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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05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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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 무대 장막이 내려갔다 올라올 때가 있어요. 새로운 '막'이 시작되는 거죠. 1막이 끝나고 2막이 될 때 주인공이나 무대 장치가 변하기도 하고, 중심 내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대자연의 흐름에선 각각의 '계절'을 하나의 막으로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1막 봄이 지나고, 2막 여름의 시작을 여는 커튼은 무엇일까요? 바로 장마입니다.
장마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서 발생해요. 북태평양 고기압은 우리나라 동쪽에 있는 태평양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고기압입니다.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는 적도에서 상승한 공기가 태평양 해역에서 하강하면서 형성되지요. 바다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무척 습하고 뜨거운 게 특징이에요.
이 북태평양 고기압이 2막 여름의 주인공이랍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봄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면 태양으로부터 힘을 얻어서 차츰차츰 우리나라 쪽으로 몸집을 키워요. 그러다 여름이 되면 우리나라에 있던 찬 공기와 힘겨루기를 하게 되고, 장마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북태평양 고기압이 이기는 건 시간문제예요. 그렇게 북태평양 고기압이 우리나라 상공을 집어삼켜 한반도를 지배하게 되면 폭염이 시작됩니다. 폭염은 보통 7월 중·하순부터 8월 중·하순까지 이어져요.
그런데 올여름엔 새로운 주인공이 하나 더 등장했어요. '티베트 고기압'입니다. 티베트 고기압은 티베트 고원의 강한 햇살을 받은 공기가 뜨거워져서 상승해 만들어진 고기압이에요. 전에는 중국 내륙까지만 확장해서 우리나라에는 큰 영향을 안 주는 '조연' 배우였죠. 그런데 올해는 한반도까지 찾아와서 '주인공'이 된 거예요. 그 결과 우리나라 하늘 중하층에는 거대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중상층에는 티베트 고기압이 겹쳐져서 여름 내내 폭염이 계속됐답니다.
티베트 고기압은 2018년에도 우리나라까지 찾아와서 장기간 폭염을 만든 적이 있어요. 그땐 두 고기압이 우리나라 북쪽에서 만났지만, 올해는 우리나라 남쪽에서 만났어요. 바람은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시계 방향으로 부는데요. 두 고기압이 우리나라 남쪽에 자리 잡다 보니, 시계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바다의 습기를 머금고 우리나라로 불어 들어왔습니다. 그런 탓에 무척 덥고 습한 여름이 된 거죠. 서울은 7월 21일부터 8월 23일까지 34일간 열대야가 이어져 '역대 최장 열대야' 기록을 경신했답니다.
하지만 자연이라는 무대 위에 영원한 주인공은 없어요. 당분간은 두 고기압이 우리나라 상공이나 근처에 머물 거예요. 그러나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물러나거나 영향력이 줄어들어요. 앞으로 태양 고도가 낮아지면 공기 상승이 이전만큼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 틈을 노려 북쪽 찬 공기가 내려와요. 그러면 3막 가을이 시작돼요.
이번 여름 폭염과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많이들 힘드셨을 텐데요. 계절을 자연이란 거대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이제 다가올 '3막 가을'도 멋지게 준비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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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언 기상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