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ia Sõkratés) 플라톤(Platon, B.C. 427~347)
이 책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의 하나이며 소크라테스 처형 후 몇 년에 걸쳐 쓰여진 책으로 생각된다. 소크라테스의 법정 변론의 재현 형태를 띠고 있으며 3부로 되어 있다. 제1부에서 소크라테스는 먼저 자기의 고발자들에는 두 분류가 있음을 진술한다. 즉 예전부터의 고발자는 불특정 다수인데,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하늘과 땅 속의 것을 추구하고 근거 박약한 논리를 고집하는 등 필요없는 짓을 하며,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치고 있다고 중상한다. 그리고 새 고발자는 아뉴토스 일파에게 교사받은 멜레토스인데, 그는 소크라테스가 청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며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다고 비난하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예전부터의 고발자에 대해선, 자기는 허황된 자연학(自然學)을 연구한적도 없으며, 다른 궤변론자들과 같이 많은 보수를 받고 교육한 적도 없다고 반론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미움받는 이유로서 델피의 신탁의 건을 이야기하면서, ‘무지의 자각’을 확실히 하는 것이 ‘신의 뜻에 따르는 것’임을 믿게 된 경위를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고발자 멜레토스에 대해선, 대화를 통해 그의 무지와 모순을 지적한 후 당당하게 자신을 소신을 피력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복종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에게 복종할 것이다. 즉 나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결코 지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30표라는 근소한 차로 유죄로 결정된다. 유죄 결정 후 형량을 결정하기 위해서 다시 피고인 소크라테스의 진술이 전개된다. 제2부에서 소크라테스는 애걸하기는커녕 자기는 국가적 귀인으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형량을 표결에 부친 결과 그에게 사형이 언도된다.
여기부터 제3부에 들어가는데, 소크라테스는 유죄투표를 한 사람들을 향하여 “여러분은 나의 죽음을 결정했지만, 내가 죽은 후 곧 당신들에게 징벌이 내릴 것이다”라고 예언한다. 그리고서 무죄투표를 한 사람들을 향해서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반성하면서, 죽음의 의미에 관해 “선한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이나 죽은 후에도 악한 것을 하나도 없다”라는 확신을 이야기한다. 본서는 단편이기는 하지만 소크라테스 자신의 치열하고도 경건한 철학 정신이 잘 묘사되어 있는 대화편으로서 객관적 삶의 태도와 정신의 일치가 철학함의 진정한 전형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2 『파이돈』(Phaidõn) 플라톤
이 책은 ‘영혼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그 대화가 설정되어 있는 시기와 장소는 바로 소크라테스가 죽는 당일 아테네의 감옥 속, 이른 새벽부터 해가 넘어갈 때까지의 사이이다. 그리고 이 저작이 실제로 플라톤에 의해서 집필된 연대는 소크라테스 사후 14~15년이 지난 뒤라고 추정되고 있다. 과연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플라톤에게 전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바로 “지(知)를 구하는 것(philosophia)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고, 이 철학(지를 구하는 행위)이 진실로 우리 인간에 있어서 그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보편적인(어쩌면 가장 유일한) 행위인가라는 물음이었다.
영혼이 영혼 그것으로 되는 것, 그 이상의 것에 관하여 파이돈은 항상 어느 근원적인 선택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죽음의 의미를 분명히 하려고 한다. “철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힘쓰는 것은 죽는 것과 죽음을 완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자의 직접적 관심사는 지혜의 획득이고 이것은 영혼이 신체에서 해방되어 순수하게 되면서 사유의 활동이 가장 잘 발휘되는 때에 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본서의 끝 부분에는 소크라테스가 독을 삼킨 후 숨을 거두기까지의 광경이 잘 묘사되어 있어 독자를 감동시킨다.
3 『국가론』(Piliiteiã) 플라톤
보통 '국가 혹은 정의에 대하여‘라고 불리기도 한다. 본서는 플라톤의 교사 시절의 작품으로 40~60세 사이에 쓰여졌고, 전체가 10권으로 되어 있다.
중기 플라톤의 대략의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시종일관하여 “정의란 무엇이고, 그리고 그것은 인간 삶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관철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폴리스)의 성립 그 사태를 문제로 하는 일, 결국 국가제도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이상의 물음에 당장 부딪히는 국가라는 ‘큰 문자’속에서 고찰한다라는 방법론적인 필요에서 생긴 것이다. 거기에는 왜 우리의 존재, 다시 말하면 영혼의 상태(작은 문자)와 국가의 상태라는 것이 비슷하게 비례하여 이야기되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존재가 또 국가라는 존재가 각각 여러 가지로 제능력을 자신 속에 포함하면서 그 자신은 결코 그들의 제능력의 단순한 총화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한 사람의 인간(결국 영혼)으로서 또 하나의 국가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곧 정의란 국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는 또한 인간의 자연적인 필요에 의해서 생긴 것이다. 그런데 국가에 있어서 왕이 되어 통치하거나 혹은 현재 왕으로 불리거나 권력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참으로 충분히 철학을 하지 않는 한, …국가에도 인류에도 불행은 그치지 않는다. 철학자란 이데아를 인식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철인왕(哲人王)은 무엇보다도 먼저 선(善)의 이데아를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선의 이데아는 태양과 같아서 인식되는 것에, 진리를 인식하는 사람에게 그 능력을 부여한다라고 주장한다.
4 『형이상학』(Metaphysica)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322년경)
이 책은 전 14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 책 전체가 처음부터 일관성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권마다 독립적인 짧은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그 저작 시기도 각각 다르다. 때문에 그의 초기 논문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흔적이 있다. 이 책이 성립된 사정도 또한 알길이 없고, 또 책의 편집이 후세 사람의 손으로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형이상학』이 내용적으로 일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말하면 존재(on)에 관한 사색이다. 존재에 관계된 여러 가지 문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전 생애에 걸쳐 시기 시기마다 여러 각도에서 사색했는데, 그 성과물이 이 책인 셈이다.
5 『구약성서』
∙성경(聖經)으로 인식되는 종교
『신약성서』와 함께 기독교의 정전임과 동시에 유대교에서는 탈무드와 함께 히브리어(일부 아랍어)의 정전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앙과 생활규범을 이루고 있는데 예순관, 정전사적 경위에 의해 정전으로 공인된 텍스트로의 범위와 배열에 다소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구약성서』의 성립
『구약성서』에서 성서학적으로 성립연대가 추정되는 가장 오랜 단편은 「사사기」(士師記) 5장의 데보라 전승가(B.C. 12세기)가 된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부족연합에 야훼 신앙이 수용되는 시기 혹은 그 이전부터의 전승을 필두로 헬레니즘 시대에 성립한 문서에 이르기까지 천년 혹은 그 이상에 걸쳐 축적된 이스라엘인의 종교체험을 나타내는 모든 문학류의 자료를 편집․수정한 것이다. 그 기본적 틀은 신의 계시에 의한 계약과 구제사(救濟史)라는 기본적 틀로 이뤄졌다.
최초에 헤브라이어 원전의 오서, 즉 『율법』이 바빌로니아 포수(B.C. 6세기초) 시에 파괴된 예루살렘의 성벽과 신전재건이 시작된 네헤미아, 에즈라 시대(B.C. 5~4세기초)에 정전화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정치적․종교적으로 중심을 상실한 백성에게 생활규범 재건이 꾀해졌고 포로상태에 놓은 제사의 신학을 재구성한 것이 현재 형태의 법률편집의 지도원리가 되었다. 그후 -『예언』, 『제서』가 정전에 첨가되었지만 중세의 미소레 본문에 이른 텍스트의 범위가 확정된 것은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 공약(A.D. 70) 후인 90년 야마니 종교회의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