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로님께서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식당에 가서 앉아있는데, 30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찾아와서 뭘 드시겠냐고 물어보지를 않습니다. 참다 못한 장로님은 지나가 버리는 한 종업원을 억지로 붙잡고 따졌습니다. "왜 물도 갖다주지도 않고 뭘 드시겠냐고도 물어보지도 않는거요? 서비스가 뭐 이래요?" 종업원이 하는 말, "장로님, 여기는 셀프서비스입니다",
장로님이 다시 받아 칩니다. "그러면 왜 저기 있는 사람들은 셀프서비스가 아니고, 종업원들이 서비스를 직접 하는거요?" "아 저분들 말입니까? 저 분들은 집사님들과 평신도들입니다. 저분들께서는 지상에서 서비스를 항상 남에게 베풀고 남을 잘 섬겼기 때문에 섬김을 받는 것입니다"
. 종업원의 이 말에 장로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6개월 전에 돌아가신 우리 교회 목사님은 어디에 있소? 보이지를 않는데..." 종업원이 말했다. "아 그 목사님요? 지금 막 배달나가셨어요."
주님은 욍의 보좌를 버리고 종으로 섬기는 자로 우리에게 본을 본여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산제사를 드리란 것은 이웃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봉사를 말합니다.
오직 은혜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몸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 예배(spiritual worship)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몸을 산제물(living sacrifices)로 삶으로 주께 드릴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4가지 원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사랑으로 봉사하라.」
(9-10)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이 사랑의 특징은
1)거짓없은 사랑-행함과 진실한 사랑
2)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사랑
3)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교회안에서 형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4)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는 사랑
이사랑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계명인 것입니다.
요13:34절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오직 아가페 사랑인 주도적이며 조건없는 주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받고 깨닫고 감격하는 자들이 그 사랑이 강권하여 그 사랑이 동기가 되어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가장 큰 속죄를 체험한 막달라 마리아는 더욱 큰 사랑에 빚진자 되어 끝까지 주님께 충성을 다합니다.
잘못된 열정은 자신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합니다. 히틀러의 열정은 인류에게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칼 막스의 열정은 공산주의를 만들어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게 하였습니다.
고전 13장에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이 없는 봉사, 사랑이 없는 섬김, 사람이 없는 희생은 안 믿는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동기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봉사는 이기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봉사때문에 실족하고 넘어집니다. 거짓이 없는 사랑 악을 미워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 형제애를 가지고 서로 용납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이 미덕이 융합하여 주도적이고 조건없는 사랑으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에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심령에 부은바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큰 십자가의 사랑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내가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자기 사랑을 확증해 주고, 내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그가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해 주셨다'고. 그 때가 중요합니다. 연약할 때, 또 죄인되었을 때,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때 벌써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 앞에 나왔다고 해서 사랑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의롭게 살고, 선하게 살고, 봉사한다고 이제서야 사랑을 받을 거라고, 보상적으로 사랑을 받을 거라고 착각해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먼저 사랑한 게 아닙니다. 그가 나를 먼저 사랑하고, 그런고로 벌써 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느 교회 주변에 여관, 술집, 에덴 안마시술, 색시집, 가시나집 즐비하게 둘러있어 후배 목사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하는데 교회의 환경이 이새서야 되겠느냐"고 물으니 "성경 로마서 보세요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은 법입니다.
내가 죄인중에 괴수입니까? 그 죄악과 허물의 부피만큼 더 사랑을 많이 받았지요.
내가 몸이 병들었습니까? 사랑의 징계의 고통만큼 사랑을 더 많이 받은 사람이지요.
내가 여러번 실패했습니까? 포기만큼 주님의 위로가 더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보다 나르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어린양을 먹이라,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헌신의 동기를 봉사의 원칙을 주님을 사랑하는 동기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주앞에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엄청난 사랑 안에 있는 나, 사랑받는 나, 그 존재는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사랑의 빚진 마음으로,주의 사랑이 강권하여 주님의 일을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은혜받은 증거입니다.
둘째, 「열심으로 봉사하라.
(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1절의 '열심을 품고'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가슴에 불을 안고 뜨거운 가슴으로 부지런하게 주의 일에 충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뜨거운 열정은 은혜받은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기질입니다. 한철하 목사는 "기독교는 한마디로 열심의 종교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미지근한 것을 싫어하십니다(계3:15,16). '열심'이란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 생활도, 기도도, 봉사도,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모든 일에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살후 3장 10절 말씀에는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48장 10절 말씀에는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잠언 10장 4절 말씀에도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자에게는 그 손이 일하는 대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열심'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됩니다. 처음 믿을 때는 열심히 믿다가도, 1년, 3년, 5년, 10년 지나면 뜨뜻미지근하게 적당히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점점 열심으로 더 뜨겁게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게으로고 나태한 것은 죄악입니다.
심장은 인간을 살고 움직이게 하는 중심기관입니다. 남자는 평균 300g, 여자는 250g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심장(心臟, 열심:熱心)을 저울로 단다고 합니다. 심장을 달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교회생활을 한 분이 천국에서 심장을 재었더니 천국 역사상 최고치인 38kg이 나오더랍니다.
그런데 다시 세분해서 나오는데,
자기 명예(이름)를 위한 열심 4kg,
년말에 목사님께 관심 끌고 직분 받으려고 낸 반짝 열심 6kg,
박 집사를 시기하고 질투한 열심 12kg,
이집사와 경쟁하기 위한 열심 8kg,
봉사하면서도 밖에서 들은 말들을 교회에 물고 들어온 외신기자생활
여기저기서 들은 말들을 모아서 신속하게 퍼뜨리는 편집기자생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사실인 것처럼 보도한 산지기자 생활 한 열심5kg.
기도충만 말씀충만한 그 열심으로 성질 충만 분노 충만한 열심이 2kg,
결국 참 믿음과 순전한 마음으로 한 열심은 1kg밖에 안 남더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어지럽히고 시끄럽게 하고 불평불만하고 반목질시하는 사람들은
다 열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열심이 인간적이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육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주의 성령의 포로가 되어 성령충만하여 그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요한계시록3:15-16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이왕 믿을 바엔 열심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렘29:13절을 보면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합니다. 예레미야48:10 말씀에는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잠언10:4 말씀에도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자에게는 그 손이 일하는 대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백만장자 4천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조사 분석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라고 질문한 결과, 몇 가지 공통적인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첫째, 뚜렷한 목표를 가져라.
둘째, 마음에 꿈을 가져라.
셋째,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인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평탄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지러울 때 정승이 나는 것입니다. 교회가 시련의 풍랑을 만날 때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시는 것입니다.
이 때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교회를 지키며 사명을 지키며 주의 약속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개 하려 함이라(약1:2-3)"
요즘은 각 기업에서 신입 사원을 뽑을 때, 출신학교, 학업 성적보다도, 일에 대해서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면접할 때 몇 가지 시험을 하는데,
첫째는 걸음걸이를 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들어오는 사람을 뽑습니다.
둘째는 인사를 잘하는가를 봅니다. 독불장군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존경과 애정, 팀웍을 봅니다. 때로는 목욕탕에도 데리고 들어갑니다. 탕 속에 발을 넣자마자 "앗, 뜨거워!"하고 얼른 발을 빼면 감점이지만, 좀 뜨거워도 꾹 참는 사람은 후한 점수를 받습니다. 회사에서 30년 이상 일하다보면 뜨거울 때도 있고 고통 당할 때도 있을만큼 인내심 있게 일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노래방에 데려가서도 면접을 합니다. 노래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노래를 부르느냐를 보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노래는 이런 노래입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미아리로 갈까요, 영등포로 갈까요∼",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이 사람도 떨어집니다. 희망과 패기에 찬 노래!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인생에 대해 긍정적인 노래를 하는 사람을 원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시않으면 때가 이르면 이루어 주십니다. 언제나 어려움은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일반적으로 모든 것이 힘들고 귀찮으니까 하던 일을 그만 두어 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힘내어 남을 섬겨야 합니다. 평안할 때 하는 봉사보다 어려울 때 하는 봉사는 몇 갑절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임직을 맏는 분들은 이와 같이 어려운 중에도 끝까지 인내하여 그 충성을 인정받아 주앞에 세움받게 된 것입니다. 초지일관 달려갈 길을 다 달릴 때까지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나누면서 봉사하라.」
(13)성도들의 쓸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초대교회는 거의가 극빈자였습니다. 손님들이 자주 찾아왔고 그러면 그들과 함께 먹던 것을 나누고 잠자리를 양보해야 했습니다. 자기의 것을 나누고 희생하지 않고 교회 봉사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형편이었습니다.
눅6:31절에서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했고 눅6:38절에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42절에서 “어린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었을지라도 반드시 그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 로마서 15:26절에서는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되 더욱이 믿음의 가정에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을 돕고 예수 믿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은 아름다운 봉사 중 하나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입니다. 나누는 삶을 통해 우리를 행복하게 하십니다. 주는 자가 받은 자보다 더 복되게 하십니다.
세계적인 암전문가로 온갖 명성과 부귀를 얻은 성실한 신앙인 원종수 박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은 어릴때 아주 가난해서 남의 집 마루를 빌려서 겨울바람을 막고 살았습니다.
너무 추운 겨울날은 마루에서 얼어 죽는 것보다는 교회에 가서 기도하다 죽는 것이 낫겠다
생각하고 교회의 차거운 마루 바닥에서 밤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난하던 그 때에 하루는 그 어머니가 거지 할아버지를 모시고 왔답니다. 그 할아버지는 대전역 근방에 가마니를 깔고 추운 겨울을 지내던 거지였답니다. 대청마루를 막아서 방 하나에 온 가족들이 지내는데 불쌍한 거지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 거지를 모시고 와서 어머니가 "종수야! 이 할아버지 어서 목욕시켜 드려라."고 합니다. 불순종하였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아서 어머니 말씀대로 세숫대야에 물을 데워서 그 거지의 옷을 벗기고 대 소변으로 굳어진 옷을 벗겨서 목욕을 시키니까 악취가 진동을 하는 데 정말 견딜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깨끗이 목욕을 다 시키고 난 다음 갈아 입힐 옷이 없다고 하니까. "얼마 전에 너희 삼촌이 사다 준 그 내복을 할아버지에게 입혀라."라고 하시더랍니다. 원종수 아이는 아까워서 입지 않던 그 내의를 어머니 명령이라 할 수 없이 입혔답니다. 원종수의 가정은 회덕들판의 배추밭에 가서 버려진 배추잎을 주워 죽을 쑤어 먹었답니다. 아마도 우리교회 교인들 밭에서 주워다 먹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이 거지 할아버지는 원종수 가족의 배려와 관심속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다가 따뜻한 봄이 되니까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주님이 환상 가운데 뜨겁게 기도하던 원종수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답니다.
"종수야! 그 추운 겨울에 만난 거지 할아버지를 기억하지? 나는 그때 그 겨울에 너무나 추
워서 얼어죽는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끼고 그냥 무심히 지나갔지만 네 어머니가
너의 가난한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지. 그리고 그 냄새나는 내 몸을 어린 네 손으로 목욕을
시켜주었지. 또 한벌 뿐인 너의 겨울 내의까지 나에게 입혀주어서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른
다. 그 맛 있는 죽도 배불리 먹여주어서 고맙다. 종수야! 이제 그때 네 가정에서 받은 은혜
를 내가 갚고 싶다. 너에게 갚아주고 싶다." 하는 환상을 기도중에 보게 되었답니다.
오늘 임직을 받으시는 분들은 성전을 봉헌하는 순간까지 주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 헌신하시고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품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아 때가 이르매 오늘 이처럼 하나님과 교회앞에 영광스런 직분을 허락하심을 믿고 임직자 모든 분들을 주의 이름으로 축하고 축복합니다.
사랑으로 봉사하십시오! 열심으로 봉사하십시오! 힘들어도 봉사하십시오! 나누면서 봉사하십시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왕의 보좌를 버리시고 종으로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다 내어 주고 섬김으로 본을 보여주신 교회의 사명이요 임직자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능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가능합니다. 주앞에 엎드려 손들고 항복하여 주여 나를 사용하여 주소서 주여 나를 주의 사명자로 온전히 주의 영에 고용되게 하옵소서
주의 능력주시는 자 안에소 모든 것을 항 수 있느니라 선포하면서 전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남은 때도 지금까지 충성을 다하여 달려갈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키고 주께서 예비한 생명의 면류관을 모두가 받아 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