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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팔상전-
가장 추운 날 가장 따스한 모습으로
큰스님은 은빛 털모자를 쓰고 내려오셨는데 “멋있으세요.” 말씀드렸더니 지팡이를 살짝 튕기며 싱긋 웃으셨다. 오늘은 포살법회가 있는 날이라서 스님들이 많이 빠지실 거라고 했다.
갑작스런 폭설로 눈에 갇혀 못오시는 스님들도 계셨다.
문수선원 곳곳에 눈발자국 같은 스님들의 빈자리가 눈에 띄였다. 은은한 유자차 향기가 겨울다왔다.
법련사에서 열렸던 <불교 서울 전문강당>을 다 졸업하시고 이제 막 화엄산림에 동참하신 비구니 스님이 여러 분 오셨다. 태고종 스님들이셨는데 ‘영산회’스님들이라고 소개하셨다.
“영산회 하면 어산?”
“예 어산이고요.”
모두들 활발하신 스님들이었다. 큰스님이 짝사랑이었다고도 고백하셨다.
“법화경 공부하면서 사랑이 싹텄어? 왜 이제사 왔어 그래?”
하고 큰스님도 기뻐하셨다.
“고마워요 아무튼 아직 시작이야. 십년 간 공부할거니까”하시고 “스님들이 영산작법을 하면 화장장엄이겠다”하셨다.
스님들 사는 절을 다 순례하고 싶다고도 하셨다. 오랜만에 ‘합동사진’도 찍으셨다.
“큰스님 인터넷에서 뵐 때보다 멋있으셔요.”
카메라를 보면서 짝사랑 스님이 말씀하셨다.
“젊을 때는 말도 못했지 뭐”
큰스님도 카메라를 보고 말씀하셨다. 모두의 웃음이 ‘빵-’ 터졌다.
몇 년 전인가 염화실에서 전법운동 불길이 일었을 때다. 염화실 명함을 많이 찍어서 여러 분들이 나누고 각자 또 주변 분들에게 전하는 전법운동을 했었다.
그 때 서울 노원구의 백화점에서 염화실 명함을 100장인가 전해주려고 젊은 보살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분은 고모님이 비구니 스님이어서 미국에서 젊었을 때의 큰스님을 친견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젊으셨을 때 스님은 키가 아주 크시고 눈빛이 호랑이 같으셨어요.” 그런데 어린 사람의 질문에도 너무나 진지하게 섬세하게 답해주셨고 크리슈나무르티의 저서들을 읽어보라고 추천하셨다고 했다.
그 때 처음보는 사람끼리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면서 염화실에 대해서 열을 올리며 이야기 했었다. 언제든 공부하러 달려갈 수 있는 염화실이 있어 얼마나 좋은가도 이야기 했고, 소심한 성격이어서 염화실이 없었다면 불교공부는 시작도 못했을 거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2011년 1월1일 염화실에는 큰스님의 신년인사가 동영상으로 올랐다.
큰스님은 화엄전에서 가사장삼을 수하시고 합장하시고 새해 인사를 하셨다. 오로지 염화실 불자들을 위한 새해인사였다.
‘오다 오다 오다 / 서럽다 우리네여 /공덕 닦으러 오다’라는 향가를 소개해주셨다.
인생은 ‘나’만 서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네’가 다 서럽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하러 왔는가 하면 공덕을 닦으러 왔다고 하셨다. 공덕을 닦고, 특히 남을 위한 공덕을 닦을 때 날마다 우리의 인생이 흥미진진한 새날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새해에도 건강하게 활기차게 공덕 많이 닦읍시다. 공덕 잘 닦읍시다.”
문수선원에서도 삼배를 받으시며 새해 첫 덕담을 그렇게 해주셨다.
그 말씀이 간곡했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 4 (제 11강, 11년 1월 3일)
唐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淸凉國師) 撰
* 事事無碍의 相(十玄門)
<3> 미세하게 서로 수용하면서 제자리에 있음[微細相容安立門]
炳然齊現은 猶彼芥甁이요
환하게 다 나타남은 마치 겨자씨를 담은 병과 같고
<4> 동시에 구족하여 서로 응함[同時具足相應門]
具足同時는 方之海滴이로다
동시에 구족한 것은 바닷물의 물방울과 같도다.
<5> 하나와 많은 것이 서로 수용하나 같지 않음[一多相容不同門]
一多無礙는 等虛室之千燈이요
하나와 많음이 걸림이 없는 것은 텅 빈 방에 천개의 등불을 밝힘과 같고
<6> 비밀히 숨고 드러남이 함께 성립됨[秘密隱顯俱成門]
隱顯俱成은 似秋空之片月이로다
숨고 나타남이 함께 성립됨은 가을 하늘의 반달과 같도다
<7> 인드라의 그물과 같은 경계[因陀羅網境界門]
重重交映은 若帝網之垂珠요
거듭 거듭 서로 비춤은 제석천 그물에 구슬을 드리움과 같고
<8> 十世로 나누어진 법이 다르게 이루어짐[十世隔法異成門]
念念圓融은 類夕夢之經世로다
순간순간 원융함은 저녁 꿈에 세상이 지나감과 같도다
<9> 사에 의지하여 법을 드러내어 이해를 냄[託事顯法生解門]
法門重疊은 若雲起長空이요
법문이 중첩함은 먼 하늘에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10> 여러 장의 순수함과 뒤섞임으로 덕을 갖춤[諸藏純雜具德門]
萬行芬披는 比華開錦上이로다
만행이 아름답게 펼쳐짐은 비단 위에 꽃이 핌과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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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강의는 11번째인데 벌써 2011년 새해가 되었다.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시고 화엄경 공부하는 이 정진에 더욱 열심히 해 주시기 바란다.
여러 스님들의 공부하고자 하는 그 성의에 저도 힘이 나서 화엄경에 관계되는 여러 생각이나 자료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하면 여러 스님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고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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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는 화엄경 내용을 압축한 서문임과 동시에 불교의 글로써 최고의 명문이다. 불가사의하고 무궁무진한 뜻을 다 드러내서 여러 스님들에게 전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남아 있다.
스스로 반복해서 읽고 쓰고 사유하는 과정에서 간혹 무릎을 치면서 ‘아하 이런 뜻이구나’ 하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오묘한 뜻을 느낄 때 그 어떤 깨달음에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신심나신 스님께서 오늘 왕복서를 첩으로 만들어서 공양 올렸다. 책상 앞에 세워두고 늘 읽으시기 바란다. 또 글자체가 좋으니 이대로 사경을 해도 좋다. 열심히 읽고 쓰셔서 그 깊은 의미를 체득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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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왕복서(往復序) 네 번째 유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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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무애(事事無碍)의 상(相): 왕복서를 10門으로 나누어서 보는데 그 중 제 6門 두 번째 사사무애 상이다. 이 부분은 다시 두 구절씩 열 가지로 나누는데 흔히 십현문(十玄門)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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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 : 십현문의 세 번째 문 이름은 미세상용안립문이다. 미세하게 수용하면서 제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름에 익숙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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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제현(炳然齊現)은 유피개병(猶彼芥甁)이다
: 환하여 다 나타남은 마치 겨자씨를 담은 병과 같다.
그 이름을 나중에 미세상용안립문이라고 했지만, 청량스님은 왕복서에 이렇게 두 구절의 아름다운 문장으로써 표현하였다.
병연(炳然)은 환하다는 뜻이고 제현(齊現)은 나타나 있다는 뜻이다.
투명한 유리병에 아주 작은 겨자씨를 잔뜩 담아 놓았다.
병 안에 들어있으니 겨자씨를 다 수용하면서도 그 하나하나의 겨자씨가 다 눈에 들어온다.
미세한 것을 다 수용하여 그대로 낱낱이 독립해 있으면서도 다 제자리에 있는 것이다.
세상만사 삼라만상 모두가 이렇게 존재한다. 사람이면 사람, 사물이면 사물이 모두가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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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 동시에 구족하여 서로 상응한다.
구족동시(具足同時)는 방지해적(方之海滴)이로다 :동시에 구족한 것은 바닷물의 물방울과 같다.
바닷물의 양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한 방울의 물 속에 그 드넓은 바다가 다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한 방울의 물의 의미만 알면 드넓은 바다를 다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차별된 입장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한없이 차별한다. 사람도 각각이고 만물도 각각이다. 그런데 사람이나 동물이나 광물이나 생물이나 이 우주법계에 존재하는 것은 같은 우주공간에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성질이 똑같다.
하나의 원리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로써 전체를 다 파악할 수가 있다.
예를들어 스님들이라면, 한 스님을 통해 다른 스님들을 다 알 수가 있다. 또 한 집안이라면 집안의 한 사람으로써 그 집안을 다 알 수가 있다.
그것을 좀 더 확대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도 그렇다. 나뭇잎 하나로써 이 우주 법계 모든 것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구족동시(具足同時)는 방지해적(方之海滴)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이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부 동시에 구족해 있다. 비유하자면 그 드넓은 바다에서 한 방울의 물과 같은 것이다.’
그 글의 표현이 참 근사하다.
이러한 이치를 철학적으로 풀면 구차하고 설명이 길다. 또 그 설명은 썩 마음에 와 닿지도 않는다.
그런데 ‘구족동시(具足同時)는 방지해적(方之海滴)이로다’ 하는 여덟 글자 속에는 모든 것들이 다 표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왕복서를 명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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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하나와 많은 것이 서로 수용하나 같지 않다.
일다무애(一多無礙)는 등허실지천등(等虛室之千燈)이요 :
하나와 많음이 걸림이 없는 것은 텅 빈 방에 천개의 등불을 밝힘과 같다.
여기 등불이 많다. 그런데 한 개를 켜도 그 하나의 불빛이 이 하나의 공간에 꽉 찬다. 물론 어둡고 밝고는 다르지만, 등불은 세 개를 켜나 열 개를 켜나 백 개를 켜나 전부 그대로 꽉 찬다. 절대 싸우지 않는다. 열 개를 켠다고 해서 ‘여기는 내 자리다’‘여기는 네 자리다’ 이런 식으로 경계를 가지고 다투지 않는다.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주 공간의 모든 사물들은 전부 무애여서 걸림이 없다. 걸림이 없도록 되어 있다.
사실은 자기 할 일을 자기가 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의 궁극적 이치는 사사무애에 있다고 하는 말을 자주 한다. 특히 청량스님이나 과거 화엄학자들은 보살행이 아니라 사사무애에 초점을 맞추어서 화엄경을 이야기한다.
보살행도 결국은 사사무애를 이해했을 때 진정한 보살행이 나온다. 사사무애의 경지에까지 이르러 동체대비의 입장에까지 갔을 때 진짜 보살행인 것이다.
모든 존재는 ‘일다무애(一多無礙) 등허실지천등(等虛室之千燈)’이다. 천개의 등을 빈 방에 켰을 때 서로서로 하등의 경계를 다투거나 내 자리 네 자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데 공연히 우리는 잘못된 생각으로 자기의 어떤 틀과 자기의 잣대를 만들어 옳다, 그르다, 내 것이다 네 것이다를 다투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
화엄의 안목은 이 세상 그 어떤 종교 어떤 철학의 안목보다 우수하고 뛰어나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것을 우리가 하나하나 이해해 나갈 때 상상할 수 없이 깊은 의미와 맛을 느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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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 : 비밀히 숨고 드러남이 함께 성립된다. 이 표현도 근사하다. 사람과 모든 천지 만물이 다 이렇게 존재한다.
은현구성(隱顯俱成)은 사추공지편월(似秋空之片月)이로다
: 숨고 나타남이 함께 성립됨은 가을 하늘의 반달과 같도다.
반달이라고 해서 어딘가 기울어진 달은 아니다. 다만 가려졌을 뿐이지 달 자체는 전혀 손상이 없다.
요즘의 우리들은 일식이나 월식이 있어도 잠깐 그 위도가 달라졌을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여러분 역시 지금 눈앞에 드러난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숨은 것이 더 많다. 꽃도 마찬가지이고 모든 존재가 다 그렇다.
예를 들어서 장미꽃 씨앗이 있다고 하자. 언뜻 보기에 씨앗은 그저 씨앗일 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씨앗 속에는 푸른 하늘도 있고, 새싹도 있고, 꽃도 있다. 푸른 색, 붉은 색 온갖 색깔이 씨앗 속에 다 있다.
우리 불교에서는 연꽃을 좋아한다. 만고의 아름다운 연꽃이지만, 연꽃이 들어있는 연뿌리는 흙투성이이고 아무렇게나 생기고 싶은 대로 막 생겼다.
그러나 연근 속에 연꽃이 있는 것이다.
연근을 놓고 보았을 때, 연근 속의 연꽃은 은(隱)이고 연근은 현(現)이다. 모든 존재가 그러하다. 다 드러난 것 같으면서도 드러나 있지 않다.
이러한 이치를 가지고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의 입장에서는 ‘만물이 그대로 부처다’라고 한다. 나는 한걸음 양보해서 법화경의 입장으로 ‘사람이 부처다’라고 말한다.
만물이 부처인 것은 우리가 얼른 수용하기도 어렵고 실천하기도 어렵다. 우리들의 그릇에 얼른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사람이 부처다’ 하는 것은 이해하기 쉽다. 실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모두가 최상의 가르침이긴 하지만 화엄경과 법화경과의 또 다른 차원이 바로 그런 점이다.
‘은현구성(隱顯俱成)은 사추공지편월(似秋空之片月)이로다’
그 하나하나 글자 놓인 것을 보면 얼마나 시적인가.
참 잘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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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 이 역시 우주의 삼라만상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고 모든 존재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중교영(重重交映)은 약제망지수주(若帝網之垂珠)요: 거듭 거듭 서로 비춤은 제석천 그물에 구슬을 드리움과 같다.
앞서 등불 이야기도 있었지만, 모든 존재는 서로 서로 뒤섞여서 비추고 있다. 서로 그렇게 스며들어 있다. 손과 손가락과 같이 즉(卽)해 있는 입장이다.
나를 두고 보면,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은 손의 손가락과 같은 존재이다. 다른 존재로 볼 수도 있지만, 같은 존재이다. 또 엄밀히 말한다면 약간 다른 존재이기도 하다.
인다라망은 제석천의 궁전을 덮고 있는 그물이다. 제망지수주라고 했는데 그 그물은 아주 뛰어난 보석으로 짜여져 있다. 그 보석이 한 두 개가 아니라 여러 수 억만 개의 다이아몬드로 짜여져 있어서 서로서로 그 빛이 반사된다.
그 비춰주고 비춰 받는 것이 중중교영이다.
‘서로 사귀고 얽히면서 비추는 것이 제석천 그물에 드리운 구슬과 같다’ 청량스님의 깨달음과 뛰어난 글 솜씨가 이런 데서 한껏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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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 십세(十世)로 나누어진 법이 다르게 이루어졌다.
염념원융(念念圓融)은 유석몽지경세(類夕夢之經世)로다 :
법성게에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도 과거 현재 미래 3세가 있고, 현재에도 3세가 있으며, 미래에도 3세가 있다. 이것을 다 합해 9세이고, 그 전체를 관통하는 현전일념(現前一念)을 더해서 10세가 된다. 순간순간이 원융하다. 순간순간 속에 무한한 과거가 포함되어 있고 무한한 미래도 그 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
그 순간순간 원융함은 저녁 꿈에 세상이 지나감과 같다. 유석몽지경세(類夕夢之經世)이다
나는 여기서 가능하면 직역으로 번역을 하였는데, 5초 10초 동안 잠깐 꿈을 꾸어도 거의 일생을 꿈꿀 수 있고, 몇 시간 내지 하루를 꿈 꿀 수도 있다.
이광수의 『꿈』이라고 하는 소설에는 주인공인 스님이 예불하면서 저녁 종을 한 번 땅 치는데 그 종소리가 미처 다 끝나기 전에 천신만고를 겪으며 일생을 사는 꿈을 꾼다. 꿈을 다 꾸고 깨어났는데도 종소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유석몽지경세(類夕夢之經世)라는 것이 그렇다.
설사 꿈 이야기를 이끌어오지 않더라도 한 순간 속에 영원이 있다. 한 순간을 빼면 영원도 없고, 과거도 없으며 미래도 없다.
이러한 이치를 청량스님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염념원융은 유석몽지경세다’라는 간단한 말 속에 이 이치를 잘 표현했다. 이러한 것이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100번을 쓰면서 읊조려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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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 사에 의지하여 법을 드러내어 이해를 낸다.
어떤 현상적인 데에 의지해서 이치를 드러낸다.
법문중첩(法門重疊)은 약운기장공(若雲起長空)이요: 법문이 중첩한 것은 마치 저 드넓은 하늘, 멀고 먼 하늘에 구름이 무엿무엿 일어나는 것과 같다.
구름은 비슷한 것 같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끊임없이 일어난다. 다른 모습 같으면서도 또 같은 구름이다.
화엄경 법문은 중첩이다.
우리가 그동안 읽어본 게송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만 하더라도 대단히 많고 앞으로 나올 것도 아주 많다.
세주묘엄품을 지금 열한 달째 보고 있는데 열두 달은 해야 겨우 끝날 정도이다. 한 보살이 나오면 꼭 열 보살이 나오고, 한 게송이 나오면 꼭 열 게송이 나온다.
중중 중중 하고 첩첩 첩첩하다.
이렇게 법문이 첩첩하게 되어 있는 것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다. 화엄경의 안목으로 본 세상이 전부 이렇게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마치 여름날 저 드넓은 창공에 뭉게뭉게 구름이 일어나는 모습처럼 비슷하면서도 다른 내용이고 다른 내용이면서 도 비슷한 내용이다.
청량스님은 이 화엄경을 그렇게 보았다.
그야말로 참 표현을 잘 했고, 근사하다.
이런 것은 설명으로 해 봐야 백 분의 일, 천 분의 일도 설명이 안 된다.
저 창공에 여름날 구름이 무엿무엿 피어오르는 그 모습을 뭐라고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보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설명이 안 되니까 그저 글 뜻을 정확하게 알아서 많이 읽고 많이 써서 느끼는 것에 화엄경의 맛이 있다고 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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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 : 여러 장의 순수함과 뒤섞임으로 덕을 갖춤.
장(藏)이라는 말이 화엄경 본문에도 많이 나오는데 ‘새겨져 있다’ ‘그 속에 스며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탁자나 법상이나 주장자, 심지어 죽비 하나에도 조각을 하는데 연꽃도 조각할 수가 있고, 사자 모습도 조각할 수가 있고, 매난국죽을 조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조각되어 있는 것을 장이라고 한다.
앞으로 부처님이 앉으신 사자좌 이야기가 나올 텐데, 사자좌에는 무엇무엇이 어떻게 조각되어 있다는 것이 나오고 그것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라는 의미로도 설명이 된다. 난초를 조각했다고 난초는 아니지만, 거기에는 난초 그림이 갈무리[藏]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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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분피(萬行芬披)는 비화개금상(比華開錦上)이로다 :육도만행을 만행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불교에서 육바라밀을 이야기한다면, 화엄불교에서는 십바라밀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십바라밀이 십도만행이다. 십도 만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것은 비단 위에 꽃을 폄과 같다.
우리가 흔히 금상첨화라는 표현을 하는데 여기서는 화개금상(華開錦上)이라고 표현했다.
본래 우리의 본성은 완전무결한 비단이다. 그 위에 꽃을 새겼든 안 새겼든 상관없이 비단은 비단으로서의 그 값을 다 한다. 완전무결이다.
그런데 그 자체로서 완전무결한 비단에 또 꽃을 새겼다. 이것을 잘 이해해야 된다.
우리들 사람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성은 아주 훌륭하다. 그대로 부처님이고 그대로 보살이다.
그런데 거기에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과 아울러 방편 서원[願] 힘[力] 지혜를 더해 십바라밀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수행해간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의 모습은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수행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본래 완전무결한 훌륭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다 좋은 일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여법하게 실천에 옮기고, 공덕을 닦는다면 그 사람의 모습이 금상첨화인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화엄(華嚴)이다. 꽃으로 수를 놓은 것이며 장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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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우리 존재는 완전무결하고 아주 훌륭한 존재인데 거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십도만행을 닦아간다면 얼마나 근사하겠는가.
일반신도에게는 스님 하면 일단 100점을 따고 들어간다. 스님이 참선이나 기도, 경을 공부한다든지 충실한 수행정진을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게 생활을 할 때 일반인이 그렇게 하는 것보다 훨씬 빛이 난다.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십도만행을 아름답게 펼침은 비단위에 꽃이 핌과 같다’ 참 근사한 표현이다. 청량스님의 글이 이렇다. 이러한 글로써 그 많은 화엄경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大方廣佛華嚴經卷第五
五, 世主妙嚴品 5
5, 第一住와 十信位衆
(1) 普賢菩薩
가, 普賢菩薩의 得法
復次普賢菩薩摩訶薩은 入不思議解脫門方便海하며 入如來功德海하시니
所謂有解脫門하니 名嚴淨一切佛國土하야 調伏衆生하야 令究竟出離며 有解脫門하니 名普詣一切如來所하야 修具足功德境界며 有解脫門하니 名安立一切菩薩地諸大願海며 有解脫門하니 名普現法界微塵數無量身이며 有解脫門하니 名演說遍一切國土한 不可思議數差別名이며 有解脫門하니 名一切微塵中에 悉現無邊諸菩薩神通境界며 有解脫門하니 名一念中에 現三世劫成壞事며 有解脫門하니 名示現一切菩薩諸根海가 各入自境界며 有解脫門하니 名能以神通力으로 化現種種身하야 遍無邊法界며 有解脫門하니 名顯示一切菩薩의 修行法次第門으로 入一切智廣大方便이니라
또한 보현보살마하살은 부사의한 해탈문의 방편바다에 들어 여래의 공덕바다에 들어갔다. 이른바 해탈문이 있으니 이름이 온갖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장엄하고 중생들을 조복해서 끝까지 벗어나게 함이며, 해탈문이 있으니 이름이 모든 여래의 처소에 널리 나아가서 구족한 공덕 경계를 닦음이며, 해탈문이 있으니 이름이 온갖 보살의 지위와 모든 큰 서원의 바다를 안치해 세움이며, 해탈문이 있으니 이름이 법계의 먼지 수와 같은 한량없는 몸을 널리 나타냄이다.
또한 해탈문이 있으니 이름이 모든 국토에 두루하는 불가사의한 수의 차별된 이름을 연설함이며, 해탈문이 있으니 이름이 모든 먼지 속에 그지없는 모든 보살의 신통경계를 다 나타냄이며, 해탈문이 있으니 이름이 한 생각 속에 삼세 겁 동안 이뤄지고 파괴되는 일을 나타냄이며, 또한 해탈문이 있으니 이름이 일체 보살들의 모든 근(根)의 바다가 각각 자신의 경계에 들어감을 나타내 보임이며, 해탈문이 있으니 이름이 능히 신통의 힘으로써 갖가지 몸을 나타내서 그지없는 경계에 두루함이며, 해탈문이 있으니 이름이 모든 보살들의 수행하는 법과 차례의 문을 보여 온갖 지혜의 넓고 큰 방편에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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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권제5(大方廣佛華嚴經卷第五)라.
전체 80권 중에서 다섯 권 째이다. 이제 겨우 화엄경의 10분의 1을 했다. 아직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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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제1지5(第一之五)라. 제1이라고 하는 것은 39품 중의 제1품이라는 뜻이다. 화엄경은 품의 크기가 각각 다르다. 품에 따라서 다섯 권짜리도 있고, 마지막 입법계품은 스물 한 권이나 된다. 몇 품을 합쳐서 한 권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각각의 품이 일정하지 않은 것 역시 화장장엄 세계의 현상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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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주와 십신위(十信位)를 표한 보살대중들이 찬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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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에서 열[十]이라고 하는 숫자는 모든 것은 원만하다고 하는 뜻에서 만수를 표현한 것이다.
여기는 제 1주와 제 10신 위중이라고 했는데 십신만심(十信滿心)에 제1주(第一住)가 된다. 열 가지 믿음이 가득차면 그대로 발심주(發心住)이다.
믿음이 가득 차서 완전무결했을 때 비로소 발심인 것이다.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이라고 했듯이 발심이 곧 정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1주와 십신위중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화엄경 52위의 시작이면서 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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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보살마하살이 찬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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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보살이 나왔다. 우리 불교에는 보살이 참 많다. 그 중에서 대표되는 보살이 보현보살, 문수보살이다.
물론 신앙의 대상으로써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있지만, 이치를 드러내기 위한 경전에서는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자주 등장시킨다.
대개 법화경처럼 지혜를 우선으로 하는 경전은 문수보살이 많이 나오고 화엄경처럼 실천을 우선으로 하는 경전에는 보현보살이 훨씬 상수가 된다.
화엄경에도 문수보살이 나오지만 화엄경의 주된 뜻은 보현보살의 실천행에 있기 때문에 보현보살이 상수인 것이다.
우리는 불교에 있어서, 또 화엄경에 있어서 보현보살을 늘 생각해야 된다. 보현행원품이라고 하는 보현보살의 십대행원으로써 화엄경은 결론을 맺으며 이로써 불교의 결론을 맺는다. 이런 것을 우리가 깊이 이해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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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보살에는 보현보살과 같은 넓을 보(普)자를 쓰는 열 명의 십보보살이 있다. 이러한 이들을 동생중(同生衆)이라고 한다.
또 다음으로는 이름자에 항렬이 없이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열 명의 보살이 나오는데 그들을 이생중(異生衆)이라고 한다.
그들 동생중이나 이생중 모두를 합했을 때 최상수인 우두머리는 보현보살이다.
세상도 그렇다.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 보다는 얼른 일어나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뭔가 일을 저지르고 일을 성취한다. 보현보살과 우리의 인생을 연결시켜 생각해 볼 때 인생은 말하고 궁리하고 짜낼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일어서서 걷는 것, 일어서서 실천에 옮기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게도 해석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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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보살이 얻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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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보현보살마하살(復次普賢菩薩摩訶薩)은
입부사의해탈문방편해(入不思議解脫門方便海)하며 : 부사의 해탈문인 방편의 바다에 들어갔으며. 불가사의한 이 방편이란 중생제도를 하는 데 필요한 방편을 말하는 것이다. 이 방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불가사의 해탈문이라고 했다.
불가사의 해탈문인 방편의 바다에 보현보살이 들어갔다.
입여래공덕해(入如來功德海)하시며 : 여래 공덕해에 들어갔다. 여래 공덕해는 부처님이 실천하신 공덕, 부처님이 지으신 공덕이다. 그 공덕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이 된 것이다. 그러한 공덕해에 들어간 사람이 보현보살이다.
따지고 보면 불교라고 하는 것은 세세연연 공덕 짓는 일이다. 불교는 연연세세 공덕 짓는 일이다. 불교에 대한 여러 입장이 있을 수가 있지만, ‘불교는 공덕 짓는 일이다’ ‘불교는 복 짓는 일이다.’라고 해도 백 점짜리 답이다.
우리가 부처님을 만났고, 불교 같은 천하의 둘도 없는 가르침을 만났을 때 ‘아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공덕 짓는 데 있다’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공부 역시 공덕 짓는 일중에서도 아주 뛰어난 공덕을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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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보현보살의 해탈문 열 가지를 나열한다.
*①
소위유해탈문(所謂有解脫門)하니 : 해탈문이 있으니.
명엄정일체불국토(名嚴淨一切佛國土)하야 : 이름이 일체 불국토를 잘 장엄을 해서
조복중생(調伏衆生)하야 : 중생들을 조복해서
영구경출이(令究竟出離)며 : 구경에 끝까지 벗어나게 한다.
*②
유해탈문(有解脫門)하니 : 또 해탈문이 있으니
명보예일체여래소(名普詣一切如來所)하야 : 이름이 널리 일체 여래의 처소에 나아가서
수구족공덕경계(修具足功德境界)며 : 공덕을 구족하게 닦았다. 그런 경계인 해탈문이다.
*③
유해탈문(有解脫門)하니 : 또 해탈문이 있으니
명안립일체보살지제대원해(名安立一切菩薩地諸大願海)며: 일체보살지를 세운 모든 큰 원력의 바다다.
안립이라는 말이 잘 나오는데 세운다는 뜻이다.
보살지는 52위의 지위점차를 뜻한다.
*④
유해탈문(有解脫門)하니 : 또 해탈문이 있으니
명보현법계미진수무량신(名普現法界微塵數無量身)이며
: 이름이 보현법계 법계에 널리 나타난 미진수 무량신이다. 보현보살은 이와 같은 해탈문들을 다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보현보살은 여래가 닦은 공덕해에 들어가는 분이기 때문이다.
*⑤
유해탈문(有解脫門)하니 : 또 해탈문이 있으니
명연설변일체국토(名演說遍一切國土)한 : 이름이 연설변 일체국토에 두루한
불가사의수차별명(不可思議數差別名)이며: 불가사의 차별 명이다. 부처님의 법을 보현보살이 설법을 하는데 일체 국토에 두루해서 그것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불가사의다. 불가사의한 차별한 이름들이다.
*⑥
유해탈문(有解脫門)하니 : 또 해탈문이 있는데
명일체미진중(名一切微塵中)에: 일체의 미진 가운데서
실현무변제보살신통경계(悉現無邊諸菩薩神通境界)며: 무변제보살을 다 나타내는 신통경계이다.
*⑦
유해탈문(有解脫門)하니 : 또 해탈문이 있으니
명일념중(名一念中)에 : 이름이 일념 가운데
현삼세겁성괴사(現三世劫成壞事)며 : 삼세의 겁에 성괴사를 나타낸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성주괴공의 그 사건들 사연들을 다 나타내는 것이다.
*⑧
유해탈문(有解脫門)하니 : 또 해탈문이 있으니
명시현일체보살제근해(名示現一切菩薩諸根海)가 : 이름이 일체보살의 모든 근기의 바다가 각각
명입자경계(各入自境界)며 : 자기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든 보살의 근기가 자기 경계 속에 다 들어가는 해탈문을 가지고 있다.
*⑨
유해탈문(有解脫門)하니 : 또 해탈문이 있으니
명능이신통력(名能以神通力)으로 : 이름이 능히 신통력으로써
화현종종신(化現種種身)하야 : 가지가지 몸을 화현해서
변무변법계(遍無邊法界)며: 온 무변법계에 두루하는 것이다.
*⑩
유해탈문(有解脫門)하니 : 또 해탈문이 있으니
명현시일체보살(名顯示一切菩薩)의 : 이름이 일체 보살의
수행법차제문(修行法次第門)으로 : 수행법이 차제한 문으로
입일체지광대방편(入一切智廣大方便)이니라: 일체지 광대 방편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문이다.
앞에서 여러 번 봐 왔듯이 다른 보살이나 여러 신중들은 각각 한 해탈씩만을 이야기 해왔다. 그런데 여기 보현보살 한 분에게는 열 가지 해탈문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하나하나의 해탈문만 하더라도 뭐라고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위대한 실천행이다.
보현보살은 그런 해탈문을 열 가지나 갖추고 있는 것이다.
화엄경에서, 진정한 불교에서 이 보현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가 있다. 보살행 중에서도 보현행이야말로 참다운 불교이며 가장 우수한 불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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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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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多無礙(일다무애)는 等虛室之千燈(등허실지천등)이요... 하나와 많음이 걸림이 없는 것은 텅 빈 방에 천개의 등불을 밝힘과 같다...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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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그리고 왕복서 서첩..._()()()_
남을 위한 공덕을 닦을 때 날마다 우리의 인생이 흥미진진한 새날이 될 수 있다는 말씀 가슴 깊이 새깁니다..혜명화 님! 수고하셨습니다. _()()()_
'隱顯俱成은 似秋空之片月이로다'... 고맙습니다..._()()()_
불교는 공덕 닦는 일이다...혜명화님 수고 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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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무애(一多無礙) 등허실지천등(等虛室之千燈)’이다. 천개의 등을 빈 방에 켰을 때 서로서로 하등의 경계를 다투거나 내 자리 네 자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 보살이 나오면 꼭 열 보살이 나오고, 한 게송이 나오면 꼭 열 게송이 나오고 ...화엄경의 안목으로 본 세상이 전부 이렇게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고맙습니다.()()()_
모든 사람이 본래 완전무결한 훌륭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다 좋은 일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여법하게 실천에 옮기고, 공덕을 닦는다면 그 사람의 모습이 금상첨화인 것....華嚴ㅡ 꽃으로 수를 놓은 것이며 장엄하는 것이다._()()()_ 고맙습니다.
‘일어서서 걷는 것, 일어서서 실천에 옮기는 것이 인생이다’ ....혜명화님,고맙습니다_()()()_
모든 존재는 ‘일다무애(一多無礙) 등허실지천등(等虛室之千燈)’이다...고맙습니다. _()()()_
‘구족동시(具足同時)는 방지해적(方之海滴)이로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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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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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모든 존재는 ‘일다무애(一多無礙) 등허실지천등(等虛室之千燈)’이다. 천개의 등을 빈 방에 켰을 때 서로서로 하등의 경계를 다투거나 내 자리 네 자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_()()()_
한 개의 등, 두 개의 등, 열 개의등... 수 천 개의 등이 서로의 불빛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자리다툼도 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밝게 비춘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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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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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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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 11-1. 世主妙嚴品 第1의5. 大衆의 得法과 讚佛(第1住와 十信位衆 (1)普賢菩薩 得法, 油印物 - 往復序 3玄門~10玄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