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배경
성경에 기록된 가시, 가시나무는 좋은 의미로 기록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모두 고통, 괴로움, 고난, 수고, 황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시에 찔려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작은 것이 살에 깊이 박혀서 보이지 않고 잘 빠지지 않을 때 고통스럽습니다.
큰 것도 아닌데 그 부위가 닿을 때마다 아픔이 다가오니 참 힘이 듭니다. 그래서 빼야지 해결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런 눈에 보이는 가시를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가시가 있는 것입니다. 가슴에, 머리에 박혀서 자신의 삶을 왜곡시키고 남을 힘들게 하는 가시인 것입니다. 큰 것은 못과 같습니다. 잘 빠지지도 않습니다. 빼고도 자국이 남아 상처처럼 반응합니다.
그 가시와 못은 자신도 힘들게 찌르고, 주변에 있는 남도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상처로 인한 사탄이 주는 가시도 있고, 성도를 훈련시키고 겸손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시도 있습니다.
뽑아야 할 가시도 있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 가시도 있는 것입니다.
“눈에 가시”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존재에 대하여 말할 때 사용하는 속담입니다. 눈은 가장 예민한 곳인데 그곳에 가시가 들어가 서 찌르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2. 성경에서 말씀하는 가시의 의미
1) 가시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다가온 고난입니다.
[창세기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① 최초의 가시는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하여 다가 왔습니다. 그들의 죄로 인하여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된 것입니다.
그 가시에 인간들이 찔리며 고통가운데 산다는 것입니다.
엉겅퀴도 가시와 함께 잔 가시가 있는 풀입니다. 모두 인간들의 삶을 수고롭게 힘들게 하는 존재들입니다.
②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가나안 원주민들을 진멸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입니다. 그래서 진멸되지 않은 가나안 족속들이 그들에게 눈에 가시가 되고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믿지 않는 자들로 인하여 우리들에게 가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수기 33:55]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도 동일한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고 있는데, 남아 있는 민족들과 혼인하고 서로 왕래하는 것과 같이 가까이 하면 그들이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3:12] 12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13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시는 크지 않습니다. 보통 작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시가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이 소수가 남았습니다. 그들이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사시대에 그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멸하지 않은 가나안 족속들 얼마나 이스라엘을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스러운 기도를 들으시고 옷니엘부터 사무엘까지 14명의 사사를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사사기 2: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패역한 자의 길, 악한 자의 길에는 가시가 나는 것입니다.
[잠언 22: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죄를 지으면 포도나무가 있던 곳에 찔레와 가시가 나는 것입니다.
[이사야 7:23] 그 날에는 천 그루에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
죄는 가시가 생기게 하고 나게 합니다.
2) 가시 가운데 있다는 것은 고난 가운데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 가운데 있는 것을 가시떨기로 보여주고 잇습니다.
애굽의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을 모세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떨기나무 가운데서 나오는 뿔꽃 안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출애굽기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떨기나무는 가시나무라고 사도행전에서는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사도행전 7:3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불타는 가시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있음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를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신 것은 그 고난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모세를 통하여 구원해 내겠다는 부르심인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도 솔로몬이 노래하기를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가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가시를 통해서 많이 찔리게 되는 현실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으로 술람미 여인은 더 향기를 풍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아 4:16), 힘든 북풍에도 향기를 날리고, 좋은 남풍에도 향기를 날리겠다는 것입니다.
신랑되신 솔로몬 곧 영적으로 우리 주님과 함께 하면 가시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 가시, 그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 향기가 더 날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생의 가시가 때로는 필요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3) 가시나무는 불타 없어질 지옥갈 사람, 악한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무엘하 23: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이사야 10: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히브리서에도 가시와 엉컹퀴를 내는 땅은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게 되고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지금은 목재 가공기술이 발달하여 가시나무로 건축재료로 사용되지만 과거에는 순전히 땔감에 불과했습니다. 재목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나무인 것입니다. 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시나무를 불에 넣으면 화력이 정말 좋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기드온의 서자가 있습니다. 그가 아비멜렉입니다.
[사사기 8:31]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기드온의 모든 아들 칠십명을 한 바위에서 죽이고 세겜 사람들 위에 왕이 된 자입니다 (삿 9:18)
기드온의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 요담이 세겜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사사기 9:14]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요담을 가시나무로 비유한 것입니다.
남을 찌르는 악한 자라는 것입니다. 왕 재목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세겜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던져 두개골이 깨지게 되니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에게 죽여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칼에 죽게 됩니다. (삿 9:53-54), 가시나무와 같은 악한 자의 말로입니다.
4) 바울과 같이 하나님게서 허락하시는 가시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훈련을 위함입니다.
물론 이 가시도 사탄이 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사용하시기 위하기 위하여 허락하신 가시인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그 가시를 뽑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일정 기간 동안 뺄 수 없는 가시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가시는 빼내어야 합니다.
그 가시는 내 삶을 피폐하게 합니다. 힘들게 합니다.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가시를 뽑아낼 수 있을까요?
영적인 가시이므로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오직 가시를 해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가시에 찔리셨습니다.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서는 이를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시관을 쓰셨다”
[요한복음 19: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요한복음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마태복음 27: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마가복음 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예수님께서 굵은 가시관을 쓰시면서 그 가시가 머리 깊이 박히매 우리들이 가져 있는 모든 가시를 대신 지고 가신 것입니다.
예수 관련 영화를 보았을 것입니다. “패션 오브 크리이스트”를 보면 탱자나무 가시같은 큰 가시가 있는 것으로 관으로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에 눌러 씌울 때 살이 찔리면서 피가 흐르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큰 가시에 찔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있는 아무리 큰 가시라도 못과 같은 가시라도 예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못으로 십자가에 박히심으로 큰 못과 같은 아픔과 상처, 고통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1)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지면 가시가 뽑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5: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가시는 죄로 인하여 다가온 것이므로 가시를 뽑는 방법은 회개입니다.
[에스겔 28:24]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그 사방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 중에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물론 회개를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에 근거하여 선포, 명령까지 하면 좋을 것입니다.
2) 가시가 있는지 없는 알 수 있는 것은 그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16]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태복음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태복음 13: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내 안에 가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시가 있으면 포도와 무화과 같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시나무이기 때문입니다.
또 가시가 있으면 마치 그 씨앗이 가시떨기에 떨어진 것과 같이 그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열매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떨어지고 썩고 벌레 먹고 마는 것입니다.
충실한 결실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는 것마다 안되는 사람들은 분명히 가시가 그 속에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을 기도하는데, 영적으로 그의 머리에 가시와 같이 큰 못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치료의 방법으로 그 못을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빼 내니 우울증이 좋아진 것입니다. 영적인 가시, 못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열매가 좋지 않는 것입니다.
<맺는 말>
우리들은 누구나 다 가시가 있습니다. 종류가 다르고 크고 작은 차이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시를 누구나 뽑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와 허물과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가시가 박히는 것입니다. 생기는 것입니다.
그 가시는 나에게도 힘들게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어렵게 합니다.
내 삶의 열매를 보면 가시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시 수준이 아니라 못의 수준도 있습니다.
그 못을 빼도 여전히 상처가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시 뿐만 아니라 상처까지도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으니 주님께 나아오면 됩니다. 가시가 박힌 것을 알고 그 문제를 주님께 가져오면 뽑히게 될 것입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처리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