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뒤편 작고 아담한 스파게티 집 ‘뽀모도로’ 앞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 이유는 바로 ‘스
파게티의 달인’ 박충준 주방장(47)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다. 그가 달인이라 불리우기까지 30여년 요
리인생을 더듬어 봤다.
60년대 후반 누구나 배고팠던 시절, 경남 삼천포에서 상경한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먹을 것을 주고,
잠을 재워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가 찾은 곳은 조그마한 분식점. 그곳에서 일하면서 요리사의꿈
을 키웠다.
“그땐 누구나 어렵고 힘들었죠. 배가 고파 분식점에서 배달을 했어요. 그럼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
거든요. 배달하는 틈틈이 어깨너머로 요리하는 것을 보며 요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광화문 한편의 한 스파게티 집 주방에서 있다. 아담한 그의 스파게티 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평범하다. 하지만 겉모습이 전부일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곳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박충준 주방장은 신라호텔에서 16년간근무하며, 포드 미 전 대통령을 비
롯한 국내외 귀빈들을 대접한 실력파다. 요리사라면 한번쯤 꿈꾸는 특급 호텔 주방장이 되기까지 그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호텔 주방에 막 들어간 신출내기 시절에는 요리의 기본인 칼질과 프라이팬 다루기
에 능숙해 지기 위해 밤새도록 연습했다. 모두 퇴근한 후에 혼자 주방에 남아 무려 100kg에 달하는 감
자의 껍질을 벗겨놓기도 하고, 양배추를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채 써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또 프라이
팬에 모래를 담아 묵직해진 팬을돌리고 허공에 띄우는 연습을 하느라 다음날이면 팔에서 파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칼에 손가락이 베어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것은 상처 축에 끼지도 못했다. 아직까지 그의
손에 남아있는 상처들이 바로 그고된 수련의 흔적이다. 체계적으로 요리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더많
은 훈련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올라간 자리, 명예와요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두고 굳이 호텔을 나온 이유는무엇일까?
“아무래도 아직까지 호텔은 그 문턱이 높잖아요. 찾아오는 사람들도한정되어 있고… 그들에게만 제 요
리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제 요리를 맛보게 해주고 싶거든
요. 그리고 그들에게서 ‘최고의 요리’라는 칭찬도 듣고 싶고요.”
▶손맛과 감각은 타고나야 한다 ◀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스파게티의 달인이다. 세상에 알려진 파스타는300여 가지. 그는 그 중에서 80여
가지의 파스타를 만들어 낸다. 이탈리아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요리사 중에서 이만큼 많은 종류를 만들
어 내는 요리사는 흔치 않다. 이탈리아 요리는 종류가 많은 만큼만드는 과정도 까다롭다.
“이탈리아 요리는 오랜 경험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해요. 특히 후레쉬 파스타는 면이 잘 끊어지고, 시간
이 조금만 지나면 풀어져요. 쫄깃쫄깃하고 찰진 파스타를 만들어 내기까지 많은시행착오를 겪었죠.게
다가 파스타에 얹는 소스도 중요해요. 최고 요리사라면 늘 한결같은 맛을 낼 수 있어야 하죠. 단순히 요
리법만 알아서는 제대로 맛을낼 수 없어요. 끊임없는 연습도 필요하지만, 요리사로서의 감각이나손맛
은 타고나야 하거든요.”
그는 작년 8월에 책을 출간했다. 흔히 요리사들이 내는 요리법을 설명한 책이 아니다. 그동안 요리를
하면서 느꼈던 점들이나 에피소드등을 담은 에세이집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은행나무 / 1만3,000원)
이다. 그는 요리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탈리아 요리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에게 그만의 요리 노하우
와 스파게티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자 글쓰기에 도전했다.
“그냥 심심한 요리책은 다른 요리사들의 책과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책 속
에 요리할 때 꼭 알아야 하는 상식들과 함께, 일하는 틈틈이 적어 놓았던 메모들을 정리해 지금까지의
제 요리인생을 자유롭게 담았습니다. 책에 담겨진 저의 이야기가 이제 막 요리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
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Profile】
▷신라호텔 16년간 근무
▷98년 이탈리안 파스타 전문점 ‘뽀모도로’ 오픈
▷2002년 8월 요리 에세이집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