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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기업가 정신
스웨덴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3,000달러가 넘는 북유럽의 부국 스웨덴. 완벽한 복지제도로 삶의 질에서는 더욱 앞서 있는 나라. 에릭슨에서 볼보, 사브, 일렉트로룩스, 이케아, H&M까지 뛰어난 글로벌 톱 컴퍼니를 보유한 나라. 가난한 농업국에 불과하던 스웨덴이 20세기 初 선진공업국으로 올라선 비결은 다름 아닌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었습니다.
북구의 겨울은 황량합니다. 무공해의 투명한 하늘과 아름다운 호수, 밤새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을 즐기기 위해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찾아드는 여름철과는 딴판입니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선 간간이 눈발이 날리고, 오후 4시면 차량들은 벌써 전조등을 켜기 시작합니다.
경제위기 여파 : 구조조정 칼바람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고 온 세계경기 위축으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스웨덴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 크라나 貨의 약세로 주력산업의 수출경쟁력은 빠르게 회복되었으며 금융권이 건재하다는 점도 스웨덴 경제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스웨덴 언론들은 실업률 증가 등으로 상당 기간 고통은 이어지겠지만 2011년부터는 경기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경제위기와 맞물려 스웨덴에서도 ‘기업가정신’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스톡홀름기업가정신대학(SSES, Stockholm School of Entrepreneurship) 닉 케이 총괄이사는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대기업이 주도하는 경제구조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고용 측면에서도 계속해서 혁신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999년 스웨덴의 각 분야 최고 명문대학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SSES는 기업가정신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합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청에 해당하는 스웨덴경제 지역개발청(뉴텍, Nutek) 카린 뤼덴 기업가정신 프로그램 담당 이사는 “스웨덴은 더 많은 신생기업, 더 많은 성장기업을 필요로 한다”면서 “이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웨덴은 100여 년 前 왕성한 기업가정신으로 산업화의 기적을 일으킨 나라입니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스웨덴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전국토의 10%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기업가들이 대기업을 일으키면서 1900년대 초반에는 이미 선진공업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습니다. 스웨덴 최대 ‘재벌’인 발렌베리 가문이 바로 이 시기에 맹활약을 펼친 주인공 중 하나입니다.
발렌베리의 창업자는 해군장교 출신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입니다. 발렌베리는 40세 때인 1856년 스웨덴 최초의 근대적 상업은행인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現 SEB)을 열었습니다. 빠르게 번져가는 산업화의 흐름을 읽고 과감하게 뛰어든 모험이었습니다. 발렌베리는 이후 이 은행을 발판으로 통신, 전기, 가전, 자동차, 항공, 제지, 제약 등 거의 全 산업 분야를 아우르는 유럽 최대의 산업왕국을 건설해 냈습니다. 스톡홀름의 구시가인 감라 탄 섬 스토르토리에트 20에는 젊은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처음 은행을 열었던 건물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북유럽 최고의 경영대학으로 꼽히는 스톡홀름경제대학은 ‘발렌베리대학’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의 아들인 크누트 아가손 발렌베리가 1900년대 初 이 대학 설립논의를 주도하고 거액을 기부했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기업가들을 길러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학부과정이 없는 대학원 중심 대학인 스톡홀름경제대학은 10對 1의 높은 경쟁을 뚫어야만 입학할 수 있는 엘리트 스쿨로 자리 잡고 있습니니다. 발렌베리와 이 대학의 특별한 관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의 지주회사 인베스터를 한때 이끌었던 클라에스 달백 前 회장과 야콥 발렌베리 現 회장이 이 대학 이사회에 나란히 들어가 있습니다.
세계 유일의 ‘기업가정신 대학’
‘10년 前 기업가정신을 전면에 내걸고 문을 연 SSES의 탄생은 스웨덴의 또 다른 기업가 가문과 연결됩니다. 바로 세계적 패션 브랜드 헤네스&마우리츠(H&M)를 만든 페르손 가문입니다. 인터브랜드 선정, 유럽 최고 브랜드 1위를 차지한 바 있는 H&M은 1947년 얼링 페르손이 스톡홀름에 스웨덴어로 ‘그녀의 것’을 의미하는 ‘헤네스’라는 이름으로 여성복 매장을 열면서 시작됐습니다. 문구체인점으로 성공을 거둔 얼링 페르손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後 미국여행에서 미국식 초대형 매장에 강한 충격을 받고 돌아와 새 사업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 後 ‘모리츠 위드포스’라는 사냥용 총기점을 인수해 ‘H&M’으로 이름을 바꿨고 첨단 패션디자인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젊은 여성들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현재 H&M은 세계 22개 나라에 1,200여 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한 스테판 페르손 회장은 가장 먼저 1999년 SSES 설립에 거액을 기부했습니다. 닉 케이 이사는 “SSES는 스테판페르손패밀리재단의 초기 기부사업 중 하나였다”면서 “그는 MBA 과정에서 단순히 큰 기업을 운영하는 방법만 알려준 게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조하는 법, 기존의 관념에서 한발 벗어나 사고하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고 확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SSES는 여러 면에서 독특합니다. 우선 각 분야에서 특화된 스웨덴 최고의 대학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스톡홀름경제대학과 스웨덴왕립기술대학, 카롤린스카의대 등 3개 대학으로 출발했습니다. 2002년에는 큰스트팍예술대학이 추가로 들어왔습니다. 4개 대학 모두 스웨덴 최고의 명문대학들입니다. 게다가 최근 종합대학인 스톡홀름대학까지 가세해 교육영역이 더욱 넓어지게 됐습니다. SSES는 일종의 ‘가상대학’입니다. 실제 강의는 각 대학에서 이뤄지며 SSES는 전체 강의프로그램 구성과 운영, 마케팅, 연구개발 등을 맡고 있습니다.
각 대학 학생들은 누구나 SSES의 코스를 일반강의와 똑같이 신청해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강의실에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미래의 의사, 예술가, 기술자, 경영자가 어깨를 맞대고 앉아 ‘어떻게 사업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기업을 만들어 운영하는지’에 대해 함께 배우고 토론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지금까지 4,000여 명이 SSES 코스를 거쳐 갔으며 이들이 만든 120개 이상의 기업이 현재 실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기업가정신 활성화에서 정부 쪽 핵심기관은 뉴텍입니다. 1991년 에너지와 기술 분야까지 포괄하는 정부기구로 창립된 뉴텍은 2002년 에너지 부문 등을 떼어내고 기업가정신과 지역발전에 초점을 맞춘 조직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특히 2006년 중도∙보수연합이 사회민주당을 물리치고 집권한 이후 부총리 兼 기업∙에너지부 장관에 오른 중도당 출신 마우드 올로프손 대표가 기업설립규제완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뉴텍의 활동에 한층 힘이 쏠리고 있습니다. 마우드 올로프손 장관은 창업비용을 25% 이상 낮출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뉴텍의 목표는 ‘더 많은 신생기업, 더 많은 성장기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카린 뤼덴 이사는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대기업이 앞에서 끌고 중소기업들이 뒤에서 이를 받쳐주는 구조였는데, 이제 이런 상황은 옛날이야기가 됐다”면서 “많은 대기업들이 생산라인을 해외로 옮기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새로운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뉴텍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여성창업과 이민자창업입니다. 카린 뤼덴 이사는 “남녀평등이 잘 돼 있다는 스웨덴에서도 여성은 창업을 위해 은행에서 대출 받기가 남성보다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뉴텍은 2008년 880명의 ‘여성 기업가정신 홍보대사’를 선발했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별로 학교수업과 대학강의, 기타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 여성기업가로서의 자신들의 경험을 들려주고 더 많은 여성들이 기업가가 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기업가정신 촉진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청소년 시절부터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해 주는 것입니다. 뉴텍은 전국 12곳에 기술 및 기업가정신센터인 ‘콤텍’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어린이들에게 기술적 지식과 탐구심, 기업가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각 지역의 선생님과 학부모, 기업가, 혁신가들이 함께 하는 교류의 장이기도 합니다. 뉴텍에서 2003년부터 매년 18~30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기업가정신 바로미터’를 보면 기업가가 되고 싶다는 청소년의 비율이 여성은 2003년 23%에서 2008년 30%로, 남성은 35%에서 45%로 각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국
‘자본주의의 발상지’ 영국 제조업의 쇠락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잘나가던 금융산업마저 침체에 빠져 대안 찾기에 나선 영국정부의 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디자인, 광고 같은 크리에이티브 산업과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유일한 희망으로 꼽힙니다. 모두 창조적 기업가 정신이 필수적인 분야입니다. 영국이 필사적으로 기업가 정신 살리기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2008년 11월 17일 5만5,000여 명의 영국 각급 학교 학생들은 오전 9시가 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이들은 비즈니스 플랜 경진대회인 ‘메이크 유어 마크 챌린지(Make Your Mark Challenge)’ 참가자들로 9시 정각 공개된 이날 과제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이었습니다. 올림픽조직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청소년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한 것입니다. 영국 전역에서 14~16세, 16~19세 두 부문으로 나눠 참가한 학생들은 하루 동안 각자 팀을 만들어 올림픽 때 성공할만한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실제 사업화에 필요한 자금조달계획까지 짜내느라 열을 올렸습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것은 기업가 정신 운동 단체인 ‘메이크 유어 마크’입니다. 정식단체명은 ‘엔터프라이즈 인사이트(Enterprise Insight)’지만 대외적으로는 캠페인 명칭인 ‘메이크 유어 마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영국상공회의소, 중소기업연합(FSB), 영국산업연맹(CBI), 기업가협회(IoD) 등 4대 경제단체가 공동 설립한 비영리단체로 출발했습니다. 이 단체 크리스 스팝빈 국제캠페인 담당은 “청소년들에게 기업가가 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 캠페인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해 만들어졌다”면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4대 경제단체가 함께 손을 잡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제1회 세계 기업가 정신 주간 열려
메이크 유어 마크는 민간단체들이 주도해 설립됐지만 100%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설립 첫 해에는 지원금이 수십만 파운드에 불과했지만 매년 크게 늘어 2008년에는 500만 파운드(약 100억원)을 지원받았습니다. 2008년 末 메이크 유어 마크는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조직규모를 키우기 위해 자선단체지위를 얻었습니다. 일반기업의 자금지원을 받기 위한 조치입니다.
‘메이크 유어 마크 챌린지’는 이 단체가 수 년째 개최해 온 이벤트지만 2008년 행사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메이크 유어 마크는 2008년 11월 17~23일 미국의 대표적 기업가 정신 운동 단체인 카우프만재단과 함께 ‘제1회 세계 기업가 정신 주간(Global Entrepreneurship Week)’을 열었고 그 첫날 행사로 이 대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는 “기업가 정신 주간은 그동안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으며 세계 기업가 정신주간을 통해 전세계의 기업가 캠페인으로 연결될 것”이라면서 “전세계 젊은이들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개방함으로써 우리는 성공적인 제품과 내일의 기업을 창조할 수 있다”고 힘을 실어줬습니다. 영국과 미국은 물론 세계 77개 나라에서 동시에 개최된 세계 기업가 정신 주간 행사에선 2만5,000여 건의 각종 이벤트가 열렸으며 300만 명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뿐만 아니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아놀드 슈워제네거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마이클 델 델컴퓨터 회장 등 유명인들도 직간접적으로 대거 참석해 행사를 빛냈습니다.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의 지적대로 ‘기업가 정신 주간’은 영국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입니다. 2004년 설립된 메이크 유어 마크는 가장 효과적인 캠페인 플랫폼을 고민하다 ‘주간’ 형태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연관된 행사들을 특정 기간에 집중함으로써 언론의 더 큰 주목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기업가 정신 주간 행사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조직이 커지면서 점차 영역을 확대하게 된 것입니다. 기업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주간이란 형태가 효과적이지만 한계도 안고 있습니다. 기업가에 흥미를 느낀 청소년들에게 실제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게 하려면 한발 더 나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메이크 유어 마크는 현재 수많은 캠페인과 교육 프로그램을 연중 내내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메이크 유어 마크가 시작된 기업가 정신 주간은 미국 등 여러 나라로 빠르게 확산됐으며 세계 기업가 정신 주간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단체의 캠페인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메이크 유어 마크 워드 어 테너(Make Your Mark with a Tenner)’입니다. 테너는 10파운드(약 2만원)을 가리킵니다. 2만 명의 학생들에게 10파운드씩 나눠주고 한달 동안 운영해 이익을 내도록 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입니다. 10파운드는 물론 대출입니다. 하지만 한달 後 이자 없이 원금 10파운드만 갚으면 됩니다. 1등상은 사회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더 많은 이윤을 낸 팀에게 주어집니다. 2008년 처음 시작해 큰 인기를 끌자 2009년에는 전체 자금규모를 20만 파운드로 두 배 늘렸습니다. 이 돈을 낸 것은 영국의 유명 기업가인 피터 존스 폰즈인터내셔널 그룹 회장과 마이클 버치 비보 창업자입니다. 통신과 미디어로 큰돈을 번 피터 존스 회장은 BBC의 벤처캐피탈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드래곤스 덴(Dregon’s Den)’에 출연해 대중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물입니다. 마이클 버치 창업자는 2005년 온라인 소셜 커뮤니티 사이트인 ‘비보’를 만들어 키웠으며 2008년 8억5,000만 달러에 AOL에 매각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10파운드 비즈니스 체험’ 인기
학생들에게 10파운드를 대출해 주고 비즈니스 체험을 하게 하는 이 이벤트는 영국 언론에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디어에 나타난 영국 청소년은 대부분 나태하고 게으르며 반사회적인 반항아의 이미지입니다. 10파운드를 받아들이고 사업계획을 짜는 학생들은 이런 선입견을 깨고 ‘문제투성이’ 영국 청소년들도 사회에 도움될 수 있고 믿을만하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해줍니다.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는 이러한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크리스 스파빈 국제캠페인 담당은 “최근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기업가 정신은 이러한 위기 극복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우선 혁신적 기업가들은 더 빨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역사는 위기 속에서 성공한 기업이 나온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경기침체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조만간 회복기가 찾아오며 한발 앞서 준비한 자만이 이때 힘차게 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바로 영국이 위기 속에서도 기업가 정신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입니다.
일본(Japan)
지표만 보면 일본은 기업가정신이 침체된 나라입니다. 일본의 창업활동지표는 미국, 캐나다, 영국 등 다른 선진국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칩니다. 하지만 일본은 가업승계가 활발해 창업률이 구조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통계의 착시’를 걷어내면 비로소 일본을 움직이는 기업가정신의 진면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사카의 ‘동네 공장’들은 대기업도 어렵다는 인공위성 제작에 뛰어들며 성공시켰습니다. 교토 지역의 중소기업들은 개성 넘치는 친환경 전기차 ‘교토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2009년 1월 23일 일본 규슈 가고시마에 있는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선 인공위성 ‘마이도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됐습니다. 이 광경을 발사장 옆 관람석에서 지켜보던 머리가 허연 중년신사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지난 6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을 눈으로 확인한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이 중년신사는 오사카에 있는 기계부품중소기업인 아오키의 아오키 도요히코(63) 사장. 마이도 1호를 손수 만들어낸 주역입니다.
아오키 사장이 인공위성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건 2002년 12월입니다. 일본경제의 거품붕괴로 오사카에 밀집해 있는 중소기업들이 불황에 빠지고 기술자들이 한둘씩 떠나가자 ‘어려운 때일수록 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공위성 제작을 구상했습니다. 특히 불황에 허덕이는 오사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래의 희망을 잃은 일본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인공위성 쏘아 올린 오사카의 중소기업
‘칫솔에서 로켓 개발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뜻을 같이하는 중소기업인들을 모았습니다. 산케이제작소 니신 다이니치전기 등 인근의 11개 중소기업 사장들이 적극 호응해 인공위성 제작을 위한 컨소시엄을 만들었습니다. 오사카의 ‘동네 공장(마치코바)’들이 모여 인공위성을 만든다고 할 때 모두가 비웃었습니다. 개발비만 수십억 엔이 들고, 5년 이상 시간이 필요한 인공위성을 영세중소기업들이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해냈습니다. 아오키 사장은 구름관측위성인 마이도 1호의 발전형 모델인 ‘마이도 2호’도 만들어 쏘아 올릴 계획입니다. 아오키 사장은 “지금은 구름관측위성이지만 앞으로는 범용성이 높은 위성을 개발해 일본중소기업의 힘을 세계에서 인정받고 싶다”면서 “특히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위성기술에 계속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은 ‘기업가정신’과 거리가 먼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요타자동차, 파나소닉 등 세계적 기업들이 수두룩하지만 기업가정신의 바로미터인 기업창업이 활발하지 않고 벤처기업 성공률도 낮기 때문입니다.
실제 2004~2006년 중 일본에서의 창업률은 5.1%로 폐업률 6.2%를 밑돌았습니다. 새로 창업한 기업보다 문 닫은 기업이 더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또 세계 기업가정신 모니터(GEM)란 기관이 조사한 주요국의 창업활동률을 비교해 보면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일본의 창업활동률은 2.2%로 미국(12.4%), 캐나다(9.3%), 영국(6.2%), 독일(5.4%), 프랑스(5.4%)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칩니다. 창업활동률은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과 창업 後 42개월 미만인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의 수가 18~64세 인구 100명당 몇 명인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그러나 이런 지표만 보고 일본엔 ‘기업가정신’이 없다고 단정해선 안 됩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창업률 등 지표만 갖고 기업가정신의 여부를 판단해선 곤란합니다. 일본은 가업승계가 다른 그 어느 나라보다 활발합니다. 이 때문에 지표상 창업률은 구조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서구기업의 잣대로만 재단해선 ‘통계적 착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일본기업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인공위성을 만든 오사카의 아오키와 같이 기업가정신이 넘치는 기업이 많습니다. 일본에서 기업가정신의 상징으로 불리는 교토의 기업들을 보면 특히 그렇습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이란 장기침체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교토 지역의 기업들은 불굴의 기업가정신으로 발군의 성과를 냈습니다. 교세라, 무라타제작소, 옴론, 호리바제작소, 일본전산 등이 그런 기업들입니다. 이들의 기업가정신은 ‘교토식 경영’이란 이름으로 경영학 교과서에까지 나옵니다.
실제 이들 기업은 일본 內 다른 지역의 기업들이 제자리걸음했던 1990년대 이후 2000년대에 걸쳐 10년간 매출이 배로 늘어났습니다. 2001년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로 마쓰시타전기(現 파나소닉) 등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을 대도 교토 기업의 이익률은 3.4%에 달했습니다. 교토 기업의 총자산이익률(ROA)은 1992년 2.4%에서 2004년 3.9%로 늘어났습니다. 다른 지역 전자업체는 같은 기간 1.1%에서 0.8%로 오히려 후퇴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교토식 경영’은 기업가정신의 상징
그렇다면 교토식 경영의 핵심은 무엇일까? 교토의 기업인들은 ‘시장(Market)이 없는 곳에서 성장한 것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척박한 환경이 교토 기업들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교토에는 도요타자동차나 파나소닉과 같은 대규모 완제품 제조업체가 없습니다. 일본의 전통적 기업간 거래방식인 ‘계열’에 속한 기업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창업 때부터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배경이 그들의 기술경쟁력을 높였다는 설명입니다.
반도체 부품제조장치 사업에 특화하고 있는 삼코(SAMCO)인터냇셔널의 쓰지타케 오사무 지사장은 “시장적 제약이야말로 교토 기업들의 기업가정신에 불을 붙였다”고 말합니다. 교토 기업들이 열린 수평적 분업구조와 특화기술을 지향해 세계 그 어느 기업과도 활발하게 거래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상할 정도의 엉뚱함’과 ‘자기 것에 대한 자부심과 고집’도 교토 기업 특유의 기업가정신의 밑거름이기도 합니다.
교토에서 일명 ‘교토카(Kyoto Car)’라는 전기차가 개발되고 있는 것도 교토 지역의 ‘기업가정신’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교토에선 지금 교토대와 지역 벤처기업들이 의기투합해 교토카를 개발 중입니다. ‘차체는 철판이 아닌 대나무, 연료는 태양광전기, 외장엔 벚꽃 디자인이 그려진 자동차’가 교토카의 컨셉입니다. 만화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전기자동차가 실제 교토에서 개발되고 있습니다.
환경친화적 첨단기술과 문화를 접목하는 게 특징인 교토카는 철저히 환경친화형 자동차를 지향합니다. 이 때문에 차체에 철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연료도 태양광을 이용합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인 ‘교토의정서’가 맺어졌던 도시로서 환경친화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토카엔 1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토의 전통문화도 반영됩니다. 자동차 차체엔 밋밋한 단색 외장 대신 꽃무늬 등 일본의 전통문양이 디자인될 예정입니다. 첨단 환경 자동차에 문화를 담겠다는 포부입니다. 2010년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입니다.
이 교토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일본의 명문 국립대인 교토대의 벤처비즈니스랩(VBL) 마쓰시게 가즈미 부학장입니다. 마쓰시게 부학장 뒤엔 교토 지역의 혁신적인 벤처기업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마쓰시게 부학장은 벤처기업 8곳과 교토카 개발 컨소시엄을 구성한 상태입니다.
철판을 쓰지 않고 대나무 소재와 탄소섬유를 사용할 차체 개발엔 이 지역 최고의 나노기술 벤처기업이 참여했습니다. 전기자동차의 핵심인 태양광전지와 연료전지 등도 지역벤처기업이 직접 개발하고 있습니다. 교세라(정보통신기기), 옴론(전자부품), 덴소(자동차부품) 등 일본 최고 부품기업들의 고향인 교토의 기술력이 교토카에 집약되는 셈입니다.
어려서부터 ‘기업가정신’ 교육
일본 곳곳에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기업이 많은 데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기여한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본정부는 기업우선정책을 통해 기업환경을 개선하는데 세계 그 어느 나라 정부보다 열성입니다. 또 ‘기업가정신’을 더욱 북돋기 위해서도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의 성장동력확충이란 측면에서 기업가정신육성을 중요한 정책과제로 설정하고 1999년부터 초∙중∙고∙대학 등 교육기관을 통해 기업가정신육성교육을 강화해 오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경제산업성이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가 교육입니다. 경산성은 기업가가 갖춰야 할 마인드 중 도전정신, 창조성 등은 사람의 가치관이나 행동양식과 관련된 만큼 일찍부터 교육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경력개발경로(Career Path)교육을 실시하도록 학습지도요령에 명기했습니다. 경력개발경로교육이란 학생 개개인의 능력이나 적성을 고려해 장래에 목표를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직업의식을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그 결과 2006년 공립중학교의 직장체험실시율은 94.1%, 공립고등학교의 인턴십 실시율은 62.0%에 달합니다.
또 초∙중∙고교 교육용으로 기업가교육 교제와 교육 프로그램 개발, 교원 매뉴얼 개발 사업, 벤처기업 경영자 등의 학교파견, 교사의 벤처기업연수사업 등도 벌이고 있습니다. 기업가교육에 공헌한 단체나 학교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표창도 합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도 기업가교육은 이어집니다. 쓰쿠바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700개 대학 중 약 40%인 281개 대학이 기업가 교육과목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이와종합연구소가 와세다대학 등 22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가정신 관련 강좌 개설 수는 2005년 71개에서 2006년 131개, 2007년 151개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 같은 교육지원으로 인해 대학에서 창업한 벤처기업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1988년 39개사에 불과했던 대학 發 벤처기업은 1998년 203개사, 2001년 598개사, 2006년 1,590개사로 증가했습니다.
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합니다. 창업초기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원(엔젤) 확충제도가 대표적입니다. 일본은 벤처기업의 창업과 성장과정에서 엔젤 투자자가 차지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엔젤 투자에 각종 세제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예컨대 회사 설립 3년 이내의 기업으로서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벤처기업에 엔젤 투자를 하는 경우 엔젤 투자액을 총소득에서 공제할 수 있는 ‘엔젤투자소득공제제도’를 시행 중입니다.
또 기업가정신이 발현될 수 있는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 창업보육사업(Business Incubator)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창업보육사업은 1999년 신사업창출촉진법 시행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추진됐습니다. 1999년 30곳에 불과했던 창업보육센터가 신사업창출촉진법 제정 이후 급속히 늘어나 2007년 末 현재 보육센터 수가 190곳에 달합니다.
창업촉진을 위한 규제완화도 빼놓을 수 없는 기업가정신 지원 인프라입니다. 일본정부는 창업 활성화를 위해 최저자본금제도(종전 1,000만 엔)를 폐지해 1엔짜리 주식회사도 설립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창업설립절차고 간소화하고 유한책임회사(LLC), 유한책임조합(LLP) 등 회사형태를 다양화함으로써 창업자의 선택의 폭도 넓혔습니다.
일본정부는 기업가정신 함양을 위해 다양한 이벤트 사업도 펼치고 있습니다. 기업가정신 함양과 벤처창업촉진을 위해 창업 벤처국민포럼, 벤처 플라자, 벤처박람회 저팬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창업벤처국민포럼은 창업경험자와 학자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모여 기업가정신의 발휘와 고양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는 공식조직입니다. 이 포럼은 매년 기업가정신 함양과 벤처기업육성 등을 위한 세미나와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벤처박람회와 우수벤처시상식도 엽니다.
벤처기업이 투자자나 사업파트너에 대해 사업계획서를 설명하는 ‘벤처플라자’ 사업도 정부가 주최합니다. 벤처플라자 사업은 사업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자금이나 사업제휴 등 경영자원의 원활한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 1년에 6번 정도 개최합니다.
일본의 대표적 경제단체인 게이단렌 관계자는 “경제발전을 맨 앞에서 이끄는 주체는 누가 뭐래도 기업”이라면서 “기업가정신이야말로 나라경제를 부강하게 만드는 비타민과 같은 영양소”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