았어요. 이슬비전도편지를 꾸준히 보내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소랑교회를 사임하고 광주로 오게 되었는데 몇 년 후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은미 예요 그러는 거예요? 대뜸하는 하는 말이 목사님 제가 전도사님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축하해주고 참 잘했구나 네말이 떨어지지 전에 다음 메시지가 무슨 말인 줄 아십니까? 목사님! 엄마가 교회 나갑니다...... 이런 감격이 있습니까? 그리고 하는 말이 목사님이 그때 어머님께 보내주셨던 전도편지를 한 장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는 거예요.....이런 소식을 듣고 10년 만에 간 소랑교회임직식이지만 제 마음에는 이 성도님이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실까? 상상하고 예배자리에 앉아있는데 성가대쪽에서 연습하다가 나를 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뛰어오는 여성도가 내손을 붙잡으며 눈시울을 적시는데 바로 학생회장을 했던 이은미 어머님이었습니다. 끝까지 늦은 비와 이른 비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아버지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4살 쯤 되면........ 우리 아버지는 전지전능하다고 믿습니다.
12살이 되면........ 우리 아버지는 아는 것이 많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15살쯤 되면....... 아버지는 구식이야,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느낍니다.
21살쯤 되면........ 아버지는 골동품이야 차라리 없는게 낫다고 말합니다.
27살쯤 되면........아버지는 제법 아는 것도 있고 판단이 옳을 때도 있다고 가끔은 느낍니다.
32살쯤 되면....... 인생의 문제를 내 아버지와 의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50세가 되면........ 아버지는 참 훌륭했다고 말합니다.
60세가 넘어서면......... 내 아버지는 내 인생의 미래를 모두 알고 계셨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아버지만 못하다고 느끼게 된답니다.
우리는 그동안 신앙생활을 오래했든 아니면 짧게했든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처음 느꼈던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품고 지금도 나를 향하여 다가 오시는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가슴으로 느끼고 계십니까?
복민교회 청년회 그리고 성도여러분!!..... 오늘 거룩한 주일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좀더 알고자 오후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문제를 놓고 무엇이 필요해서 요구하기 위해 불렀던 하나님아버지이었다면 오늘은 아빠 하나님아버지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게 해 주세요 이런 자세로 기도하십시오 아빠!... 심령 깊은 곳에서 불러보십시오 아빠! 그러면 하나님아버지마음으로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