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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문학 2008 가을호》
형식의 변주와 풍경의 현상학
- 윤금초론
이 송 희(시인, 전남대 강사)
1.
시조의 참다운 맛은 어떤 것일까? 요즘과 같은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맛과 멋을 동시에 갖추어야 빛을 본다. 굳이 빛을 보려고 하지 않더라도 시조의 맛을 어머니의 ‘장맛’이나 ‘된장국’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조가 현대시조로 몸을 바꾼 지금, 우리는 현대시조의 새로운 미래를 진단하기보다 시조의 ‘맛’과 ‘멋’이 어떤 것인가 하는 반복적인 물음만 던지고 있다. 이는 좀처럼 형식적 자율성을 허용하지 않는 시조를 여전히 고전적 양식 범주에 가두는 요인이기도 하다. ‘맺고 푸는 시가 형식’인 시조가 다양성과 복잡성이 공존하는 현대사회의 징후들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것은 다소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시조가 갖는 정형의 제약과 구속, 자연 사물에 기댄 지나친 정서의 표출, 그리고 동일성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는 언어적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적 정서와 현대적 감각을 아우르는 현대시조의 그 아스라한 틈새에 미세하게 균열을 내면서 사설시조, 평시조, 엇시조, 양장시조의 혼합형인 ‘옴니버스시조’라고 하는 형식적 실험으로 현대시조의 지평 확대에 적극 나선 윤금초 시인의 공적은 오늘날 시조가 살아남아야 하는 당위성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학성의 말대로 사설시조 형식 구조의 특성은 ‘정형 속의 가변성’에 있으며, ‘형상의 연쇄적 병치를 통해 말을 확장해가는 엮음의 재미’에 그 맛이 있다 할 것이다.
이런 점과 아울러 현대시조단에서 윤금초 시조 미학이 갖는 위상은 다양한 서정의 재료들을 알맞게 익혀내는 노련함과 새로운 시조 형식의 가능성을 갱신하고자 하는 올곧은 문학정신을 겸비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전통성과 역사성의 재조명, 서정적 풍경들에 기댄 내면의 형상화, 자연 사물에 대한 반성적 인식과 정신적 가치,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 등에 이르는 다양한 시(詩)적 재료들을 시조라는 정형의 그릇에 보기 좋게 담아내는 시인의 상상력은 그간 시조시단의 배경을 이루고 있던 자연 사물 류의 소재들을 자연스럽게 분산시키면서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고 읽어내는 시안(詩眼)의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변화와 형식 실험으로 새로운 시조 미학의 지형을 만들어가고 있는 시인은 ‘평시조’와 ‘사설시조’를 불문하고 여러 빛깔의 언어 풍경을 어루만지면서 제한이나 구속이 아닌 변화와 가능성의 공간으로 시조를 재인식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고유성과 습속을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사유와 접목시키고 자연의 언어를 세공하여 미학적 풍경을 그려내려는 시인의 고독한 시적 작업은 시조가 ‘현대시의 한 양식으로서 살아있는 문학양식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문학적 시각에 부응하는 길이다.
2.
시인의 말처럼 모든 창작 행위는 “자신의 예술적 소양과 지식을 총체적으로 집약하여 표현하는 정신노동의 결정체”(「현대시조쓰기」, 새문사, 2003)이다. 이 말은 서정시가 단순한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시인의 경험과 상상의 풍경 속에서 융화되어 재현된 산물임을 의미한다. 시인은 다양한 경험에서 쌓아 올린 서정에 불을 켜고 상상과 접목하는 부단한 과정을 겪고 난 후 비로소 대상과의 거리를 확보하고 성찰적 자아와 만나는 성숙한 통로 하나를 만든다. 이처럼 현실을 응시하는 예리한 시선과 내면의 결을 어루만지는 섬세한 손길은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시인의 순수한 정신과 선명한 시작(詩作)의 풍경이 아니겠는가. 기억을 현재에 복원시키고 재현하면서 다채롭게 선보이고 있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몸 낮출수록 우람하게 다가서는 저 산빛
떡갈나무 잡목숲 흔들고 오는 문자왕 그의 호령 중원 고구려비 돌기둥 휘감아 도는데 들리는가, 산울림 우렁 우렁 일렁이는
찾찾찾찾자되찾자… 기찻소리, 하늘의 소리.
- 「중원, 시간여행」 전문
시인의 작품에서 역사와 전통에 기댄 시적 형상화는 단순한 언어의 조탁을 넘어서는, 현대시조의 소재의 확장, 현실을 응시하는 예리한 시선과 의미화, 감각적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의 주요 골격인 역사와 전통에 기댄 서정의 세계는 위의 시 외에도 「안부」, 「주몽의 하늘」, 「해일」, 「백악기 여행」, 「빛살무늬 바람」, 「남도석성」, 「바람」, 「잠적」 등에 이르는 다양한 풍경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위의 시에서 시적 화자는 기차 여행 중 스치는 창밖의 풍경들을 잽싸게 붙든다. 떡갈나무 잡목 숲을 흔들면서 오는 문자왕의 호령 소리와 중원 고구려비 돌기둥 휘감아 도는 소리는 속도를 감지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지나가지만 이미 기억이 되는 풍경들은 산울림으로 더욱 넓게 퍼지면서 현재 화자의 마음 문을 두드린다. 중장의 ‘산울림 우렁 우렁 일렁이는’ 시간들은 종장의 ‘찾찾찾찾자되찾자’에 수렴되면서 ‘하늘의 소리’를 되찾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다부진 바람을 보여준다. 중장이 길어진 형태의 이 시는 마치 중원을 가르는 기차의 모습과 소리, 고구려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 시·공을 가르는 기적의 울림 등을 아우르면서 탄탄한 시적 구성력과 섬세한 내면의 무늬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움도 한 시름도 발묵(潑墨)으로 번지는 시간
닷되들이 동이만한 알을 열고 나온 주몽
자다가 소스라친다, 서슬 푸른 살의(殺意)를 본다.
하늘도 저 바다도 붉게 물든 저녁답
비루먹은 말 한 필, 비늘 돋은 강물 곤두세워 동부여 치욕의 마을 우발수를 떠난다. 영산강이나 압록강가 궁벽한 어촌에 핀 버들꽃 같은 여인, 천제의 아들인가 웅신산 해모수와 아득한 세월만큼 깊고 농밀하게 사통한, 늙은 어부 하백(河伯)의 딸 버들꽃 아씨 유화여, 유화여. 태백산 앞발치 물살 급한 우발수의, 문이란 문짝마다 빗장 걸린 희디 흰 적소(謫所)에서 대숲 바람소리 우렁우렁 들리는 밤 발 오그리고 홀로 앉으면 잃어버린 족문 같은 별이 뜨는 곳, 어머니 유화가 갇힌 모략의 땅 우발수를 탈출한다.
말갈기 가쁜 숨 돌려 멀리 남으로 내달린다.
- 「주몽의 하늘」 부분
평시조 한 수와 사설시조 두 수로써, 옴니버스 시조 형태를 취하고 있는 「주몽의 하늘」은 고구려의 ‘주몽신화’를 끌어와 서술성과 서정성이 결합된 탄탄한 구성과 의미망을 구축하면서 새로운 시조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시는 ‘닷 되들이 동이만한 알을 열고 나온 주몽’이 ‘서슬 푸른 살의(殺意)’를 보는 첫 수를 시작으로 하여 갖은 위기를 극복하고 ‘광활한 북만(北滿) 대륙에 펼치는’ 고구려의 새벽에 이르는 영웅의 일대기를 사설조로 들려주고 있다. 한 시대를 보낸 역사적 풍경들을 시적 소재로 활용하여 현재와 접목시키는 시작(詩作) 방법은 ‘우렁우렁’에 비유되는 바람 소리, 별을 ‘족문’으로 비유한 것, ‘찾찾찾찾자되찾자’와 같은 감각적 표현들로 세공되어 형식적 새로움과 함께 긴장감과 박진감 넘치는 생생한 풍경들을 자아낸다.
이러한 역사와 만나는 상상의 공간들은 그림이나 조각품, 소설 작품 등의 소재들을 차용하여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시작(詩作) 과정으로 이어진다. 「현상과 대비」, 「빛의 누적」, 「대치와 현상학」, 「사유와 운동」, 「연역과 귀납」, 「굴레와 해방」, 「질료와 정신」, 「대상과 공간」, 그리고 이중섭의 그림들을 스케치한 풍경의 연작들 등에서 보이는 회화적이고 지적인 이미지들은 화려하고 날렵한 붓 터치를 인식한 시인의 시선과 만나 생동감 넘치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들녘을 쏘다니는 야생마 그것처럼
툭 툭 짧은 붓 놀림의 신들린 색채 분할.
억압된 격정의 불길, 활활 솟아 물결친다.
노란 보리밭이랑 까마귀떼 푸득이는,
꿈틀 꿈틀 나울치는 눈부신 풍광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문빗장을 거는구나.
- 「질료와 정신-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 전문
광기를 다스리기 위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고흐, 자신의 귀를 자른 후 1889년 그렸다는 그림을 소재로 차용한 시인은 그의 그림 앞에서 ‘툭 툭 짧은 붓 놀림의 신들린 색채 분할’을 본다. 그것은 ‘억압된 격정의 불길’이기에 크고 강렬한 움직임과 평온하고 안정감 있는 두 공간을 모두 보여준다. ‘억압’과 ‘격정’은 시적 화자가 갈망하는 현재와 미래의 공간, 즉 스스로에게 갇힌 순간과 그 순간을 벗어난, 그야말로 자유로운 ‘야생마’처럼 될 수 있는 들판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억압’과 ‘격정’은 어둠과 밝음의 색채의 분할이며, 마음의 진폭인 것이다. 시인은 그러한 풍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몸’은 갇혀있지만, ‘정신’은 자유로운 ‘노란 보리밭’, ‘까마귀떼’의 질료와 ‘꿈틀 꿈틀 나울치는 눈부신 풍광’의 정신이 끊임없는 욕구를 갈망하는 눈물겨운 고흐의 노력과 결합되어 빚어진 시인의 상상력은 이 시가 시다운 활력을 얻고 있는 당당한 이유일 것이다.
이처럼 붓 끝에서 이는 상상과 진실의 공간들이 그림을 통해 다양한 이미지를 불러 모은 화폭의 공간에 오롯하게 담겨 정신을 어루만지고 있다면, 다음의 시편들은 철저하게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갈등하는 시인의 사유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 그 중에서도 시가 인간의 정신적 풍요를 위해 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 중의 하나는 마음을 터놓고 현실을 이야기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제목에서도 암시하듯이 「엘니뇨, 엘니뇨」와 「인터넷 유머」 연작 등으로,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어조의 사용보다는 풍자적이고 유머스럽고 비유적인 언어들이 줄기를 이루면서 내면과 접속되고, 주제와 소재 면에서 만날 수 있는 현대시조의 고루한 옷을 또 한 겹 벗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들끓는 적도 부근 소용돌이 물기둥에
우우우 높새바람, 태평양이 범람한다.
엘니뇨 이상 기온이 내안 가득 밀린다.
날궂이 구름 덮인 심란한 나의 변방.
이름 모를 기압골이 상승하고 소멸하는…
엘니뇨 기상 이변이 거푸 밀어닥친다.
바닷가재, 온갖 패류, 숨이 찬 산호초에
우리 친구 물총새 끝내 세상 뜨는구나,
저마다 세간을 챙겨 브릉브릉 뜨는구나.
-「엘니뇨 엘니뇨」 전문
이상 기온인 엘리뇨 현상을 시적 소재로 차용하여 시대와 환경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상에 존재하는 생물들의 아픔 속에서 결코 인간도 안전할 수 없다는 인식을 내비치고 있는 시인의 통찰력은 우리에게 반성적 사유의 깊이를 경험하게 한다. 엘리뇨 영향은 ‘들끓는 적도 부근’에서 시작되어 ‘내안 가득 밀’리고, 정체불명의 기압골의 상승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엘니뇨 기상 이변이 거푸 밀어닥’치는 어지러운 ‘나의 변방’을 지난다. 그리고 ‘바닷가재, 온갖 패류’들이 있는 바다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마지막 수 ‘바다’의 공간에서 죽어가는 어패류들을 ‘우리 친구’라고 이름 부르며 친구가 친구를 떠나보내고, 그 소멸되어 가는 자연 속에서 인간 역시 사라져 가고 말 것이라는 무언의 암시를 내 보내고 있다. 또한 시인은 야속한 현실에 대한 은밀한 비판도 결국 산업화 시대에 인간이 던진 그물이라는 자기반성적 인식을 내비치고 있다.
시인의 비판적 시각이 격정적이지 않고, 감정이 고조되지 않음에도 이 시가 절절한 감상적 사유와 깊이 있는 천착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는 ‘세상 뜨는구나’, ‘저마다 세간을 챙겨 브릉브릉 뜨는구나’라고 하는 유머와 재치를 겸비한 언어가 감각적으로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인의 재치 있는 언어 사용은 「인터넷 유머」 연작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앞산도, 저 바다도 몸져누운 국가부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정부를 ‘이튿날 대중 대통령, 긴 한숨 내쉬며 언제 디카프리오(빛갚으리오).’라고 풍자하는 「인터넷 유머 1- IMF, 정축 국치」, ‘항간에 나도는 정치서적 베스트셀러’를 정치인들에 빗대어 ‘이방원, 이 소문 듣고 “놀고 있네, 놀고들 있어!”’라고 풍자한 「인터넷 유머 2-베스트 셀러」 등에서 시인은 정치적 현실을 풍자적이고 우회적으로 다루면서 현실을 붙든 깊은 생각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인식의 각도를 통해 새로운 형식적·의미론적 탐색을 시도하고 있는 이러한 시인의 시작(詩作) 과정은 시의 본령인 서정의 풍경들이 쌓아 온 경험과 상상의 세계가 빚어낸 풍경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지나온 시간을 더듬어 그 속에서 밝고 어두운 민초들의 삶을 어루만지고, 한의 정서를 풀어내고, 결 고운 자연의 무늬들을 뽑아내고, 율동감 있는 언어와 탄탄한 구성력으로 활력 넘치는 감성을 선사하면서, 겹겹이 두른 거칠고 촉촉한 결들을 섬세하고 정갈하게 쓸어내리고 있다. ‘날줄 씨줄 잉아귀로/한세월 자개수 놓듯//우리네 사랑의 의미,/몇 겁으로 풀어 헬까.’(「내재율1」) 고민하면서 지속적으로 보여준 서정의 결들은 역사를 만나거나 현실을 예리하게 풍자할 때, 자연과 선조들의 삶을 어루만질 때도 그것이 곧 인간의 문제임을 놓친 적이 없다. 시인은 ‘간밤 어둠 저리 내몰고/역성혁명 일으키’ (「꽃의 변증범」-미선나무를 위한 판타지(제11회 이호우 문학상 수상작))고 있는 것이다. ‘모반의 칼도 없이/잎 먼저 꽃등 켜 들고/예고편 봄 나팔’을 불고 ‘우윳빛 살갗 비비며/어녹이치는 뜰’을 지나, ‘담록색 목도리 두르고 폴카폴카 춤추는 이 한낮.’(「숲 2」)의 풍경을 만나러 가는 것이리라.
3.
시인은 ‘조지고, 비비틀고, 직신작신 할퀸 세월.’(「청맹과니의 노래」-사동(私僮) 짓소리〉)들을 풀어내어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고즈넉한 공간에 담고 ‘텁텁한 뚝배기 술에 육자배기 신명’(「해남 나들이」)나는 우리 시조 한 가락을 노래하고 있다. 자신의 시집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고요아침, 2003)에서 시인은 서구 시학에 대한 무분별한 신봉이 ‘시체 사랑하기’와 다를 바 없음을 지적하면서 시조의 건강한 멋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다. 압축과 저장으로 긴 시간을 순간에 가두는 디지털화 시대에 ‘말 부림’의 시조가 살아남기에 열악하다는 시인의 순수한 지적과 고백 역시 시조가 현대적 장르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당연한 이유와 증언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현대시조는 ‘몸 낮출수록 우람하게 다가서는 저 산빛’(「중원, 시간여행」)이어야 하는 것이리라. 시조의 자수를 따지기보다는 그 안에 담는 내용이나 가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내재율」이라는 제목을 지었다는 시작(詩作)의 배경처럼 그는 시조문학이 외형에 제약을 받는 닫힌 문학이 아닌 열린 문학이기를 바란다. 이러한 형식 실험과 의미의 생생함이 전달하는 다양한 빛깔의 시어들은 시인의 내면과 자연이 빚어낸 산물이다. 응어리진 내면의 원기를 회복하고 건조한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현대시조의 새로운 활로는 ‘지금 - 여기’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문제들에 대한 풍부한 고민과 관심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자네는 시조 쪽에 호흡이 가까우니 시조를 한번 써보게.”라고 했다는 시인 박목월의 말과 고산 윤선도에 대한 동경 혹은 일종의 의무감에서 시조를 택했다는 시인의 진실하고 소박한 고백은 오늘날 우리 시조시단을 이끌어 가는 시인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시조에 대한 열정으로 새로운 현대시조의 미학을 이어가야 할 의무감을 암암리에 던져주고 있다.
[출처] 형식의 변주와 풍경의 현상학- 윤금초론|작성자 예쁜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