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를 편찬한 국사 일연은 기이편에서 서국 요와 동시에 건국된 우리민족의 최초 국호를 조선이라 했고 환웅천왕의 신시를 옛조선이라는 뜻으로 `고조선`으로 부제하였다. 동시에 단군 왕검이 세운 조선은 `왕검조선`이라 부제하였다.
따라서,
서기전 2333 년 건국된 조선 곧 일연국사가 고민 끝에 부제한 왕검조선을 고조선 곧 환웅천왕의 고조선과 혼용하여 인식한다면,
조선역사 첫줄부터 망나니 개판 역사로 흐르게 된다.
그런데 현재 저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즉,
1870 년 대 초부터 일본명치왕군부가 기획.선전한 조작.식민사관은,
환웅천왕의 고조선은 물론이고 왕검조선과 왕검조선에 이은 단군부여의 남쪽 제후국이였을 서기전 3 세기 대의 부否.준準왕의 조선마저도 배제하고 전설.신화라고 한다.
그리고는,
서기전 2 세기 100 년에도 미치지 못하는 곧 서국 연나라 망명자인 만과 손자 우거가 극히 짧은 약 80 년 동안 준왕조선 땅을 점거한 것만을 부각시키고 동시에 만.우거가 점거한 곳과 시기를 `고조선`으로까지 정의한다. 결국 그 이전의 고조선.왕검조선.준왕조선 등 3000 여 년간의 조선 국호를 물타기한 것이다.
서국 사마천이 만.우거의 80 년 조선땅 점거를 조선이라 지칭했지만 대한 5000 년 역사에서 80 년은 별 의미 없다. 그것도 서국 망명자라면 더욱 그렇다. 또한 서국의 <관자>에 언급된 조선이 만.우거의 조선일 리도 없으니 사마천의 만.우거 조선 운운은 조선을 모르는 소치다.
또한 만.우거 시기의 조선 역사 정통은 만.우거 북쪽에 단군의 제위를 이어받은 부여 곧 단군부여가 있었고 부여의 시작도 왕검조선과 같았으니 부여 국호만으로도 만.우거와 동시기까지에는 2300 년에 이르니 고작 80 여 년인 만.우거는 주변사에 불과한 것이다.
더군다나 만.우거가 점거한 땅은 후일 한漢이 설치한 낙랑군 1 개 지역에 불과하며 그 낙랑군 지역은 지금의 란하 하류 동쪽 건창 부근이였고 그 남쪽과 동쪽인 지금의 산해관과 지금의 조양 지역에는 삼한三韓이 있었으니 만.우거가 차지한 영역도 그리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만.우거의 조선 또는 고조선`이란 명칭을 활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첫댓글 님이 ㅇㅇ동이신 것 같은데요
우리 역사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수고하신 것은 높이 평가하고 싶지만
말투가 님의 노력을 모두 없애 버리고 님의 주장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반감만 높이게 될 것입니다
님의 글에 대한 제 개의적인 의견을 말씀드리면
글에는 님의 자의적이고 개인적인 주장만 있는 것 같아 보이고요
글을 읽는 사람이 주장하시는 내용이 맞는지 틀린지 검증하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주장하시는 내용에 대한 문헌과 사료 내용을 제시해 주어야
사료와 문헌의 내용을 확인하여(문헌에 해당 내용이 있는지도 직접 확인해야 함)
님의 주장이 해석을 제대로 했는지 그리고 주장이 타당한지 아닌지 교차 검증이 가능합니다
특히 지리적인 위치는 주장만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글을 읽는 분들이 각자 제시한 사료나 문헌을 이해하고 나서
글에서 주장한 내용이 올바르게 해석했다고 판단되어야 님의 주장에 동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멍청하고 한심한 놈이로고.
칠삭동이라고 당당하게 못하니?
수구리군처럼 장님이 지팡이질하듯 지리를 인식하니 연.진장성의 동단 지점이나 고구려와 왕검조선의 강역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지리 인식의 핵심은 요수다.
곧 마수산 보다 먼저 요수가 지금의 어느 물길인지부터 찾아라.
신채호와 계연수가 이미 가르쳐주지 않았더냐?
<삼국사기>나 현 중국전도 쳐볼 생각 말고,
<한서/지리지><후한서/군국지>의 유주 속군현 기록과 <수경주/고수.포구수.난수.대요수.소요수> 및 송 시기 이후 각석.간행된 고지도 참고하거라.
무지무식하고 성의없게 2000 여년 전 요수는 절대 찾지 못한다며 주절대지 말고.
덕림석 애기야
여기는 우리나라 역사를 진지하게 전하고 토론하는 곳이다
너와 같이 반말하고
근거도 빈약한데 막무가네로 주장하는 애들 놀이터가 아니니 다른곳에 가서 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