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1시반에 성남시 분당구로 달렸다.
마포대교에서 청담대교까지 1시간여를 소비했다.
기어가는 강변북로의 지루함을 오른쪽으로 거슬러 흐르는 한강에는
만추(晩秋)의 반짝임이 가득하다.
문득 숭어가 떠오른다.
맛도 좋지만 그 힘차고 잘생긴 자태가 문득 한짝 짊어지고 가
캠프의 동문들과 나누고 싶다.
30분을 더 달려 내동생 얼굴을 보았다.
항상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니던 녀석이었는데 장가가고 벌써 언 5년!
동생놈 얼굴 보기는 한 달에 한번 꼴도 안되곤 한다.
"잘 있냐?"
"응!, 조카들은?"
...
별 매력없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한 시간이 또 후딱 지나간다.
"얼만큼 쌀까?"
"젤 큰 짝으로 가져와!"
"응!"
수제(手製) 소시지가 맛이 있어서 오늘은 숭어대신 소시지다.
옥토버 훼스트가 있는 날인데 기왕이면 독일식으로 해야지!
지난 주의 허리 끊어짐 고통으로 인해서 도르레를 장만하고자
에델바이스점에 들렀다.
조 용환선생님이 늘 그렇듯 반갑게 맞아 주신다.
"짐 끌어 올릴라는데요, 뭐가 좋죠?"
"짐? 인수봉에 웬 짐을?"
"..."
그래서 페츨 프로트랙션(Pro Traxion)을 하나 구입했다.
그리곤 끙끙대며 하루재로 향한다.
"염병헐 놈!
젤 큰 박스에 소시지를 담으랬다고 사과궤짝만한 데 싸는게 뭐람!"
문 채식님과 이 양근회장님, 서 량님이 벌써 오셔서 캠프의 불을
환히 밝히고 있다.
최 종원님의 청국장이 끓고, 돼지고기가 두루쳐지고 캠프는 속속
도착하는 동문들의 훈훈함으로 가득찬다.
동문들이 꺼내 놓은 맥주가 산더미다.
500cc 씩만 지고 오랬는데 김 희현님은 10,650cc를 지고 왔다.
딱 한 사람, 최 성필님만 500cc 정확히 이고 왔다.
"섭섭해서 산사춘 한 병 더 들고 왔어!"
"잘 했수!"
한 태석님은 "발사믹 레드와인소스(이태리식 소스) 와 토마토칠리소스"를 두 짝 짊어지고 왔는데 송아지 한 마리는 밤새도록
푹 고아야 나올 양이다.
(지난 주 그 특제소스의 양에 비하니깐)
최 용환님은 소시지는 참숯에 구워야 제 맛이라며 주문한 참숯을
화로불과 석쇠와 기타 오만가지 숯불구이기구를 펼치는데
그것도 또한 한 짐이다.
물론 맥주는 500cc 의 몇 곱을 지고 왔다.
지지고 볶는데 오늘의 산노래 교육이 끝날 줄 모른다.
9시 반부터 쭉 빠진 목은 교육캠프 쪽으로 자꾸 돌아간다.
채식님에게 채근한다.
"가서 모셔오시쇼, 잉!"
이 영수강사님의 모란동백을 들으려 6개월을 기다렸다.
한 시간여를 더 지나 정 규현강사님과 이 영수강사님이 오셨다.
한 영길님(4기)의 생신이 마침 그 날이었다.
장 도희님, 한 수봉님, 장 미자님, 이 규성님의 재치로
생일케익이 아랫동네에서 긴급 공수되어 동문 모두
해피버스데이를 부른다.
한 영길님의 눈 가에 이슬이 반짝 비추었고 추위에 약하신 지
코 끝이 발그스레졌다.
이 영수님의 "설악아 잘있거라!" 독창에 모든 이의 가슴이 달아올라
'설악아 잘있거라!"를 제창하는데 방해꾼이 나타났다.
고성(高聲) 가무(歌舞)는 안된단다.
아니! 자다말고 봉창 뚜드리는 소리도 아이고,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도 아이고 고성가무라니요?
"그날 고성가무 하신 분 있어요?"
뭔 소린지 모를 훼방꾼으로 우리의 산노래는 그 걸로 서둘러 마친다.
또 6개월을 기다리는 수밖에......
자정이 넘어 3,550cc의 맥주와 40개의 구름과자와 동문이 보고파
달려온 강 경원님을 맞으며 동문 캠프의 저녁캠프는 깊어간다.
기온이 뚝 떨어져 추우련만 모든 이들의 두 볼과 가슴엔 활활
모닥불이 이글대고 있었다.
10월26일!
한국산악회 산악연수원 등산학교 전문과정 11기(아! 길다.)
수료등반일이다.
지난 6주 동안의 교육을 총정리하는 인수봉 실전등반이다.
2조는 벌써 새벽 4시 반경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한 영길님과 송 창순님(영길 산악회)과 함께
그 불상조인 지 불쌍조인 지 4조에 합류했다.
잘 생긴 트랑고사의 Seth님도 우리 조에 합류했다.
인수B를 택했다.
정 민영강사님을 선등으로 Seth님->한 미나님->한 영길님->
김 근웅님->송 창순님->주 영일님->박 영오님->김 정애님->
사홉들이 (중간중간 순서를 바꾸었지만)로 시작한다.
이른 아침 날이 추워서 암벽화 바닥이 바위 면에 먹지를 않는다.
테라스까지 손톱으로 긁으며 올랐다.
테라스에서 크랙을 따라 오른쪽으로 수평 밴드가 있는 슬랩으로
오르지를 않고 왼쪽의 항아리 슬랩쪽으로 선등자는 등반 루트를 잡는다.
언더클링으로 횡단하여 날등을 올라야 하는데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다.
찬 기운의 아침에 암벽화가 바위면에 먹지를 않으니 평소에 쉬웠던
오른쪽 슬랩을 버리고 이 길을 택한 것이다.
그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4인의 4조 교육생들은
열심히 따라 등반을 한다.
인수B 소나무 오아시스 첫 피치 지점에서 트래픽이 시작됐다.
내가 오아시스에 도착하니 정 민영강사님과 Seth, 한 미나님은
벌써 인수B 첫피치 소나무앞 확보점에 도달했고 나는 그로부터
1시간 45분을 기다려 첫피치 등반을 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여러 산악회의 6개 팀이 내가 앉아있는 지점으로 몰려들었다.
구름과자를 3개나 까먹고 건포도도 수십알이나 씹어 삼키고
프로트랙션 설명서를 정독하고서야 등반을 할 수 있었다.
4조의 교육생은 일주일이 새롭게 등반능력이 향상되어 보였다.
악명높은 2번째 피치의 직상 실크랙을 발가락이 휘어지고
손등이 까지며 모두들 거뜬히 등반한다.
사홉들이도 이 직상 실크랙에서 발가락이 꼬이는 아픔을 겪는다.
처음뵙는 송 창순님도 아주 과감하게 등반을 한다.
12기에 입교하시리라는 예감이 든다.
박 영오님, 김 근웅님, 김 정애님의 등반자세가 지난 주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분명 어디가서 과외공부하고 오신게 틀림이 없다.
특히 로프를 사리고 처리하는 자세가 눈에 확 띈다.
한 미나님은 예의 즐기며 등반을 하는데 지난 주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 주에는
기차화통 삶아먹지를 않는다.
아주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차분히 등반을 한다.
4피치에서는 왼쪽의 직상슬랩/크랙과 오른쪽의 크랙으로
두팀으로 나누어 등반하여 시간을 단축하였는데도 워낙 1/2피치에서의
대기시간이 길어서 내가 뒷정리를 하고 오른 정상에는
우리 조밖에 없고 다른 산악회 팀들로 붐비고 있다.
서둘러 하강점에서도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하강순서를 기다리며 추억만들기 포즈를 강요하면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김 근웅님, 편집해서 사진 올려 주세요.)
모두 안전하고 즐거운 하강을 마치면서 김 근웅님이 하는 말씀,
"와, 로프가 죽 늘어나면서 가늘어 지네요!"
하강하면서 로프의 장력으로 인한 변화를 보는 여유와
탐구심이 생긴 것이다.
그것이 교육의 힘입니다. 미소 지으며 속으로 대답해 드렸다.
하강완료시점이 오후 3시 30분. 예정보다 1시간 30여분이 늦었다.
늦었다는 것보다 조원 모두가 안전하고 무지 즐거운 등반을
마쳤다는 점이 우리대원들을 뿌듯하게 한다.
그리곤 4조 교육생에게 묻고 싶었던 말도 거둔 채 서둘러 캠프로
하산한다.
인수 주위의 단풍은 절정을 이루어 하산 길이 단풍빛으로 환하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단풍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서서."
인수가 우리대원에게 나즈막이 속삭인다.
캠프에서는 수료식이 막 시작되었고 도착하는 우리 4조원에게
모두 진정어린 격려의 박수로 맞아준다.
'왜 이리 늦었는데?'하는 인사에는 축하와 하나된 동문애를 느낀다.
축하의 빨간 장미꽃을 수료생에게 하나씩 선사하는
한국산악회 산악연수원 집행부의 세심한 배려에는 정열과 낭만이 넘친다.
6주 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강사님들과 교육생들의 맞잡은 두 손과
눈빛에서 나는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수료 축하 뒷풀이로 정한 산유화 고깃집의 너른 2층이 꽉 찼다.
11기 학생장 김 근웅님의 수료식 답사에서 박 석희강사님은
엉엉 대성통곡하였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
...
..."
會者定離 離者定會
그렇게 11기 동문들은 우리 동문 캠프의 새식구가 되기를 다짐하면서
향연의 밤은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