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신촌의 빛바랜 추억
언제 : 2018. 6. 15(금) 맑음
누가 : 신경수
어디를 : 신촌기차역에서 신촌로타리 서강대역까지 가는 길목에서
병원 피뽑으러 가는날
늙은 냄새 지우려고 샤워하고 전철타고 신촌기차역에서 내렸는데
그넘의 고장난 에스커레이터는 거의 1년째 보수중이라는 안내판이 지금도 있다
아마도 빌딩이라도 한채 지을 시간인데
그 에스커레이터는 아마도 항공모함 정도 만드는 시간이 걸리는 넘인 모양인갑다
다른때는 보이지 않던
구신촌역사는 신촌관광안내센터가 되어있다
60년을 돌고돌아 그 지지리도 못살던 동네가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있는 것이다
눈에 들어와 오래간만에 여유를 가지고 들려보려하는데
에구 10시가 넘어야 개관을 한다네요
암튼 그 일대는 내 어렸을때 부터 20대초반까지 살았던 내 놀이터입니다
그 옛날과 지금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시간으로 여행이 시작됩니다
신촌역은
민자로 다시 건축이 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뻔 했는데 논란끝에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그대로 존치된 것으로 안다
앞으로도 지방의 역사들은 이런 과정을 되풀이할터인데 여기처럼 가치를 떠나서
그저 지난 세월은 그런 곳에서 기차를 타고 다녔다는 한가지만이라도 후손들에게 알린디는 의미로
보존이 되었으면 한다
그 옛날 못치기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그 철로 신촌굴다리를 지나면 서대문로타리가 나오지요
그 굴다리 안은 항상 어둡고 음습한데 콩나물을 재배하는 장소였다
대못을 하나 철로위에 올려놓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그 못이 납작해져 있고 그 못을 숫돌에 갈아 뾰족하게 만들어
일명 못치기라는 게임을 하며 놀았던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던 게임인지는 잘 생각이 안난다
암튼 아무 것도 없던 시절 그런 위험한 짓까지 하며 놀았던 초등시절 기억이다
내가 감천당 아세끼를 먹으며 놀던 신촌역광장은 무슨 뜻인지는 모르나
멋진 조형물이 있는 빌딩숲으로 변했고
파출소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내 어린시절 통학로이며 울 부모님이 잡곡 도매상을 하던 대현시장이다
파주 고양 농부들이 지은 농산물을 가지고
경의선열차를 타고 이 기차역에서 내려 보따리 보따리 풀어놓고 장이 서는 상설시장이었다
지금은 재래식시장현대화사업이라는 명분 아래 영타운이라는 상가빌딩이 들어섰고
한때 시장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앞으로 지금은 큰길로 변했지만
그 옛날 내가 놀던 광장을 건너 또순이설렁탕집은 고층 호텔로 변했고
그 뒤 정말 오래간만에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살던집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 설렁탕집과 옆집 그 옛날 방앗간이 있던 집까지 합쳐서
에버8이란 호텔이 들어섰고
내가 살던 집은 그호텔 주차장 입구로 변해 있다
그시절 그집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굳이 로또를 사는 습관을 가질 이유가 없는 몇십억대 자산가가 되었을 것이다 ^^
그 옆집은 멋진 교회장로님집이었는데 지금은 빌딩으로 변했다
그 당시로는 대리석 현대식 주택으로 너른 마당까지 있는 그 동네에서 유일한 호화주택이었다
개그맨 송00이 그 장로님 아드님이었다
나보다도 나이는 어렸지만 분명히 초등학교는 1년 선배였다
고등시절 인사를 안한다는 이유로 얻어터져 나는 안경이 부러지고 눈을 다쳤으며
그 선배님이고 나발이고 나보다 어린 것이 잘난체 한다고
내 주먹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사단이 난 그런 추억이 있던 곳이다
정확히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생각나진 않지만
아마도 그때 지지리도 못사는 넘이 자기보다 좋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것에 대해
아니꼬운 마음이 배후에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평소 고분고분하던 후배녀석이 선배를 개무시하고 맞장뜰줄이야 상상이나 했으리요
암튼 통쾌한 일로 기억이 난다 ^^
대각선으로 있는 먹고살기 힘들 때 구멍가게를 하던 집도 어데로 가고
타임이란 호텔이 서있다
지지리도 없던 시절 화초고추따서 계란국에 와룡소주 마시던 집
그래도 가야금 소리가 울려퍼지던 집이죠 ^^
뒷길로 계속 가다보면
거대한 교회 창광교회다
바로 옆에 있는 대현교회에서 뜻이 안맞아 분파되어 갈라져 나온 신생교회지만 그때가 내 중3때일이니
지금은 신촌에서 유명한 역사가 있는 대형교회임이 분명하다
개구멍으로 들랑거리며 공짜 영화를 보던 신영극장은 지금도 영화를 상영하는 CGV빌딩이 되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 개구멍을 극장측에서 왜 안막았는지
이해가 안되기도 하고 이해할 만도 하다
지지리도 못사는 어린 학생들에게 공짜 영화를 볼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글쎄 잘하는 일인지 못하는 일인지 지금도 판단이 서질 않는다
창광교회의 전신인 대현교회는 담쟁이 덩굴로 건물 전체가 뒤덮힌 고색창연한 마치 문화재같은 모습으로 변해있다
바로 이교회에서 중학교시절 세례를 받았고 학생회장까지 지냈던 그런 교회다
그때 당시 근엄하고 자상하신 김기0목사님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얼마 안되어 사모님이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목사님이 돌아오시고 부인과 이혼하고(?)............
정확한 팩트는 내 나이 너무 어려서 장담할 수는 없다 그저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암튼 나는 거기에 충격을 받고
그 다음부터는 기독교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지금에 이른 것이다(불신이 아님)
그때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나는 성직자는 아니더라도 어느 교회 장로 정도는 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내 유년기는 신촌로타리 공동수도가 있는 곳에서 7식구가 한방에서 살았다
그 쓰러져가는 집은 학원빌딩으로 변했다
그후 부모님의 모진 고생끝에 돈을 모아
신촌역 근방으로 조금 큰방으로 이사를 가서는 매일 물지게 지고 동전 한잎내고
물받아 반은 쏟고 반정도만 집에 가져와 식구들이 먹고 살았다
그 당시 뽐푸가 있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웠던 시절이다
연탄1장 새끼줄에 꿰어 보리쌀 1봉지 사들고 오는 그날그날이 세월이라는 이름을 달고 지나가고 있었고
꽁치 몇마리 사들고 오는날은 생일날이었는데
먼저 젓가락을 댔다가 아버지보다 먼저 댔다고 치도곤 혼줄이 나던 그시절 이야기다
암튼 그 모든 일들은 바람산을 둘러싸고 있는 동네이야기인데
그 산은 전부 뺑뺑둘러 이대생과 연대생들의 하숙집이나 원룸건물들로 바뀌고
정수리 부분만 창천동 동네 공원으로 남아있다
신촌로타리에서 창천초등학교쪽으로 길을 건너 허내과 건물 뒷골목으로 가면
내가 다니던 창천초등학교 가는 길인데
지금은 그 지하를 파서 엄청 높은 축대는 어데로 가고
창천중학교와 창천스포츠센터가 새로 생겨났다
다시 연세대 방향 걷고싶은 거리로 가면
바로 그 도로밑이 안산에서 발원한 창천이라는 하천이 지금도 흐르고 있는데
그게 복개도로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런지요
그 걷고싶은 거리라는 것도 내가 서대문구청 다니던 시절
서대문구 특화사업으로 만든 거리인데
그때 나는 강력반대입장이었지만 힘이 없어 말도 못꺼내보고
지금의 거리가 되었는데
그게 잘한 사업인지 성공한 사업인지
아님 다른 지자체처럼 애물단지가 되었는지는 아직도 판단이 서질 않는다
당숙님이 평생 운영하던 일등양화점 자리는 국민은행빌딩이 들어섰다
그시절 내가 결혼할때 부조금으로 구두 한켤레를 만들어 주신 것은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애기때 살던 신촌시장은 현대백화점이 들어섰다
그 뒷골목으로 가면 2층짜리 쓰러져 가는 건물이 있는데
그 옛날 그 모양으로 빌딩숲에 둘러쌓여 초라한 모습으로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내 중학교시절 다니던 양영독서실이 2층에 있었는데 지금은 생맥주집이 되었고
아래층에는 연새대학생만 받는 문에 독수리가 그려진
훼드라라는 술을 파는 고급 카페(?)가 있었다
물론 그 당시 빵모자쓰고 연세대생이라고 하면서 들락거렸는데
이것도 그 종교에 대한 불만의 표출방식이었던 것 같다
연세대 운동부학생들(필드하키로 기억됨)이 주된 고객이었고
1대는 몇년 안하고 팔았고 인수받은이가 연세대OB님들의 도움으로 평생 운영을 하다 몇년전에 작고를 하셨는데
지금은 그를 인수받은이가 하면서 대포집이 되고 말았지만
지금도 그 당시 연세인들이 노병은 죽지 않았다며 추억을 마시기 위해 찾는다고 한다
물론 나도 일년이면 한두번은 들르지만 그때의 정취는 없다 그저 추억일뿐..........
다시 길을 건너 청전동쪽으로 가면서
그 당시 신촌에선 최고로 큰 건물인 대도(미도???) 상가건물은 형체도 없이
공원으로 바뀌고
양옆으로 있던 옛날 집들은 빌딩숲으로 변했다
강화도를 오가던 버스터미널은 가림막이 쳐진 공터로 방치되어 있다
강화도 전등사 한번 구경가려면 참으로 엄청나게 먼길이었는데 .......
길을 건너면 그 옛날 빵모자쓰고 다니던 서서갈비집은 뒷골목으로 장소를 이전하여
60년전통 연남서식당으로 상호를 바꾸고
지금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관리가 되고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기껏 한20평 정도 공간에 도라무통 연탄화덕이 있고
그때나 지금이나 메뉴는 소갈비 하나에 서서 연탄불에 익는 고기냄새와 자욱한 연기속에서
땀 삘삘흘리며 온몸으로 냄새를 빨아들여 티를 내는 그런집이라 우아하게 마시는 분들한테는 쥐약인 곳이다
물론 의자는 한개도 없다 그래서 서서먹는다는 뜻으로 서서갈비집이다
그 당시 국내에서 유명한 삼표연탄공장이 있던 곳이라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없으니
얼른 서서 갈비한대에 막걸리 한잔 소주 한병 그렇게 마시던 집이었던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비싼 소갈비를 막일하는 노동자들이
짬을 내서 얼른 서서 먹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때 고삐리였지만 빵모자쓰고 몇번 먹어보았지만
그리 싸게는 느켜지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당시 연탄일을 하는 것이 수입이 많았던 것 같다
암튼 체력이 부실한 분들은 가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모르죠 혹 내가 지금 먹어본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주차장은 1시간까지 무료구요 서서(소)갈비 1대는 15000원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만만한 가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비싼 가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영업시간은 기억이....... 기억이 안나는군요^^
그 옛날 삼표연탄공장과 일명 똥치골목이 같이 있던 철도밑은 경의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지하로 이전이 되고
지금은 경의선숲길 공원이되고 서강대역사가 들어와 있다
그 옆 와우산은 지금은 엄청나게 발전을 한 홍대가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던 산이다
그 반대편에 김현0(?) 시장 당시 서민들을 위해 의욕적으로 건설한
그 당시 서울에서 몇개 안되는 공동화장실과 공동세면장이 있던 아파트단지였는데
와르르 무너져 대형참사가 일어난 곳이죠
산이름이 와우산이라 와르르 무너졌다고 회자되곤 했는데 지금은 재건축으로 고층아파트들이들어와 있다
이렇게 신촌기차역사부터 서강대전철역까지
불과 40여년만에 천지가 개벽을 한 그 길목을 돌고돌며
신촌나들이 태어나서부터의 빛바랜 추억을 마시며 숨쉬며 되새김질하며
애뜻한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첫댓글 아~
옛날이여 어~~~~
추억은 언제나 소중합니다.
어릴적 생각에 어린 시절 추억이 묻어있는 신촌일대를 돌아보셨군요.
산은 옛산인데 물과 집, 그리고 인걸은 모두 바뀌었네 라고 시도 현대에 맞게 바꾸어야 될 것 같습니다.
신촌관광센터로 운영이 된다면 옛 사료관에 뛰놀던 옛사진이 있을 텐데요.
전시된 게 없다면 보여달라하고 바로 옆 신촌동사무소가 있으니 옛날 사진을 볼 수있냐고 물어봐도 될 것 같은데...........
사진이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사진이 없다고 옛추억이 사라지거나 지워지는 게 아니니까요.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습니까~~~
걍 좋습니다.
살아가시며 이렇게 기분 좋은 분위기로 쫙........... 가는겁니다
이 나이 되도록 이룬 것 하나 없이
산천을 떠도는 산귀신으로 살고 있으니 팔자 한번 기구하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안스러워지더라구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다녀오세요.
수십먹이 되는 집을 팔지말고 현재로 끄집어 오시면 로또 안 사도 됩니다.
개그맨 송*길이 선배이자 동네친구란말씀 글구 장로 아들에 빵빵하게 잘나가던 집....
결국 선배님이 일류고등학교 다녔다는 자랑할려구 송모시기 야그를 한거네요.
교회목사님과 사모님, ㅋㅋㅋㅋ
사모님도 사람인지라 목사님이 이해해주었어야지 그렇다고 이혼을 해? 믿음이 적은 자~
목사네 이혼한 거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교회 안나가요?
강화가는 터미널에서 지두 버스타고 애들데리고 전등사를 갔던 기억이 있고 건너편 삼표연탄 15년전까지 있었으며
신촌시장이 현대백화점으로 바뀐건 제가 수백억 대출해줘서 지은 거랍니다
결국 내 자랑하는 꼴이 되었나요^^ 수정해야겠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해가 안됩니다 성직자가......
이교회 저교회 다 싫더라구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막내가 지지리도 못사는 사회주의 나라에서 거의 평생동안 선교사를 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내고향이 없어진 것이 회장님 책임이 크게 느껴집니다 그려~~~^^
너무 덥습니다 건강 유의하며 산행 이어가십시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