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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표어 설교 6 +
+ 제 목 :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6)
"두려움과 불안감을 치유하라!"
+ 본 문 : 시 편 23장 1절 - 6절 (구약성경 817쪽)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우리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또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와 사고와 고통스러운 일 때문에 늘 마음이 불안합니다.
내 나라, 내 가족, 내 주변에 오늘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늘 불안 합니다.
이 마음의 불안과 초조를, 어떻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극복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인간에게 닥치는 불안과 공포에 대해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 이 얼마나 힘이 됩니까?
“사망의 골짜기” 란? 삶의 희망이 사라지고 오직 죽음의 절망적인 가장 고독한 골짜기,
황량한 삶의 시련을 말합니다. 시련이 너무 깊어서 이제는 삶의 희망조차 잃어버립니다.
살길이 막막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거긴 밝은 골짜기가 아닌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조금도 앞을 바라볼 수 없는, 빛이 사라진 고난의 어둠이 짙게 덮인 골짜기인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 고백합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처참한 처지에서도 결코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런 곳에서,
자신과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임할 것이라고 다윗은 굳게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을 위해 목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르는 양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눈에는 안보이고 느낄 수 없어도,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이 지팡이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요셉의 체험을 통해서 너무나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잘 섬기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형들에게는 미움을 받았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고자 작정하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온 요셉을 붙잡아 옷을 벗기고,
그를 마른 웅덩이에 빠뜨렸을 때, 그는 죽음이라는 사망의 골짜기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빛 전혀 없었습니다. 허허벌판 마른 웅덩이에 그를 던져 넣어버리고 그대로 떠나갑니다.
그는 살아 나갈 길이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모든 것이 끝장났고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믿었었습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이곳에 계신다.
이것이 우리 믿는 자 마음에 있는 위대한 소망입니다. 웅덩이에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얼마 있지 않아 주님께서 그 형들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아라비아 대상들이 올 때, 우리 동생을 저 웅덩이에서 죽게 만드는 것 보다는 팔아서,
돈벌이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의견을 모으고, 은 20냥에 종으로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요셉의 생각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아라비아 대상들에게 종으로 팔려 끌려갈 때, 요셉은 소망의 빛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7세의 나이에, 자신을 사랑해 주는 아버지를 떠나 예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는 처지가 되었으니, 빛이란 한줄기도 없었고 모든 것이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라비아 대상에 의해 종으로 끌려가면서도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요셉 혼자 애굽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같이 내려간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요셉은 10년 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외롭게 종살이를 했습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눈물로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 종살이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요셉은 몰랐습니다.
요셉은 언제나 자기 혼자 외롭고 고독하게 종으로써 고생하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종살이 하는 그 곳에,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요셉의 주인인 보디발도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심을 알았기에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쳤습니다.
요셉은 종살이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같이 계심으로 그가 하는,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정 총무가 되었으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불행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또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시위대 감옥에 갇혔으나, 그 사망의 골짜기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습니다.
창세기 39장 21절로 23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와,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자,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겨 처리하게 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절대로 내 형제나 부모나 친구가 나를 다 떠난다해도,
주님은 그 사망의 골짜기에 나와 함께 하시며,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고,
나의 삶에 주님의 능력으로, 형통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믿는 우리의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합니다.
원수는 우리들을 끊임없이 참소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하앙 같이 계시면서,
원수가 보는 앞에서 진수성찬을 차립니다. 시편 118편 6절로 7절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심으로, 원수가 공격하면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주님이 내편에 서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원수는 물러가고, 우리는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 100편 3절로 4절 말씀처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아멘! -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기르시기 때문에,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를 형통하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신다는 것은 우리를 구별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시 20편 6절)
하나님이 기름 부어서 구별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의 팔로 구원해 주십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그곳에서 원망하거나 불평이나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에 26절 말씀에 보면,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그라고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실라를 위해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차리신 것입니다. 특별히 간수장이 놀라 뛰어 들어와서 “선생이여, 어찌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묻자,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행 16:31) 간수장은 바울과 실라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여서,
진수성찬으로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세례 받고 예수 믿고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원수들은 바울과 실라를 죽이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고 기름으로 발라서 잔이 넘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통해 빌립보에 튼튼한 교회가 서고 하늘나라가 왕성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이 불안하고 초초할 때 이렇게 하십시오.
다윗처럼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나의 양을 위해서 나의 목숨을 버리노라.” 고 하셨습니다.
요셉처럼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마음에 용기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좀 됐습니다만, 2001년 911 미국 테러사건을 때, 부시 미국 대통령이 시편 23편,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 는 성경말씀으로 슬픔과 놀람에 빠져 있는 미국 국민을 위로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23편의 말씀은 마지막 죽음을 앞에 두고, 많이 읽혀지는 성경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암송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음속에 두어야 할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광고를 보니, 밀레의 생가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입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들녘입니다. 밀레가 그 광경을 보고,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23편의 말씀도 그런 그림을 보여 줍니다.
제가 그림의 제목을 붙이면 '자유' 입니다. 영적인 자유! 세상의 자유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자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자유를 가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자유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갈라디아서 5장 1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자유하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아멘입니다.
물론 여기서 자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영적인 자유입니다.
즉 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자유하기 위함입니다.
문제는 많은 분들이 자유를 누리기보다 오히려 죄책감을 가지고 삽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럼 구원받고 사는 우리가 왜 이렇게 자유하지 못할까요? 죽은 나사로 이야기 아시죠?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예수님께서 듣고, 나사로의 무덤에 가셔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러자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살아서 나옵니다. 그때 나사로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그는 살아났지만, 온몸에 세마포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향해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 그때 나사로는 완전히 자유를 얻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을 얻었지만, 여전히 죽음의 냄새를 풍기면서 그 무엇인가에 싸여있는,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옆 사람 보십시오, 혹시 세마포 감고 교회에 와 있는지 말입니다.
삶의 모든 문제, 죽음의 문제를 풀 때야, 비로소 우리가 참 자유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문제를 풀고 자유롭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내가 자유자가 되어야 하겠다 마음먹으면,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는 욕망에서부터 자유로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해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돈을 달라고 기도하면 돈을 더 안주시는 것 같습니다. 공부 못한다고 기도하면,
더 지혜를 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저를 골탕 먹이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점차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돈을 너무 많이 벌면 돈의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너무 잘하면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주님께서 내 주인이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4영리라는 전도책자를 보면, 의자에 내가 앉아 있다가 주님이 앉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인생의 주인이 나에게서 주님을 바뀌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받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은 저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님! 감사 감사합니다." - 그러나 이런 고백과 동시에 우리는 다른 음성을 듣게 됩니다.
"부족함이 없다고? 웃기지 마라, 너 돈도 필요하잖아 돈, 그리고 넌 좋은 직장도 필요하고,
그리고 네 자식도 문제가 많잖아. 네 삶에 얼마나 필요한 것이 많은지 알아? 웃기지 마라."
누구의 음성입니까? 사탄의 음성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음성을 듣고 마귀에게 동의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좀 더 갖기 위해 욕망의 포로가 됩니다. 그래서 마귀를 이겨야 합니다.
마귀를 이기는 비결이 시편 23편 1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하나님이 나의 목자요. 나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양은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양은 아주 연약한 존재입니다. 양은 방향감각도 없습니다.
양은 스스로 집을 찾아오지도 못합니다. 자기의 먹을 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양이 이런 문제를 고민하면 되겠습니까? 목자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고 하는 고백은,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중요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에게 맡기십시오, 그리고 자유로움을 누리십시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자녀는 두려움에서 자유로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정말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닌가?
주님께서 오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이런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모든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고 평안해야 합니다.
미국 경제공황 때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가,
이 순간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두려움 하나뿐입니다. 두려움을 제외하고는,
두려워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우리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미리 걱정하고, 미리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두려움이 아닌 평안을 가져야 합니다.
공지영이 쓴 수도원 기행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유럽여행 중 쓴 글입니다.
여행을 위해 남편과 출국수속을 밟는데, 1억 원, 1억 5천만 원짜리 보험을 들라고 합니다.
그런데 돈 많이 타려고 좋은 것을 들려다 보니, 이것은 내가 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허망해지더랍니다. 그러면서 두려움 때문에 들게 되었노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일은 두려움이 함께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시편기자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날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사망의 그림자가 있는 두려움의 골짜기를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두려운 곳입니다. 이 두려움을 이겨내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순교자들이 순교를 하게 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망의 두려움을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오지에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오지의 선교지로 들어가면서, 한 가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아멘! - 어느 정도로 함께 하십니까?
4절 후반 절 말씀을 함께 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지팡이는 방향을 가리키는 용도로 많이 쓰여 지고, 막대기는 사나운 짐승들이 공격할 때,
그 야생동물들을 쫓아버리는 보호용으로 쓰여 지는 도구입니다.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두려움을 내려놓아야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자녀는 죽음에서의 자유로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은 참된 자유라는 것은, 죽음에서의 자유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 시편 23편의 말씀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골짜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망권세는 마귀가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 마귀는 사망권세로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도 죽습니다. 죽음의 확률은 100% 입니다. 아무도 예외 없이 다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유는, 사망의 골짜기 - 죽음에서의 자유입니다.
매일 우리가 "아! 죽는구나!" 생각한다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리고 걱정이 됩니까?
우리 주님께서 하신 일은 우리를 죽음에서 자유롭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사망 권세를 물리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죽음의 자유에 대해, 나름대로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보면 "만일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집이 있는 줄 안다." 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죽음 앞에서 나는 낙심하지 않는다. 나의 겉 사람은 후패해 가지만,
나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고 고백하며 선포하였습니다. 정말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치 이사를 가는 모습입니다.
이사 갈 때 아쉬움은 있지만, 이사를 안 가려고 엉엉 울면서 발버둥치지는 않잖아요?
그냥 이사 가는 것으로 끝냅니다. 그리고 이사 간 후에는 살던 집에 미련두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주의 것이로다."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두려움과 불안감을 치유하게 하소서!
믿음으로 이 기도를 드리시는 마음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큰 소리로 선포하겠습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그동안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라는 주제로 여섯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함께 저를 따라 큰 소리로 선포하겠습니다.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주여! 상처입은 치유자로 살겠습니다.” “주여! 나의 분노를 치유하소서!”
“주여! 나의 우울증을 치유하소서!” “주여! 나의 열등감을 치유하소서!”
“주여! 나의 두려움을 치유하소서!” “주여! 나의 불안감을 치유하소서!”
♡ 이 시간 다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주여! 상처입은 치유자로 살겠습니다.” “주여! 나의 분노를 치유하소서!”
“주여! 나의 우울증을 치유하소서!” “주여! 나의 열등감을 치유하소서!”
“주여! 나의 두려움을 치유하소서!” “주여! 나의 불안감을 치유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