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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월요일
날씨: 배트남보다는 직사 광선의 강도가 더 세며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습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베트남인 보다 캄보디아인들이 피부가 조금 더 까맣다.
캄보디아 시엡립 여행 일정을 보내면서 누차 가이드가 새벽 호텔밖에서 탁발하는 스님들을 꼭 한번 보라고 당부를 했는데 이 세속에 찌든 인간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마셔야 했고 맛싸 받아야 했으므로...
자유스럽게 일정을 짜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그런 일정이 아니라 18명이 같이 움직이는 단체 관광이다 보니 개인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잃은 것 만큼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숙식을 하고 있으니 도낀 개낀이다.
단체 관광의 매 아침은 여유롭지 않고 항상 바쁘다. 일찍 일어나 서두르자니 몸이 안따라 주고, 또 제때 일어나면 시간이 부족하다. 오늘 아침도 수영장이 바라다 보이는 야외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작정을 했는데,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 실행에 옮기지도 못했다. 우리가 그러할진데 '그윽한 미소' 는 얼마나 시간이 부족 할 것인가? 보통 화장실에 들어가면 함흥차사에 다 먹을 것은 절대로 빠트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버스에 오를라 치면 17명의 눈초리가 면상에 내리 꽂히니, 눈을 내리깔고 죄인처럼 뒷자리에 처박혀야 하는 것이 또 단체 관광의 애로사항인 것이다. 어제 저녁에도 강력한 스콜이 지나갔는 지 톤레삽 호수로가는 길녘에는 산뜻한 아침 공기가 흐르고 있다. 현재는 우기인 관계로 메콩강의 수위가 범람하여 톤레삽 호수로 물이 역류하는 중인 모양이다. 가이드가 연신 들어가는 진입로가 물에 잠겨 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말 그대로 도로가 아니라 수로인 것 같다. 톤레삽호수로 들어 가는 내내 맨 땅을 밟고 가지 않았으니 물이 지금 얼마나 많이 들어 오고 있는 지 실감할 뿐이다.
가옥들이 물에 잠겨 있다.
톤레삽 호수 들어 가는 입구.
톤레삽 호수 전경.
이 톤레삽 호수는 티벳에서 발원하여 히말라야를 거쳐 인도지나 반도를 관통하여 흐르는 메콩강이, 우기 때 범람하여 만들어진 담수호로 동양 최대라고 한다. 길이 160km 너비는 36km로 우기때 범람하여 함께 밀려 온 침전물이 건기 때 흘러 나가면서 넓은 지역을 적셔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 삼모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기때는 깊이가 12m에 면적은 1만㎢, 건기때는 3천㎢에 깊이가 1-2m로 그때는 수량이 적어 물이 탁하고 냄새도 심하다고 한다. 우기 때 메콩강의 고기들이 범람하는 물을 따라 이 호수로 들어와 산란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톤레삽 들어 오는 길 내내 고인물 어디서나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보았는데, 정말로 물반 고기반인 모양이다.
물고기 종류만도 800여종이 된다고 하니, 그들이 말하는 어머니 강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다 품어주니...
톤레삽 호수는 시소처럼 천연적으로 물을 조절해 주는 자연 발생적 댐인 것이다.
뭘 그리 들이대!
위에 언듯 언듯 보이는 나무가 망그로브와 부레옥잠의 무리들이다. 부레옥잠은 물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부평초다.
이곳 월남 남민들의 보트 피플처럼 땅을 밟고는 살 수 없는 종이다. 이곳의 수상 가옥의 80%가 베트남 난민이고 나머지가 캄보디아인이라고 한다. 어디서나 이데올로기는 보이지 않는 그물이 되어 인간의 몸과 마음을 가두어 놓는다.
수상가옥에서 기르는 악언데 식용인 지 관상용인 지 알 수가 없다.
수상 가옥의 전경. 지금은 우기라 물의 색갈이 맑다.
톤레삽 호수에서 사는 물고기 종류다. 우리나라의 바닷고기보다도 더 다양하고 많다. 헐! 이호수는 정말 캄보디아의 보물임에 틀림없다.
톤레삽 호수를 돌아 보는 내내 어께에 뱀을 둘러매고, 또는 양은 대야를 타고, 어린아이들이 관관객들에게 구걸하는 모습에서, 고단하고 힘든 수상 생활이 읽혀진다. 그러나 언뜻 보이는 순박한 웃음속에는 물질적으로는 부족할 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불행하지 않다는 무언의 항변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톤레삽 호수를 나오면서 과연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를 반문해 본다. 캄보디아의 행복지수가 세계 8위고 우리나라는 세계 78위 국가이다. 그리고 OECD국가중 우리나라가 자살율 세계1위라고 하는데, 과연 누가 더 행복할 것인가? 누가 누구를 적선하고 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쇼핑 관광중에...
세계에서 가장 큰 상황 버섯이라고 한다. 몇년짜리인지는 가물 가물하다 500년?
점심으로 숙희를 먹었다? 오잉! 이것이 무슨 말인고? 우리나라 식으로는 샤브 샤브 되시겠다. 육수에 기본 야채를 넣고 끓이다가 뷔폐식으로 오뎅이며 해산물 만두를 넣어 건져 먹는 것이다. 육수에 향신료를 넣지 않아 우리 입맛에 맞을 뿐더러, 청양고추와 비슷한 베트남 고추를 다져 종지에 담아 내오기 때문에 한국식에 더 가깝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국물로 밥을 비빈다.
이게 한국식 아니고 뭐란 말이냐? 그러니까 원래 이름 '수키' 가 아니고 우리식으로 '숙희'라고 해야 한다.
소핑 관광중에 스콜을 만났다. 우연히 조우했으면 무조건 맞을만 했는데, 나만 맞으러 나가기가 민망해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정말 시원하게 맞고 싶었는데...
캄보디아 민속촌으로 이동하여 관람함. 우리나라 민속촌과 비슷한데 특이한 것은 각나라 민속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출연하는 배우들은 나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수준 높은 우리들 눈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캄보디아 전통 결혼식 공연 장면.
캄보디아 민속촌 입구에서. 스콜이 오락 가락해 우산을 하나씩 챙겨들고 있다.
저녁을 먹기 위해 한식당으로 이동함.
한식당에서 숯불 돼지고기로 저녁을 먹고 식당 입구 거리로 나와 찍은 도로 표지판이다. 내일 떠날 프놈팬의 사인이 보인다. 여기서도 314km로 적지 않은 거리다.
드디어 오늘이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 버려, 내일이면 우리도 이번 여행의 종착점에 도달하게 된다. 어느 여행이나 마찬가지지만 항상 무언가 채우고 가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오히려 여행을 망칠 수가 있다. 여행이란 그저 마음을 비우고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뭘 속에다 꼭 채워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러 이곳에 온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 없으니, 이런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또 곧 바로 다른 곳으로 후울쩍떠나 버리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까? 아니면 여행의 욕망이 빠져 나간 빈자리가 공허해서 일까 알 수가 없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드는데 숙소로 오는 버스 안에서 '그윽한 미소'가 오늘 여행의 마지막 날을, 북한에서 운영하는 평양 냉면집에서 술 한잔하는 것으로 갈음하자고 부추긴다.
오잉! 똥꼬가 옴찔한다.
친절하게도 우리 마음에 절대로 안드는 가이드가 자기 차로 냉면집으로 안내를 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약간 들랑 말랑했지만...
여기서도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본주의의 논리가 판을 지배하여 남북한의 여행 관계자들이 차지를 서로 주고 받는 모양이다. 그리고 평양 냉면집 조선 아가씨들이 돈독이 들어, 아니면 실적 압박을 받고 있거나, 아무튼 마구 들이대는 것을 보고
자본주의 빰을 때리고 있구나 생각했다. 한편 씁쓸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는 발상이 순수했는데, 그들은 발상이 순수하지 못했다.
들쭉술과 산삼술이 나를 먹었다. 여행 내내 자리가 떠서 숙면을 취하지 못해 숙면을 핑계로 나를 먹어 버렸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리하여 내일의 여행 일정이 다소 우울하고 유쾌하지 못하게 되었다.
불랙아웃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암것도 기억 나지 않는다. 다행히 시엡립에서 프놈팬까지는 314km라 그시간이 나에게는 하늘이준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10월18일 화요일 날씨는 여전히 맑음
다음날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는데, 먹는 것에 관해서는 나도 '그윽한 미소'의 촉수에 버금 갈 것이다. 속은 뒤집어지고 있지만 억지로 우그려 넣었다. 마침 김치찌개가 나온 것이다. 속을 달래 보지만 가라 앉지를 않는다. 근 다섯 시간을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숙면은 취했지만 반대로 속은 뒤집어진 것 같다.
점심을 먹고 툴슬랭 고문 박물관으로 이동 관람하였는데 이곳에서 속은 더 뒤집어지고 말았다.
툴슬랭 고문 박물관은 1962년 개교한 고등학교를 크메르루즈가 프놈팬 입성 때 폴폿 보안대 건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거꾸로 매달아 밑에 있는 단지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이곳이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당시 캄보디아 인구 700백만명중 200백만명을 공산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학살하고 고문을 주도한 보안대 건물인 것이다.
여기에 수감 되었던 17000명중 살아 나온 사람은 단지 14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사람의 잔인성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가름 할 수가없다. 크메르루즈의 최정예 부대원들의 나이가 평균 13-18세 사이라고 하니 이들이 뭤을 알았겠는가? 시키면 시키는데로 인간백정 노릇을 했을 것이다. 인격 형성이 채 되지도 않은 어린 나이에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교사, 안경 쓴 사람, 손에 굳은 살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배운 사람들은 모조리 다 죽여 버린 것이다. 캄보디아가 지금 동남아에서가장 낙후 된 이유가 그 당시 지식인들을 숙청해서 나라를 이끌 인재가 없어 그렇다고 한다.
고문 박물관 이곳 저곳을 돌아 보는데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좋지 않은 에너지들이 모여 있는지 마음이 괘롭고 불편하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바람이 산들 산들 부는데, 이나무들은 그당시 만행들을 남김없이 내려다 보고 있었겠지 생각하니 무상한 생각이 든다.
고문 박물관 앞 뜰에는 저렇게 망고 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세계 어느 곳에서건 다시는 이런 무모한 이데올로기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지 말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나무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왕궁 관람.
왕궁앞에서.
나만 맛탱이가 갔다.
지붕 마루가 전부 뱀의 문양이다.
이탑이 하나의 돌에 조각을 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킬링 필드의 학살이 이루어 진 곳으로 이동하여 관람하였는데 나는 아직 속이 거북하여 관람을 안했다. 관람료는 두당 2불이라고 한다.
석식으로 메콩강의 선상에서 삼겹살 구이로 저녁을 먹었는데, 나는 한숟갈도 먹지 못했다.
이 아름다운 메콩강의 밤경치와 시원한 강바람도 내게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몸이 괴로우니 만사가 다 귀찮은 것이다.
석식후에 우리의 마음에 덜 드는 가이드가 또 '맛싸' 의 압력을 행사한다. 아직 비행기 시간이 2시간 여 남아 있으니 마지막으로 '맛싸' 를 받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다 털어 먹어 버렸으니 갈래야 갈 수가 없고 '맛싸' 받을 기분이 아니라 '맛싸'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페스트 푸드점으로 이동하여 커피와 음료를 시켜 즐겁게 이빨를 깠다. 나를 뺀 네명은 정말로 즐겁게 이빨을 깠지만, 나는 계속해서 토사곽란으로 화장실을 전세내다시피했다. 이렇게 즐겁게 이빨을 까고 있는데 아프다고 초를 칠 수가 없어 꾹참으면서 있으려니, 어느새 한명씩 밀어 내기 한판씩들은 한 모양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도 흔적을 남기려는 수컷들의 본능은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버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면서도 편의점에 들러 주전부리를 하는 센스들. 이런 낯선 땅에서 어슬렁 거리며 친구들과 주전부리하는 맛도 괜찮다. 시간이 남아 정말로 어슬렁거리면서 버스로 돌아가는데, 맞은편 네온사인 간판에 '맛싸' 10불이라고 쓰여 있다.
지금 '맛싸' 받고 있는 사람들은 두당 40불씩인데...
공항에 도착하여 드디어 우리가 '송원' 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송원' 은 마음에 절대로 안드는 가이드와 여기에서 같이 묵을 모양이다. 오늘 시간이 너무 늦어 내일 오전에 베트남으로 이동 예정이고, 가이드도 내일 시엡립으로 이동하니 오월동주라고나 할까?
원수는 아니니 괘념치말게나! 옆에 꼽싸리 낀 사람은 줄곳 캄보디아 여행에서 가이드를 뒷바라지한 현지인이다.
캄보디아인들은 딱 이만하다 어느 누구할 것 없이 거의 비슷하다. 신기한 일이다.우리는 제각각인데 말이다.
아무튼 앙코르와트를 친구들을 위해 또 와준 '송원' 에게 고마움의 똥침을 날린다. 언제 어디서건 또 해외에서 조우하도록 하자!
그리고 나머지 '그윽한 미소'와 '바람' 그리고 '딱선생'도 모두 수고했다. 아무 탈없이 무사히 이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물심 양면으로 애쓰신 천지신명께도 감사의 똥침을 날린다. 이러다 천벌 받으려나!
11시50분 비행기 출발하여 인천공항 7시10분에 도착했다. 갈 때보다 2시간이 줄어 5시간 20분 걸렸다.
맨발에 아쿠아 슈즈를 그냥 신고 왔는데 이곳은 현재 깊이 깊이 가을이 진행중이다.
또 다시 낯선 이국땅으로의 일상 탈출과 무한자유를 꿈꾸며!
다시 모두 다 일상 속으로 출발!
첫댓글 여행기 잘 썼다.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그 정말 좋아하기 어려운 가이드가 안내한 호텔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호치민으로 돌아갔다. 언제 어디서건,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다시 조우하자. 특히 해외 단체 여행에서는 한 명의 컨디션 난조가 전체의 분위기를 망쳐 버리게 되는 일이 흔하게 된다. 이 번에 좋은 공부 했다고 생각하고, 다음에는 너 자신과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 컨디션을 잘 조절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조절할 수 있어야 2013년이든 12년이든, 네팔이든 다른 나라이든 함께 갈 수 있지 않겠냐 ?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이렇게 멋진 글과 사진들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대단원을 장식해 주는구나.글한줄 쓰면서도 각종 자료를 다시 살펴보고 검증된 흔적 남기기에 골몰했을 청학에 다시한번 수고 했다고 전하고 싶다..그리고 송원도 너무너무 고마웠다..
또 다른 해외 여행을 위해서, 무한 자유를 위해서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