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반가사유
이기철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일용할 양식을 얻고
제게 알맞은 여자 얻어 집을 이루었다.
하루 세끼 숟가락질로 몸 건사하고
풀씨 같은 말품팔아 볕드는 목가(木家)얻었다.
세상의 저녁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 아름다워
세상 가운데로 편지쓰고
노을의 마음으로노래띄운다.
누가 너더러 고관대작 못되었다고 탓하더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세간이라 부르며
잠시 빌린 집 한채로 주소를 얹었다.
이 세상 처음인 듯
지나는 마을마다 채송화같은 이름 부르고
풀씨같은 아이 하나 얻어 본적에 실었다.
우리 사는 마을 뒤뜰에 달빛이 깔린다.
나는 눈매 고운 너랑
한생을 살고 싶었다.
밭이 쬐끄매 더 이쁜 너랑 소꿉살림 차려놓고
이 땅이 내무덤이 될때까지
너랑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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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의 시 <사랑에 대한 반가사유>를 읽고
전상훈 (광주 운림중학교 교감/ griun21@hanmail.net)
시를 읽는 일은 고통이다. 욕망에 눈먼 나머지 모르고 살았던 자신의 거짓된 삶과 사랑, 온통 껍데기뿐인 존재의 실상을 똑똑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성찰의 거울’로서의 시를 읽는 일은 고통 중의 고통이다.
진정한 사랑보다 더 절실한 것들이 너무 많은 이 시대 우리들의 삶은 너무도 불행하다. '돈, 성공, 쾌락, 순간, 오로지 나’뿐인 사람들. 하여 모든 것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소유할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달디 단 꿀통을 차지하려고만 하는 우리에게 있어 사랑은 한낱 수단적 가치를 지닌 교환재일 뿐.
생각건대‘제게 알맞은 여자 얻어 집을 이루’고 ‘세상의 저녁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 아름다워/ 세상 가운데로 편지 쓰’는 사람 이 땅에 과연 몇이나 될까. 열쇠 많이 가진 여자 얻어 집을 이루고 환락의 바다로 헤엄쳐가는 사람의 뒷모습 부러워 ‘눈매 고운 너’, ‘밭이 쬐끄’만한 너쯤이야 헌신짝처럼 버리고 사는 것이 우리 모습 아닌가.
이기철의 시 <사랑에 대한 반가사유>는 이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 다시는 이루어내기 힘든 사랑, 그래서 더욱 그리운 사랑에의 회한을 아프게 자극하고 있다. 아, 어디로 가버렸을까? ‘이 땅이 내 무덤이 될 때까지/ 너랑만 살고 싶었’던 그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