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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건축개론 (발제)
2006년 12월
글순서
1-1. 식민화 과정 (1876~1910)의 관 건축 생산조직의 변화와 그 성격에 관한 고찰
1-2. 개화기 이후 1845년까지 서구와 일본 종교건축 유입의 문화 침략적 성격
1-3. 일제 강점기 경성부 도시 계획
1-4. 일제하 (1907~1945) 건축교육의 성격과 해방전,후 건축계 형성에 끼친 사상의 영향과 선택에 관하여
1-5. 식민지 시기에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건축가의 활동 경향
1-6. 일본의 근대건축사
1-7. 일제시대 ‘근대주거’ 의 유형 연구 - 경성부를 중심으로-
1-1. 식민화 과정 (1876~1910)의 관 건축 생산조직의 변화와 그 성격에 관한 고찰
지은이 : 김의용(명지대 석사과정)
글순서
1. 시작하는 글
2. 건축사 연구를 위한 전제
3. 전통적 관 건축생산조직
3-1. 조선후기의 변혁적 움직임
3-2. 봉건적 건축생산조직의 변화
4. 개화기의 혼란과 관 건축생산조직의 식민화 과정(1876~1910)
4-1. 전통적인 관 건축생산조직기구의 변형과 해체
4-2. 식민화 과정의 관 건축 생산조직기구의 설치와 변화
4-3. 통감부(統監府) 설치와 탁지부 건축소의 개설
5. 맺는 글
본문
1. 시작하는 글
1) 역사를 민중시각으로 재평가
-동떨어져 부유하는 역사와 현실 : 단순히 불행한 과거를 잊고, 치욕을 지우려는 매판적 지식인과 실증주의적 역사가들이 규명하는 한국근대사는 현재 삶에 역사적 교훈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근, 현대사 제자리 찾기 : 우리 역사는 민중들의 끊이지 않고 강인한 의지의 역사라는 재평가
-단절과 분단의 역사에서 연속과 통일의 역사로 다시 평가해야함
2) 건축계의 병폐들
-건축가의 자기도피와 책임회피, 그에 따른 사회적 위상 상실
-예술지상주의적인 관념적 유희와 지적 현란함
-서구 건축디자인을 표피적, 맹목적으로 복사
-식민지 시기부터 시작된 파벌주의
3) 건축계 갈등과 모순의 해소 : 식민지 시기의 시간 규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4)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역사 : 1876년 강화도 조약체결 이후, 일본인 거주지 개설 시작. 공관 개설,
거류지에 상인과 상가 진출
5) 해방공간 : 강대국의 냉전 논리 속에서 이데올로기 대립과 식민잔재극복 실패.
: 친일에서 친미로 변신한 우익과 매판 자본가 결탁.
: 한국전쟁과 이후 건축계의 방황
6) 한국건축계의 모순과 갈등, 혼란극복 : 식민지 시기 건축 활동이 차지하는 의미를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재구성, 비평과 검토 필요.
7) 글 목적 : 식민지 시기 상부조직을 차지했던 건축 관조직의 구조와 내재한 식민모순의 논리 속에서 건축 활동의 실체 파악과 한국인 건축가의 위상 정립하고
한국건축의 자주적이고 내재적 발전 모습에 대한 일부 연구 성과에 대해 아직 미흡한 사회 상부구조들을 밝혀내려 함.
8) 글 구성 : 일제하 건축 조직 체계와 정치, 경제적 침투에 대해 사회, 문화적 형태로 이식한 실태 파악
2. 건축사 연구를 위한 전제 -역사연구에서 실증과 해석의 문제
○건축의 목적 : 시대의 반영물이며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건축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당시 역사적 구성체의 핵심인 인간과 인간의 삶을 연구하는 것.
○역사를 연구하는 뜻 : 과거의 사실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변천과정을 현재 의미로 규명함.
: 그 실체의 동향을 이론화는 것이 임무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이해, 일반사에 대한 이해 속에서 건축역사 이해 : 개개 사건, 개개인 역사의 일체성과 통일성 속에 자리함으로서 의미획득하기 때문.
○객관적 역사 이해의 의미 : 자연과학의 엄밀성과 중립적 자세로 사실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인식의 주체가 객관적인 역사적 실재를 이해할 수 있는 조건에 위치 ? (무슨 소리?)
○특수사로서 건축사 : 총체적 안목으로 건축의 역사성과 사회성 이해해야 함.
: 전문성을 강조하여 건축 자체만을 연구하지 않아야 함.
: 실증주의 역사 이해의 위험에 빠지지 않아야 함. (자료가 가지는 성격, 자료의 생산 자체가 한 사회에서 계급적 힘의 균형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 자료에만 충실하는 것은 오류다.)
○올바른 역사 인식과 역사 서술방법 : 자료를 역사관에 따라 정리하고 재해석하여 재생산해야 한다.
: 자료에서 해방되어 역사인식의 단서이상을 해석하고 재구성
○건축사 연구 방법 : 건축 내적인 부분적 특수성을 밝히고, 건축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담보할 건축 안과 밖의 사실들 간 상호연관성을 밝혀서 현재성을 담보해야 한다.
3. 전통적 건축생산조직 - 봉건적 생산방식의 해체
3-1. 조선후기의 변혁적 움직임
○16세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후 조선 국가제도 서서히 붕괴
○17세기: 전쟁 피해 회복과 생산 발전- 농업, 수공업 등 생산 분야에서 일정한 진전 이룩됨.
상품유통 활발과 금속화폐 유통- 봉건제를 해체하고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 발생함.
○18세기: 사회 경제적 측면- 봉건지주층에서 산업경영자 발생, 봉건 소작농층에서 자연농민층으로 성장
유통과정 - 화폐유통 요소증대, 관영수공업의 쇠퇴와 독립자영수공업자 출현,
상공업자의 사회진출과 자본축적, 산업 발달과 지방도시 상공업 융성
사상의 변화 : 실학 (실사구시, 이융후생, 경세치용)-현실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으로 발전
: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변혁안, 근대문물제도 모방시도,
: 상업, 수공업, 과학기술 발전에 관심, 천문, 역학, 의학과 같은 연구사업 심화, : 상업과 수공업, 농업을 반절시킬 변혁안 제시, 선진과학과 생산기술 받아들일 것 제시
3-2. 봉건적 건축생산조직의 변화
1)조선의 영조관계직제(營造官係職制)-태조원년 관제개혁때 정비(고려시대형태와 유사)
<표1-1-1> 영조직제의 변천과정 약표
○ 공장(工匠)에 대한 장적(帳籍) 작성하여 관제화, 중앙집권적 체계 → 관장(官匠),공장(工匠)이라 함
: 고려 하층민의 수직(受職)으로 인한 신분체계 해이와 문란을 우려함 또는 기술직이 수직(受職), 관계 진출하여 기술노동력 감퇴와 부역자들 감소 우려
→ 신왕조 지배체제와 권위 확립을 위해 필요한 궁궐 조성, 도성 신축, 귀족관료의 생활공간, 물품수집 충당을 위해 노비를 선공감(繕工監)의 각 공장을 도와주는 봉족으로 고르게 배당, 기술습득
: 필요할 때 공장동원 근거로 사용.
: 1년 중 일정기간 관영공사장에 동원- 작업에 대해 과미(科米) 지급받음.
: 작업일수 누계가 일정기간 넘으면 기술계 관직을 받아 관료로 등용될 길이 있었음.
: 경공장(京工匠-중앙정부의 수공업 생산 담당)과 외공장(外工匠-팔도에 분산,각 지방관서에 예속되어 작업)으로 구분
: 공조에서 관리 -선공감 ( 繕工監 ,공조 산하 관서 중 영선업부 관장 관서)
: 선공감에 집중 소속되어 있고 다른 관서, 지방에는 거의 없었음.
: 궁궐의 건축이나 지방 산하의 공사에는 사장(私匠,관청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공장) 다수 동원
2) 영조직제의 변화
○ 16세기 이후 군역을 면하기 위해 군포대납 성행하면서 부역동원 대신 장포(匠布)를 냄.
→ 관장들이 관 예속에서 이탈 → 관에서 군포로 사장(私匠) 고용 (17세기부터)
3) 건축공장들이 관에서 이탈한 원인
○ 나라 재정 악화와 공장(工匠) 대우 불충분과 관직 축소로 관장(官匠)의 장점 없어짐.
○ 민간건축공사 확대 : 경기지방 대토지를 사유화한 왕족, 사대부들이 성내에 대저택 조영
→ 관영 공사장에 나가지 않아도 일자리 확보 가능 → 부역노동에서 임금노동으로 형태변화 의미
4) 공장 형태 변화
○ 대목(관료) : 17세기부터 감소 → 18세기 몇 건 보임 → 19세기 완전 소멸
○ 변수(邊首,평민,17세기부터 관영공사)와 도편수(都片手, 사찰건축)등장: 18세기 이후 대목을 대신하여 공장계(工匠界) 중심이 됨
○ 예: 화성성역공사 (총리대신, 감동당상監董堂上 도청이 전체 주관)
---기술계 : 직접 공사, 시공 감독(감동監董→간역看役→비장牌將→건축공장(변수):맡겨진 시공담당
---관리계 : 자재와 금전 출납 관리
○ 관료로 신왕조 건설의 일정역할을 가졌던 건축기술자들이 관영공사 완성으로 입지가 좁아지고,
상업자본의 성장으로 인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초기적 임금노동자로 변화시작
→ 화성 성역공사에서 장인들의 지위하락이 뚜렷하게 나타남. 봉건제 탈피 구조 시작
< 화성성역 조영조직 >
4. 개화기의 혼란과 건축생산조직의 식민화 과정 (1876~1909)
○타율적으로 자본주의체제 이식 - 큰 혼란과 무질서한 상황
열강들이 지배권을 획득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다
청일전쟁(1894~1895)에서 승리한 일본이 독점적으로 지배당함
러일전쟁 당초부터 대륙침략의 기지이자 전쟁수탈의 정치, 군사적 근거지로 삼으려 함.
○1897년 강화도 조약과 부산에 조계지(租界址) 설정(일본인이주지 건설)
→ 일본건설회사 주도로 한국 내 양풍건축 건설시작 : 일본건설자본 침투하는 물꼬를 틈
○대창조(大倉組 : 최초 침투한 건설조직 ) : 일본인 관료와 결탁하여 강화도 조약이후, 한일간 무역을 통해 경제적 침략의 이익을 얻어감.
○친일적 개화파들이 내세운 근대화 작업과 함께 건축 관조직 기구 변화
4-1. 전통적 관 건축생산조직의 변형과 해체
갑오개혁이후 중앙관제 변화 - 의정부와 궁내부로 나뉨
(*정부와 왕실 분리, 조선간섭을 확고하게 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김홍집내각에 개입한 것)
4-1-1 왕실 건축기구 - 영선사(營繕司)
1) 전통 건축기구 존속함
2) 주요 업무는 왕실의 토목 영선 사무 담당
: 1905년 3월 4일 궁내부 관제 개편→궁전(宮殿),이궁(離宮),정원,청사 토목에 관한 사무 관리와 회계
: 1906년 서무과, 토목과, 회계과 설치
*영선사 분과 규정(궁내부령 제5호, 1906년 9월 6일 발표)이 정한 토목과 하는 일
: 공사 설계, 예산, 현업 감독, 공비정산, 재료 감사출납관리, 공사용구기계 출납과 보관, 공장(工匠)과 고군(雇軍)의 감독, 측량과 도형의 조제관리, 공사도급과 공사용 기계나 재료를 매입, 공사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처치
[*궁내부 조직 : 6원 - 장례원(掌禮院) , 시종원(侍從院), 규장원(奎掌院),
회계원 (會計院), 내장원 (內臧院), 제용원(劑用院)]
[*제용원(劑用院)조직: 6사 -상의 (尙衣), 전선(典膳), 주전(主殿), 영선(營繕), 물품(物品), 대복(大僕)]
4-1-2 행정부 건축기구 중 건축 관계 담당 조직 - 공무아문(工務衙門) 산하 건축국(建築局)과 총무국
1) 국가에 관련된 공사 담당 (규정 - 국내 일체의 공작 영선 사무를 관장한다)
2) 총무국(總務局)-백공(百工)의 사무 감리, 백공(百工)의 생명을 편록(編錄),
기사 고용하여 신식학습하는 일과 같은 사무 관장
3) 건축국(建築局) - ‘공해의 건축’?과 영선 사무 관장
[*의정부 8개 아문 조직 : 도지아문(度支衙門), 공무아문(工務衙門) ]
4-1-3. 궁내부와 행정부의 건축기구 분리 의도와 영향
1) 전통건축기술과 전통장인들의 활동을 약화한 왕실로 제한, 규정
→ 전통건축장인들을 제도적으로 분리하여 활동근거 축소
→ 소수 장인들만 활동 가능
→ 장인과 신건축 기술의 만남 차단
→ 해방과 한국전쟁 후까지 근대화 과정에서 제도권 내 진입하지 못하고 소외된 원인
→ 전통건축과 한국 현대건축의 단절 원인
(*일본의 전통장인들은 신기술을 습득하여 관료건축가가 됨)
4-2 식민화 과정에서 관 건축 생산조직기구의 설치와 변화
○ 조선수탈근거 : 1903.12.30 러시아와 교섭이 결렬될 경우 일본이 취할 청나라와 한국에 대한 방침
(러,일전쟁 승리 후 조선을 독점적으로 지배할 국제적 승인근거?)
: 1904.2.23 한일 의정서
4-2-1 해안등대국
1) 갑오1차개혁 : 공무아문 산하 건축국이 건축업무 담당
2) 갑오2차개혁 : 공무아문과 농.상,공아문 합병 -건축,토목 업무 직접 관장기구 없음)
3) 해안 등대국 설치 : 약탈적 수송체계 구축을 위한 철도와 해상 운수부분 건설 감독기관
: 궁정의 일반 공사, 등대, 세관에 관한 공사 담당
: 일본은 조선을 정치,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경제적으로 침탈, 대륙으로 연결하는 대륙 침략로를 닦기 위해 철도와 해상 운수부분 건설에 주력.
4-2-2 세관공사부
1)설치배경 : 한,일 의정서협정과 일본고문정치 시작 (1904.8.22) -재정,외교,고문,경찰 고문제도설치
2)설치시기 : 1905년 12월 ,정부재정고문부 설치
(재정고문 목하전종차랑(目賀田種次郞)? 부임(1904.10.15)
(* 부임근거 : 한일외국인고간용빙(韓日外國人顧間傭聘?)에 관한 협정?)
3)설치목적 : 연안항만 개량과 세관시설 정리
4)설치근거 : 제1차 한일협약
5)조직구성 : 공무국(公務局)과 등대국(燈臺局)
○ 공무국의 역할 : 세관설비에 필요한 설비의 토목,건축관장. 유일한 영선기구.
: 청사, 관사, 창고건축에 관여
○ 건축사례 : 서울, 군산, 목포, 진남포의 해관공사(海關工事)청사, 창고와 원산, 청진의 청사, 일본인 관사, 각지의 세관관사, 검역소, 지방의 농,공은행, 창고 (소규모 목조 건물들임)
6)역할 : 고문정치에 의해 조선을 반식민지화한 상태에서 해안등대국의 업무를 전문화, 심화함
[*대한시정강령 7항
1. 방비를 다 할 것 2. 외정(外政)의 감독 3. 재정의 감독과 관리 4. 교통기관의 통일
5. 통신기관의 통일 6. 척식사업의 계획 7. 경찰권의 강화]
4-3. 통감부 설치와 탁지부(度支府) 건축소 개설
1) 을사보호조약 (1905.11.17)체결 후 통감부 설치와 초대통감 이또 히로부미(본명:하야시 도시스케,伊藤博文) 임명 (1906.2.1)
2) 통감부(統監府) : 본래 한국의 외교사무 관리 핑계로 설치하였으나 실제로는 경무부, 농,상공부, 총무부를 두어 내정을 관장함.
4-3-1. 탁지부 건축소 개설과정과 관제(官制)
1) 정미7조약 후 차관정치 시작
: 궁내부,내부, 농상공부,탁지부, 법부, 학부,경무국장, 총세무사와 같은 내각이 일본인으로 바뀜.
2) 정부건축생산조직기구의 변화 ( 해안등대국, 세관공사부 외 의정부소속관서의 변화)
○ 양지아문(量地衙門, 1898년 토지측량에 관한 사무 담당)
→ 지계아문으로 개칭 (地契衙門, 1902년)
→ 탁지부 건축소 설치 (통감부 설치이후 1906년 9월 28일 칙령 제 55호)
3) 탁지부 건축소 하는 일 : 건축과 기타 공사에 관한 사무 담당
4) 조직구성 : 소장(협판(協辦)과 탁지부 奉判任官 겸임), 사무관, 기사, 주사, 기수
5) 최초조직 : 소장 (협판 유정수(柳正秀), 사무관 유승겸(兪承蒹), 김명제(金明濟),
기사 (조한철(趙漢喆) 이범익(李範益), 일본인 보속 사무관 1명, 기사 국기 박(國技 博)
6) 초기 업무 : 일본인 국기 박(國技 博)을 중심으로 세관공사부 일본인 보속기사 지원 중심(추측?)
4-3-2 연와제조소 설치와 탁지부 건축소 관제 개정
1) 연와제조소 설치 (煉瓦製造所)
○ 건축자재 생산공장 설치
○ 마포연와제작소 설치 (1906년 12월 15일) : 벽돌 자체 공급을 위해 설치.
: 탁지부 장관 직속이며 건축소와 별도회계?, 건축소와 분리된 조직체계.
: 탁지부 건축물 외에 다른 공사에 사용할 벽돌 공급
: 수입은 자체 운영비로 사용, 고정자본 14만원, 운영자금 3만원,
: 세출액은 예정액 안에서 실제 세입과 운전 자금의 합계액을 초과할 수 없음
: 고정자본의 유지, 수리는 연와제조소의 작업수입으로 유지하며, 작업의 순익과 고정자본에 속한 물건의 매각대금은 모두 일반세입에 편입.
: 건축소장은 매년 연와제조소 작업회계의 세입세출예산을 편조하여 년도개시 4개월 이전 탁지부대신에게 제출, 매 사업개시 당초연도는 영업착수 1개월 전에 제출하며 작업자본금과 경상비의 출납명령을 위임받음
: 1907년 4월부터 제품생산 시작
: 공장건물이나 부뚜막, 기계설비 들이 완성되기 전 급한 수요가 밀려듬.→ 경사 부뚜막 3기 축조, 수공(手工)으로 벽돌 생산하여 수요 충당함
( * 대한의원, 탁지부 청사, 대심원(大審院), 급공소원(及控訴院) 본 청사)
: 1908년 8월 독일 호프만식 벽돌 생산, 9월 벽돌성형기계와 기타 부속 기관 설치 공사 완성하여 기계식 생산 시작
2) 탁지부 건축소의 관제 변화
○ 1906년 9월 28일 칙령 55호 로 개설
○ 1907년 12월 18일 1차 관제 개정 후 구체화, 인원증가하여 정리된 체계 구성
: 소장 1인, 사무관 3인, 기사 3인, 추자 6인, 기수 26인 (기수인원 대폭 증가함)
- 직원의 명령체계 규정
: 1907년 7월 24일 한,일 신협약에 의한 차관정치 시작으로 인한 것으로 해석
(1907년 12월 18일 관보 : 건축소를 포함한 각 부의 관제개정을 폭넓게 규정하여 정부조직을 차관정치로 전환함.)
: 좀 더 자유로운 상태에서 식민지 침략의 필요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계획에 의해 개정
: 1908년 1월, 탁지부 일본인 차관이 건축소장을 겸임, 보속이던 일본인이 정식 임관함.
: 계장 이상 요직은 일본인이 차지함 (서무계장 사무관 박정선(朴正銑) 제외
* 세관공사부의 경우 공무장, 설계, 감독, 영선, 토목과장과 계원 모두과 일본인으로 대체됨
→ 세관공사부의 역할이 건축소보다 더 중요했음을 의미함
○ 세관공사부와 등대국의 관제 개정
: 세관공사부 → 임시세관공사부 ( 건축공사보다 세관업무에 주력)
: 임시세관공사부 조직(부장1인, 사무관1인, 기사7인, 주사5인, 기수 17인:인원증가, 체제정비)
: 등대국 (선박의 안전운행에 필요한 업무로 전환, 국장1인, 기사3인, 주사5인, 기수12인, 간수52인
3) 관 건축생산기구의 일원화
○ 각종 행정조직 개혁과 증설 → 관아건축 신축함
○ 1908년 8월 14일 칙령 제59호 → 탁지부 소장 아래 건축소 관제 2차 개정
: 세관공사부의 공무국, 등대국 → 임시세관공사부, 건축소 병존 → 건축소로 일원화
: 탁지부 소장 권한 강화 → 장관( 탁지부 차관이 겸임함)으로 명칭 변겅, 인원 증가, 탁지부 대신 관리에 속함
: 건축공사와 세관 공사에 관한 일체 업무를 담당함.
: 장관 1인, 서기관1인, 사무관 3인, 기사 18인, 주사 10인, 기수48인
○ 세관공사부를 건축소로 흡수한 후 각 지역 영선업무, 항만시설 신축과 관리 감독을 위해 지역 출장소 설치함 (칙령 제 59호의 9조) → 인천, 부산, 원산, 진남포, 청진, 군산, 목포 7지역
: 강화도 조약에 의해 개항한 이후 조선의 주요 항구를 일본인이 장악함
: 개항지의 자국민 보호와 항구를 통한 물자의 신속, 안전 조달을 위해 항만시설 신설과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임.
5. 맺는 글
- 조선 말기 자생적 봉건 해체과정 속에서 건축장인들은 국가에 대한 노동봉사에서 임금노동자형태로 변화를 보임
- 화성성역공사 당시 사무계와 관리계로 분리된 모습을 보이고, 공장과 기술자들의 전문화를 보이며 근대화가 느리게 진행됨
-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강압적 문호개방과 쟁탈전(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제 침략으로 인해 관건축생산조직이 변형,해체됨
-관건축생산 조직을 궁내부와 행정부로 이원화하고, 전통장인들의 활동 폭을 왕실 안으로 축소시키며 관공서를 서구화된 건축으로 대체함.
- 전통장인이 국가사업에서 소외도면서 신기술을 습득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관료 등용 기회에서 차단됨.
- 전통장인을 국가사업에서 소외시킨 후 식민화 과정에 필요한 관공서와 세관의 건축을 위해 독자적 건축관리기구인 세관공사부와 해안등대국을 만듬. → 대륙침략을 위한 발판으로서 전진기지인 조선에 효과적으로 시설물을 공사, 감독하기 위한 것임.
- 통감부 설치에 따 탁지부 건축소 설립하여 체계적인 관 건축생산조직을 수립함. (근대화에 의한 자생적인 발전이 아니라 정치적 변화에 따라 수동적으로 변화해 감.)
- 초기 건축업무를 일본인이 장악 : 기존 축조방식과 전혀 다른 서양 신고전주의와 르네상스, 절충주의적 건축을 위해 일본에서 서양건축 축조방식을 공부한 일본인 건축가들이 관 건축생산조직을 점유함.
- 서양식 고전건축 이식의 목적 :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고 민중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이질적, 권위적인 건축양식으로 문화적 우월성을 드러내려함.
- 1907년 한,일신협약에 의해 탁지부 건축소의 체계가 확대, 인원 증가하며 한일합방이후 조선총독부 영선계로 맥이 이어짐. → 정치권력에 봉사하는 건축으로서 존재하는 선례가 됨
- 서구근대건축운동이 자본주의의 계급모순을 극복하고 대안을 건축을 통해 제시하려 했던 것과 다르게 자본주의 이행과정이 식민지배를 통해서였던 한국근대건축의 시작은 왜곡과 기형의 모습이다.
- 민간의 건축은 전통적인 축조방식을 소극적, 자생적으로 1960년대까지 이어감.
- 서구근대건축과 한국근대건축의 비교는 근대성의 개념설정에서 한국적 특수성을 개념화시키기 위한 전제로 이해해야 한다. 역사의 일반적 발전 법칙과 한국적 특수성의 인식을 병행할 때 한국근대건축의 인식이 변환되고 살아있는 한국근대건축으로 자리매김할 것.
참고자료
1. 18세기부터 1910년까지 한국건축의 변천에 관한 사적 고찰 -이상헌 . 서울대석사논문. 1984
2. 1876년부터 1948년까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본 한국의 건축활동 성격과 그 영향에 관한 연구.
-정기철. 서울대석사논문. 1988년
3. 한국 근대화 과정의 건축제도와 장인활동에 관한 연구. - 김란기. 홍익대박사논문. 1989년
4. 일제시대 주택 개량에 관한 연구. - 김정아 연세대석사논문. 1991년
5. 민족건축론 - 김홍식. 한길사 1978년
6. 일제강점기 도시계획 연구 - 손정목. 일지사 . 1990년
7. 구한말 탁지부 건축소의 조직과 사업에 관한 연구 - 김태중. 부산대석사논문. 1982년
8. 한국현대미술사 (건축) - 윤일주. 동화출판사. 1978년
9. 해방에서 6.25까지 정치사회사 연구현황과 문제점 [한국근현대사 연구 입문] - 최장집.역사비평사.1989년
10. 해방 후 노동운동사 연구현황과 방법론 [한국근현대사 연구입문] - 박현채. 역사비평사. 1989년
11. 조선경제사 -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미래사. 1989년
12. 조선근대 사회경제사 - 전석담.최운규. 이성과 현실. 1989년
13. 화성 영건에 관한 연구 -양윤식. 서울대석사논문. 1989년
14. 조선왕조의 영조 직제에 관한 연구 - 이왕기. 대한건축학회. 24권 97호. 80/12
15. 한국건축사학의 변천에 관한 연구 - 한재수. 한양대박사논문. 1987년
16. 조선시대 영조직제 연구 -김동욱. 대한건축학회 27권 112-113호. 80/12
17. 실록 친일파. - 엄종국. 돌베게.1991년
18. 경운궁 연건에 관한 연구 - 김순일. 동국대 박사논문. 1984년
19. 한국근대사 - 강만길. 창비. 1989년
20. 한국 근세 과학기술 100년사 조사연구-건축분야. -이천승
첫댓글 2006년 바보모임때 만들었던 발제문인데 (책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아서 그런지 디게 길군.) 찾아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