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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목의 동화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흰구름
이이행 시인의 삶과 문학
시인을 찾아서 ? 정숙인 시세계 ? 최현규
도서출판 고향
소록도에서 1
신음 소리
무겁게 가라앉는
유배(流配)의 섬
처절한 생령들을 안고
밤마다 바다가 흐느껴 운다
누구 하나
따스한 손
건네주지 않는
천길 나락에 주저앉아
때로 때때로
복 바치는 통곡을 누르고
하늘 우러러
마음 깊은 곳에
오롯한 촛불 하나 밝히고
문드러지는 육신을 떠나
오직 영혼만을 가꾸는
저 큰 아픔을
누가 안겨주었을까
하늘이여
어루만져 주소서
이이행 시인은 전남 함평군 신광면 연화리 함정 마을에 살고 있다.
2008년 8월 22일, 한 여름의 열기가 가득한 날, 소설가 조수웅, 시인 정숙인, 동화작가 김 목이 이이행 시인의 고향 마을이자 삶터를 찾았다.
시인의 숨결이, 땀이, 손길이 묻은 뜨락에는 시인의 마음처럼 소박하고 싱그러운 풀꽃나무들이 다정스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인은 이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물결처럼 잔잔한, 때로는 폭풍우처럼 열정적인 시를 쓰고, 다듬어 그렇게 청결하면서도 뜨거운 노래를 남기고 있었다.
석등 위에 소라껍질 두개가 다정하게 놓여 있다. 시인에게 바다소리를 노래로 들려주는 듯 싶다.
시인의 집은 깔끔하고 소박했다.
‘바르게 성실하게 너그럽게’
정숙인 시인은 그 날 세월과, 이상을 뛰어넘어 진정한 향토 시인을 만났다고 했다.
이이행 시인의 집에서 가까이 있는 독립운동가 김 철 선생을 만나러 가고 있다.
이이행 시인을 찾아서
정숙인
전남 문협에서는 삶과 문학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존재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창작에 몰두하는 이 지방의 작가를 찾아서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해 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에 걸맞는 작가로 이이행 시인을 꼽아도 손색이 없을 듯싶어 전남 문협 회장님을 비롯한 편집진들은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연화마을 시인 댁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한 걸음만 도시 밖으로 걸어 나와도 선선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며 지나고, 파릇거리는 들풀들과 논둑 아래로 줄선 나락들의 리듬이 결실의 빛깔을 자아낸다. 뿌듯해지는 마음으로 이 시인 댁에 들어서자 담을 타고 올라선 능소화가 먼저 반겨준다. 시인이 손수 가꾼 아름드리 꽃밭에는 하얀 수국이며, 상사화, 백일홍 등등 여러 가지 나무와 꽃들이 늦여름을 지내고, 그 가운데에 정교한 석등이 집 안의 모든 일들을 아우르는 듯 밝다.
“이 시인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계셨는지요?”
지긋한 미소로 대신하신다.
현관에 막 들어서려는데 “이이행, 정연애” 라고 나란히 적힌 문패가 정겹다. 금실지락(琴瑟之樂)이라고, 부부사이가 화목한 것은 거문고와 비파가 각기 소리는 달라도 이심전심 서로 화음을 이루듯이 끈끈한 부부애를 감지할 수 있었다.
거실에 앉으니 탁자에는 이제껏 작품을 발표했던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벽에 가훈(바르게, 성실하게, 너그럽게)과 , 家傳忠孝 世守仁敬(가정에서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사회에서는 대대로 인자하고, 어른을 곤경하는 법도를 지켜라)이라고 쓰인 액자가 눈에 띄었다. 모든 것이 안온하고 친정집에 온 듯 편안해진다.
정숙인 : 이 시인님 줄곧 이곳에서 사셨나요?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신지요.
이이행 : 이 곳 연화마을에서 부친 이광우 씨와 모친 박말재 여사의 4남 2녀 중 2남으로 태어났어요. 1950년 신광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그 해에 6.25가 일어났고, 형이 금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답니다. 지금은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어요. 조부께서는 큰 양조장을 하셨기에 가계가 넉넉하여 부친은 그 당시 동경 유학파셨어요. 그런데 6.25 동란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었지요. 나는 1956년에 영광중학교를 졸업하고, 59년 광주농고 46회로 졸업했어요. 학교 다니면서 그러니까 19세에 결혼했어요.
정숙인 : 누구에게나 유년시절의 기억은 아름답고 애틋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이 시인님은 어떤 기억이 있으신지요?
이이행 : 초등학교 다닐 때인데 일본 여선생이 스즈리까(작문)시간에 내가 썼던 글을 읽고 극찬해 주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때는 자신감이 불끈불끈 솟고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정숙인 : 아마도 그 때부터 문학의 기질이 있으셨나 보네요. 그럼 글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쓰게 되었는지요?
이이행 : 그러니까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는 글을 쓰지 못했어요. 농촌의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인가요.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 때는 엄두도 못 냈어요. 늘 마음에 이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나이 불혹이 되어서야 펜을 들게 되었어요. 새농민사에 글을 보냈는데 그 문예란에 작품이 발표되어 거기에서 힘을 얻어 습작을 하다가, 권일송 시인의 추천으로 80년 시문학지에 “새댁”과 “들길에서”로 등단했어요. 그 후 1992년 문예사조 6월호에 “필부와 지게” “뻐꾸기”가 발표되었고, 94년 월간문학 3월호에 “직녀의 한” 문학세계 11, 12월호에 “노을”, 95년 월간문학 1월호에 “돌”, “소양강 물소리”, 시대문학 봄호에 “촛불이 타는 밤에” “학”, 문학공간 6월호에 “아내에게”, 시대문학 가을호에 “고궁”, 시세계 가을호에 “코스모스 연가 2”, 96년 문학공간 3월호에 “뻐꾸기 1”, 월간문학 5월호에 “망월동 오월의 영령 앞에서”, 문학공간 8월호에 “돌부처”, 문학21 8월호에 “낮달”, 문예한국 가을호에 “강가에서”, 시대문학 가을호에 “산란 1”, 문예한국 겨울호에 “영동을 지나며”, 97년 문학춘추 봄호에 “포장마차”, 불교문예 봄호에 “풍경”, 문학 21 2월호에 “지리산 천왕봉”, 문학세계 2,3월호에 “산란”,“ 풀벌레”, 월간문학 5월호에 “소록도에서 2”,“ 정선귀촉도”, 문예한국 여름호에 “꽃을 보며”,“ 화장터에서”, “한풀이 춤”, 시대문학 여름호에 “촛불”, 문학 21 10월호에 “해바라기”, 자유문학 가을호에 “자화상”, 문예한국 가을호에 “갈대 2”, “풀벌레 2”, “가을과 우리의 영혼” 문예사조 11호에 “대금소리”, 세기문학 겨울호에 “곡마단”, “낙엽”, 98년 문학공간 1월호에 “첫사랑”, 순수문학 1월호에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는가 로마의 교훈을 잊었는가”, 문학세계 2월호에 “병실에서”, “어느 무덤 앞에서”, 문학 21 2월호에 “낙화암”, 자유문학 봄호에 “섬진강”, 자유문학 가을호에 “촉루를 보며”, 문예한국 가을호에 “깊은밤 홀로 찻잔을 앞에 놓고”, 월간문학 9월호에 “강가에서”, “바위 앞에서”, 문예사조 11월호에 “계유정란”, 99년 불교문예 봄호에 “불갑사에서”, 문학세계 4월호에 “풀꽃”, “첫사랑”, 문예한국 여름호에 “무상”, “우공”, “산다는 것은”, “인동초”, 99년 불교문예 가을호에 “불갑사에서”, 불교문예 가을호에 “운주사에서”, “범종소리”, 문예한국 겨울호에 “정선아리랑” 2000년 월간문학 2월호에 “반성”,“ 범종소리”, 문예한국 여름호에 “무등산”, “ 독도”, 불교문예 가을호에 “에밀레 종소리” 불교문예 겨울호에 “돌”, “아내에게”, “개망초”, “사랑은”, “정중동”, 문예한국 봄호에 “고궁”, “수술실에서”, “산란 앞에서”, “휘파람새”, “겨울산”, “개나리” 등등 을 발표하였어요.
정숙인 : 90년대에 정말 왕성한 활동을 하셨군요. 이제까지 발표했던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은요?
이이행 : “소록도에서 1” 과 “에밀레 종소리”인데 소록도에서 1을 소개할께요.
소록도에서 1
신음 소리
무겁게 가라앉는
유배(流配)의 섬
처절한 생령들을 안고
밤마다 바다가 흐느껴 운다
누구 하나
따스한 손
건네주지 않는
천길 나락에 주저앉아
때로 때때로
복 바치는 통곡을 누르고
하늘 우러러
마음 깊은 곳에
오롯한 촛불 하나 밝히고
문드러지는 육신을 떠나
오직 영혼만을 가꾸는
저 큰 아픔을
누가 안겨주었을까
하늘이여
어루만져 주소서
정숙인 : 그래요.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의 희망과 절망이 곳곳에 베어 있는 곳이죠. “하늘이시여 저 유배의 섬의 신음소리를 들어 주소서, 밤마다 흐느껴 우는 저 소리를,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소서”, 한센병 하면 ‘보리피리’로 유명한 한하운 시인이 떠오르네요. 고향의 봄 언덕과 , 어린 날의 꽃청산, 인환의 인간사가 그리워서 더 없이 서러운 그 설움을 글로 표현했던 시인이죠.
정숙인 : 이 시인 님의 작품에서는 현실에 대해 좀은 날카롭고, 내적고투의 흔적들이 배어있는 것 같아요. 주로 어떠한 경향의 시 세계를 추구하시는지요?
이이행 : 서정적인 시의 경향을 따릅니다. 그리고, 기교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다소 비판적이며, 사물을 속속들이 파고들어 내면을 비추어보는 시적 묘사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정숙인 : 끝으로 문단 및 문학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시겠어요?
이이행 : 시인이 시작에 임할 때는 잡념을 버리고,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마음을 죄다 비우고 영혼을 정화해 정밀(靜謐)한 심경에서 수도승이 참선하는 자세로 해야 합니다. 재물과는 담을 쌓고, 오욕에 젖지 말 것이며, 도량이 넓어야 합니다. 네편 내편 갈라서 이전투구 추태를 보여서는 안 되며, 탐욕을 버리고, 흑심을 버리고, 오만을 버리고, 망상을 버리고, 편견을 버리고, 아집을 버리고, 권모술수도 버리고, 사물을 올바로 볼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깊은 밤 무거운 고뇌를 안고 흐르는 강물의 아픔과 갈바람에 움츠린 풀꽃의 아픔까지도 담을 수 있는 따스한 가슴으로, 진정한 선비 정신으로 붓을 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숙인 : 시인이 지켜야 할 덕목은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지침까지 깊이 새겨들게 하네요.
세상의 일들은 복잡하고 미묘해서 얘기치 않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시시때때로 감정의 산물이라서 자칫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모든 시름에서 비움을 배우며, 겹쳐지는 일상의 단면들에 대해 이해와 관대함으로 대처해 나아가라는 지침을 말해주는 듯하였다. 우리는 이 시인의 시와 삶 속에 고스란히 배어있는 향토적인 성격이나 색감 또는 결결이 빚어진 무욕과 회한과 성찰에서 오는 진정성을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이행의 시세계
최현규
I. 들어가는 말
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서로 따뜻한 정을 주고받는 사회를 꿈꾼다. 서로 이기적이지 않고 웬만한 일에는 이해심으로 웃고 넘어가고 편협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아픔과 슬픔, 기쁨, 고통까지도 서로 나눌 줄 아는 아량이 넓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삶 속에 따뜻한 인간애가 묻어나는 그런 사회를 말이다. 그런데 이이행 시인을 만나면 만날수록 반갑고 내가 꿈꾸는 사회의 주인공을 만나기에 한없이 그리운 사람이다. 항상 자신을 낮추며 겸손해 하시고 순수하시기에 풀꽃 같은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좋다. 후배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한 마디 한 마디 하시는 말씀이 공손하시고 때 묻지 않은 친절함이 물씬 묻어난다.
Ⅱ. 작가의 생애와 시 세계
1) 작가의 생애
이이행 시인은 1935년 1.9,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연화마을에서 부친 이광우씨, 모친 박말재 여사의 4남2녀 중 2남으로 출생 하였으며 향리의 신광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6.25가 일어났고 이때 금화지구 전투에서 형이 전사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 후 영광중, 광주농고를 졸업하고 1980년 4월호 시문학에 ‘새댁’, ‘들길에서’로 권일송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였으며 2003년 11월 처녀시집으로 ‘직녀의 한’(織女의 恨)을 발간하였으며 ‘한국자유시인협회’ 이사와 ‘한국공간문학회’ 이사를 역임하고 오랫동안 ‘시류문학회’ 에 몸담아 지금은 이 동인회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광주시인협회’ 이사, ‘전남문협’ 시분과위원장, ‘전남시인협회’ 수석 부회장 등, 현재도 젊은 문인 못지않게 여러 문예지에 작품을 투고하며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이이행 시인이야말로 우리 시단의 숨겨진 원로이자 푸른 영혼의 시심을 노래하는 시인이 아닐까!
2) 작가의 시 세계
이이행 시인은 젊을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농촌에 파묻혀 농사를 지으며 바람과 햇살과 흙속에서 한 줄의 시어(詩語)를 얻고 작품의 소재를 얻는다. 그래서인지 시적경향을 살펴보면 다분히 서정적이며 기교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또 비판적이며 사물을 속속들이 파고들어 내면을 비추어 보는 시적 묘사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탁월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전설처럼 존재하는 역사 속의 슬픔을 승화시켜 限 으로 토해내며 노래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목이 타는 갈증을 재우는 일이다
그 갈증을 재우려는
뼈 아픈 몸부림이다
산다는 것은
가슴에 별을 묻는 일이다
그리고 그 별을
알뜰이 키우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때로 때때로 눈물이 도는 아픔을
꿀꺽꿀꺽 삼키며
굽이 굽이
아린 세월의 강을 건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채워도 채워도
빈 그릇으로 남는
허탈한 가슴 안고
허무의 강을 건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전문
이이행 시인에게 ‘삶’은 ‘갈증’을 재우려는 ‘뼈아픈 몸부림’이다. 그 ‘갈증’은 한편으로는 가슴에 별을 키우는 일로 인해 생겨나는 갈망(소망)으로 인한 갈증이며, 또 한편으로는 눈물이 도는 아픔을 꿀꺽꿀꺽 삼키며 세월의 강을 건너야 하는 인고와 견딤이 만들어내는 갈증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지나온 시간(과거)으로부터 앞으로의 시간(미래)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시인의 삶에 놓여진 하나의 숙명이다. 그 시간의 연속선상에 시대의 아픔이 있고 역사의 피맺힌 한이 있으며, 때로는 개인사적인 슬픔의 원천이 놓여있다. 시인은 그러한 아픔과 한으로 엮어진 삶의 갈증들을 재우며 또 한편으로는 희망의 별들을 알뜰히 키우며, 좀처럼 채워지지 않고 빈 그릇으로 남는 삶의 강물을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숨 가쁜 오늘을
잠시 비껴서서
거칠어진 숨결을 재운다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목이 타는 日月
안으로 안으로 꼬인 마음을
강물에 풀고 나면
찌든 영혼이
허물을 벗고
파릇파릇 생기를 되찾는다
마음을 비우고
강물처럼 여유있게
강물처럼 너그럽게
살아갈 순 없을까
노을 지는
강나루 언덕에 서서
강물처럼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흘러흘러
나도 갈 것을 상상해 본다. -<강가에서?1>전문
어수선한
이생의 바람소리 감감한
여기 호젓한 강가에
내 일상(日常)의
버거운 짐을 부리고
자애로이 펼쳐 있는
그 넉넉한 품에 안긴다
메마른 가슴을
흥건히 적셔주는
파란 숨결이 더없이 향그럽다
금시에 맑은 피가 돌아
찌들어가는 영혼이
소롯이 눈을 뜨고
움츠린 날개를 편다
속박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면
아련히
무한으로 이어지는
선계(仙界)가 열리는 것을
허물을 벗고
신선으로 태어나는 것을. -<강가에서?2>전문
이이행 시인이 노래하는 강물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이 녹아 들어가 있는 역사의 강물로 볼 수 있다. 시대의 恨과 개인의 恨이 녹아있는 강물 앞에서, 언젠가는 자신의 삶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강물에 보태질 것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삶도 강물처럼 흘러가게 될 것이라며, 속박 (삶이 만들어낸 모든 인간적 고뇌와 집착, 욕망, 슬픔, 恨) 에서 벗어나 신선으로 태어나는 초월과 초탈을 꿈꾸는 것이다.
특히 뼈아픈 역사의 흐름과 현실 속에서 가슴 깊이 묻고 살아왔던 것들을 파내어
시인 특유의 청각적 시어로 한(恨)을 토해내고 있다. 또한 올곧은 선비 같은 자세로 자신을 성찰하며, 과거 체험이나 현실 속에서 평범한 대상을 새로운 존재로 부각시키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서 온갖 잡념을 버리고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마음을 비우고 영혼을 정화한 채 정적인 상태에서 세월의 무상함과 허무 속에서 조용히 서정적 속울음을 토해내고 있다.
낙화암과 청령포 悲史비사, 봉덕사 종소리에 숨어있는 슬픈 역사의 恨한을 노래한 다음 시를 읽어보자.
바다 저 쪽 거센 바람
등에 업고
중원을 짓밟은 천군만마 그 발굽에
갈기갈기 찢겨진 역사
꽃처럼 피었다 이울어간
슬픈 왕조여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자취 없이 흘러가버린 뒷자리에
한 깊은 응어리로 남아
뼈아프게 지켜 온
천 년 세월
생 략 -<낙화암>중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오가는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이 거느렸던 수많은 궁녀들이 흉악한 적군에게 굴욕을 당하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것이 옳다하여 깊은 물에 몸을 던진 낙화암 앞에서 화자는 갈기갈기 찢겨진 역사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본다. 뼈아프게 지켜온 천년 세월 시공을 초월하여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떠도는 원혼들의 한을 강물이 목이 메어 울부짖고 있음을 청각적 효과로 표현하고 있다.
청령포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창자를 끊는
애절한 전설이 있다
목 놓아 천 년을 울어도
가시지 않을
풀어도 풀어도 풀 수 없는 응어리
끓는 피가 솟구칠 비분이
거기 있다
두고 두고 뼈 아픈 역사
피에 젖어 치욕으로 얼룩진
이 나라 역사가 거기 있다.
눈감지 못한 어린 넋이
피를 쏟아 울어예는
애끓는 통곡 소리
귀촉도 귀촉도......
- 이하 생략 - -<청령포 비사(悲史)>중에서
15세 어린 임금 恨한 맺힌 단종 유배지, 영월 청령포는 50인 군졸들에 이끌려 불안 속에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영월당 서강(西江) 모래톱에 닿았던 곳으로 어린 단종이 독약을 마시고 비운의 최후를 마친 곳이다. 이이행 시인은 귀촉도의 애끓는 울음소리를 이입하며 2연에서 목 놓아 천년을 울어도/ 가시지 않을/ 풀어도 풀어도 풀 수 없는 응어리/ 끓는 피가 솟구칠 비분이 거기 있다/ 고 했다. 어린 나이에 유배지에 홀로 남아 살다가 끝내는 사약을 받고 사라지는 원통한 어린 넋과 슬픈 이 나라 역사를 볼 수 있다. 오직 권세와 부귀영화를 꿈꾸며 살해와 음모, 간악한 범죄를 저지르며 양심과 도덕성을 잃어버린 뼈아픈 역사를 화자는 청포에 내려앉은 달빛이 숨죽여 흐느끼고 있다고 말하면서 소리 낮추어 오히려 크게 전달하고 있다.
구천(九泉)을 맴도는
피맺힌 통곡 소리
안으로 안으로
응어리진 한을 안고
가슴 미어지는 통곡 소리
지지(遲遲)한 日月
즈믄 해를 삼키고도
눈 감지 못한 기찬 넋이
삼계(三界)를 뒤흔드는
저 울부짖음!
에밀레가 운다
강물처럼 목놓아
에밀레 어린 넋이 운다
- 이하 생략 - -<봉덕사 종소리>중에서
봉덕사의 종소리 역시 슬픈 역사의 점철로 이루어진 글이다. 성덕대왕이 신종을 제작하기 위해 34년이나 매달려 왔던 신라인들은 실패가 계속되자 신종의 소리를 얻기 위해 어린아이를 희생양으로 바치기로 하고 신라의 종소리를 만들기 위해 젖을 빨던 한 아이가 쇳물 항아리에 바쳐졌던 것인데 화자는 종의 생명이 소리라는 이미지를 담고 /구천을 맴도는/ 피맺힌 통곡소리/ 안으로 안으로/ 응어리진 한을 안고/ 가슴 미어지는 통곡소리/ 라고 했다. 또한 /즈믄 해를 삼키고도/ 눈감지 못한 기찬 넋이/ 三界삼계를 뒤흔드는 어린 넋의 울부짖음/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위의 세편의 시 ‘낙화암’(강물의 울음), ‘청령포비사’(귀촉도 울음), ‘봉덕사 종소리’(종)에서는 역사 속의 전설 같은 아픔을 이이행 시인이 청각적으로 보다 강하게 한을 토해내는 의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음에 노래한 두 편의 시 ‘피아골에서’와 ‘소양강 물소리’에서는 전자와 또 다른 분단 이념의 역사적 아픔을 노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시대를 뜨겁게 달군
이념 하나로
서로를 겨누던
치욕의 총부리를 거두고
살벌하게 회오리치던
피 바람도 재우고
산하(山河)엔 씻은 듯이 평온이 깃들어
다시 목가가 울려 퍼진다
-중략-
처절하게 죽어간
꽃다운 목숨들이
뻐꾸기되어
해종일 피를 토해 울어옌다. -<피아골>중에서
어지러운 역사의 혼돈 속에서 이념의 대립으로 동족 간에 이글거리는 총부리를 겨누며 지리산 자락 피아골을 울리던 총성이 멎었지만 아직도 그들의 꽃다운 영혼이 산과 산을 넘고 능선과 계곡을 떠도는 뼈아픈 역사의 소용돌이를 뻐꾸기라는 울음을 통해 청각적 이미지로 나타내고 있다.
하늘도
눈 감아버린
피로 물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없이 죽어간 넋이
처절하게 죽어간 넋이
흐느껴 우는 소리
지친 능선
얼빠진 골짜기마다
다시 숨결이 돌아
새들은 노래하고
선혈(鮮血)이 씻긴 강물은
수정(水晶)처럼 맑은데
잠들지 못하고
애끓는 저 울음소리
목이 메어
목이 메어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
고향 벗들을 부르는 소리
먼 태고로부터
이어져 온
따스한 핏줄 같은 강이여
-이하 생략- -<소양강 물소리>중에서
화자는 어린 날(초등학교 6학년) 6?25를 맞이하면서 처참한 비운의 역사를 체험해야 했다. 그리고 끝내는 군에 입대한 형의 전사 통보를 받으면서 통한의 아픔을 느낀다.
스무살 꽃다운 어린 나이에 이념의 대립으로 얼룩진 포화의 격전지 강원도에서 날아온 형의 비보, 그리고 가족들의 절망, 비애, 실의, 폐허, 허무, 무상을 소양강 강물을 통해 소리 높여 마지막 읊고 있다.
처절하게 죽어간 넋이 흐느껴 울며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애끓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그리고 차마 목이 메어 어머니?아버지 혈육의 정을 부르는 소리, 고향의 산천초목과 벗님들 부르는 소리, 강원도 아리랑 애달픈 가락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결국 세월처럼 흐르는 강물이 소양강 강줄기 따라 생명처럼 계속 이어져 끊임없이 흐르듯 우리의 반세기 역사도 권세와 분단 이념의 대립 소용돌이 속에서 恨의 맥을 이어 왔습니다. 시인은 조용한 강물=소용돌이 역사=혈육의 恨한으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역사 속에 남아있는 통한의 아픔, 서리서리 엉긴 슬픔, 피울음, 복받치는 통곡, 뼈아픈 회한 등 시인의 독특한 시어로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승화시키고 있다.
Ⅲ. 나오는 말
이이행 시인의 작품에는 혼이 담겨져 있다 ‘들길에서’와 ‘풀꽃’ ‘풀벌레’ 작품을 보면 얼마나 감성이 예민하고 심약한지 지나치는 바람 한 점, 풀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과 햇살, 풀벌레 울음소리에도 잠 못 이루며 고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원귀마냥 삭풍이 우짖는다
아스라이 머언 하늘 끝에서
철새들이 떼밀려온다
어느새 나의 가을은
까칠한 허물을 벗어두고
저만치 모롱이를 돌아가고
이제 옷깃 속으로 솔솔
겨울이 스며든다. -<초기 추천작 들길에서>중에서
해맑은 눈망울에
글성 글성한 눈물을
자모(慈母)의 햇살이 지워준다 -<풀꽃>중에서
별자리가 바뀌고
계절이 돌아가는
눈금을 헤아려
가을이 침몰해 가는
빈 자리에서
촉박해진
시한부 생명을
피가 타도록 울어옌다 -<풀벌레?2>중에서
항상 매사에 준비하고 돌아올 푸른 꿈을 기다리며 청순하게 삶을 살아가는 분이시다.
등단 후 23년 만에 그동안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을 한데 묶어 제1시집 ‘직녀의 한’(織女의 恨)을 발간하시고 다시 습작하듯 글밭을 가꾸고 계시는 우리 고향의 농부이자 원로 시인이시다. 이이행 시인의 눈길은 따뜻한 인간애가 흐른다. ‘소록도에서,’ ‘에밀레 종소리’에서 보듯 천형이라고 모두가 회피하며 누구하나 따뜻한 손 건네주지 않는 유배의 섬 소록도를 바라보면서 본인 스스로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통곡 속에서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어 마지막 촛불 하나 켜들고 하늘을 우러러 의지하는 모습과 ‘에밀레종소리’ 에서도 강물처럼 흘러가는 어린 넋의 처절한 절규를 들으며 울음 우는 것은 평소 이시인의 순수하고 맑은 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이시인은 슬픈 우리의 역사 속에 전설처럼 남아있는 백제의 멸망, 신라의 종소리, 어린단종의 비사, 분단이념속의 지울 수 없는 상처, 계유정란에서 5.18망월동까지 시공을 초월하며 사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 삶인가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이를 꾸준히 실천하는 투철한 시대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이시다. 무거운 고뇌를 안고 흐르는/ 강물의 아픔과/ 가녀린 풀꽃의 신음 까지도/
가슴으로 감지할 수 있어야 하느니/ 라는 시인의 예리한 감수성과 눈 오는 밤 중년을 넘어선 소학교 동창에게/ 편지라도 쓰고 싶어진다/ 는 연륜에 어울리지 않는 참신한 글을 보면서 동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시는 이이행 시인님이 마냥 부럽고 존경스럽다. 한 점 흔들리지 않는/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올 곧은 선비의 그 높은 지조와 기품을 배우고 싶다/ 에서 기개 높으신 선비 같은 삶은 탐욕과 흑심,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또한 망상과 아집, 명예욕, 권모술수도 버리고 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깊은 혜안을 감지하게 한다. 이이행 시인님은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글 쓰는 사람의 위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삶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시적 향기에 흠뻑 취한다.
첫댓글 전남문학 특집이 만든 큰 자랑입니다. 문학의 진정성입니다. 진짜 작가 발굴입니다. 당시 김목 편집인, 최현규 주간, 정숙인 편집국장!의 문학사에 길이 빛날 업적입니다.
보석을 캐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갈고 다듬어 알아주게 만드는 일도 우리 몫이라 생각합니다. 남도문학이 남도문학인들의 삶터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고 열정을 쏟았으면 합니다. 지금 그 열정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