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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버스는 심하게 요동친다.
급기야 지그재그 버스도 몸도 흔들리고 팔에는 힘이 간다.
급하게 깬 잠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선후배의 뜨거운 배웅을 받으며
24일 토요일 새벽 2시 30분 목포발 인천공항간 금호고속 안..
기대 반 설레임 반 멀리 떠나는 건 언제나 똑같다
워드워스..“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이런 때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서해안고속도로 어느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 중 버스기사님의 조각 잠이
긴 잠이 되고 말았나보다 흔들거리는 버스 때문에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다
긴 잠을 빠른 속도로 대신하려는지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우리 버스를 추월해가는 차는 없고 모든 차들이 추월되고 있다.
이번산행의 예고된 고행 길의 서곡인줄 그때는 알 수가 없었다.
기사님 노고(?)에 인천공항에 예정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하는 횡재(?)를 하게 됐다.
한 대장님이 가져온 일부 개인장비를 대원들에게 배분하고 허둥대는 사이
숨고를 겨를도 없이 홍콩 착 대한항공에 탑승했다.
홍콩을 경유하고 카투만두에 1박. 아침 일찍 국내선 경비행기로 포카라 이동 중
히말라야 산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벌써부터 탄성에 연속이다
“포카라“ 음료수 이름이 연상되는 지명이지만 음료수만큼 깨끗한 공기와 알맞은 습도
살기 쾌적한 네팔의 두 번째 큰 도시다..
공항에서 대기 중인 승합차 두 대로 나누어 타고 오늘 숙박 장소는 티플량을 향해 출발.
쿠사마에서 점심 후 베니에 도착 트레킹이 시작됐다.
오늘 첫날은 3시간 트레킹으로 몸을 풀었지만 내일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 된다.
라마스테 저스트 하우스에서 저녁을 구수한 된장찌개로 식사 후 전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절전 아니 단전 된 것 같다. 네팔에서의 생활이 실감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밖은 단전 되 어두운데 야영장 텐트 속에서 계곡 물소리에 적막감마저 씻겨가고
티플양에서 밤은 깊어만 간다..
다음날. 장 닭의 기상 소리에 날은 밝고 아침식사 후 허영만 화백의 컨디션 난조로
하산을 결정했다. 딸 허보리를(24세) 그냥 두고 단신하산 한다..
두 딸을 가진 아버지로써 허 화백님의 결정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지만 지금 생각은
허 화백님의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 잠시 후 또 사고가 터졌다 일본에서 온
사카이타베. 노리코부부가 음식에 문제가 있었는지 계속된 복통과 설사에
얼굴화색이 말이 아니다.
김덕환 약사님의 약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출발하는 발걸음이 무겁게만 보인다.
트레킹 선두 그룹은 간데없고 후미엔 사카이타베 부부와 여자대원들만 자리를 같이 한다
27일 아침.
산양의 울음소리에 레테콜라 아침의 밝았다.
콜라는 여기말로는 강인데 롯지(산장)가 강 옆에 자리했다.
강 옆 길목에 자리한 이유 때문에 지나가는 산양 때문에 혼잡스런 롯지(산장) 였다.
아침식사후 역시나 포기자가 또 나왔다.
사카이타베 부부가 더 이상의 트레킹은 무리라며 말 타고 하산하겠노라고 두 손을 들었다.
이번 원정대 대원은 한대장과 카트만두에서 합류한 캐나다교포 이남기씨와
석자연 스님포함 25명, 가이드 1,. 셀파2명, 쿡2명, 키친보이 5명. 포터 45명.
총 80명에 달하는 대식구다.
많은 인원이 움직이려니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목적은 하나. 안나푸르나 크린 마운틴
힘들고 어렵지만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2003 년도 에베레스트(8848m) 베이스 청소를 시작으로 k2(8611m) 마나슬루(8163m)
다이올리기리(8167m) 베이스 청소와 이번 안나푸르나(8091m) 까지 5번째 청소 등반이다.
어느 산악인보다 한대장이 크게 보인다.
사실 안나푸르나 청소하러 산에 간다고 하니
저의 내자 집안청소도 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산 청소냐며 핀잔을 줬는데 산을 사랑하는
산악인으로서 무언가를 해야 되겠다는 떳떳한 마음을 한대장과 함께 한 건데 이해 못하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게 안나푸르나 청소하는 것보다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14좌 청소가 끝이 아니라 이것을 시작으로 세상의 모든 산과 자연을 원래대로 보존하고
유지되는 그날까지 했으면 하는 바램 이다.
월출산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얘기 하자면
나무와 돌 모든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격과 존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데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사람의 기준으로 본다는 거다
다시 돌아와 일본인 부부와 작별인사를 하고 다울라기리와 투쿠체를 뒤로하고
목동 한두 명을 제외한 지나는 사람 구경하기 힘든 베르카르카에 도착.
3000m의 첫날밤을 보낸다.
포터들의 모닥불 사이로 몇 몇 대원과 프랑스인 샤모니 출신 산악가이드 얀 들르보(26)
대원과 삼삼오오 모여 샹송, 가요 네팔송. 돌아가며 3개국 노래 합창이 시작 된다.
주위엔 산양들이 방청한다. 대금소 기능보유자인 석자연 스님의 대금소
연주는 베르카르카의 계곡에서 많은걸 생각하게 한다.
쏟아질 것만 같은 은하수 옆으로 인공위성이 지나가고 별똥별이 더 빠르게 사라진다.
29일 새벽두시부터 가는 잠을 애써 붙들며 날이 밝기가 기다려진다.
계속된 새벽과의 전쟁 너무 일찍 잠을 청하는 이유가 고소 때문인가 보다.
5시30분 침낭의 유혹을 미련 없이 걷어차고. 야무진 아침식사와 행동식을 배급받고
닐기리베이스(4200) 향해 고도를 높였다 4000고지를 오를 무렵부터 속이 말이 아니다.
지끈 거리는 머리는 참을 수 있지만 속까지 메스껍고 울렁이는 뱃속을 참기 힘들다.
힘들수록 집 생각이 난다.
임신 몇 개월 동안 헛구역질로 고생한 마누라의 고행을 이해할 만도한다.
행동식인 점심은 속이 안 좋아 생략하고 먹는 걸 구경 만 하려니 이 또한 곤욕이다.
닐기리봉과 안나푸르나가 한눈에 들어와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진풍경을 연출하지만
내겐 별 관심이 없다.
대열에서 이탈하고 천천히 오르고 싶지만 홀로 가는 원정대가 아니기에
욕심을 낼 수 가 없었다. 닐기리 베이스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가물거린다.
텐트 속에 쓰러지듯 드러눕고 말았다.
김덕환 선배님이 가져오신 고소 처방약을 받아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 입에 넣고
고맙단 말도 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온양시청에 근무하시는 양형이 특별히 죽을 끓여왔다.
여느 때 같으면 얼른 먹고 죽 그릇 바닥까지 긁는 소리가 날 법 한데도
오늘은 마음으로 먹고 있었다.
한대장 성화에 몇 술을 들지만 이내 그 숟가락도 금방 놓아진다.
먹보가 먹는 걸 마다하다니 힘이 들기는 든 가보다.
다음날 새벽 일어나보니 약의 힘을 빌어서인지 고소증세가 보이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가볍다. 이제야 지난 점심과 저녁을 건너뛰었다는 생각이 났다.
이번에는 고소가 아니다. 허기진 뱃속과 신경전이다.
배는 들어가 보기 좋은데 속에서는 어서 밥 달라고 난리다.
아침식사가 시작되자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끼니를 굶었더니 온통 먹는 생각뿐이다.
트레킹 갔다 오면 5Kg 감량한다며 주위사람들에게 큰 소리치고 왔는데 이렇게
먹는 걸 밝혀서야.... 아무튼 감량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지...
닐기리 베이스를 출발하여 안나푸르나 베이스 가까이 이동하는데
오르락 내리락 연속이더니 주위 배경이 환상적이다.
뒤에는 다울라기리가 배웅을 하고 앞에서는 안나푸르나가 영접하고 있으니
다리는 힘들어 내리막에 관절이 저리지만 앞을 보면 탄성을 지른다.
이것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던가? 베이스에 가기도 전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트리쵸픽(7218M)을 옆으로 하고 숨을 몰아쉬며 베이스에 가까워질수록 자꾸 권태로워진다.
연일 계속되는 너덜지대로 트레킹을 짜증나게 한다.
말이 트레킹이지 원정대 코스를 답사하고 있으니 지루할 만도 하다.
따뜻한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누워 시원한 음료수를 빨대로 빨아 마시는
상상을 여러 차례 한다.
그러는 사이 바람까지 세차게 불기 시작한다.
모자를 눌러쓰고 전진하지만 마음은 청소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하산하고 싶다.
이럴 땐 고소는 왜 안 오는지 모르겠다.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해도 사나흘은 걸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왕 왔으니 끝까지 가야 하지 않겠는가?
가다 보면 나오겠지 산소부족으로 짧게 거친 숨을 내뱉는다.
얼마쯤 왔을까 파란 하늘같은 큰 호수가 나오더니 하얀 산이 더 가까이 보인다.
만년설이 녹아 호수를 만들고 하늘색 물감을 흘려놓은 듯 새파랗다.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는 충동질이 내 마음속을 헤집는다.
얼마나 춥고 깊을까? 베이스에 청소하러 온 대원이 별 생각을 다한다.
여세를 몰아 언덕을 넘자 셀파가 따뜻한 물을 가져오며 수고했다며 건넨다.
따뜻한 한 잔의 물보다 이제 다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더 행복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니 여기 저기서 천둥소리가 난다.
마른하늘에 웬 천둥소린가 했더니 눈사태다 들려오는 소리는 천지를 뒤흔드는 듯하다.
그 위세에 기가 꺽 일만도 하다.
베이스에 원정중인 슬로베니아 육군원정대가 있다.
40일째 머무르는 중인데 캠프 2까지 건설했다고 한다.
부럽기도 하고 눈사태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걱정도 된다.
베이스 주변 청소를 시작하는데 얼마나 많은 원정대가 다녀갔는지
쓰레기가 군데군데 묻혀있고 소각장도 여러 군데가 보였다.
흙으로 매립해놓았지만 막대기로 위만 조금 파면 실체가 그대로 노출된다.
내가 담당한 쓰레기장은 공교롭게도 한국원정대가 사용하던 것이었는지
한국산 라이터와 소주팩, 그리고 사용하고 남은 하켄 몇 개도 나왔다.
쓰레기와의 전쟁은 5시간에 걸친 사투였다.
200kg에 달하는 전리품을 카고 백에 분류해 담았다.
당분간은 깨끗하겠지만 언제까지 이 깨끗함이 지속될까.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산악인이 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만큼 쓰레기를
되가져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늦은 시간까지 청소하느라 늦게 먹은 저녁밥이지만 모처럼 보람차게 먹고 쓰레기 줍던
무용담에 담소를 나누며 텐트속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밤은 깊어만 갔다.
10월 1일 새벽 다섯 시 기상 헤드램프를 켜고 오늘부터 철수다.
어제 수거한 쓰레기와 함께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목적을 달성하고 하산하는 게 마음가짐부터 가볍다.
마음은 닐기리가 아니라 레테콜라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닐기리 베이스, 레테콜라에서 각각 1박을 한 후 좀섬(2700M)까지 하산했다.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이륙하지를 못해 좀섬에서 하루 동안 발이 묶였다.
매일 강행군하다 하루를 쉬니 온몸이 좀이 쑤신다.
역시 늘 하던대로 해야하는가보다.
다음날 포카라 행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3명의 대원이 끝까지 동행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도 부상자 없이 무사히
클린마운틴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카트만두에서 15명 내외의 네팔 기자들이 한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에 쓰레기를 놓고 온 게 후회가 되었지만 사진과 촬영한 필름이
있어 네팔 기자들은 우리들의 성과에 대해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카트만두에서 1박 후 방콕을 경유해 8일 아침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15일간은 나로서는 긴 시간이었다.
2년 동안 기다린 시간의 보상치곤 훌륭했다.
우리에 자연은 둥근달도 둥굴고 묘도 둥글고 초가지붕이 그렇고 산도 둥글다.
네팔의 그것은 거칠고 험한 너덜지대와 깊은 계곡 하늘을 찌르는 높은 산
어떤 장단점을 가름하긴 힘들지만 중요한 건 둘다
그 모습 그대로 보존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인생은 70년 이지만 자연은 만년 철학입니다.
안나푸르나 크린 마운틴 원정대 총무 손원오 올림
첫댓글 매형 멋쪄브러!!
그속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