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英雄)으로 부상(浮上)되는 것은 오직 경신(庚申)은 독야청청(獨也靑靑)하다는 증
좌(證左)이다. 그 독립(獨立)된 의지(意志)당연(當然)한 것이다. 그러나 무인(戊寅)하
는 생시(生時)은 충극( 剋)과 실지(失地)로서 편인(偏印), 편재(偏財)은 상호(相互)
극제(克制)하였으니 그 처자(妻子)는 불행(不幸)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한다.
그리고 끝으로 마주 막 운명(殞命)을 하극상(下剋上), 즉 부하(部下)로부터 당(當)하
여 살해(殺害)된 것도 생시(生時)의 연유(緣由)이다. 삼형(三刑)과 충극( 剋)이 상호
관계(相互關係)를 이룬 것은 사경(死境)이 몇 차례(次例) 아슬아슬하게 넘겨지고는 결
국은 총기(銃器)로서 살해(殺害) 되었으니 형벌(刑罰)치고는 가혹(苛酷)한 것을 거듭
느껴진다.
운행(運行)을 더듬어 보자.
본 사주(四柱)는 용신(用神)이 정사(丁巳)의 화(火)이다. 그러므로 관격(官格)인 것이
다.
31세 전은 경술(庚戌), 기유(己酉), 무신(戊申)으로 관을 ??하는 운세인고로 초년(初
年)다난(多難)이였다. 소학교(小學校) 교사(敎師)로서 군(軍)으로 파급(波及) 시킨 것
은 충극( 剋)운에서이다.
일군(日軍)으로서 ?급(?級)에 머물러 해방(解放)이 을해(乙亥)년 당 29세시(歲時)에
되어군복(軍服)을 버섰든 것도 30세 전이였다. 그런즉 31세 전은 거의 끝나는 좌절
(挫折)운이였다.
본처(本妻)생별(生別)도 중절(中折)되는 운세에서 불가피(不可避)한 사례(事例)였다.
그러나 32세 정미(丁未)운으로부터 다시 무관(武官)이 등용(登用)된 것이다. 국군(國
軍)창립(創立)이래(以來) 활약(活躍)케 되었다.
그러나 기축(己丑)년 33세 같은 해는 대고난경(大苦難境)도 있었을니라. 토(土)토(土)
로서 화세(火勢)를 태설(太洩)하기 때문이다.
경인(庚寅) 신묘(辛卯)의 동방(東方)목향(木向)은 목생화(木生火)하는 절묘(絶妙)를
주어 소생(蘇生)되였으니 이 것이 사주(四柱)학상 묘미(妙味)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