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
달님!!! 아니 방장산까지 오셨으면서 연락을 안하셨다니 좀 너무하신것 아닙니까? ㅎㅎㅎ 방장산은 전남 장성군과 전북 고창군의 경계선에 있는산입니다 휴양림쪽은 장성군이구요 석정온천쪽 산정상 활공장이 있는 곳은 고창군이구요. 저에게는 방장산이 아픈사연이 많은 곳 입니다. 제가 99년도에 미리내(은하수)라는 패러팀 창단해서 3년도 안되어 방장산 때문에 해체되다시피 했으니까요 회원 11명이 방장산 비행중 사고 2명 저또한 이륙즉시 비상착륙 119까지 동원, 그후 타팀 강사가 그곳에서 28세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팀도 그후 해체되었구요 작년가을에는 군에서 후원하는 청소년 패러교육있다고 청록님이 가서 도와주자고 해서 그곳에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내서 고생했구요 그래서 저에겐 방장산은 ............
곰소염전은 일하신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너무 멋있어요 아이들에게는 현장교육도 되구요 천일염전이 있어 맛있는 젓갈도 많이 팔구요 참 이곳까지 오셨으면 곰소에서 30분거리에 있는 격포의 드라마 "이순신"촬영장소를 다녀오시지 그랬어요 부안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촬영일정이 자세하게 나와있고 요즘 이순신밥상이라는 메뉴로 맛있는 한정식도 값싸게 먹을 수 있다고 하던데요ㅎㅎㅎ 다음에 이쪽에 여행 오실 기회있으면 꼭 연락주세요 요즘엔 초여름의 고창 "청보리밭"가을엔 "메밀밭"도 유명하잖아요. 특히 그곳 동양자수박물관을 보시면 감탄하실겁니다. 청보리밭은 몇년전부터 생긴겁니다 주인장의 말에 의하면 그 유명한 고창수박농사 일손이 부족하여 생각한다는게 일손이 덜한 보리를 심었드니 관광지가 되었나나요 ㅎㅎㅎ (전 국무총리 진의종님의 장남이 하는 농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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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
연휴에 달님은 좋은 곳을 다녀 오셨네요. 모든 것 잊고 조용한 휴양림에서 능선 너머로 스러지는 일몰이 어떤 감흥을 불러 왔을지 짐작이 돼요.
ㅎㅎ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면 미인님께 언제 어디로 갈야할지 물어보면 될것 같아요. 여행지에 관해서 모르는게 없으시네요. 테마여행을 맡아하시면 너무 잘하실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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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
연님 말만하시지말고 한번오세요 가족끼리든 친구님들끼리든..... 저야 하도 싸돌아 다니기 좋아하니까요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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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
맞아요. 진즉에 미인님께 물어봤으면 격포의 촬영지도 구경하고 이순신 밥상이라는 음식도 먹어보는건데.... 격포주변은 자주가는 곳이라 특별히 둘러볼 생각을 않았어요. 곰소항엔 횟거리 사고 간장 게장 사러 들렀는데 거의 단골로 가는 집에선 올해 간장 게장을 담지 않았다고 해서 맛을 못봤어요. 정말이지 미인님은 여행가이드 보다 훨씬 섬세하게 설명해주셔서 그냥 듣고만 있어도 막 가보고 싶어져요. 고창 선운사 동백꽃 피면 사진 한 장 올려주세요. 이맘때쯤 대웅전 뒤 동백숲 작은 봉우리위에 얹힌 눈이 사륵거리며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아요. 청보리밭, 메밀밭 생각만해도 또 방랑벽이 움틉니다.
연님 다음에 기회되면 같이 한번 가요. 가족들 다 떼어놓고 둘만 가도 너무 좋아서 아마 잠을 못이루지 싶어요. 게다가 미인님까지 계시면 고창을 샅샅이(고인돌 유적지, 고창 읍성, 새만금 전시관, 채석강, 격포항, 위도...)여행하면서 멋진 여행기도 하나 써구요. 게으름 피우고 싶어 좀이 쑤시는 날 바람처럼 떠났다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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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
평화로운 두 장면이네요. 아래 염전 모습 보면서 세월이 사회가 많이 변한다는 진리를 또 배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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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 |
달님! 사진 감상 잘 했어요. 즐거운 여행을 하였군요. 사진 솜씨가 좋다 했는데 향님이 수정을 하셨네요. 그러고 보니 수정한 사진이 더 좋아 보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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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
달님! 부럽다 ^*^ 명절 연휴를 이렇게 아름다운 여행을 하셨군요. 우리는 추석이면 온 가족이 곰소항에 새우를 먹으러가요. 저 염전을 지나면서 우리는 사진에 담을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역시 달님은 이렇게 멋지게 찍어 올리셨군요.
미인님 여행 가이드 하셔도 대성하시겠어요. 모든 여행자들 미인님만 찾을것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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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
뽀님! 저보다 더 소녀같은 뽀님은 하도 씩씩하셔서 명절도 잘 지내시리라 사려해서 아예 전 걱정도 안합니다. 게다가 컴까지 고장나서 편히 쉬시게 해드렸으니 아마도 아끼는 물건은 주인의 마음도 읽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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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
별님 답글보며 저 굉장한 기운 얻습니다. 실은 사진에 자신이 없지만 열심히 찍기는 하거든요. 더구나 향샘 말씀처럼 가족 사진은 잘 찍고 못 찍고를 떠나 두고두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것 같아서요. 더구나 향기로운 여행을 사진으로 남겨두면 저 개인에겐 좋은 추억거리가 될거예요. 별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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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
미인님, 지금 여기 계시나 봐요. 한 3 년전 쯤에 부안으로 여행을 가기위해 부안군청에 전화를 해서 깨끗한 민박집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아주 친절하게 전화번호까지 가르쳐 주셔서 무지 고맙고 편리했습니다. 조각공원은 벌써 두 번이나 구경갔어요. 어쩜 미인님은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으세요? 부럽습니다. 그리고 저 오늘 등산 잘 다녀왔어요. 내일 부터는 본격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만 남았네요. 사랑방 친구님들 모두 아자! 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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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
달님,연님께 이곳을 소개하고 싶네요 http://www.buan.go.kr/tour/index.jsp(부안군청 문화관광) 금구원 조각공원 : 금구원조각공원은 조각가 김오성씨의 작업공간이자 야외전시공간으로 작가의 혼이 담긴 30여점의 작품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전시돼 있다. 또한 개인으로는 국내 최초로 설치한 천체관측실이 있어 천문동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음, (이곳은 조각가 김오성씨 형제분이 웃집,아랫집 사시는데 재산분쟁으로 길이 산허리로나서 그게 좀아쉬움, 어느날 친구랑 갔더니만 저한테 하소연??? 내가 뭘안다고요 ~~~~ 개인 천문대가 있음 한번쯤은 가볼만한곳)
하섬 : 하섬은 고사포해수욕장에서 약 2km, 성천포구에서는 약1km 지점에 새우모양을 하고 있는 3만평 정도의 자그마한 섬이다. 음력 1일과 15일 사리무렵 각 3일정도의 간조 때는 칫등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면서 바닷길이 생겨 걸어서도 섬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섬에는 2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고, 아름드리 소나무숲은 태고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또 섬 중앙에는 지하 60m 석간수가 사시사철 흘러 넘쳐 옛부터 사람이 살아왔던 섬이다. 1950년대에 원불교재단이 이 섬을 매입하여 총부직할의 수양원을 운영하고 있음. (한적하고 조용해서 쉬고 싶을때는 최고 휴양지)
내소사 : 백제 무왕 34년에 혜구두타가 이곳에 절을 세워 큰절을 대소래사, 작은 절을 소소래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후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소소래사만 남았는데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이다. 이절의 대웅보전은 조선 인조때 청민선사가 중건하였는데 빼어난 단청솜씨와 보살화를 연꽃문양으로 조각한 문격자의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또 경내에는 고려동종, 법화경절본사본, 설선당과 요사, 3층석탐, 괘불 탱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으며, 입구의 전나무숲이 한껏 풍치를 더하는 유서깊은 절이다. (내소사 입구 전나무숲은 글쓰시는분들이 좋아함, 대웅전 연꽃무늬 문격자가 유명함)
신석정(辛夕汀) 1907∼1974. 시인. 본명은 석정(錫正). 아호는 석정(夕汀·釋靜·石汀) 외에 석지영(石志永)·호성(胡星)·소적(蘇笛)을 쓰기도 하였다. 전라북도 부안출신. 기온(基溫)의 차남이다. 부안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향리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그뒤 1930년 상경하여 중앙불교전문강원(中央佛敎專門講院) 박한영(朴漢永)문하에 1년 남짓 불전을 연구하며 회람지 《원선 圓線》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6·25사변 이후 태백신문사 고문을 지내다가 1954년 전주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1955년부터는 전북대학교에서 시론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961년에 김제고등학교, 1963년부터 1972년 정년퇴직 때까지는 전주상업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1967년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라북도지부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작활동은 1924년 4월 19일자 《조선일보》에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기우는 해〉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뒤 1931년 《시문학》지에 시 〈선물〉을 발표하여 그 잡지의 동인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로부터 〈임께서 부르시면〉·〈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등 초기 대표작들이 발표되었다. 이 작품들을 모아 1939년에 첫시집 《촛불》에 이어 1947년에는 제2시집 《슬픈 목가(牧歌)》를 간행하였다 (부안읍내 입구에 생가가 있고 변산해수욕장 가는길 공원에 시비가 있음)
이매창 매창은 1573년(선조 6) 당시 부안 현리였던 이탕종의 서녀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가 계유년이어서 계생(癸生, 桂生) 또는 계랑(癸 )이라 하였으며, 호는 매창(梅窓)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웠다고 하며, 시와 거문고에 뛰어나 김제군수를 지낸 이귀(李貴) 같은 고관이라든가, 유희경(劉希慶), 허균(許筠) 같은 시인들이 그를 제대로 알아주고 깊이 사귀었다. 그의 대표적인 시는 「梨花雨」로, 매창이 유희경과 이별하고 지은 이 시조는 「가곡원류」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1610년(광해 2) 여름 38세의 나이로 죽자 거문고와 함께 부안의 봉덕리(매창이 뜸)에 묻혔다. 평생 수 백편의 시를 남겼으나 거의 흩어져 없어지고, 1668년에 부안의 아전들이 외어 전하던 58편을 얻어 개암사에서 목판으로 「매창집」을 엮어냈다. 梨花雨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도다 (부안 읍내 매창공원에 시비와 묘가 있음)
http://www.gochang.go.kr/letsgo02/index.jsp(고창군청 홈페이지 고창으로오세요)
인촌 김성수는 1891년 (고종 28년) 10월 21일 부안면 인촌리에서 김인후의 13대 손으로 태어나 제2대 부통령을 역임 하였으며 일제 36년의 피압박 민족의 설움속에서 거대한 민족자본을 형성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한 언론과 육영사업을 통해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는 등 평생을 국가와 민족에 바친 민족의 대 지도자이다. 13세 되던 해에 당시 호남의 명문이었던 고정주의 장녀 광석과 결혼하여 1908년 (당시 18세) 가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담양군 창평의 창흥의숙과 변산 내소사의 청련암, 군산의 금호학교 등을 전전하면서 신문학을 공부하였다. 1905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간 인촌은 처음에 정치영어학교에 입학하였다가 2년 뒤 망국의 한을 씹어야했던 1910년 와세다대학 경영학부에 입학하였으며 졸업하고 귀국한 해는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난 1914년 그의 나이 24세때 운영난에 빠져있던 중앙학교를 인수하였다. 10년간이나 언론이 없는 암흑 세계에서 살았던 민중이 1920년 4월 1일 창간호를 내놓았던 『동아일보』 육성과 발전에 모든 힘을 기울이던 인촌을 한걸음 더 나아가 민족단체의 조직에도 앞장섰으며 1948년 5월 15일 정부가 수립되면서 유엔 한국위원단을 비롯한 내외 관측통은 인촌을 국무총리로 예견하였으나 이승만 박사의 정적의 자리로 물러서게 되었다. 어질고 원만한 인격, 겸허와 투철한 의지의 지성인, 근대사의 탁월한 경세가로서 민족의 가슴에 빛날 것이다.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고려대학교),삼양사,동아일보,경성방직........ ) http://bluecabin.com.ne.kr/split99/서정주시인과함께 친일파 99인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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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
다음에 전남 전북을 여행할 때는 꼭 미인님께 물어 볼게요. 도무지 고민한 여지가 없네요. 사실 여행할 때 그 지역에 미숙하면 동선도 길어지고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는데 미인님께 부탁하면 정말 걱정이 없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