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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과 대북파의 정적제거
김경립이 자백한 내용을 요약하면 8도에 각각 대장, 별장 등을 정하여 불시에 한양을 함락시키고 대북 세력 및 광해군을 축출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김경립의 아우 김익진의 입을 통해 팔도도대장으로 내정된 사람이 김백함이라는 자백이 나오자 사건은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김백함이 팔도도대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진술을 받아낸 대북파는 김직재와 김백함 부자는 물론 김직재의 사위 황보신 및 그 일족을 모두 체포하여 모진 고문을 가한다.
이 고문 과정에서 김백함은 아버지 김직재의 실직에 불만을 품고 모의를 했다는 자백을 강요받았으며 고문을 이기지 못해 결국 모든 내용을 시인하게 된다. 또한 김직재는 자신이 역모의 주동자이며 연흥부원군 이호민, 전 감사 윤안성, 전좌랑 송상인, 전 군수 정호선, 전정언 정호서 등 일군의 소북파 인사들과 모의하여 특정한 날을 잡아 도성을 무너뜨리려고 했다고 허위자백하기 까지에 이른다.
이 사건은 소북파의 거두이자 선조의 유명을 받든 일곱 신하 중 하나였던 박동량의 반대 상소에도 불구하고 옥사 로 이어졌고 그들 역모 세력이 추대하려던 왕이 선조의 아들 순 화군의 양자인 진릉군 이태경이라고 함에 따라 그도 처형되었으며, 그 들과 관련이 있는 대부분의 인사는 모두 숙청되었다. 이 옥사로 김직 재, 김백함 부자가 처형당하 고 김제, 유열 등 1백여 명의 소북파 인 사들이 대거 숙청당했다. |
칠서의 옥과 계축옥사
이들은 광해군이 왕위 에 오르자 서얼의 차별을 없애달라는 상소를 한 바 있는데 이것이 거 부당하자 불만을 품고 1613년 초부터 경기도 여주 남한강변에서 당을 조직한다. 이들은 윤리가 필요 없는 집이라는 뜻의 '무륜당'을 짓고 그곳을 근거지로 소금장수, 나무꾼 등으로 행세하며 전국에 출몰하여 화적질을 일삼다가 새재에서 상인들을 죽이고 돈을 약탈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 때 피살된 상인의 노비가 이들의 뒤를 미행하여 근 거지를 알아내고 포도청에 고발함으로써 이들은 일망 타진되었다. 하지만 이 '칠서의 옥'은 단순한 강도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이첨 등 대 북파의 중심 세력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영창대군을 몰아낼 계획을 세 우게 된다. 이이첨과 그의 심복 김개, 김창우 등은 포도대장 한희길, 정항 등과 모의하여 이들 서얼 출신 화적들이 자금을 모아 영창대군 을 추대하려 했다는 자백을 얻어낸다. 이러한 자백은 칠서 중에 하나 인 박응서가 광해군에게 비밀 상소를 올리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박응 서는 이 상소문에서 자신들을 1608년에 명나라 사신을 저격한 바 있으 며 이를 통해 사회 혼란을 야기시키고 한편으로는 군자금을 비축하고 무사를 모아 사직을 도모하려 하였고, 성사된 뒤에는 영창대군을 옹립 하고 인목대비 로 하여금 수렴청정을 이루려 하였다고 했다. 이 상소 문의 파장은 대단했다. 박응서의 상소 이후 대북 세력은 서양갑을 국 문한 끝에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 이 자신들의 우두머리이며 인목 대비 또한 영창대군이 장성하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모의에 가담하기로 했 다는 자백을 얻어내게 된다.
이 사건 으로 종성판관 정협을 비롯하여 선조로부터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의 안 위를 부 탁받은 신흠, 박동량 등의 일곱 대신 및 이정구, 김상용, 황 신 등의 서인 세력 수십 명을 하옥시켰다. 또한 이 사건의 취조 과정 에서 김제남과 인목대비가 광해군을 양자로 삼았던 의인왕후의 능에 무당을 보내어 저주 했던 일이 발각되기도 했다. 그래서 김제남은 사 사되고 그의 세 아들도 화를 당하였으며 영창대군은 강화도에 위리 안 치되었다가 이듬해 강화부사 강항에게 살해되었다. 이 사건으로 영의 정 이덕형, 좌의정 이항복을 비롯한 서인, 남인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 고 대북파가 정권을 독점하게 되었다. 계축년에 일어난 이 사건을 흔 히 '계축옥사'라고 한다. |
대북파의 능창군 제거작업
대북파는 정권을 독점하게 되자 1618년, 5년 전의 계축옥사를 다시 거론하며 이를 빌미로 인목대비를 폐위시켜 서 궁에 유폐시킨다. 이 과정에서 이이첨 등의 강경론자들 은 인목대비를 사사시킬 것을 간언하지만 광해군의 반대로 실현에 옮 기지 못한다. 이 후 이이첨은 몇 번에 걸쳐 인목대비 암살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다른 대신들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이렇게해서 광해군은 왕권을 위협하던 세력들을 거의 모두 제거했고 대북파의 이이첨, 정인홍 등은 세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
'홍길동전'의 대강
그러나 결국 길동을 체포하지 못한 조정은 홍판서를 시켜 그를 회유하기에 이르고 타협안으로 그를 병조판서를 제수하게 된다. 길동은 한 때 병조판서를 지내다가 다시 남경으로 떠날 것을 결심하고 고국을 떠나게 되는데, 남경으로 가는 도상에서 산수가 수려한 율도국을 발견하고 그곳을 지배하고 있던 요괴를 퇴치한 후 율도국 왕이 된다. 이후 아버지의 부음을 전해듣고 일시 귀국하여 3년상을 마친 후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왕으로 살게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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