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금강송에는 화전민과 보부상의 애환이 서려있고
…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2구간
입력날짜 : 2016. 10.04. 19:34
금강소나무는 마디가 길고 껍질이 유난히 붉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른 새벽 울진 근처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억수같이 쏟아지던 빗줄기가 아침 식사를 마치고나니
현저히 가늘어졌다. 새벽에 많은 비가 내려 금강소나무숲길을 걸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금강소나무숲길 안내센터에 연락을 해보니 앞으로 큰
비만 내리지 않으면 트레킹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게 금강소나무숲길 1, 2, 3구간 도착 지점이자 안내센터가 있는 소광리로
들어가는 삼거리에서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와 만났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금강소나무숲길은 가이드를 동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첩첩한 산과
좁은 골짜기를 따라 달려가 전곡리 금강소나무숲길 2구간 출발지점에 도착한다.
출발지점에 도착하자 어느새 비가 그쳤다. 비는
그쳤지만 잔뜩 흐려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날씨다.
금강소나무길 안내
표지판.
2구간을 출발하자마자
금강소나무숲을 만난다.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굽은 소나무와 달리 금강소나무는 곧게 솟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소나무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예로부터 금강소나무를 최고의 소나무로 쳤다.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금강송은 줄기가 곧고 폭이
균등하다. 마디가 길고 껍질이 유난히 붉다. 결이 곱고 단단하며 나무을 켠 뒤에도 굽거나 트지 않고 잘 썩지 않아 궁궐용 목재로 사용됐다.
“금강송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어요?”
“금강송은 태백산맥 줄기를 따라 금강산에서 울진, 봉화를 거쳐 영덕, 청송
지역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금강소나무 혹은 금강송이라 했습니다.”
“춘양목과 금강송은 어떻게
달라요?”
금강송은 철로가 생긴 후 춘양역에서 화물열차로 서울로 실어나르면서부터 ‘춘양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춘양이라는 이름은 봉화군
춘양면의 지명인데,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놓인 후 금강소나무를 춘양역으로 집결시켜 철로를 통해 서울로 옮겨가게 되면서 ‘춘양목’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춘양목은 금강송의 다른 이름이라고 보면 됩니다.”
가이드는 숲길을 걸으며 수시로 설명을 한다. 빼곡하게 들어찬
소나무 숲은 여느 숲보다도 상쾌하고 그윽하다. 황토를 발라놓은 듯한 붉은 줄기에 가슴을 여니 솔향기가 온몸을 감싸준다. 고개를 들어보면 곧게
뻗은 소나무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숲속에서는 대지를 뚫고 올라온 버섯들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산줄기를 타고 가다가 고개를
넘으면 골짜기에 작은 밭이 있고, 이 밭을 일구고 사는 민가도 한 채씩 있다. 큰닥밭골로 내려서니 깊은 산속에 다홍색 양철지붕을 한 민가 한
채가 별천지처럼 자리 잡고 있다.
250년된 쌍전리 산돌배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산돌배나무다.
이 민가 뒤편에 250년 된 산돌배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408호로 지정된 ‘쌍전리 산돌배나무’는 우리나라에 있는 산돌배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
생물자원으로서의 보존가치가 크다. 높이가 25m에 이르고, 가슴높이만 해도 4.3m다.
길은 산돌배나무를 뒤로하고 산비탈을
돌아서간다. 골짜기마다 띄엄띄엄 1-2채씩 있는 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서로 왕래했을 것이다. 산돌배나무를 지나 산허리길을
돌아가는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민가 두 채와 인삼밭을 만난다.
이런 집들은 과거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화전민 가옥이다.
가이드는 “이곳 밭은 해발 600-700m에 이르는 고지대여서 고랭지채소가 많이 재배된다”는 설명을 곁들인다. 내리는 비가 산길을 걷는 데는
불편하지만 나뭇잎과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명상음악이 돼준다. 뚜벅뚜벅 걷는 발소리와 빗소리가 화음을 맞춘다.
또 하나의 작은
고개를 넘으니 고랭지 밭이 나오고, 밭 가운데로 임도가 나 있다. 고랭지밭을 내려서니 큰넓재다.
큰넓재는 잠시 후 만나게 될
한나무재와 함께 보부상들이 울진과 봉화를 오가며 넘었던 열두 고개 중 하나다. 생존을 위해 무거운 등짐을 지고 넘어 다녀야 했던 십이령길에는
보부상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금강소나무숲길을 걷다보면 종종 화전민 가옥을 만난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길을 걸으며 우리는
숲과 하나가 된다. 큰넓재에서 한나무재로 가는 숲길은 오늘 만난 금강송 중에서도 가장 크고 오래 된 나무들이다. 장대하게 솟은 소나무들은
고고하고 품격이 있다.
저 소나무들이 곧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더불어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소나무들은 더불어 숲을
이루되 자기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이런 숲을 보며 개개인의 주체성은 간직하되 서로 의지하고 공생하는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회를 꿈꿔본다.
이윽고 한나무재에 도착했다. 한나무재는 낙동정맥이 지나는 길목이다. 한나무재는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서 광회리까지 산비탈과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임도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나라 지명 가운데 산 이름이나 절 이름을 딴 곳은 여럿
있지만 나무이름을 지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울진군 금강송면이 유일하다.
한나무재를 넘어 임도를 따르지 않고 산속 오솔길로
내려가다가 다시 임도를 만난다.
작은 계곡 옆 임도를 따라 한참 내려오니 간간히 민가가 한 채씩 나오고, 골짜기에는 작은
농경지들이 형성돼 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와 민가 담 옆의 주렁주렁 매달린 대추가 풍성한 가을이미지를 전해준다.
새벽부터 내린
비로 계곡물이 제법 불어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계곡의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니 소광2리 마을이다.
폐교된
소광초등학교 건물은 금강소나무숲길이 개설되면서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금강송펜션과 십이령주막으로 바뀌고, 학교운동장은 주차장으로
활용된다.
이곳은 금강소나무숲길 1, 2구간의 종점이자 3구간의 시작점이다. 현재 소광2리에는 폐교가 있는 자연부락을 비롯해
골짜기 곳곳에 띄엄띄엄 자리를 잡은 민가들을 합쳐 29가구가 살고 있다. 해발 460m에 위치한 소광2리는 내륙지방에서 울진으로 이어지는
십이령길의 주요한 길목으로 조선시대에는 원(院)이 있었다.
불영계곡에서도 8㎞를 산속으로 들어와야 하는 오지 중의 오지인
소광리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은 산과 하늘, 산속의 작은 논밭만 바라보면서 자연에 의지하며 오순도순 살아왔다.
소광리
사람들은 이제 금강소나무숲길을 걷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행쪽지
▶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2구간은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임도에서 시작해 쌍전리 산돌배나무→큰넓재→한나무재→소광2리 금강송펜션까지 11㎞ 거리에 4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영주IC→영주·봉화방면 36번 국도를 따라 영주, 봉화를 지나 41㎞ 달리면
현동교차로→울진방면으로 36번 국도를 따라 10.2㎞ 이동→광회1리 방향으로 우회전해 1㎞ 이동→광회2교 다리 건너 임도를 따라 2.5km 가면
‘금강소나무숲길 2구간 출발점’이라 쓰인 곳이 나온다.
▶난이도 : 보통 ▶도착지점인 소광2리에는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금강송펜션과 십이령주막이 있다. 십이령주막에서는 산채비빕밥(6천원)과 파전, 두부, 막걸리 등으로 요기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