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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지리산 둘레길 5코스(동강-수철)
여행일 : ‘21. 11. 6(토)
소재지 : 경남 함양군 휴천면과 산청군 단서면 일원
여행코스 : 동강마을(1.2km)→자혜교(1.5km)→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1.8km)→상사폭포(1.7km)→쌍재(0.9km)→산불감시초소(1.4km)→고동재(3.6km)→수철마을(거리 및 시간 : 12.1km/ 실제는 12.18km를 3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1,915m)은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남원·구례·함양·산청·하동)에 걸쳐있다. 또한 아흔아홉 계곡과 500여 개의 자연마을을 품는다. 그 지리산의 둘레를 걷기 길로 이은 게 ‘지리산 둘레길(현재 20개 읍·면, 100여 개의 마을을 지난다)’이다. 오늘은 5구간인 동강-수철 구간을 걷는다. 5개 코스 60.2km로 이루어진 산청권역의 첫 번째 구간으로 마을과 마을을 이어가는 다른 구간들과는 달리 코스 대부분이 산길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답게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군봉들은 5구간의 백미라 하겠다.
▼ 들머리는 동강마을(함양군 휴천면 동강리)
광주-대구고속도로 함양 IC에서 내려와 1084번 지방도를 이용 함양으로 들어온다. 잠시 후 위천교를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삼거리(함양읍 이은리)에서 좌회전하여 1001번 지방도로 옮긴다. 화촌리(유림면소재지)를 코앞에 둔 삼거리(유림면 서주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60번 지방도를 따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원기마을 버스정류장에 이른다. 정류장 근처의 ‘엄천교’를 건너면 동강마을이다. 5구간의 시작을 알리는 벅수는 마을 방향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있다.
▼ 동강마을(함양군 휴천면)과 수철마을(산청군 단서면)을 잇는 12.1km짜리 구간으로, 둘레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산길을 걷는 다는 느낌이 강하다. 덕분에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걸으며 산행하는 즐거움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아픈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으며,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도 살짝 엿듣게 된다.
▼ 동강(桐江) 마을 앞을 지나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그런데 ‘오동나무 동(桐)’자를 쓰는 지명과는 달리 이 마을에는 오동나무가 없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을 앞 엄천강(儼川江)에서 따왔을 것으로 추측한다. 후한(後漢) 때의 은자인 엄광(嚴光, BC 37-43)이 은거했다는 곳이 임천의 또 다른 이름인 ‘엄천강’이고, 권력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살다 간 엄광의 모습이 ‘동강수조(桐江垂釣)’ ‘동강조어(桐江釣魚)’ 등의 제목으로 시와 그림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 마을 앞은 엄천강(임천)이 흐른다. 남원 쪽에서 내려오는 달궁의 물과 뱀사골 물에 한신계곡 물과 백무동 물이 합쳐지면서 마천으로 흘러든다. 여기에 다시 칠선계곡과 국골에서 내려오는 물이 더해져 엄천강(儼川江)이 된다. 이 엄천강은 ‘엄광(儼光)’이 낚시하고 살았다는 냇물이요 강물이라는 뜻이다. 중국 후한시대 광무제의 동기동창 중 엄광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황제가 된 친구가 좋은 벼슬을 준다고 해도 거절하고 산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해서, 한자문화권 식자층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 마을길이 끝나면 들길. 확 트인 들녘을 낀 평지가 주를 이루는데 옆으로 천이 흐르고 멀리는 산의 능선이 꼬리를 문다. 짱짱한 산들을 바라보면서 꽤 오래 들녘을 걷는다.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고 편히 걷는 구간이다. 한여름 뙤약볕이라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가을이라면 불편할 것도 없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엄천강의 강가에 눌러앉은 마을들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왼편은 조금 전 트레킹을 시작했던 동강마을. 오른편 강 건너에는 동호마을이 있다. 김종직(金宗直)이 함양군수로 재직할 때 만든 ‘관영 차밭 조성 터’가 있는 마을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4분 남짓. 들길을 지나 마을과 멀어지면 찻길이 나온다. ‘자혜교’ 근처의 삼거리인데 다리를 건너면 ‘상촌마을’. 둘레길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방곡마을’로 향한다. 방곡마을 및 점촌마을의 입구임을 알려주는 표지석과 표지판이 각각 세워져 있으니 참고하면 되겠다.
▼ 이제 둘레길은 지리산 자락을 향해 거슬러 올라간다. 시원스레 뚫린 차도이지만 자동차는 거의 볼 수 없다.
▼ 잠시 후 점촌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6.25로 더 익숙한 한국전쟁 당시 양민 집단학살사건이 일어났던 아픔의 현장이지만 둘레길은 점촌마을로 들어서지는 않고 스치듯 지나친다. 참고로 이 슬프고도 무서운 사건은 이곳 말고도 가현마을과 방곡마을, 서주마을 등이 더 있다. 이 모두 지리산 고동재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마을들이고 지금은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 점촌마을을 끝으로 지리산둘레길의 함양구간은 막을 내린다. 이어서 산청구간이 시작된다. 그 시작점에 방곡저수지가 놓여있다. 2022년 말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인데, 완공되면 금서면과 생초면 일대의 농경지 345ha가 혜택을 받게 된단다.
▼ 길을 나선지 30분. 차도가 지겨워질 무렵 2단으로 맞배지붕을 올린 ‘회양문(廻陽門)’이 나온다. 이 문은 6.25전쟁 당시 빨치산 소탕이라는 구실 아래 우리 국군의 총검에 무고하게 학살당한 양민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한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의 정문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7일 우리 육군(11사단 9연대 3대대)에 의해 ‘견벽청야’라는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이 수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함양군 점촌마을(휴천면)과 서주마을(유림면), 그리고 산청군(금서면) 가현·방곡마을 주민 705명의 영령들을 모셨다.
▼ 산청함양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의 공비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중 양민을 통비분자(通匪分子)로 간주하여 집단학살한 처참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다. 1951년이니 전쟁이 한창일 때이고 빨치산에 의한 피해가 극심하던 시절이라 군인들의 적개심도 최고조에 달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토벌 작전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여 적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높아진 순간 집단의 광기가 폭발하였고 그 대상은 엉뚱하게도 그 지역의 양민이었다. 어느 한 집단이 광기에 휩싸이고 그 광기가 증폭되면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 높디높은 계단을 오르니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위패를 모셔놓은 ‘봉안각(奉安閣)’은 합동묘역 뒤 언덕에 걸터앉았다. 다녀오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거리인지라 위령탑 앞에서 묵념하는 것으로 갈음하기로 했다. ‘부디 영면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회양(廻陽)’이라는 정문의 편액처럼 슬픔·고통·음지의 과거를 극복하고 새 시대의 역사를 열어가는 상생과 양지로의 화합을 만들어가길 빌어본다.
▼ 참! 희생자합동묘역의 안내소를 그냥 지나쳐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자. 지리산둘레길 완주를 인증받기 위해서는 이곳에 비치된 스탬프를 찍어가야만 하니 말이다. 또 하나. 이왕에 왔으니 역사교육관에 들러 한국전쟁의 참상과 함께 당시 사용하던 옛 물건들을 구경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 추모공원에서 직진하면 방곡마을이다. 하지만 둘레길은 방곡마을을 직접 거치지 않는다. 추모공원의 바로 위에 있는 ‘당산 숲’에서 찻길을 벗어나 왼편 계곡 방향으로 내려선다. 코너에 ‘지리산둘레길 산청구간별 안내도’와 함께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 이때 마을 방향에 세워놓은 ‘공개바위’ 팻말이 눈길을 띈다. 바위 다섯 개가 비스듬하게 쌓여있다는 것이다. 맞다. 거리가 꽤 멀기 때문에 다녀올 수는 없었지만 방곡마을 뒷산에는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마고할미가 공기놀이를 하다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꽤 유명한 바위가 있다. 5개의 육면체 바위가 석탑모양으로 쌓여 있는데, 높이가 12.7m나 되는데다 30도나 기울어져 있다고 해서 ‘한국판 피사의 사탑’이라고도 불린다.
▼ 야외 풀장까지 갖춘 ‘방곡둘레길 체험마을’을 지나 ‘방곡1교’를 건넌다. 새로 놓은 티가 역력한 것이 요 아래 방곡저수지에 물이 채워질 때를 대비해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저수지가 완공되면 다리 아래까지 물이 넘실댈 테니까 말이다.
▼ 다리 아래로는 ‘오봉천’이 흐른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물답게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다. 지리 동부능선의 왕등능선에서 흘러내린 저 물은 이곳 방곡마을을 지나 임천에 합류한다.
▼ 둘레길은 이제 방곡저수지의 가장자리를 따른다. 그러다보니 시야가 툭 트이면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공사 현장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둑과 취수장 등 시설물 공사는 이미 끝났고, 지금은 바닥을 정리하는 마감공사가 한창이다.
▼ 조금 전에 들렀던 ‘합동묘역’도 시야에 들어온다. 아니 추모공원 전체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 아까보다 오히려 더 낫다.
▼ 다리를 건넌지 5분. 작은 개울을 만난 둘레길은 이 개울을 건너지 않고 거슬러 올라간다. 점점 깊은 산중으로 끌어들이는 좁은 숲길이지만, 무너진 곳은 메우고 끊긴 곳을 이어놓은 덕택에 산보하듯 가볍게 계곡을 오를 수 있다.
▼ 조형미 넘치는 바위 계곡을 내려다보며 걷는다. 물길은 바위 표면을 따라 구불구불 휘감아 떨어져 내린다. 그 뒤로 울긋불긋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단풍이 배경이 되어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구간을 산청의 지리산 둘레길 중 백미로 꼽는다.
▼ 콧노래 나오는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간다. 발아래 계곡에는 이름 없는 작은 폭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폭포가 있으니 소(沼)와 담(潭)은 필수. 개중에는 저렇게 깊은 소도 눈에 띈다.
▼ 길 내기가 옹색한 곳에는 데크 계단을 놓았다. 누군가는 이 길을 옛날 지리산자락 장꾼들이 함양·산청·덕산을 오가며 생을 이어가던 길이라고 했다. 험난했을 게 뻔한 옛길은 저렇게 덧칠을 한 다음 지리산둘레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 길은 개울을 왼편 옆구리에 차고 이어진다. 길가는 울긋불긋 단풍이 한창이다. 다음 주초에 가을비가 찾아온다고 했으니 저런 아름다움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비 지나간 산자락은 온통 낙엽으로 뒤덮여있을 테니까 말이다.
▼ 계곡으로 들어선지 13분. 길다면 길게 치고 오르자 왼편으로 작은 오솔길 하나가 열린다. 5구간의 자랑거리인 ‘상사폭포’로 연결되는 지점인데, 이정표가 세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곳이기도 하다. 길을 인도하던 대장님 말로는 ‘바닥만 보며 걷는’게 원인이라지만 글쎄다.
▼ 그 원인을 나는 이정표(왕산↑ 3.1km/ 상사폭포← 10m/ 추모공원↓ 1.4km)에서 찾고 싶다. 원목의 색깔이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주변 숲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30m쯤 들어갔을까 ‘상사폭포’가 나타난다. 높이가 20m쯤 되는 이 폭포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절절함이 담긴 전설이 깃든 폭포이다. 한 남자가 속으로만 사모하던 여인네를 못 잊어 상사병에 걸려 죽고 말았더란다. 그렇게 죽은 남자가 뱀으로 환생해 그 여인의 몸속으로 꼬리를 감추고 들어가려는데, 놀란 여인이 손으로 뿌리쳐 그만 뱀이 죽고 말았다. 이때 뱀이 죽은 자리가 지금의 상사계곡이 되었고, 여인은 폭포의 바위가 되어 계곡물과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여인을 희롱하듯 여러 갈래로 바위를 쓰다듬으며 흘러내리는 폭포 물줄기가 무척 에로틱하게 보인다.
▼ 폭포를 빠져나오자 이번엔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폭포의 위로 올라가는 구간으로 돌계단에 밧줄난간까지 설치해 놓았다.
▼ 폭포 위로 올라와서도 길은 개울을 벗어나지 않는다. 개울을 좌우로 갈아가며 이어지는데, 경사까지 완만해서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이렇듯 왕산자락을 잇는 지리산 둘레길은 푸근하게 웃는 낯으로 길손을 받아들인다.
▼ 얼마쯤 걸었을까 앞서가던 집사람이 화들짝 놀라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나무에 매달린 CCTV 카메라를 가리킨다.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나라는 범죄자들이 숨을 곳은 없다던 어느 범죄심리학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이런 심심산골에까지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니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겠는가.
▼ 폭포에서 30분쯤 더 올라가자 산자락에 들어앉은 민가 한 채가 스르르 나타난다. 부침개와 도토리묵을 안주삼아 약주 한잔 들이킬 수 있는 ‘주막’이다. 이곳은 지리산둘레길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약초 농사를 해온 석재규씨 가족의 보금자리라고 한다. 그래선지 자연산 약초와 고로쇠 수액, 약초달임액, 효소, 칡즙, 감식초, 짱아치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아무튼 안주를 기다릴만한 여유가 없어 캔 맥주만 마시고 나왔는데, 이 또한 둘레길에서나 만날 수 있는 소소한 재미가 아닐까 싶다.
▼ 둘레길은 주막 위에서 ‘왕산 임도’와 만난다. 그리고는 왕산의 산허리를 에두르며 ‘쌍재’로 향한다. 차량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널찍한 임도다.
▼ 이 구간은 둘레길만 빼꼼히 남겨놓고는 온통 철망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었다. 산약초재배지이니 침범하지 말라는 ‘출입금지’ 팻말도 걸려있다. 이를 보고 야속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들의 심정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 그동안 이 길을 지나간 많은 사람들이 주민에게는 자식처럼 소중한 재산인 농작물을 함부로 꺾거나 채취했다는 증거일 테니까 말이다.
▼ 임도를 따라 10분쯤 더 걷자 ‘쌍재’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요리보고 저리 봐도 고갯마루가 아니니 문제다. 그저 세 갈래의 임도가 만나는 지점에 불과한 것이다. ‘큰재’와 ‘바람재’를 합쳐서 지금의 ‘쌍재’가 되었다고 했으니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5분쯤 더 걸으니 진짜 고갯마루가 나온다. 아무래도 ‘쌍재’는 이곳을 말하지 않을까 싶다(kakaomap도 이곳을 쌍재로 표기하고 있었다). 각설하고 쌍재는 함양(휴천)에서 산청으로 넘어가던 고갯마루로 예전에는 상당히 큰 대로가 나있었다고 한다. 주막과 제법 큰 마을도 있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한 가구만이 약초를 재배하며 마을을 지키고 있단다.
▼ 고갯마루에는 이정표가 두 개나 된다. 지리산둘레길(수철 5.8㎞/ 동강 6.3㎞)과 동의보감둘레길에서 세운 것인데, 이름표가 없는 탓에 이곳의 정확한 지명은 알 수 없었다.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 고갯마루에서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을 따라 난 길은 널찍하면서도 경사가 거의 없다. 가끔은 가파른 구간이 나오기도 하지만 침목계단을 놓아 오르는데 부담이 없도록 했다.
▼ 지리산둘레길은 종종 제주올레길과 비교되곤 한다. 해안을 따라 섬 전체를 한 바퀴 도는 올레길과는 달리 둘레길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리산 둘레를 광범위하게 휘도는 산간 트레일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지리산의 허리쯤까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간도 있다. 이때는 고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시야가 확 트이면서 드라마 속에서처럼 지리산 능선을 마주할 수 있으니 까짓 고생쯤이야 언감생심이 아니겠는가.
▼ 앞서가던 집사람이 손짓을 보내온다. 사진 찍을만한 풍경이 나타났다는 일종의 사인이다. 맞다. 육산 특유의 밋밋한 능선을 따르다가 바윗길을 만났으니 어찌 특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쌍재에서 능선을 탄지 23분 만에 산불감시초소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봉우리에 올라섰다. 해발은 643m(핸드폰의 앱이 알려준 높이다). 쌍재-고동재 구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데, 그 덕분에 사방으로 시야가 터지면서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 사람이 많이 찾기로 유명한 구간인데 어찌 돌탑하나 없겠는가. 쌓아올린 솜씨도 가히 예술이다. 바라는 바가 얼마나 지극했으면 저리도 정성들여 쌓았을까 싶다.
▼ kakaomap은 이곳을 ‘조망점’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그만큼 조망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 구간을 조성한 ‘사단법인 숲길’에서 그걸 놓칠 리가 있겠는가. 동서 양쪽에 조망도 두 개를 세워 실물과 대비해가며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 먼저 천왕봉부터 살펴보자. 누군가는 지리산둘레길을 일러 ‘천봉만학(千峰萬壑)을 거느린 지리산 주능선이 눈을 떠도 보이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길’이라 했다. 그가 말한 풍경을 이곳 산불초소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1915m의 천왕봉을 위시한 수많은 봉우리들을 가슴에 담으며 ‘어리석은 사람도 지혜로워진다’는 지리산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 반대방향에는 왕산(王山, 925.6m)과 필봉산(筆奉山, 858.2m)이 있다. 왕산은 가락국의 멸망을 지켜본 구형왕의 능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이 활쏘기를 했다는 사대(射臺)가 있는 산이다. 그 오른편에 있는 필봉산은 선비의 고장인 산청을 상징하는 산이다. 산의 이름대로 붓끝처럼 뾰쪽하니 솟아올라 필봉(筆峰) 또는 문필봉(文筆峰)으로도 불리기도 한단다. 하지만 똑 같은 생김새인데도 여자의 가슴이 연상된다며 유방봉 또는 유두봉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니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 왕산·필봉산 능선과 오른편의 웅석봉 능선 사이에는 잠시 만나게 될 수철마을이 놓였는데, 산기슭을 타고 올라 계단처럼 된 ‘다랭이논’이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그 너머에서는 다음 구간 때 지나게 될 산청읍이 반갑게 맞아들이겠다며 손짓을 보내온다. 한마디로 멋진 풍광이다. 이는 산에 오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 고동재를 향해 산을 내려간다. 이 구간도 역시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이번에는 고도를 까먹어가며 내려간다는 게 다를 뿐이다.
▼ 산불감시초소에서 내려선지 15분. 삼각점이 설치된 601m봉에 올라섰다. 특별할 게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봉우리에 불과하지만 한쪽 귀퉁이에서 조망이 터지니 놓치지 말고 눈에 담도록 하자.
▼ 이번에는 오봉천 주위의 마을들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아까 지나왔던 점촌마을과 방곡마을과 그 위에 위치한 가현마을. 하나같이 함양산청사건의 피해지이다. 토벌대는 저 마을들에서 끔찍한 집단광기의 만행을 저질렀다.
▼ 울긋불긋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능선은 한마디로 아름답기 짝이 없다. 설악을 붉게 물들인 단풍이 산 능선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세력을 떨치더니 어느덧 지리산에까지 이르렀나 보다. 하지만 그 기세의 절정기는 고작해야 한 달뿐. 그러니 걷는 걸 서두르지 말 일이다. 그리곤 오색향연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대끼고, 마음으로 느끼며 걸어보자.
▼ 참! 산경표(山經表)를 따라 산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이 능선을 왕산분맥(王山分脈)이라 부르고 있었다. 천왕봉에서 북쪽으로 뻗어나간 웅석지맥(중봉과 하봉, 웅석봉, 백운산, 황학산을 일군 뒤 진양호에서 그 숨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56.5km의 산줄기)의 왕등재에서 분기해 고동재와 쌍재를 지나 왕산과 필봉산, 사자봉을 일군 다음 남강의 두물머리(경호2교)에서 숨을 다하는 12km의 산줄기란다.
▼ 삼각점봉을 지나친지 15분. ‘고동재’에 내려섰다. 수철리에서 방곡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로 지형이 고동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근처 습지에 사는 산고동이 우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그나저나 이 고개는 수철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국군(11사단 9연대 3대대)이 빨치산 토벌을 명목으로 지났던 길이기도 하다. 이들 군인들에 의해서 가현마을과 방곡마을, 점촌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 고갯마루에는 눈길을 끄는 시설물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는 천하대장군이 오두방정을 떨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산불 조심을 하잔다. 그게 신기해 ‘왔다 갔다’를 반복해봤는데 이에 질세라 똑 같은 소리를 쏟아낸다. 고놈 참! 결국에는 내가 항복하고 말았다.
▼ 이정표(수철 3.5㎞/ 동강 8.6㎞)는 5구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일까? 문득 군 생활 말년에 배째라며 내뱉던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려운 구간이 모두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나머지 구간은 오롯이 내려가는 길이다. 경사까지 완만해서 걷기가 여간 편한 게 아니다. 대신 포장도로라서 다소 지루하다는 단점도 있다.
▼ 이 구간은 가끔가다 시야가 트이기도 한다. 이때는 어김없이 왕산과 필봉산이 나타나는데, 가끔은 산청시가지가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 그렇게 23분쯤 내려서자 임도의 지루함을 달래줄 쉼터가 나온다. 하동 출신인 박두만씨가 부인과 함께 운영한다는 ‘고동재 농원’인데 간단한 요깃거리와 함께 손수 담근 오미자 막걸리를 팔고 있었다. 석청(깊은 산의 절벽이나 바위틈에 든 자연산 꿀)과 산나물도 팔고 있었다. 맞다. 주인장 박씨는 3대째 이어온 석청 채취꾼이라고 한다.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전문가란다.
▼ 주막의 액자가 눈길을 끌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어중이떠중이 다 지리산으로 오라는 글귀에서 요즘 화재가 되고 있는 tvN의 드라마 ‘지리산’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산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사고를 파헤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드라마로 드라마 상에서 주인공들은 지리산 국립공원 레인저로 등장한다. 지난주에 방영된 3·4회에서도 주인공들이 거친 산길을 누비고 있었는데, 그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모처럼 지리산에 들어섰으니 극의 주인공이 되어 힘차게 걸어보자.
▼ 주막 근처는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어느 글쟁이는 저런 풍광을 보고 ‘단풍 빛이 맑다. 맑아서 곱다. 맑고 고와서 순수하다’고 읊었다. 그리고는 그 앞에 서면 까닭 없이 뉘우치고, 밑도 끝도 없는 그리움이 일어난다고 했다. 맞다. 단풍에 감염이라도 된 듯 붉게 물든 집사람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 길이 좋아져서인지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난다. 그런데 종주꾼들 복장은 찾아볼 수 없다. 하나같이 산책삼아 나온 듯한 가벼운 옷차림인 것이다. 그래 이 구간은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지리산 둘레길’이란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했었다. 당시 이 구간을 걷던 이수근이 ‘탐구생활’이란 주제로 청개구리와 만나 천진하게 노는 장면을 연출했었는데, 이게 흥미로웠던지 방영 이후 이 구간을 찾는 일반인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 이 구간도 역시 민박이나 펜션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시골의 정취를 제대로 맛보려면 푸짐한 시골밥상까지 먹어볼 수 있는 민박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이 구간은 종점인 수철마을에 숙소가 많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가을의 전령은 단풍만이 아니다. 가을을 대표하는 또 다른 풍경. 억새가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뭉게구름 머무는 하늘을 배경삼아 하얗게 부서지는데, 이게 가을의 풍취를 여과 없이 전해주고 있었다.
▼ 수철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새 단장이 한창이다. 왕복 2차선의 포장길로 바꾸는 중이란다. 하지만 함께 걷던 어느 분은 이런 풍경이 영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자신의 고향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해오고 있다면서 계속해서 툴툴거리고 있었다.
▼ 산행날머리는 수철마을(산청군 금서면 수철리)
고동재를 출발한지 55분. 수철마을에 이르면서 5구간 트레킹이 종료된다. 가야왕국이 마지막으로 쇠를 구웠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지리산둘레길은 이곳에서 또 다른 연결을 기다린다. 참고로 ‘수철’이란 지명은 옛날 이곳에 무쇠로 솥이나 농기구를 만들던 철점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4구간과 5구간의 교차점임을 알리는 벅수는 마을회관의 처마 밑에 세워져 있었다. 지리산둘레길 산청구간의 전체도도 보인다. 산청과 연계된 지리산둘레길은 5구간부터 9구간까지 5개 구간 60.2㎞에 이르는데, 오늘은 그중 5구간을 걸었다. 핸드폰의 앱에 찍힌 거리는 12.18km. 이를 3시간 40분 만에 걸었으니, 절반 이상이 산길로 구성되어있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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