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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 임의 발자취 - 없음(無爲)으로 보이는 현상계의 움직임(有爲)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 임의 얼굴 - 권태(倦怠)와 공포(恐怖)의 순간순간 드러나는 진리의 표상(表象)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 임의 입김 - 오묘(奧妙)하고 고풍연(古風然)한 진리의 표상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 임의 노래 - 신비한 연원(淵源)의 표상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 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 임의 시 - 온 누리에 충만한 인연(因緣)의 표상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나의 존재- 불멸(不滅)의 사모(思慕), 고독한 구도(진리를 구하는) 정신
▷▷ 진리의 궁극을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
<님의 침묵>(1926)
♣ 감상의 길라잡이
자연의 신비로운 아름다움 뒤에 있는 절대자에 대한 동경을 간절한 물음과 기원의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윤회와 참된 가치를 향해 정진하는 시인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시는 의문형으로 끝나는 몇 개의 행이 계속되다가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에 와서 일단 커다란 변화를 보여 주고 다시 의문형으로 종결된다. 이러한 구조는 이 시를 일단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게 한다. 앞 부분이 자연 또는 자연 현상을 통하여 현현(顯現)하는 ‘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대해 마지막 한 행에서는 님이 없고 ‘나’만 있다. 님이 없는 상황의 어둠이 ‘밤’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앞 부분(1행~5행)은 님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의 밝은 분위기를 갖고 있다.
1~4행에서 ‘님’은 나에게 점점 가까이 느껴진다. 처음에 님은 발자취 소리만 나다가 먼 빛으로 얼굴을 보이고, 좀더 가까이 다가와서 입김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귓가에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것은 매우 밝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5행에서는 님과의 이별의 순간이 온다. 그것은 저녁의 침침한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비극적인 순간이 장엄한 시처럼 느껴진다.
6행에서 님은 사라지고 나는 어두운 ‘밤’에 홀로 남겨진다. 그 밤 속에 침몰하지 않기 위해 나의 가슴은 약한 등불을 켜게 된다. 그 등불은 절대적인 님의 존재에 비해서, 또 님과의 이별이라는 엄청난 현실 앞에서는 당장은 ‘약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듯이 나의 가슴은 끊임없이 타올라 그 등불이 언젠가는 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비추어 줄 횃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의 시에서, ‘이별’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그리고 타고 남은 재가 어떻게 기름이 될까? 그의 이러한 특유의 논리가 시집 ‘님의 침묵’에 실린 모든 시를 지배한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는 것은, ‘포도주가 눈물이 되고 한밤을 지나면 눈물이 다른 포도주가 된다.’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별이 님의 존재를 깨닫는 계기가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세상이 온통 타락했을 때, 그 거짓된 세상을 부정함으로써만 진실을 얻을 수가 있다. 이별은 곧 위대한 부정이며 더 큰 긍정을 얻기 위한 전제이다. 그것은 염무웅 교사가 말한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다시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보다 큰 긍정에의 길을 준비하는 불교적 변증법’의 논리가 되는 셈이다.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문원각>
♣ 핵심 사항 정리
������ 갈래 자유시, 서정시
������ 성격 명상적, 신비적, 관조적, 관념적, 구도적, 역동적, 역설적
������ 경향
������ 운율
������ 어조 연가풍의 여성적 어조
������ 표현 상징법, 반복법, 은유법, 경어체의 사용과 어구의 반복, 자연적 심상의 의인화, 상상력의 비약으로 의미의 심화
������ 제재 자연 현상
������ 주제 님에 대한 동경과 구도 정신, 진리의 궁극을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
♣ 시어․시구 연구 및 분석
#. 서풍(西風)-서방 정토(西方淨土)에서 불어 오는, 깨달음을 안겨다 주는 바람. 지리한 장마-깨닫지 못하고 무명(無名)과 미혹(迷惑)으로 얽매여 있는 상태. 무서운 검은 구름-인간의 자성(自性;본체)을 가지는 온갖 번뇌와 망념(妄念), 고통의 비유. 꽃도 없는-꽃이 없는 데서 맡는 냄새, 이것은 선(禪)의 세계의 법열(法悅)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번뇌에 시달리는 시인의 가슴. 약한 등불-시인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
#. 바람도 없는 공중에~누구의 발자취입니까 ; 자연의 현상(오동잎의 떨어짐)과 그 근원(님의 발자취)이 일치하고 있다. 임의 발자취는 떨어지는 오동잎을 지칭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현상에서 보이는 움직임은 곧 허공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임의 초월적인 힘을 암시하는 것이다.
#. 지리한 장마 끝에~누구의 얼굴입니까 ; 자연 현상(푸른 하늘)과 초월자(님의 얼굴)의 표상이 일치하고 있는 시행이다.
#. 꽃도 없는 깊은~누구의 입김입니까 ; 자연 현상(알 수 없는 향기)과 초월자(입김)의 표상이 일치하고 있다. 향기를 피울 수 있는 꽃이 없는 깊은 숲 속의 고목, 그 고목의 푸른 이끼, 오래 된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자연 현상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직 불도 수행에 열중하는 경지를 의미한다.
#. 가늘게 흐르는~누구의 노래입니까? ; 인간적 경험의 미묘한 세계를 통해서 절대자의 경지에 접근할 수 있는 데 대한 환희의 표현이다.
#. 연꽃 같은 발꿈치로~누구의 시(詩)입니까 ; 자연 현상(저녁놀)과 그 근원(님의 시)인 인연이 일치되는 시행이다. 모든 자연에 비치는 ‘저녁놀’은 미지의 초월자의 ‘시’, 곧 덧없이 아름답고, 불성으로 정화된 종교적, 예술적 경지를 암시한다. 여기에서이 ‘끝없는 하늘’은 불교의 무량 무변(無量無邊)한 하늘로서 막힘도, 차별도, 탐욕도 없는 공계(空界)를 의미하며, ‘떨어지는 해’는 곱고 아름다움으로 단장했지만, 동시에 공허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 타고 남은 재가~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누구’ 또는 ‘님’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접근을 시도하는 구도 정신(절대적 존재를 향한 자아의 끊임없는 추구)을 나타낸 말이다. 시적 화자의 탐욕과 번뇌와 구도가 짙게 배인 시행으로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어 다시 태우는 가슴은 ‘탐욕과 번뇌의 불’인 동시에 실상을 찾아 깨달으려는 ‘지혜와 구도의 불’인 불교의 윤회 사상이다.
♣ 생각해 봅시다.
1. 이 시의 제목인 ‘알 수 없어요’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알 수 없다’는 뜻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알 듯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는, 신비로운 경지를 표현한 것으로 자뭇 반어적인 표현이다.
2. 경어체의 표현이 거두는 효과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도(道)를 추구하는 경건한 자세를 보여 주기에 적합하다.
3. 이 시의 주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구도 정신 , 님께서 떠나시고 계시지 않더라도 나는 너무나 깊이 님을 사랑하기때문에 끝없이 님을 향해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4. 이 시의 산문적 성격은 주제와 어떻게 연관되는가 생각해 보자.
▶ 이 시에는 시인의 다면적인 사상과 감정이 응축되어 있다. 산문적인 유장한 가락이 시의 독특한 간결미를 제거하고 있으나, 시가 지닌 내면적 깊이와 결합하여 시를 보다 심원한 느낌이 들도록 해 주며, 긴 호흡으로 인해 감상 깊은 사색을 지속하게 해 준다.
5. 이 시에서 불교적인 세계관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자.
▶ 자연의 조화로움과 신비함을 님의 힘으로 보는 자세,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고 하는 緣起(연기)적인 사고 등에서 불교적인 세계관이 잘 드러난다.
6. 이 시에서 의문형 진술이 주는 효과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이 시는 ‘누구의 ~입니까?’라는 표현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이 누구로 표상된 존재, 즉 절대자(님)라는 사실을 오히려 분명히 한다. 또, 이러한 의문형은 시인이 단정을 피함으로써 독자에게 사고할 여유를 충분히 준다.
7.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 어둠의 시대에 ‘나’는 자기 자신을 태워서 어둠과 싸우며 ‘누구’ 즉 ‘님’이 사라진 세상을 조금이나마 밝히고자 한다. 그 불태움은 일회적인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이 끊임없이 지속된다는 뜻이다.
8. 시행을 짧게 나누지 않고 길게 이은 것은 운율과 어감에 어떤 효과를 주는지 생각해 보자.
▶ 일상 언어의 자연스러운 호흡을 살려서 행을 길게 이음으로써 간절한 물음과 정성스러운 기원의 어조를 절실하게 하였다.
9. ‘누구의 밤’이라는 구절의 뜻을 생각해 보자.
▶ ‘누구의 밤’이라 할 때의 ‘밤’은 곧 ‘누구’에 해당하는 존재가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이며,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진 괴로운 시대에 해당한다. 결국 이 작품에서의 ‘누구’란 한용운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님’과 같은 존재이며, ‘밤’이란 님이 사라진 시련의 시대, 즉 정의의 원리가 가리워진 식민지의 억압적 상황의 상징적 표현이라 하겠다.
10. 이 시는 임을 감지할 수 있는 때와 없는 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후자가 시작되는 행을 찾아보자.
▶ 1~5행은 님을 자연의 사물을 통하여 나타내고 있으며, 마지막 행에서 그 님에 대한 신앙심을 표현하고 있다. ⇒ 6행
♣ 비교해 봅시다.
1. 다음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한 구절이다. 어조적인 측면에서 공통점을 찾아보자.
▷ <다음>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 연가풍의 여성적 어조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 이것만은 알아야
1. 이 시에서 서정적 화자의 심경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시어를 찾아보자.
▶ 등불 - 이 시에서 서정적 화자가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나의 가슴은~등불입니까?’에서 단 한 번 나온다.
2. 이 시에서 불교의 연기 사상이 드러나는 연을 찾아보자.
▶ 6연 -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것은, A가 있음으로 B가 있다는 연기 사상(緣起思想)이며 일종의 윤회 사상이기도 하다.
3. ‘옥 같은 손’의 원관념을 찾아보자.
▶ 저녁 놀
4. 시대 상황을 상징하는 시어를 찾아보자.
▶ 밤
5. ‘어떤 비극적인 황홀함’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행을 찾아보자.
▶ 연꽃
6. 이 시에는 불교적 명상이 드러나 있다. ‘지리한 장마’와 ‘검은 구름’이 상징하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지리한 장마 - 깨닫지 못하는 중생이 보내는 시간, 검은 구름 - 번뇌
7. 이 시의 이미지의 흐름에 대하여 살펴보자.
▶ 얼굴 - 입김 - 노래 - 시. ‘오동잎’에서 님의 발자취를, ‘푸른 하늘’에서 님의 얼굴을, ‘향기’에서 님의 입김을, ‘시내’에서 님의 노래를, ‘저녁놀’에서 님의 시를 발견하고 있다.
8. 이 작품에서 역설적인 표현 기법이 쓰인 부분을 찾아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현상적으로 님이 떠났지만, 내 마음 속에는 님이 영원히 남아 있으므로 떠난 것이 아니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 참고 사항
#. ‘이미지의 흐름’은 ‘관점의 일관성’과 ‘연상(聯想)의 연결성’에 유의하여 파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