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이상
<줄거리>
나는 몸이 아주 약하지만 그 대신 자아 의식은 매우 강하다. 그리고 현실적 감각은 흐린 편이다. 또, 게으르고 매사에 의욕이 없으며 늘 지쳐 있다.
나는 접객 업소에 나가는 아내와 셋방에서 살고 있다. 아내와 나의 방 사이는 장지로 가리워져 있다. 아내의 방에는 가끔 가다 손님이 찾아온다. 거기서 아내는 손님과 해괴한 수작도 벌인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내가 격한 반응을 보이는 법은 없다. 나는 아내가 시켜주는 밥을 먹고 낮잠을 자거나 혼자서 공상에 잠기며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여성용 팬티인 사루마다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어보기도 한다.
어느 날 나는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바지 포켓 속에 남은 돈 몇 푼을 문지방에 던져놓고는 줄달음질을 쳐서 역으로 간다. 나는 숙명적으로 아내와는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 부부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제 거동에 제동을 걸지 않고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걸어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무기력한 자아 의식에 빠져 있을 때, 정오 사이렌이 울린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은 없는 날개를 떠올린다. 그리고 외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읽기>
사람은 날고 싶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래 날지 못하는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날개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들은 당연히 날고 싶다는 꿈을 꾸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날지 않고 땅에 정착하여 살아보았으면 하는, 지금과는 극도로 상반되는 꿈을 하염없이 꾸면서 살아갈는지도 모른다.
문학은 바로 인간의 이러한 꿈을 문자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나타내는 예술 행위이다. 이루지 못한 꿈, 이루고 싶은 꿈을 인간 최고의 창조물인 문자를 통해 표현하는 행위가 바로 문학이라는 말이다. 이미 읽거나 들어서 알고 있는 옛날의 시가에서부터 오늘날의 최신 소설에 이르기까지 기억나는 대로 하나하나 돌이켜 보라. 진정 문학은 인간의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안타까움을 구구절절한 가락으로 기록해낸 예술 행위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꿈이 없으면 그는 이미 인간이 아니고, 인간의 꿈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 문학은 인간의 삶의 기록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조선 시대의 시가로 알려진「공무도하가」를 보자. 백수광부는 강을 건너는 것이 자신의 꿈이다. 그러기에 그(꿈이 큰 사람)는 저 도도한 물줄기를 가로질러 강을 건너려고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꿈이 없거나 작은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는 '머리카락이 허연 미친 남편[白首狂夫]'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하지만 백수광부는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남들이 다 이룰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이미 꿈이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강에 빠져 죽는다. 그가 만약 강을 건넜다면 그것은 강이 아니라 개울에 불과하며, 그가 건너려던 것이 진정 강이라면 그는 기필코 익사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백수광부는 곧 일제 식민지 시대의 작가 이상이며, 이상은 곧 1997년의 우리 자신이 아닐는지.
☆ 이상 : 본명은 김해경. <구인회> 회원. 난해한 시『오감도』를 발표하여 문단과 사회에 충격을 던진 이래 소설『날개』,『종생기』,『지주회시』등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심리주의적 작품들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