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함께 만든 영상감독 강낙현 씨와 무용가 정보경 씨를 두리춤터에서 만났다. 두 사람이 〈드라이브 스루〉를 처음 선보인 것은 지난해 10월 두리춤터에서였다. 두 사람은 올해 1월 말까지 이 작품을 거듭해서 무대에 올렸고,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주목할 예술가’ 상을 각각 영상부문과 무용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독특한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려면 강낙현 씨와 정보경 씨가 각기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부터 알 필요가 있었다. 정보경 씨는 어린 시절 리틀앤젤스 단원으로 세계를 누비며 공연했다.
“한국을 대표해 무대에서 장구춤을 추면서 박수 받는 게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때부터 춤은 제 삶에 흡수되어 생활이 된 것 같아요. 춤추는 것은 제가 가장 솔직할 수 있는 순간, 진실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선화예중과 선화예고를 거쳐 성균관대와 대학원에서 줄곧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 전통 춤 그대로 추는 게 아니라 현대인의 삶을 한국의 춤사위로 표현하는 ‘컨템퍼러리 한국무용’을 추구했다 한다. 어떻게 하면 한국무용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재의 삶을 담을 수 있을지가 그의 계속되는 과제였다.
강낙현 씨는 영국 세인트마틴대학에서 시각디자인, 대학원에서 공연예술, 런던필름스쿨에서 영화를 전공하면서 예술 전반에 시야를 넓혀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2007년부터 3년간 삼성전자에서 디자인 리서치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직장을 나온 그는 재개관한 공연장 두리춤터의 디렉터를 맡았다. 두리춤터는 강낙현 씨의 어머니인 임학선 성균관대 무용과 교수가 1990년 춤 전용 소극장으로 만든 공간. 1995년 문을 닫았다 2010년 다시 연 이곳을 그는 춤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가 만나 융합하며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만들어내는 실험의 장으로 만들었다.
현대인의 소외·고독 표현하는 한국적 춤사위
1980년생 동갑내기인 강낙현·정보경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스무 살 때. 비행기에서 스치듯 만난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길을 가면서도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 사이였다. 지난해 강낙현 씨는 정보경 씨에게 빌바오에서 열리는 액트 페스티벌을 소개하면서 “한번 나가보는 게 어때?”라고 제안했다. ‘빌바오 액트 페스티벌’은 신인 예술가들을 위한 국제 콘테스트 페스티벌로, 연극-무용 등 공연예술과 비디오댄스 부문에서 수상자를 가리는데, 정보경 씨는 공연예술 경쟁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때 선보인 작품이 〈길 위의 사람들(on the road)〉.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고뇌하는 청춘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으로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다”는 평을 들었다. 이 페스티벌에는 강낙현 씨도 비디오댄스 부문 심사위원으로 와 있었다. 빌바오의 유서 깊은 아리아 극장 앞에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강낙현 씨는 정보경 씨에게 “함께 작업해보지 않을래?”라고 제안했다. 〈드라이브 스루〉는 그렇게 시작했다.
정보경 씨는 “이 친구 때문에 많은 것이 변했어요. 그때까지는 홀로 가는 길이었지요. 연출과 안무·음악·의상까지 모조리 혼자 생각하고 혼자 책임지면서 저만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라이브 스루〉를 만들면서 완전히 달리 생각하고 접근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길이 열렸어요. 그전에는 하얀 도화지에 예쁘게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도화지를 접기도 하고 자르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본질만 훼손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어요”라고 말한다.
강낙현 씨와 만나면서 정보경 씨의 춤은 준비 과정도 공연내용도 완전히 달라졌다. 강낙현 씨는 만날 때마다 갖가지 생각과 아이디어를 쏟아놓았고, 정보경 씨는 그걸 끈덕지게 들어주면서 함께 공연을 만들었다. “보경이가 아니면 내 이야기를 그렇게 들어주고, 반영해줄 무용가가 없었을 것”이라고 강낙현 씨는 말한다. 한 작품당 석 달 이상 준비해 무대에 올리는 보통의 무용 공연과 달리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무대에 반영했다. 음악은 한국에서 생활하는 스웨덴 출신 음악인 이다 그랜도스 리가 맡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드라이브 스루〉란 이름을 내걸고 넉 달 동안 공연했지만, 공연 내용은 그때그때 달라졌다. “춤을 안 추면 어때?”라는 강낙현 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전혀 춤을 추지 않은 공연도 있었다. ‘언제 춤추나’ 기다리고 있던 관객 중에는 급기야 “왜 춤을 안 춰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 공연이 궁금해 계속해서 찾아오는 관객도 생겨났다. ‘신선해서 좋다’와 ‘도대체 이게 무슨 공연이냐?’는 평가가 엇갈렸다. 두 사람은 “스페인에서는 관객이 우리 공연을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편안했다”고 말한다.
“400석 공연장이었는데, ‘한국에서 온 젊은 사람들의 작품이니 누가 와서 볼까?’ 했어요.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 보니 좌석이 거의 다 찬 거예요. 젊은 사람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까지 관객층이 다양했고, 호응도 좋았습니다.”
영상과 음악이 춤을 떠받치는 요소가 아니라 같은 비중으로 등장하면서 서로 섞이고, 연극 같은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무대.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공연은 한순간도 눈을 돌릴 수 없게 팽팽한 긴장감 속에 이어졌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보경 씨는 이다 그랜도스 리의 기타 연주로 혼자 춤을 췄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뇌를 함축하고 있는 듯한 춤. 그런데 몸동작 하나하나에서 한국적 춤사위가 엿보였다. 조용히 기를 모아 팔을 내뻗는 동작, 손놀림 하나에서도 한국무용의 정수라 하는 정중동(靜中動)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한국무용의 본질을 살리면서 지금 우리 삶의 모습을 담고 싶다”던 정보경 씨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경계를 넘어 새로운 도전에 나선 두 사람. 그들이 우리 문화의 외연을 어떻게 넓혀갈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