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목 : 축복사역 / “주님의 능력으로 돌파하라!”
+ 본 문 : 시 편 27장 1절 - 6절 (구약성경 820쪽)
1 여호와는 나와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오늘도 행복한 주일에 주님의 교회에 오셔서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과
사랑하는 우리 모든 믿음의 가정과 생업, 사랑하는 모든 자녀 손들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옆의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기도한대로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축복 사역을 시작하겠습니다. / 옆에 분들에게 동시에 하지 말고 한 분씩 각각 1분씩 축복합시다.
서로 똑바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축복하십시오. 옆에 분에게 꼭 필요한 축복을 알아서 해보십시오.
여러분! 어떻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니까 축복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요? 참 행복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축복사역을 하고,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일은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꼭 필요한 사역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모두는,
너도 축복 받고, 나도 축복 받고, 모두가 축복받기 위해서, 모두 다 축복사역에 동참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축복 사역자’ 가 되시기를 다짐하는 마음으로 옆에 분들과 고백을 나눕시다.
“나는 축복 사역자가 되겠습니다.” “당신도 축복 사역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주일은 축복사역의 말씀 중 “주님의 능력으로 돌파하라!” 제목으로 말씀나누겠습니다.
작은 풍랑을 만나 바다 한 가운데서 표류하던 배에 마실 물이 떨어졌습니다.
타는 목마름에 당황하고 있을 때 마침 배 한척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선원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보시오. 우리 배에 마실 물이 떨어져 죽을 지경이오. 물 좀 주시오.” 지나던 배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들은 이미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 하류에 도착한 겁니다. 그러니 강물을 퍼 마시면 됩니다.”
강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애타게 마실 물을 간절히 찾고 있는 선원들의 모습은,
마치 예수님 안에 있으면서도, 그 이름 안에 있는 놀라운 권세를 누리지 못하는 우리 모습과도 똑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이미 은혜의 강, 기쁨의 강, 성령의 강, 사랑의 강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은혜의 강물, 기쁨의 강물, 성령의 강물, 사랑의 강물을 마음껏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딸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베스트셀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시대의 지성인이요. 우리나라 초대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씨가 2007년도에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바다에서 살고 있는 아기꽁치가 엄마꽁치에게 물었습니다. “엄마엄마, 바다가 어떻게 생겼어요?”
아기꽁치의 뜬금없는 질문을 받게 된 엄마꽁치가 당황해 하면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글쎄 그런 게 있다고 듣긴 했다만, 나도 잘 모르겠다.” 바다 속에 살면서도 바다를 모르는 엄마꽁치나,
지금 예수님이라는 은혜의 강, 기쁨의 강, 성령의 강, 사랑의 강안에 있으면서도 그걸 모르면 쌤쌤 아닙니까?
그리고 이어령 교수는 우리 인간을 넙치, 참치, 날치형으로 나누어 아주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넙치형 인간은 세상이라는 바닥에 납작 깔려 살면서, 물 흐름을 타고 살짝살짝 움직이는 인간을 말합니다.
나름대로는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인간의 꾀로, 세상을 눈치껏 살아가는 참으로 약아빠진 인간형입니다.
그런데 날치라는 생선은 바다 바깥으로 뛰어 오르는 생선입니다. 촤악! 날아올라 바다바깥 세상을 봅니다.
수면을 박차고 멋지게 뛰어오르는 날치처럼, 꿈과 비전을 가지고 다른 세계로의 돌파가 우리 삶에도 필요합니다.
참치형 인간은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습니다. 때문에 하루 종일 퍼득퍼득 정말 바쁘게 헤엄치며 살아갑니다.
아마 돈이 있어야 사람 행세 할 수 있는, 소위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속합니다.
더 부요하고 더 풍성한 내일의 삶을 위해, 하루 종일 퍼득 거리며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6∙25 전쟁이후 폐허로 변해버린 이 땅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모두가 열심히 일했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 ”
옥수수죽에 깡보리밥 먹어가면서 모두가 허리띠 졸라매고, 아끼고 절약하면서 부지런히 일한 결과,
전쟁폐허의 흔적은 사리지게 되었고,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1996년 이미 OECD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기술력은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스마트폰은 세계 제일이고,
반도체 산업, 자동차, 가전제품 등의 분야에서 이제는 made in Korea 란 말 자체가 제품의 품질을 보증합니다.
이처럼 기술과학도 발전했고, 경제도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는데, 왜 우리의 마음은 더 억눌려 있을까요?
그것은 지금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온 세계가 억눌려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환경과 기후문제로 이상 기온과 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우린 억눌려 살아갑니다.
그런가하면 정신적인 억눌림으로 인한 범죄는 물론,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 다음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것은 관계적 갈등입니다.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심지어 가족, 교우, 직장동료 간에도 상처와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정말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문제는, 바로 영적인 문제입니다.
죽음의 문제, 죄의 문제입니다.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멸망으로 몰아가려는 사탄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시시때때로 공격해 옵니다. 여기에 걸려 교회들도 아파하고 가정들도 무너지고 어른도 아이도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런 영적, 정신적, 환경적, 인간관계의 억눌림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어려움 때문에 결코 너는 망하지 않는다.
너에겐 세상의 문제를 돌파하는 생명의 능력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원수 대적이 너를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
그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이기고 승리하리라.” 여러분! 믿습니까?
서울 홍대 앞 “4억 튀김녀 정은아 씨”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떡볶이로 1년 매출이 4억이랍니다.
정은아 씨는 떡볶이 하나를 만들어도 “1. 센 불로 정수된 물을 끓인다. 2. 물이 끓으면 떡을 한줌 정도 넣는다.
3. 떡이 통통하게 부풀어 떠오르면 자기만의 비법의 고추장을 적당히 넣는다.
4. 얇은 어묵을 넣어 조금만 더 끓여 어묵이 퍼지지 않게 한다.
5. 씹는 질감을 더해주는 파를 넣어 마무리한다.” 고 떡볶이 레시피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새우 한 마리를 튀겨 2000원을 받는 비법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차별화가 자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차별화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없는 하나님이 우리의 차별화입니다.
“나에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아멘!
바로 이 차별화로! 바로 이 마케팅으로! 성군이 되고, 성공자가 되고, 잘 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역사상 그 누구보다, 수많은 원수 대적의 끈질긴 공격을 받고도 백전백승 성공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블레셋의 장수인 골리앗의 위세 앞에, 이스라엘의 군대와 사울 왕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이라는 어린 소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 - 골리앗을 돌파하였습니다.
이 일로 백성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노래를 지어 부를 만큼 다윗의 이름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갑작스런 그런 성공이, 곧바로 위기로 돌변합니다. 사울 왕의 시기로 쫒겨 다니게 됩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성공이 한자 높아지면 공격도 한자 높아지고, 축복이 한자 높아지면 시험도 한자 높아집니다.
자신의 왕위를 빼앗길까봐 사울 왕은, 가까이 있는 다윗에게 두 번씩이나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후 다윗은 사울 왕과 그가 보낸 추적자들을 피해서 도망 다니는,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도망자가 된 다윗이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엎드려 기도하다가, 오늘 본문의 시를 짓고 노래합니다.
심지어 가드 왕 아기스 곁으로 도망을 가서는, 자기를 죽일까봐 미친 척 침을 수염에 흘리고 다녔습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요? 사해 근처 엔게디 동굴에 숨어 지내다가 사울 일행과 맞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시편 27편에 보면, 다윗은 당당하게 선포하며 주님의 능력으로 돌파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는 나와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의 이 당당한 선포가, 저와 여러분 모두의 선포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생물체에겐 대적이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곧 생명의 위협이 있다는 것입니다.
땅을 기는 한 마리 벌레에게도 천적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에게도 천적이 있어 위협을 당하고 삽니다.
사업가에게도 대적이 있고, 정치가 대통령이 되어도 정적이 있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대적이 많아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악한 대적 마귀가 있습니다. 질병도 상처도 죄의 짐도, 죽음의 두려움도 나의 대적입니다.
아무런 문제도 대적도 없이 사는 사람들은 모두 공동묘지에 있습니다. 산 사람은 누구에게나 대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억누르는 영적, 정신적, 환경적, 인간관계의 억눌림을 돌파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이 모든 우리의 대적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시편 27편은 “여호와는” 이란 말로 시작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집중합니다.
그러면서 “나” 라는 1인칭 단수가 1절부터 6절까지에 무려 21번, 27편 전체에는 40여 번이나 반복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온갖 대적에게 쫓겨 신음하고 있는, 나에게 어떤 분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아멘! 할렐루야! 믿습니까?
지금 내 형편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기만 한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그분은 나의 빛이 되십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는데, 하나님 곁으로 나아가니 그분은 나의 구원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 돌파의 능력이 되십니다. 그러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만 하였는데,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원수가 꼬꾸라집니다.
앞이 캄캄한 내 모든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면서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세워집니다. 믿습니까?
여기에 다윗은 또 하나를 더 구합니다. 저도 구합니다. 여러분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4절과 6절 말씀입니다. / 먼저 4절 말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음으로 6절 말씀입니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예배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 저는 이 말씀들이 너무나 좋습니다.
왜요? 잘 들어 보세요. 이 말씀들은 이제는 죽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보다는,
평안한 일상 속에서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잖아요? 너무 힘들고, 너무 두렵고,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아파서 죽기 살기로 기도하기보다는,
평안한 일상 속에서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백 번 천 번 더 낫잖아요.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겨운 짐이 없던 때가 있었나요?
나에게는 정말 내려놓고 싶은 짐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여기 누가 있나요?
아무도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대로 고달프고,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은 대로 힘들다고 말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도 괴롭고, 못 배운 사람도 힘들고, 권력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또 힘겨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학생들은 공부와 시험의 짐이 있고,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연약함과 죽음의 짐이 있습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모든 인간은 고통 속에서 태어나서 고통 속에서 살다가 고통 속에서 죽어갑니다.
그래서 모세가 고백합니다. “우리의 년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
그리고 세계 정복을 꿈꾸던 나폴레옹도 세인트 헤레나 섬에 유배되었을 때, 이렇게 한탄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단 일주일도 행복한 날이 없었다. 저기 바닷가에 넘실거리는 물결은 세상 사람들의,
눈물이요, 저기 부는 바람 소리는 세상 사람들의 한숨소리로구나.” 하면서 한탄했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가 스스로 고난을 원하든, 원치 않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존재입니다.
수고라는 단어가 처음 나타나는 곳이 창세기 타락직후입니다. 이때부터 수고는 인생의 별명이 되었습니다.
저 사람은 고민이 없겠지 하고 만나 보면 고민이 몇 배나 더 많습니다. 일의 고민,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
부모나 자식에 대한 고민, 부부간의 고민 등, 아무렇지도 않는 듯 웃는 얼굴 뒤에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넓은 가슴속에도 홀로 가슴 치는 아픔이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얽혀 그 갈등으로 영혼이 병들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그렇게 무거운 인생의 짐들을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절망하는 인생들을 향해,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에게는 안식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예수님이 아니면 누가 감히 이런 절대적인 초청과 약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한계와 문제를 돌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공계대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이스트 대학의 입학시험 문제입니다.
「70cm 길이의 2kg이 나가는 연어 한 마리가 87˚경사인 8m의 폭포를 뛰어 오르기 위해서 얼마의 에너지가 들까요?」
여러분 중에 대답할 수 있는 분 계십니까? 물론 저는 그 답을 압니다. 답은 「죽을 힘을 다해서 뛴다.」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해도 돌파가 안 되는 우리 인생의 모든 한계와 문제도, 예수님의 능력이면 쉽게 돌파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능력의 예수님께 나와 풀어야 할 짐, 풀어주시는 짐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풀어야 할 짐,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짐은 죄의 짐입니다.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죄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죄가 없어.” “나는 법 없어도 살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알고 보면 그런 사람이 제일 흉측한 죄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의 짐을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의 죄의 짐을 다 풀어 주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죄는 다 용서받게 됩니다.
둘째로,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풀어야 할 짐,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짐은 질병의 짐입니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서운 고통 중의 하나가 육신의 질병입니다.
질병은 생명을 앗아가고 행복한 가정을 파괴해 버립니다. 가정에 가족 중에 한 사람만 병들어도 행복이 깨집니다.
오늘날 의학이 발달했다고 자랑은 하지만, 불치병은 더욱더 늘어갈 뿐입니다. 암, AIDS, 이름 모를 난치병들,
그러나 "여호와 라파! - 여호와 하나님은 그 어떤 질병이라도 치료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출 16:16)
우리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질병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노라!” - 이 시간도 진정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질병의 짐이 풀어집니다.
셋째로,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풀어야 할 짐,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짐은 가난의 짐입니다.
여러분! 세계지도를 펴놓고 국민 소득 2만불, 3만불 이상 되는 나라마다 색칠해 보십시오.
그리고 나서 색칠된 그 나라가 예수님을 믿는 나라인가? 다른 종교를 믿는 나라인가를 알아보십시오.
틀림없이 여러분은 잘 사는 나라 30여 개 국 중에서, 95%가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외 5%에 해당하는 한 두 나라도 기독교를 받아들여 경제부흥을 이룩한 다음, 예수님을 버린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 나아와 가난의 짐을 내려놓음으로, 이제부터라도 부요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풀어야 할 짐,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짐은 죽음의 짐입니다.
여러분! 죽음의 사자가 오늘 찾아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죽음 이후의 준비하셨습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용서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구원함을 받은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 인생이 끝난다 해도, 오늘 지구가 없어진다 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생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벗기를 원하는 짐들이 죄의 짐, 질병의 짐, 가난의 짐, 죽음의 짐 뿐이겠습니까?
생활고의 짐, 자녀들의 짐, 염려와 근심과 걱정의 짐, 절망과 좌절의 짐, 실패의 짐도 지고 살아갑니다.
이런 모든 짐 진 온 인류를 향하여, 그리고 지금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여러분 이 말씀에 아멘입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이 어떤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았을지라도, 예수님께 나아오면 그 모든 짐들이 다 풀어집니다.
서너 살 난 어린아이가 밖에 나갔다가 동리의 큰 아이가 괴롭히면 “엄마” 하고 엄마를 찾습니다.
밖에 나가 놀던 아이가 넘어져 상처가 나도 “엄마” 하고 부르면서 집으로 들어와 엄마를 찾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십시오. 무슨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상처 난 몸을 이끌고, 실패한 몸을 이끌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며 예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여러분은 오늘 이 거룩한 성일에, 우리 예수님의 영인 성령님의 초청에 응하셔서 이곳까지 오셨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 모두 우리 예수님 앞에, 우리가 짊어지고 살아온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차려놓은 뷔페식당에서도, 내가 접시에 담아서 먹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무거운 인생의 짐을 해결하려 해도, 여러분이 내려놓지 않으면 해결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벗기를 원하는 죄의 짐, 질병의 짐, 가난의 짐, 죽음의 짐, 생활고의 짐, 가족들의 짐들,
염려와 근심과 걱정의 짐, 절망과 좌절과 실패의 짐을, 다 해결할 능력이 있는 예수님 앞에 다 내려놓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게 내려놓음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여러분의 모든 인생의 짐을 돌파하면,
여러분의 영혼이 한층 맑아지고 밝아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권세가 강해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그 어떤 죄라도 이길 힘이 더해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삶이 새로워짐을 느낄 것입니다.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므로,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더러운 욕망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돌파의 능력은 세상권력과 재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고 주님의 집에 있고 예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돌파하는 돌파의 능력입니다. 예수 십자가는 죽음과 죄를 돌파하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인생의 온갖 한계를 돌파하는 능력이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미 예수님의 은혜의 강, 기쁨의 강, 성령의 강, 사랑의 강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은혜의 강물, 기쁨의 강물, 성령의 강물, 사랑의 강물을 마음껏 마시십시오.
세상이 여러분을 삼킬 것처럼 덤빈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예수님은 세상보다 크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인생의 짐을 이 시간 내려놓음으로, 예수님의 능력으로 돌파하시고,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잘 되고 행복하시기를,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