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남녀] 천하일품 숯불 장어구이 ‘일미’
장어비빔밥(밥+장어구이+부추)별미
‘장어는 연기와 냄새로 장사를 한다’는 일본 옛말이 있다. 벌겋게 달아오른 숯불 위에 장어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기름이 떨어져 장어구이 특유의 향기로 변화하고, 이 군침 넘어가게 하는 냄새가 사람들을 음식점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말이다.
서울역 건너편 벽산빌딩 뒷골목을 따라 걸어 들어오다 보면 이 일본 옛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다. 올해로 20년째 숯불에 장어를 굽고 있는 음식점 ‘일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미(一味)라는 상호처럼 이 식당의 메뉴는 달랑 ‘장어정식’(1만6000원)
하나뿐이다. 장어정식을 주문하자, 각종 밑반찬과 함께 장어뼈 튀김이 나왔다. 바싹 튀긴 장어뼈는 짭짤하면서도 오독오독 씹는 맛이 그만이다.
장어뼈를 씹는 동안 숯불이 테이블 가운데 놓이고, 그 위로 장어가 1인당 한
마리씩 나왔다. 장어뼈, 간장, 술 등을 고아 만든 양념장을 발라 굽는 것이 일반적이나, 일미에서는 소금구이뿐이다. 장어는 먹기 알맞을 정도로 미리 구워져 있다. 숯불은 장어가 식지 않도록 데워 가며 먹기 위한 것이다. 껍질이
바삭할 정도로 바싹 구웠으면서도 속살이 부드럽고 촉촉했다. 미리 주방에서 초벌구이를 한 장어는 대개 미지근한데, 이 집 장어는 속까지 뜨거워서 좋았다. 기름기가 빠지고 담백해서 추가 주문(1만6000원)으로 한 마리를 더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장어를 먹는 사이사이 식초에 절인 생강과 쪽파머리(락교)를 먹으면 입 속 기름기가 제거돼 개운하다. 상추 또는 깻잎에 장어와 납작하게 썬 마늘, 쌈장을
얹어 싸먹어도 맛있다. 열무김치와 나박김치도 정갈하다.
그러나 이 집에서 장어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비빔밥. 장어를 한두점 먹고 있노라면 국그릇만한 사발에 밥이 담겨 나온다. 밥 위에는 장어구이 양념장이 뿌려져 있다. 여기에 장어구이를 양껏 얹고, 간장에 무친 부추를 듬뿍
더한 후 비벼 먹는다. 부드러운 장어살과 양념장과 장어기름이 밥에 배어들면서 만들어내는 조화가 기막혔다. 맵싸한 부추의 뒷마무리도 훌륭했다.
◆메뉴는 장어정식 하나뿐
장어를 다 먹을 때쯤이면 뚝배기가 숯불 위에 놓인다. 맑으면서 거무스름한
국물이 개운했다. 빙어와 새우로 단맛을 냈고, 무가 시원한 맛을 더했다. 풋고추, 간장, 고춧가루로만 양념을 해 텁텁하지 않으면서 칼칼했다.
일미 장어구이점이 있는 용산구 동자동은 빨간 벽돌로 지은 건물, 타일을 겉에 바른 건물들이 남아 있어 옛 서울의 분위기가 난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소박하고 친절했다. 오후 2시, 장사를 잠시 쉬면서 식사를 하려던
아주머니들은 불평도 없이 숯불을 피우고 장어구이를 내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뒤돌아보니, 식당이 있는 건물 2층에 ‘부곡 목욕탕’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벌거벗은 아저씨들이 장어냄새에 코를 벌렁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식당 바로 옆으로 ‘새꿈어린이공원’이 있다.
서울에서 숯불에 장어를 굽는 집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가스 불로 굽고 있다. 그러나 장어는 숯불에 구워야 맛있다. 가스의 성분은 탄소와 수소로, 연소하는 과정에서 수증기가 발생한다. 장어구이가 질척해질 수 있다. 그러나 숯은 순수한 탄소이기 때문에 연소하면서 탄산가스만 생길 뿐 수증기가 없다. 또 가스는 본래 냄새와 색이 전혀 없지만, 가스가 새는 것으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양파와 비슷한 냄새를 주입한다. 행여나 장어에 냄새가 밸 우려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숯불과 장어기름의 향기로운 화학반응도 기대할
수 없다.
▲전화 (02)777-4380 ▲영업시간 오전 12시~오후 10시 ▲휴일 일요일·공휴일 ▲주차 어려움 ▲신용카드 받음 ▲부가가치세 붙지 않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