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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지난 6월 21-22일(금, 토)에 대구중앙교회(담임: 박병욱목사)에서 부부행복캠프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의 명산으로 알려진 팔공산 중턱에 있는 유스호스텔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이지만 이곳 팔공산은 시원했습니다.
부부행복캠프를 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듭니다. 부부가 함께 마음을 합하여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양쪽이 원해서 함께 참석하면 감사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쪽은 원하지만 다른 쪽은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마지못해 끌려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쨌든 참석했던 분들이 정말 모임에 오기를 잘했구나 하면서 만족하면 모임은 성공입니다. 15쌍, 30명이 참석했던 부부모임인데 진행부에서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이틀 동안 참석한 부부들과 이들을 섬기는 도우미들의 자녀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회학교 전도사님들과 여러 교사들이 섬겼습니다. 모든 순서를 알찬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서 애씀이 있었습니다.
한 부부는 20세에 만나서 결혼했고 한 사업장에서 20년을 24시간 함께 지내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내 남편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울먹였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주변에 가까이 있는 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간의 성숙입니다. 늘 일상으로 대하다보면 그 사람의 소중함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밖에서 파랑새를 찾아 헤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음이 옵니다. 집안에 있는 멧새가 내가 찾던 파랑새라는 사실입니다.
금년 7월 1일이면 저희 가족치유상담연구원이 이곳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 사무실을 개소한지 이제 만 2년이 됩니다. 이곳에서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을 참여하고 다양한 상담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들은 모두가 소중한 영혼들입니다. 이들 모두가 나의 인생의 동역자이고 스승이기도 합니다. 나도 이들의 삶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전에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만 좋았는데 이제는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소중합니다. 내 주변에 실패했던 사람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이것이 모든 상담자들의 소박한 꿈입니다.
김 영 근 목사<예수사랑, 가족사랑 발행인>
2013년 7월 가족치유회복중보기도
어떤 자매님의 간증입니다. “나에게는 예수님을 믿는 것은 너무나 외로운 싸움이었어요. 왜냐하면 우리 가정은 내가 처음으로 믿음의 씨앗을 뿌리는 전도사역할을 했거던요. 일요일에 교회에 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어요. 주위에서 핍박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저를 인도해주시고 교회에 나오라고 말씀하신 권사님께서 가끔 오셔서 기도로 하나님께 연결시켜주시고 사람과의 통로도 열어주셨습니다. 구역식구들은 나의 처한 상황을 놓고 기도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집안 식구들을 전도했고 식구들과 평안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 자매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중보기도의 능력을 새삼스럽게 경험합니다.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힘입니다. 이 종형목사님은 미국에서 목사은퇴 후에 에티오피아선교사로 활동합니다. 제에게는 처외삼촌이 되는 분인데늘 이메일로 QT말씀을 보내줍니다. 저도 열심히 이 목사님의 사역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 선교사님들이 사역의 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얻습니다.
내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우고 친척, 이웃가정, 지역공동체와 선교사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드립시다. 중보기도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입니다.
<중보기도자가 됩시다>
1. 가족중보기도는 개인•교회별로 정해진 시간에 하루 1회 이상씩 합시다.
2. 이웃 가정을 위해 중보하기를 원하는 여러분이 참된 중보기도 사역자입니다.
3. 내가 사는 <시ㆍ군ㆍ구>(전국251개)의 가정들의 회복을 위해 기도합시다.
<일반기도제목>
첫째, 가족식구들의 상한 마음을 건강한 마음으로 변화시켜주옵소서!
둘째, 내가 먼저 주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가족 안에 용서를 실천하게 하소서!
셋째,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건강한 자아상을 갖게 하소서!
넷째, 가족식구들의 생각이 합리적인 생각과 성경적인 생각으로 바꿔지게 하소서!
<특별기도제목>
첫째, 7월 여름 휴가철에 모든 가정 식구들의 영적회복과 관계회복을 허락하소서
둘째, 청소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인격과, 신앙과 관계를 갖게하소서.
셋째, 저 북녘땅 동포, 특히 그 땅의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인권을 허락하소서.
넷째, 지구촌의 모든 노년세대를 축복해주시고 그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소서!
치유목회칼럼 22 나의 치유목회 박재표 목사(광주기독병원 원목)
‘그 인간’과 ‘박넝쿨’
사람에게 쓰는 인류보편적인 고상한 단어 ‘인간’입니다. 그런데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인간 앞에 ‘그’라는 말을 항상 붙입니다. ‘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생각하면서 ‘그 인간’이라고 부릅니까? 요나는 ‘그 인간들’ 때문에 매우 싫어하고 성내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요나가 말하는 그 인간들은 니느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악한 행실은 ‘그 인간’이라 칭함을 받아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마음이 들까요? 이런 마음이 아닐까요?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요나가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오실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에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늘 아래에 앉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행을 심판하여 그 성읍을 한 순간에 망하게 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요나의 마음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 보다 먼저 요나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어야만 했습니다. 때문에 요나를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름 하여 ‘요나 변화 프로젝트’입니다.
요나 변화 프로젝트의 첫 번째 도구는 ‘박넝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예비하여 요나를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괴로움을 면하게 해 주셨습니다. 작전대로 요나는 박넝쿨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요나 변화 프로젝트의 두 번째 도구는 ‘벌레’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벌레를 통하여 요나의 기쁨이 되었던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였습니다. 박넝쿨로 인한 요나의 기쁨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요나 변화 프로젝트의 세 번째 도구는 ‘동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시고 해가 뜰 때 요나의 머리에 마치 돋보기를 댄 것처럼 뜨거운 열기로 쪼이게 하였습니다. 요나는 죽기를 구할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 졌습니다.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상실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나의 기쁨을 한 순간에 사라지게 만들었던 ‘벌레’와 같은 것입니다. 건강한 육체의 상실, 경제적 상실, 가족의 상실과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상실 또한 긍정적 의미에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도구일 수 있습니다. 상실을 통한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들의 발견,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쓴 뿌리를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의 변화 프로젝트의 중요한 핵심일 수 있습니다.
고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요나에게 있어서 ‘뜨거운 동풍’은 견딜 수 없는,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은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들의 삶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고 그 고난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큰 도구가 되었습니다. 고난과 고통은 ‘그 인간’을 향한 우리의 내면을 ‘하나님께로 향하게’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 자유함을 얻게 합니다.
요나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질문합니다.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는 좌우를 분면하지 못하는 자가 12만 여명이 있는데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그 인간’이라는 미움의 대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사랑하시어 그 내면에 있는 미움을 제거하시고자 요나 변화 프로젝트를 실시하였습니다. 요나서는 결말이 없이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그 인간’을 용서하고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쓴 뿌리를 발견하게 될 때 하나님의 변화 프로젝트는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쓴 뿌리를 아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거되어져 우리의 삶이 행복해 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소중한 마음이 ‘그 인간’으로 채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말씀으로 채워지는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
김영근의 가정행복교실 18
‘사소한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나의 초등학교 친구 장석진이는 ‘No’가 없는 친구입니다. 미남이고 착하고 의리있고 리더십도 있어서 친구들에게 인기 짱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계속해서 반장을 했습니다. 부인은 동갑내기 초등학교 1년 후배인데 요즘 인기있는 직장인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으니 처복도 많습니다. 친구는 아직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으나 최근에는 부인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어 감사합니다.
이 친구의 절친한 친구가 명동에 있는 한 호텔의 책임자로 있는데 친구의 친구 초청으로 명동에 있는 호텔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 덕분에 호강을 했지요. 점심식사 후에 나는 친구와 명동거리를 함께 걸었습니다. 젊은이의 거리 명동은 이제 외국인 관광객,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분주했습니다. 명동의 이곳 저곳을 걷다가 바오로딸 서점에 들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두 권을 사서 친구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책 제목은 송봉모의 <상처와 용서>와 <관계속의 인간> 입니다. 특히 송봉모교수의 <상처와 용서>은 작은 소책자이지만 내가 받은 감동을 나누려고 종종 선물을 합니다. 이 책에서 ‘사소한 상처에서 벗어나려면’이라는 주제로 그 해결방법을 다섯 가지로 제시합니다. 이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사소한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기대하지 말라.” 특히 상대방이 어머니처럼 나를 돌보아 주고 헤아려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둘째, 사소한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추측하지 말라.” 사람들은 상대방을 제멋대로 추측해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 사소한 상처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앞으로는 인정과 애정없이는 못산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정이 아닌 자유로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넷째, 사소한 상처 때문에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당신 안에 있는 상처의 텃밭을 제거하라.” 상처의 텃밭은 ‘나는 완벽해야 한다.’ ‘나는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된다.’ 등의 태도는 모두 상처를 낳은 텃밭이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사소한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자기 존중심이 없는 사람들은 쉽게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단죄하기에 상처를 받기가 쉽기에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며 자신을 사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대구에서 부부행복캠프를 인도하면서 참여했던 한 형제는 간증시간에 자기부부의 주변 부부들에게만 간증기회를 주고 자신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아서 서운했다고 하면서 자원해서 간증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참 좋은 부부였습니다. 이 형제는 행복캠프에서 깨달음을 나누면서 가정의 소중함도 경험했고 아내에게 상처주었던 사건도 기억하면서 용서를 구했고 더욱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이 형제는 작은 상처를 받기 않기 위하여 “스스로 추측하지 말라”는 원리를 잘 실천했습니다. 강사가 자기커플에게 간증하도록 권면하지 않은 것은 의도가 있는 것으로 추측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간증할 기회를 선택했습니다.
저자 송봉모 교수는 한 사례를 인용합니다. 어떤 부인이 갑자가 남편이 세상을 떠났는데 연약한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큰 딸은 아빠의 죽음에도 울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분노를 느끼며 엄마가 아빠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말을 거짓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오해가 풀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딸의 잘못된 추측이 딸과 엄마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버렸지요. 나중에 딸은 울지 않았던 엄마의 참 뜻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잘못된 추측으로 인해서 오해하고 오해받으면서 얼마나 상처를 주고 받았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그것이 큰 상처가 되어서 인간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간 때도 많았지요. 그렇습니다. 함부로 상대방을 추측하지 말고 상대방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 ‘의사확인’을 하는 것도 현명한 일입니다.
문형욱의 젊은 청춘을 향하여 17
데이트에 필요한 제 9계명: 성공한 데이트를 즐기자
한 자매의 이메일이 왔다. 자매는 소개팅을 하면 너무 잘 엇갈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마음에 들면 상대방이 싫어하고 상대방이 적극적이면 자신의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는 30대 중반이 되어가고 집에서는 잔소리도 심해지고 너무 답답하다 는 메일이었다. 자매님과 몇 번의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자매님이 꼭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쉽게 결정을 내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데이트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꼭 좋은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니 이글을 읽는 믿음의 청년이라면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는 자기 자신의 마음 중에 내가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생각이다.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결혼을 하려 하십니까?
이 결혼에 대한 목적이 데이트에 대해 때로는 여유 있게… 때로는 급하게 마음을 먹게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무엇이든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결혼이 급하다면 다시 한 번 여유 있게 자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결혼의 목적도 다시 한 번 점검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결혼의 목적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고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함이라면 데이트 역시 쫓기는 느낌으로 할 것이고 빨리 상대방을 파악해서 결정을 하려 할 것이다. 또한 시간이 급하다고 느껴지고 이번에 만나는 사람과 데이트에 반드시 성공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초조한 모습이 상대방에게 느끼게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의 목적이 하나님에게 더 큰 영광을 돌리기 위한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만남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여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데이트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괜찮을 것이다. 데이트 시에 여유롭게 상대방을 충분히 알아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판단하게 될 것이다.
성공한 데이트는 어떤 것일까? 데이트는 행복한 결혼을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성공한 데이트를 한 커플들이 행복한 결혼 생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며 믿음의 가정을 꾸려 나갈 것이다.
성공한 데이트는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버리고 하는 데이트가 아니다. 성공한 데이트는 데이트 자체만으로 충분히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한다. 성공한 데이트는 상대방이 거절해도 상대방이 나를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마음을 갖는 데이트 이다. 성공한 데이트는 이 데이트를 통해 나 자신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게 되는 데이트이다. 이러한 성공한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께 나의 삶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이 필요하다. 또한 데이트를 나가기 전 어떤 데이트를 할 지 충분히 고민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음란하고 악행의 데이트를 버리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서로를 섬길 수 있는 데이트를 즐겨보길 바란다.
여러분의 데이트는 충분히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있으십니까?
김희라의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하자(40)
내가 본 나와 남이 본 나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자.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타인에게 비춰지는 나는 전혀 다를 수 있으며 때로는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 상담이나 집단 상담을 할 때 “자신이 누구인가?”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자주하는 것이 이 작업이다.
‘내가 본 나’와 ‘타인이 본 나’의 격차가 심할수록 내적 갈등과 외적 갈등이 심하다. 내가 본 나는 ‘성실하고 부지런 하며,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밤을 새워서라도 맡은 일은 기한 안에 마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부모, 배우자, 친구, 선생님 등) 나에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는 ‘굼뜨며 책임감이 없고 게으르다.’고 하자. 그러면 누가 본 내가 ‘참 나’인가?
타인의 평가는 외적인 모습으로 이미지의 많은 부분이 좌우되므로 아무리 내적 능력을 쌓는다 해도 보여 지는 이미지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첫 인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그 이후에 아무리 성실한 태도를 보인다 하더라도 낙인찍기를 하고 평가를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
집집마다 아침 기상시간이 다르듯이 게으르다는 국제표준이 없는 한 평가 기준이 다르다. 새벽 5시에 기상하는 부모님은 8시에도 잘 못 일어나는 아들을 무조건 게으르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본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친해지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당신은 처음 사람을 만날 때 관계 사이에 벽을 두지 않고, 어떤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하자. 그러나 당신의 가까운 사람은 ‘당신이 사람들을 대할 때, 공명정대하지 못하며 편협한 인간’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면 그런 당신에 대한 낮은 평가 혹은 좋지 않은 평가(당신의 관점에서 부당한 평가)를 받을 때 당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분노하고 타인의 평가를 전적으로 부정하던 지 아니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나는 000하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매일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어떻게 똑같다고 말할 수 있겠는 가?
“자신이 누구인가?”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으로 거울기법(Mirror Technique)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거울에 자기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특히 부정적 정서를 경험할 때 곧바로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면, 부정적 정서를 해소하는 데 크게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여기 에릭슨이 사용한 거울기법(mirroring)의 두 가지 성공 사례가 있다. 에릭슨이 근무하던 병원에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두 남자가 있었다. 에릭슨은 두 남자를 긴 의자에 앉혀놓고 서로 대화를 나누도록 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두 남자는 상대가 얼마나 어리석은 주장을 하는지를 알게 되고, 자신이 매우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병원에서 신축건물을 지을 때, 자칭 ‘예수’라 주장하는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예수님 하셨던 목수 일을 하게했더니, 정상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녹음기에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듣거나 비디오에 녹화된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어색하고 이상하다. 분노가 극에 달할 때나 우울할 때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서 보는 것이 좋다. 내가 웃어야 거울 속의 나도 웃는다. 대화할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짓는 지 타인은 알지만 나는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대체로 내가 행동하는 나 보다 훨씬 착하고 따뜻하며 정직하고 훌륭한 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나인가? 행동하는 내가 나인가? 통합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보는 안목을 기르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에베소서 5장 1-2절)
김영근의 국토도보순례여행6- 전북 봉동, 전주, 임실 -
순례여행 열여섯 번째 날(2010.1.5): 봉동에서 만난 동기목사님
눈이 많이 내려서 걷기가 매우 불편했지만 봉동읍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 삼례읍을 거쳐서 봉동읍으로 갑니다. 약 6시간 정도 걷는 거리입니다. 눈덮인 걸을 걷기가 미안합니다. 순백의 대지위에 발자국을 남긴다는 것이 못내 미안합니다. 멀리 산야가 들어옵니다. 아름다운 산야입니다. 황목사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까지 왔는가 묻고 차로 마중을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환영은 감사하지만 그냥 힘이 되는 대로 걷겠다고 했지요. 항상 걷기를 시작할 때는 유혹이 옵니다. 오늘만 차를 타볼까, 아니면 버스를 타다가 걸어볼까 이러한 생각이 들지만 우선 무조건 걷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소중한 깨달음은 웬만큼 걸으면 모든 문제가 정리가 됩니다.
우리들 인생도 종종 이런 생각 저런 생각만 하다가 시간을 허송세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인가 움직여야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고 맙니다. 돌다리는 건너야 하는 것인데 안전한지 두드리기만 하면 지혜로운 자세는 아닙니다. 물론 돌다리의 안전점검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결국 인생은 모험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요.
폴 투르니에는 세계적인 상담학자입니다. 이 분은 원래 가정의학과 내과계통의 의사였지만 의사직업보다는 심리상담가로 큰 영향력을 끼쳤던 분입니다. 이 분이 책을 한 권을 썼습니다. 몇몇 분들에게 출판관계를 상담해보니까 여러 가지 책이 홍수처럼 나와 있는데 굳이 그런 책을 낼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부정적인 반응이 다수였다고 합니다. 이 분이 만약 그러한 부정적인 반응에 귀를 기울이고 책 출판을 그만 두었다면 상담계통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는 책 출판을 감행했지요. 그 후에 이 분은 세계적인 상담학자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잘 알려졌지요. 이 분의 "모험으로 사는 인생"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한국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를 지나갑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은 언제 다시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그렇지요. 대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대지위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이 대지에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땀을 흘리며 농사짓고 자식을 기르고 이웃과 더불어 오랜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그들의 숨소리와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논에 서로가 물을 대겠다고 싸움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열심히 모은 돈으로 자녀들을 익산으로 전주로 서울로 유학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지나간 역사는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은 그들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삼례읍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 우석대학교가 있었습니다. 우석대학교가 전주에 있는 줄 알았는데 삼례읍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네요. 지나는 길에 오뎅과 붕어빵을 파는 집이 있어 길손이 들려서 오뎅을 시켜서 먹었습니다. 마음씨 좋은 아줌마는 자기 나름대로의 오뎅국물에 들인 정성을 이야기하면서 오뎅국물이 일품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뎅국물이 맛이 있었습니다. 붕어빵도 검은쌀 붕어빵입니다. 암에도 좋고요, 정력에도 좋다는 것입니다. 길을 떠난 나그네에게 정력이 좋아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붕어빵 아주머니에게 속으로 화이팅을 외쳐드렸습니다
멀리 눈덮인 산야가 들어왔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자연은 저렇게 아름다운데 인간들은 탐욕으로 저것을 마구 개발해서 몸살을 앓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 기후재앙이 인간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인간들은 좀 더 편리하게 살려고 큰 차, 큰 집, 좀 더 시원하게, 좀 더 따뜻하게 살려고 하다가 석탄, 기름을 함부로 남용하고 지구촌에 있는 거대한 삼림들을 마구 남벌해서 기후재앙이 오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인도양과 태평양에 있는 섬나라들이 없어지는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구가 몸살을 앓으니까 홍수, 냉해, 지진, 가뭄, 사막화, 해일 등이 더욱 심해지는 것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탐욕을 채우기 위한 이용물이 아니라 인간들이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인간의 가장 좋은 벗인 자연을 학대했으니 그 벗으로부터 인간들이 당해야 하는 대가는 가혹합니다. 동학농민길이라는 길 이름이 인상적으로 길손에게 들어왔습니다. 이곳에서 고부군수 조병학의 학정에 반대한 농민들이 녹두장군 전봉준을 중심으로 동학군을 형성해서 관군과 전쟁을 벌인 동학혁명은 초기에 승승장구하다가 나중에는 관군에게 패했습니다. 동학혁명은 비록 실패한 농민전쟁이었지만 억울한 민초들의 인권을 찾기위한 매우 가치있는 투쟁입니다. 그렇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냥 참는 것이 능수는 아닙니다. 불의에 용감하게 맞서서 항거하는 일이 아름답습니다.
동학은 원래 최재우의 인내천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이고 민심이 천심이라는 뜻이고 이것은 주권재민사상이고 백성들을 하늘처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기독교의 이웃사랑과 맥을 통합니다.
이러한 불의에 대한 투쟁이 이 땅에 민주화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2차 대전 후에 가장 성공적인 역사로 평가를 받는 한국의 20세기 후반의 역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켰습니다. 그러한 모태는 저 들판에서 땀을 흘렸던 민초들의 성실함과 불의에 항거했던 동학혁명전사들의 피흘림이었습니다.
봉동읍을 4km 정도 남겨놓고서 너무 지쳤습니다. 여독이 조금씩 밀려옵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가게 앞에서 자판기 커피를 하나 뽑아 마시면서 여행길의 피곤함을 달랬습니다. 자판기 커피값은 삼백원! 삼백원에 사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때로 삼백 원은 삼만 원이 주지 못하는 행복을 줍니다. 걷다보면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행복해보이고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저녁마다 잠자리를 염려해야 하는 길손에게 저녁에 고정된 잠자리라도 있는 사람은 행복해보입니다. 이런 면에서 노숙자들의 삶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멀쩡한 집을 놔두고 노숙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인생에서 실패해서 가정에서 버림받고 노숙을 선택합니다. 이들도 우리들의 이웃입니다.
버스를 타고 봉동버스터미널에서 내려서 봉상교회까지 갔습니다. 봉상교회는 읍소재지에 있는 교회이지만 이곳에서 잘 알려진 교회입니다. 필자가 가족치유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강의사역을 하고 있을 때 광주서석교회에서 목양하시던 황갑순목사님은 저를 초청해서 그 교회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번 여행에서 황목사님을 꼭 만나고 싶어서 익산에서 전주로 가는 빠른 길을 택하지 않고 봉동읍을 거쳐 전주로 가기로 했습니다. 교회에서 황목사님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반가운 만남을 갖고 왕궁온천탕을 갔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목욕은 원도 없이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필자는 팔자가 늘어진 사람입니다. 왕궁온천탕은 시설도 물도 좋고 탕도 넓고 모든 것이 넉넉했습니다. 여행길에 피로를 풀도록 한 황목사님의 배려에 감사했습니다. 이번에 만났다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천국으로 귀천했던 신학동기들도 벌써 여러 명이 있습니다. 황목사님과 함께 장신대 신대원에 35세의 나이로 79기로 입학했던 네 명의 동기들 중에 한 명인 고 이윤민 목사님은 벌써 오래 전에 귀천을 했습니다. 그 사모님이 남편의 뒤를 따라서 여전도사님으로 목양사역을 해왔습니다. 이윤민목사님이 생각납니다. 기숙사에서 있을 때에 종종 우리 방에 놀러오기도 했었지요. 늘 넉넉한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이 목사님, 목사안수 받고 얼마 되지 않아서 소천을 했습니다. 짧고 굵게 살다가 가셨지요.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들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님들의 뒤를 따라 갈 것입니다.
"주님, 여행길에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까지 안전하게 지켜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봉상교회를 축복해주시고 황갑순목사의 목양과 가정을 축복해주시고 완주군의 모든 가정들의 치유와 회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순례여행 열일곱 번째 날(2010.1.6): 향토문화의 보고 전주로
아침식사로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습니다. 주로 아침에 집에서는 미숫가루를 곁들인 우유와 시리얼과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는데 여행 중에는 콩나물 해장국을 주로 먹게 되었습니다. 호남지방의 음식은 정갈하고 맛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타지역의 음식이 맛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모든 음식은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분들의 손맛은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침식사 후에 봉상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문화의 집을 견학했습니다. 관람한 뒤에 이곳에서 카페글을 올렸고 직원들의 도움으로 사진을 올리는 기술도 배우고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오후에 봉동읍에서 전주로 향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는 눈이 많이 녹았습니다. 길을 안내해준 분이 만경강을 따라 전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서 시도하려고 하다가 길이 멀어서 그만 두었습니다. 만경강에는 작은 돌다리가 놓여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필자가 돌다리를 건너가는 이야기를 했는데 돌다리라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봉동에서 전주 가는 길에 호남고속도로를 만납니다. 전주 가는 길에 많은 차량이 다니지만 갓길이 넓어서 걷기에는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길을 걷다가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몇몇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옛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사람들의 인생이란 관계입니다. 한 인격의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인생의 멋이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통하여 우리들의 인격이 더욱 성숙되고 삶이 더욱 풍성해집니다.
전주역에서 백제로를 통해서 이광익목사님이 섬기는 비전교회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예배시간관계로 저녁 6시까지는 도착해야 하는데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피곤해서 조금은 휴식을 취할 겸 오뎅집에 들려서 오뎅을 사먹었습니다. 삼례읍에서 천원에 네 개 하던 것이 이곳에서는 천원에 세 개였습니다.
전주시내는 깨끗하고 길이 넓었습니다. 늘 차를 타고 다녔던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그 넓은 전주시내를 이렇게 걸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너무나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행운을 만났습니다. 전주 안디옥교회를 본 것입니다.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었던 곳인데 이렇게 전주 시내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만났네요. 이것은 행운 중의 행운입니다. 깡통교회이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교회의 예산을 주로 선교와 구제와 봉사에 활용합니다. 안디옥교회의 문이 열려 있어서 양철으로 된 둥그런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예배당 안에서 잠시 기도했습니다.
롯데백화점을 지나서 우회전으로 하라는 친구의 말을 따라 가는데 가는 길이 멀어서 택시를 탔습니다. 비용이 2200원이 나왔는데 그냥 잔돈은 드렸습니다. 전주비전교회의 이광익목사님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전주 시내에서 기존교회를 섬기다가 새로 개척해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길손에게 말씀증거를 부탁해서 비전교회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개척교회를 섬기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이광익목사님의 교회섬김에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기도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에 유명하다는 음식점에서 콩나물 비빔밥으로 저녁을 먹고 전북노회 노회회관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곳은 노회에서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은퇴한 교역자들의 예배장소로 모임을 갖는 은목교회도 있었고 4층에는 게스트 룸이 있었어요. 숙소를 준비한 분이 밀감을 준비해서 밀감을 즐기면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이 노회회관을 드나드는 모든 주의 종들에게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빌었습니다.
순례여행 열여덟 번째 날(2010.1.7): 옥정호의 아름다운 예수공동체
이광익 목사님과 아침식사를 한 뒤에 오이석목사님이 사는 거처인 임실로 향했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옛 국도 27번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국도 27번은 전주에서 출발해서 전남 벌교까지 이어지는 왕복 2차선 도로입니다. 지나가는 길에 전주 교도소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전주교도소는 가족 중의 한 분이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수감되었던 곳이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아내는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어있는 오빠를 만나기 위해서 전주까지 먼 길을 갔었노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수감되어있는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는 70년대와 80년대는 매우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정의를 위해 민주화운동을 했던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교도소 앞을 지나며 높은 담장을 보았는데 저 담장이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을 갈라놓는 장애물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주님, 저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그들의 삶에 새로운 축복의 통로가 열려지게 하옵소서! 저들의 가족들에게도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감격적인 만남을 허락하여주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저 교도소 안이 빈교도소가 되면 좋겠지만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들의 치유와 재활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7번 지방국도는 걷기에 참 좋은 도로였습니다. 가까이 있는 겨울 논밭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립니다. 근처의 민가들을 바라보면서 민초들의 삶의 향기를 느껴봅니다. 추운 날씨지만 걸으면 땀이 나고 힘이 솟아납니다. 지나면서 본 문정교회의 간판이 인상적이었고 교회의 표어인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도 인상적입니다. 들꽃 교회의 간판이 보입니다. 길손은 피곤도 풀고 기도도 하려고 그 교회당에 들어갔습니다. 교회에서 찬송도 부르고 말씀도 보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교회는 사회참여에 관심이 많은 기독교장로회에 속한 교회여서 한겨례신문에서 발행한 잡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교회가 지향하는 자유와 회복과 상생의 공동체라는 교회의 표어도 인상적이었고 교회입구에 적힌 하늘과 땅과 이웃이라는 표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웃과 삶을 나누겠다는 교회의 구호에 걸맞게 들꽃 도서관이 있었고 함께 차를 마시는 공간도 있었습니다.
구이면은 완주군에 속합니다. 봉동읍도 완주군에 속하는데 원래 완주군에서 전주라는 큰 도시가 빠져나가고 나서 전주시가 빠져나간 완주군의 남쪽지역은 구이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모악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 산에도 오르고 싶었지만 길손에게는 힘도 시간도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렇지요, 보고 싶은 곳을 모두를 볼 수도 없고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도 없습니다. 어쨌든 우리 인생은 선택입니다. 잘 선택하고 선택한 일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한 음식점에 들려서 청국장을 시켜서 먹었습니다. 값이 4천원인데 맛이 좋았습니다. 한우고기값이 매우 싸서 오이석목사님 댁에 선물로 드리려고 고기를 얼마 샀습니다. 걷는 길이 피곤했지만 열심히 걸었습니다.
지나는 길에 모악산의 정경이 아름답게 들어옵니다. 눈 덮인 모악산!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가까운 산과 먼 산이 어울려져서 기울어지는 석양의 태양과 함께 펼쳐지는 아름다운 광경에 잠시 넋을 잃었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라는 노래가 그냥 흘러나옵니다.
오목사님은 일이 있어서 강진면 소재지까지 왔다고 전화했습니다. 옥정호가 눈에 들어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호수입니다. 옥정호의 물은 순창과 곡성과 구례를 거쳐서 전남 광양시와 경남 하동군을 거쳐서 남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전국에서 가장 물이 깨끗하다는 섬진강 상류에 세워진 댐입니다. 원래는 운암호였는데 호수 이름이 옥정호로 바뀌었습니다.
강진면소재지에서 사모님을 만났습니다. 가날픈 여인으로 생각했던 사모님은 오이석목사님의 신앙동지가 되어서 황토집을 짓고 다양한 사업을 할 때에도 동역자로서 힘든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네 자녀를 시골에서 건강하게 키우면서 마음에 평강과 기쁨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신실한 주님의 딸이었습니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남편인 오목사님과 결혼했는데 공동체를 지향하는 아들의 사역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아가야, 너는 공동체가 무엇인지 알겠느냐?"하는 질문에 "저도 아직 공동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하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오목사님의 공동체를 찾아가는 산간도로는 큰 도로와는 달리 눈이 많이 녹지를 않았습니다. 언덕받이에 쌓인 눈 때문에 차가 집으로 올라갈 수가 없어서 아래에 차를 두고 걸어 올라갔습니다. 내가 떠나있던 동안에 많은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우선 살고 있는 흙벽돌집이 세워졌고 황토방과 야외 화장실도 만들었습니다. 집의 현관에는 곶감을 깎아서 많이 매달아 놓았습니다.
노모인 권사님에게 큰 절을 올리려고 했는데 절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그냥 인사만 했습니다. 87세인 어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의사소통은 조금 불편했지만 몸은 건강했습니다. 아들인 오목사님은 어머니에게 치매가 시작되어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친은 아들이 평범한 목회의 길이 아닌 특수한 사역을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느라고 눈물샘이 말랐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정갈하게 준비한 저녁을 맛있게 먹고 그 동안 삶의 편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 동안에 있었던 가정의 여러 아픔들을 이야기했고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목사님 가정은 이곳에서 다양한 삶을 살았습니다. 산양도 키우고 그 젖으로 치즈도 만들고 사슴도 키웠습니다. 매실차도 만들고 청북장도 만들면서 다양한 먹거리도 만들면서 부부가 신앙의 내공과 외공을 열심히 쌓아왔습니다. 이들 부부는 한국교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곳 임실골짜기에서 온몸으로 영성의 삶을 신실하게 살았습니다.
자녀를 사남매 두었는데 막내딸이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이 가정의 행복의 원천처럼 보였습니다. 막내딸 때문에 이 가정에는 빈둥지 증후군이 늦게 오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가정의 진정한 행복은 자녀양육입니다. 자녀양육은 분명히 힘든 일이지만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입니다. 우리들의 옛조상들도 아기 울음소리가 담장밖을 넘어야 그 가정에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왔지요.
빈둥지 증후군은 우리 가정에 여러 해 전에 벌써 시작이 되었습니다. 큰 아들은 ROTC 장교로 군대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는 대학의 선교공동체인 CCC에서 공동생활을 대학을 다니느라고 집을 떠났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지냈던 여러 해 전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종종 자녀를 기르면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자녀를 기를 때가 힘은 들지만 가장 행복한 때라고 인생의 선배입장에서 말을 들려주곤 합니다.
"주님, 오이석 목사님의 가정과 남은 목양사역을 축복해주세요, 이 공동체를 드나드는 모든 심령들에게 주님의 생명과 평안과 행복이 넘치게 하여주옵소서!"
정광일의 영성이야기 19
서로 사랑하는 두 돌덩이
지난 가을, 아래 개울에서 발을 씻다가 돌 하나에 눈이 갔다. 자주 내려가는 개울이었는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다. 여름철 비가 많이 올 때면 산 위에서부터 돌들이 함께 쏟아져 내리곤 하는데 아마 그때 굴러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럴 때의 돌 구르는 소리는 대단하다. 지난여름 얼마나 비가 많이 왔는지 개울이 몇 번씩 넘쳐 쌓아올린 축대가 무너질 위험에 처하기도 하였다. 산불도 무섭지만 물난리도 이에 못지않다. 그 양이며 그 속도며 모든 것을 다 쓸고 갈 기세다. “불이 난 자리는 재라도 남는데 물난리는 그런 흔적도 없다”는 말처럼 모든 걸 휩쓸어 버린다. 그렇게 쏟아져 내렸는데 신기하게도 오히려 남기고 간 것이 있구만. 정말 눈이 번쩍할 만큼 신기했다. 다름 아닌 그 모양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사랑의 마크인 ‘하트’ 형태를 뚜렷이 하고 있는 돌이 눈에 뜨인 것이었다. 마치 정으로 쪼개서 일부러 형태를 만든 것처럼 보였다. 자연 그 자체의 돌,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런 모양의 자연석을 본 적이 없었다. 귀한 수석을 캐내는 마음으로 가져다가 입구 앞 ‘가락재 영성원’이라고 새겨진 돌비 앞에 세워놓았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겨울 지나 얼음이 녹고 다시 시원한 물줄기를 만들어가는 개울을 돌 디디며 걷다가 먼저 발견한 곳에서 이십 여 미터 아래에 비슷한 형태의 돌을 보게 되었다. 절반 정도는 모래바닥에 박혀 있어서 별로 눈에 띄지 않았는데 좀 이상한 것 같아 특이하다는 생각에 파보았더니 전에 주워놓은 것과 같은 모양의 자연석이었다. 그래서 먼저 그 돌 옆에 놓아두게 되었다.
이 두개의 돌덩이가 놓인 곳은 눈에 잘 띄는 곳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보게 된다. 어느 날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말을 주고받다가도 내가 지나가면 함께 얘기하자며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돌비도 그렇고 사랑 마크도 그렇고 자연석이라 너무 좋다. 사람이 일부러 만들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모양이 되었을까 그래서 더욱 신기하다. 한편으로는 신비스럽기도 하 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기까지 그 돌덩이가 받아 온 세월을 함께 느껴본다. 처음에는 큰 바위 덩어리였을 게다. 오랜 나날을 거치며 금이 가고 틈이 벌어졌을 것이고. 그러던 어느 날 무섭게 바람이 휘몰아치고 빗줄기 험하던 밤, 마침내 큰 덩어리에서 작은 덩어리가 갈라지고 떨어져 나갔겠지. 마치 둥지 안의 어린 새가 처음 둥지 밖으로 나와 날개 짓을 하듯, 젖 땐 새끼 사자가 어미를 떠나 홀로 절벽 아래를 구르듯 말이다. 수 년, 수십 년 아니 그보다 더 할 수도 있었을 작은 돌덩이의 골짜기 세월. 부딪침과 깨어짐과 굴러옴의 긴 몸부림의 여정을 함께 느껴본다. 대견스러운 일은 떨어져도 잘 떨어져나갔고 깨어져도 제대로 깨어졌다는데 있다. 이렇게 ‘사랑의 돌덩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꼭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죄다 벗어던졌다.
문득 ‘심장 모형’이 사랑의 상징이 된 것은 언제부터이고 또 무엇으로부터였을까 궁금해진다. 동양에 비해 일찍 발달한 서양 의술은 인체 해부학을 통해 사람 심장의 모양을 오랜 전부터 알았을 것이다. 또한 누구나 사랑을 하게 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맥박이 빨리 뛰게 되는 현상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사랑의 근원지를 심장으로 생각하였겠고. 그런데 심장은 피와 직결된다. 중세 기독교 역사에서 심장의 모형은 아주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곧 성배(聖杯)를 심장의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늘 관심을 끌어 온 성배의 원형은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께서 12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나눈 만찬 때 실제로 사용한 포도주를 담은 ‘그 잔’에 대한 관심이다. 초기 기독교 모임의 핵심은 ‘성찬’이었다. 그들은 성찬을 나누기 위해 모였고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였다. 이러한 모임 형태는 점차 종교적 예배 형식을 이루었고 오늘까지 서방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에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 개신교의 예배도 설교 위주에서 설교와 성만찬 곧 들리는 말씀과 보이는 말씀의 균형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가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최후의 만찬이 가지는 의미 즉 떡은 예수의 살이며 포도주는 예수의 피라는 말씀이 부활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케 하는 신앙의 표본이 되었기에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일은 단순한 만찬의 의미를 넘어서 ‘성찬’으로 고양되었다. 그리고 이 성찬을 핵으로 하여 주위의 여러 요소들이 하나의 예배 또는 미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성찬의 중요성은 크고 여기에서 ‘성배’의 가치도 드러나게 된다. 성배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흥미롭게 전해진다.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은 소설이나 영화의 주제가 되어왔다. 만일 그때의 마지막 포도주가 담긴 잔 그리고 실제로 예수의 피로 변화되었다고 믿어지는 그 거룩한 보혈이 담긴 ‘그 잔’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면? 그 다음 전개될 상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예수 당시 여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서민풍의 토기에 불과한 포도주잔이었겠지만 거기에 종교적 상징이 입혀지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덧붙여지고 예술적 기법이 더해져 누가보아도 고귀한 잔 거듭나게 되었다. 거듭난 사람과 함께 잔도 거듭난 것이다. 그런데 이 귀한 성배의 모양이 심장 곧 하트 모형이었다는 것이다.
심장은 피이며 생명이다. 심장은 희생이고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다”(히브 9:22)는 말씀도 그러한 뜻일 것이다. 심장을 뜻하는 하트 모양도 마찬가지로 피와 생명 그리고 사랑을 상징한다. 하도 흔해서 이제는 하찮게도 보이는 하트 모양과 이를 뚫고 지나가는 화살 표시도 알고 보면 내용 깊은 이야기다. 큐피트는 두 개의 화살을 갖고 다녔다고 한다. 황금 촉과 납촉 화살. 황금 촉을 맞으면 사랑에 빠지고 납촉 화살을 맞으면 미워하게 된다. 큐피트는 빼어난 미모의 여인 프쉬케에게 납으로 된 화살을 쏘아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도록 하였지만 오히려 자신이 황금 화살에 찔려 프쉬케를 사랑하게 된다는 그리스 신화. 프쉬케는 나비 또는 영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화가 주는 사랑에 대한 상징성이 크다. 프쉬케 사랑은 논리나 의도를 넘어선다. 사랑은 가슴의 차원이다. 생각으로도 의지로도 어찌할 도리 없이 그저 뛰고 또 뛰는 심장의 세계이다.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고 인간의 본성이고 삶의 에너지이다. “사랑 밖에 난 몰라요!”는 삼류풍의 노랫말이지만 순수한 두 남녀의 고백이며 천재 예술가의 작품이며 위대한 성인의 삶이다. 사랑에 귀천이 없고, 사랑에 높고 낮음이 없고, 사랑에 부와 가난이 없고, 사랑에 이념의 차이가 없다. 사랑은 몸이고 사랑은 마음이고 사랑은 정신이고 사랑은 영혼이다. 그래서 사랑은 전부이다. 사람의 전부이고 삶의 전부이고 자연물의 전부이고 생태계의 전부이고 신비의 전부이고 영성의 전부이다. 사랑은 남녀의 하나 됨이며 새 생명의 탄생이며 엄마와 아가 사이의 품이며 이성(異性)에 대한 두근거림이며 삶의 약동이며 미래의 지향이며 우주로의 도약이며 하나님에게로의 다다름이며 성경 말씀의 원액이다. 십자가의 도(道)도 사랑, 율법의 가르침도 사랑. 복음의 메시지도 사랑,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 이상의 기독교는 없다!
서로 사랑하는 두 개의 돌덩이를 갖다놓고는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한다. 괜스레 그 앞에서 서성대기도 하고 지나다니며 쳐다보고 한 번 더 본다.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영상물로 보낸다. 다들 신기해한다. 어떻게 손 하나 대지 않았는데 그런게 나왔느냐고. 자연의 솜씨,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한두 마디 거든다. 휴대전화 바탕 화면에 깔아놓고 힘들 때 어려울 때 보면서 관상(觀想)의 자료로 삼겠다는 이도 있다. 이런 귀한 돌덩이가 그동안 땅에 파묻혀 있었다. 그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여기서 살아 온 이십여 년 동안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발견된 것이다. 감추어진 보화를 캐내기 위해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산 농부의 심정이다. 이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그 무엇이 아깝겠는가? 내 안에도 이런 사랑 덩이가 감추어져 있다면! 그 한 덩이를 위해서라면 다른 그 무엇도 기꺼이 포기할 수도 있겠지 싶다. 무엇을 아끼겠는가. 왼쪽 가슴에 자기 주먹만 한 심장 그 하나만 끝까지 가지고 가자. 무덤까지 말이다. 이런 일이 내게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이웃에게서 이런 돌덩이를 발견할 수 있기를. 저 자신도 아직까지 모르고 있을 그 사랑의 덩이를 찾도록 도울 수 있기를. 이것으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기를.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을 볼 수 있기를. 나도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그런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를...이 아침 그렇게 기도한다.
밭에 감추인 보화, 사랑의 돌덩이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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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담은 못
처음 지은 안채의 서편에 있는 연못입니다. 좁은 골짜기에 집을 지으려니 집 앉힐 터를 마련해야 했고 물길을 저쪽으로 돌려야 했습니다. 그 결과로 생긴 작은 못입니다. 언뜻 보면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고기가 이리저리 헤엄쳐 다닙니다. 잉어를 몇 마리 넣었는데 어느 새 커져 열댓 마리의 새끼들을 이끌고 다닙니다. 먹이도 주질 않았는데 신통하게 잘 사네요. 추운 겨울도 잘 견뎠구요.
요즘 같은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흙탕물이 되기도 하고 여기 지질이 석회암이라 때로는 부옇기도 하는데 그래도 며칠 지나면 넘쳐 흘러가고 가라앉기도 하면서 다시 맑은 물로 되돌아옵니다. 보통 때는 위에서 내려오는 물의 양도 그리 많지 않아 잔잔한 호수(?)의 면모를 띄기도 합니다. 맑은 물에 잔잔한 못이니 그 안에 있는 수초며 낙엽이며 물고기며 다 들 여다 보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수면에서 2-3미터 위로 넝쿨져 있는 등나무도 보이고 등꽃이 한참일 때면 온통 보라 빛으로 물들기도 합니다. 가을이면 단풍의 붉은 물이 가득하기도 하구요. 그러나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숲 속의 이 작은 못이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담는다는 것입니다. 맑은 물에 푸른 하늘이 보이듯 맑은 마음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지 않나 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5:8)
삶의 현장에서 김하기칼럼 19
인간의 정원과 신의 정원
정원박람회는 1862년 런던 켄싱턴에서 RHS(Royal Horticulture Society)가 주관한 ‘Great Spring Show’로 시작됐다. 아시아에선 일본·중국·태국에 이어 네 번째로 ‘지구의 정원 순천만’을 주제로 순천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게 됐다.
수년간에 걸쳐 국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여수 엑스포가 관람객의 기대에 못 미친 것에 반해 소리 소문 없이 추진한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는 개장 첫날부터 여수 엑스포를 뛰어넘는 구름관객이 몰렸고 한 달도 안 돼 관람객이 1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흥행대박 비결은 여수 엑스포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은 것에서 비롯된다. 먼저, 여수 엑스포는 산업박람회라서 전시 내용과 주제가 모두 현대산업과 연관성이 강했다. 대표적인 상징물인 거대한 크기의 O형 구조물 Big-O(빅오)를 보면서 새롭다기보다는 왠지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막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렁이길·물새놀이터 등을 갖춘 친환경적인 생태 중심의 정원박람회는 새로운 시대정신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둘째로, 원활한 교통이 순천 박람회의 성공 비결이었다. 여수 엑스포는 좁은 지역에 교통혼잡과 주차장부족, 숙박시설의 불편으로 관람객들의 짜증을 유발했다.
하지만 순천은 넓은 들에 거대한 주차장을 마련한 데다 박람회장 진입로를 5곳으로 만들어 차량을 분산시키고 시 외곽에서부터 차량을 우회도로로 유도해 도로에서 짜증을 느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폐자원활용과 비용절감이 큰 성공요인이 되었다.
여수 엑스포는 국가예산으로 했지만 정원박람회는 부족한 지자체 예산으로만 행사를 꾸리다 보니 재활용과 근검절약의 모범사례가 되었다. 나도 다음 기사를 읽고 망설이던 발걸음을 순천으로 내디뎠다.
“정원의 상당 부분이 재활용품으로 꾸며졌다. 특히 미국정원∼스페인정원길 300m 구간을 장식한 메타세쿼이아 숲의 나무들은 2년 전 전북 남원∼경남 함양 구간 88고속도로 확장공사 때 베어져 나갈 뻔했던 것을 옮겨 심은 것이다. 그리고 바위정원을 가득 채운 자연석 2만5천 톤은 목포∼광양 간 고속도로 공사에서 나온 것이다. 재활용을 통해 모두 200억 원을 아꼈다.” 입장료 1만6천 원이면 싼 돈은 아닌데 평일에도 관람객들이 넘쳐났다. 세계정원 11곳, 참여정원 61곳, 테마정원 11곳 등 83곳의 정원은 지구상의 모든 정원이 세트화되어 있었다.
바위정원·메타세콰이어길·네덜란드정원이 인기가 있었고, 중국정원에서는 무료로 체질을 판별해 관람객의 발길을 끌었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정원을 거닐면서 다리는 아파오고 땡볕에 쉴 수 있는 편의시설은 없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정원박람회가 ‘Great Spring Show’이듯 인위적으로 만든 쇼에서 본래 정원이 줄 수 있는 안락함, 혹은 마음의 평화를 전혀 얻지 못했다. 마치 제주도의 ‘세계 건축물 미니어처 전시공원’에 온 듯 걸을수록 원작과 멀어져 흥미를 잃고 식상해지는 기분이었다. 나중에는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가짜 초가집에 앉아 인위적으로 조성한 순천호수공원을 보며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원 안에서 순천만 생태공원으로 가는 버스가 한 대 다가왔다. 나는 무심코 그 버스를 탔다. 그리고 15분 후에 눈앞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푸른 비단결처럼 넘실대는 순천만 갈대밭과 푸른 하늘을 나는 철새들, 갯벌에는 수많은 짱뚱어와 농게들의 움직임, 그 사이로 시원한 갈대 바람을 헤치고 걸어가면서 아픈 다리와 파김치가 된 심신이 한꺼번에 힐링되어 버렸다. 여길 오지 않았다면 난 돈 아깝고 시간 아깝고 짜증난 순천 박람회를 염오(厭惡)하며 돌아갔을 것이다.
결국 인간의 정원과 신의 정원의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 순천만 갈대밭은 지구상에서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세계 5대 연안 습지라고 한다. 정원박람회가 열리기 전에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보기 위해 전국과 세계 각지에서 왔다는 것이다. 여수 엑스포와 비교해 열거한 순천국제박람회의 성공요인들이 다 틀렸음을 신이 조성한 갈대밭에서 깨달았다. 배후에 이런 신의 정원이 있었기에 인간의 정원이 성공할 수 있었다. 난 태초의 정원 순천만 갈대밭에서 비로소 문명의 옷을 벗고 순수한 아담으로 설 수 있었다.
순천만 갈대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용산전망대는 오르지 않았다. 다음에도 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담이 신의 정원에서 쫓겨난 까닭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했기 때문이다. 순천만 갈대밭을 이제부터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
가족치유상담연구원 상담 ․ 교육프로그램 안내
<제 3회 가족치유상담연구원 상담콘서트에 초청합니다>
7월 상담콘서트는 참여자들이 모여서 함께 저녁식사(웰빙 콩나물밥)를 나누며 상담을 주제로 강의를 듣고 연주를 듣고 대담시간을 갖습니다(회비: 일인당 만원).
* 강사: 전요섭교수(성결대학교 교수) * 주제: 칭찬의 심리학
* 일시: 7월 25일, 목, 저녁 6:30 – 9:00(저녁식사, 강의, 음악, 대담)
* 장 소: 콩 & 콩 카페, 교대역(2,3호선) 1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오른쪽방향으로 120m전진, 짬뽕잘하는 집(홍콩반점) 지하1층에 콩&콩 카페가 있음.
<개인상담>
가족관계, 부부갈등, 자녀문제, 불안장애, 우울증, 청소년인터넷중독 등을 상담하며 필요한 경우, 심리검사를 실시합니다. 지역교회의 위탁상담을 환영합니다.
개인상담 02-3675-7368, 010-3290-1007.
청소년인터넷 중독상담 02-3675-7368, 010-3219-1097.
<치유상담 아카데미>
치유상담 이론학습 및 그룹임상훈련을 실시합니다(매 강의는 2개월 8주 과정).
장소: 기독교회관 504호 가족치유상담연구원
쓴뿌리치유수요목회자반: 9.4-10.30(수, 8회) 오전10:30-12:30
목요사역자반: 9.5-11.7(목, 8회) 오전10:30-12:30
* 쓴뿌리치유과정은 인격장애를 만드는 9가지 유형의 사람을 분석하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적용해서 인격장애의 사람을 치유와 회복시키는 과정입니다.
강의1: 하나님의 다림줄(3-4월, 2개월) 강의2: 전인치유(5-6월, 2개월)
강의3: 쓴뿌리치유(9-10월, 2개월) 강의4: 감수성훈련(11-12월, 2개월)
<집단치유상담모임>
참여자들이 마음을 나누며 치유와 회복을 찾아 떠나는 집단치유상담모임입니다. 일시: 매월 셋째 주 금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장소: 가족치유상담연구원
7월 모임- 7월 19일(금요일) 오전 10시-저녁 6시, 주제: 영성으로 가는 길
8월 모임- 8월 23일(금요일) 오전 10시-저녁 6시, 주제: 사랑으로 가는 길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가족치유상담연구원
제 2회 상담콘서트 모임은 6월 27일(목요일)에 열렸습니다. 강사는 가족관계연구소의 정동섭교수이고 주제는 행복의 심리학이었습니다. 명강사로 소문난 정교수님은 알찬 내용과 함께 넉넉한 입담을 과시해서 많은 참여자들에게 감화를 주었습니다. 제 3회 상담콘서트는 7월 25일(목요일) 저녁 6시30분-9시20분까지 콩&콩 카페에서 열립니다. 성결대의 전요섭교수가 <칭찬의 심리학>이라는 주제로 강의합니다.
올해 7월 1일로 저희 가족치유상담연구원이 이곳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 사무실을 오픈한지 만 2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희 연구원을 찾아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에서 개인상담시간을 갖고 집단상담에 참여하고 교육을 받았던 모든 지체들에게 감사합니다. 그 동안 월간쪽지 <예수사랑, 가족사랑>을 약 2,000부 정도 발행해서 1,600 여 곳의 교회와 개인들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이곳 기독교회관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쪽지를 읽고서 종종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내년에는 세계 여러 곳의 선교사님에게도 쪽지를 나누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 동안 저희 연구원을 후원해주신 교회들과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적절하게 공급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할 때도 많았습니다. 섬지역에서 목양하시는 목사님의 후원도, 강원도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섬기는 선생님의 후원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김영근>
5월 후원 교회 : 동숭교회, 참빛교회, 한마음교회, 유성장로교회, 안동서부교회, 예향교회, 누산교회, 산정현교회, 일산은혜교회, 충신교회, 동안교회.
개인 : 주재철, 김은섭, 김영훈, 유해룡, 이은혜, 김춘근, 이승룡, 이성희, 오규진, 박미자(4, 5월), 한광용, 김 영, 원순희, 김문수
I 가족치유상담 연구원의 사역 I
►가정회복중보기도(기도사역) ►지역교회위탁상담(협력사역) ►다문화가정상담(긍휼사역) ►목민독서교실(독서치료) ►구역장ㆍ교사상담훈련(훈련사역) |
►엘림상담실(개인상담ㆍ집단상담) ►치유상담아카데미(상담교육) ►중국교회지도자상담교육(교육선교) ►월간쪽지<예수사랑ㆍ가족사랑>(문서) ►교회설교ㆍ세미나(치유사역ㆍ회복사역) |
주소 : 종로구 연지동 136-46 기독교회관 504호 / 02-3675-7368, (fax)7369
원장 : 김영근목사(010-3290-1007) 상담실장(010-3219-1097)
Cafe.Daum.net/familytherapy0191(daum 다음 카페→가족치유상담연구원)
메일 noksanlove@hanmail.net/ 후원계좌 : 농협351-0355-2650-43 김영근
찾아오는 길 : 종로5가역 2번 출구 대학로 방향 200m ⟶ 한국기독교회관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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