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을 빠져나오면서 장롱의 옆구리는 또 동전만큼 뜯겨 나갔다. 하지만 장롱의 무게로 숨이 턱까지 차오른 그는 흠집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다. 장롱은 서서히 비좁은 문을 빠져나오고 그는 손아귀에 힘이 빠지는 느낌 때문에 등허리에 축축한 땀이 배어나왔다. 마침내 장롱이 마루에 놓이면서 무게는 급격히 감소되었다. 가파른 돌계단이 삼십 개도 넘는 집이었다. 계단 밑으로는 간신히 차나 돌릴 수 있을 만큼의 공터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가난한 생활의 소도구들이 이곳저곳 비죽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식구와 인부 외에 다른 일손은 없었다. 갑작스런 이사에다가 평일이어서도 그렇지만 예정된 이사에다가 휴일이었어도 다른 사람을 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엔 너무 잦은 이사였다.
“또 가는 겁니까?”
조부장은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결근 사유를 이사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야 옳았다. 그는 두 달 전에도 이와 똑같은 이유 때문에 부장 책상 앞에 서야 했고 그때도 역시 똑같은 물음이 튕겨 나왔다는 것을 너무 늦게 생각해낸 것이다
조부장이 화가 나는 것도 이해했지만 아내 혼자 이삿짐을 나르게 할 수도, 그렇다고 주말로 이사를 옮길 수도 없었다. 안식일만큼은 어머니의 양보를 얻어낼 수 없는 문제였다. 주님의 날은 주님에게 바친다는 믿음을 그가 훼손시킬 권리는 없었다.
인부들은 얼마 남지 않은 짐을 날랐고 아내는 푸석푸석한 목소리로 칭얼대는 은혜를 달래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아침에 한 기도를 떠올렸다. 주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찾아 떠날 수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연립주택을 마련하여 부천으로 떠나는 일이 당신에게는 가나안으로 떠나는 일과 다름없었다. 결혼 사년만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실로 이년만의 내 집이었다.
인부는 부엌에 남아 있던 잡다한 그릇들을 차에 실으면서 마루에 서성이던 그를 향해 돌아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이게 마지막이오. 방에서 나와 마루로, 다시 마루에서 마당으로 서성이던 그는 정신이 번쩍들었다. 이제야말로 내 집으로 떠나는데 당신의 말대로 가나안의 향해 떠나는 자기가 왜 이리 허둥지둥하고 갈피를 못 잡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내들은 거친 솜씨로 밧줄을 던져 집들을 옭아매었다. 앞에 두 좌석뿐인 트럭은 운전기사와 어머니가 앉게 되었고 짐칸의 제일 앞자리인 유리 칸막이 밑에 그와 그의 아내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두고 온거 없나 쪼매 더 살펴보그라. 인자 가뿔고 나면 그만인데 니가 더 둘러보매리.”
다시한번 집 안팎을 둘러보니 챙겨갈 만한 물건은 없다. 그저 몇 개의 기억과 몇 개의 흔적.
어떤 일요일의 무료함이 만들어낸 윗벽의 줄자. 은혜의 키를 재보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다락문에 부러진 손잡이, 이런 것들이 다 서먹하기만 했다.
그는 오던 때와 달리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멀리서 은혜 엄마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마침내 그는 트럭의 짐칸으로 뛰어올랐다.
애초에 팔려고 내놓은 집인 줄 알면서 별 걱정 없이 이사를 들었던 게 잘못이었다. 3년동안 팔리지 않았던 집이 엄동설한에 덜컥 팔려버렸고 아들에게나 물려준다던 주인은 방을 비워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모르고 산 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은 할말이 없었다.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한다고 믿었던 그에게 믿을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체념이었다.
그날부터 미친듯이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쯤이었다. 그들에게 부천의 연립주택은 서울의 독채 전세금 수준에서도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는 일에 이미 지쳐버린 그들에게 건성으로 넘길 일은 아니었다. 아주 계약까지 하고 올 작정으로 토요일을 기다려 아내와 경인선을 탔다. 도시는 출발과 마멸을 같이 하고 있는 낯선 모습이었고, 구석구석 틀어박힌 연립주택들을 기웃거리다가 마침내 집 하나를 계약했다. 아내는 모처럼 방싯방싯 웃고 있었다.
트럭은 영등포 로터리에서 멈추었다. 아내는 눈만 내민 채 여긴 어디에요 하고 물었다.
“영등포야 반은 온 거 같은데... 춥지?”
“네,조금.....”
아내는 발을 비볐다. 아내 어깨의 담요자락을 치켜 올려 덮어주었다. 이만큼 달려왔어도 서울은 끝나지 않았다. 번잡하게 오가는 서울의 시내버스를 바라보며 그는 서울의 광활함에 질려버렸다. 그 넓은 서울특별시 어디에도 그가 발붙일 곳은 없었다. 전세 계약이 6개월이었던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전세방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이사를 다니면서 집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는 희망을 갖기 위해 서울을 떠난다. 참 기이하다. 이 넓디 넓은 서울에서 그는 집을 갖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집이 생겼다. 그것이 부천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도 집과 희망은 동의어인가. 매매계약서를 보고 흥분했던 것조차 믿을 수 없을 만큼 침울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는 족속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아브라함이 될 수 없다. 노모를, 어린딸을, 아내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밀린 월부금, 사소한 액수의 빛들, 딸이 조르는 전자 장난감. 그런 족쇄를 발목에 달고서 서울을 떠나는 아브라함이라니, 상상할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은 있다. 때로는 일요일이 오고 보너스를 탈 수 있는 날짜가 닥쳐오기도 하는 법이다.
이제 트럭은 부천시에서 새워놓은 대형 아치의 입간판 밑을 지난다.
“다 온 거예요?”
다 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아내는 제법 기운을 차렸다. 관공서다운 위압감이 드러나 있는 흰색 건물을 지나고 나자 도로의 폭은 급격이 줄어서 트럭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변을 환기해야만 했다. 한적한 거리를 몇 분 달리고 나서야 그가 살아야 할 동네가 저 멀리에 펼쳐졌다.
마침내 트럭은 멈추었고 그는 이렇게 하여 노모와 어린딸 만삭의 아내를 이끌고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의 한 주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