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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9월 28일)
설악태극종주를 시도했다가 종주는 제대로 못하고 경험만 쌓고 왔습니다.
종주기는 아니고 훈련기입니다.
제 블로그에만 두었다가 올려 보라기에 올립니다.
도움 주신분(울산바위휴게소 사장님, 방장님, 달님님) 감사합니다.
J3 회원 여러분 건강하시고 즐산하세요.
누운풀
태극종주
산을 오르기는 하는데 일반 등산과는 좀 다르다. 대포 집에서 대포 한잔 하듯 너도 나도 다하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이 걸어야 하고 많이 숨 차야 하고 무릎이 후들거리고 발 바닥에 불이 나야 하며 흘린 땀이 말라서 한 봉지 소금을 만들어야 하는 꽤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것도 길을 아는 자만 허용하는 또 한번 까다로운 제한을 두고 있어 성공하면 나름대로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엘리트적인 성격의 스포츠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준비가 완벽하고, 기상 여건 등 모든 조건이 좋다 해도 일단 길을 모르면 절대 안 되는 일이 종주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태극종주 길 찾기 개념은 너무도 단순했다. 일단 떠나기 전 충분히 지도나 종주기를 숙지하여 출발한다. 대부분 외길로 형성된 들 머리를 우선 찾아 들어라. 종주는 마루 금에 시작 마루 금으로 끝이 난다 그러니 마루 금에 올라서라. 이제부터 마루 금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눈을 감고 걸어도 된다. 왜냐하면 길은 거의 외길이고 어쩌다 만나는 갈림길은 종주 선배들이 어김없이 친절하게 안내표시 예뿐 리본을 다닥다닥 붙여 놓았다. 올 봄 지리산 태극 때 실제 경험해본 생생한 사실이다. 태극종주 길 찾기 그것 식은 죽 먹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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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게도 대단한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믿고 설악태극에 덤벼 들었다. 엄청난 오산이었다. 만만하게 봤으며 아주 잘못 판단했다. 무엇보다 오만 방자했다. 그 대가를 철저하게 아주 처절하게 그리고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날이 밝기 전까지
이제 더는 움직이지 말자. 이렇게 계속 움직이고 헤매다간 체력만 소모하고 낙상이라도 당하면 그땐 정말 대책이 없다. 바위 밑 틈새 그나마 바람막이가 될 만한 곳 배낭을 짊어진 채 들어 누었다. 숨을 몰아 쉬며 하늘을 처다 보았다. 별빛이 아직 새파랗다. 머리 두건을 벗어 땀을 짜내고 머리털을 털어 말렸다. 눈을 감는다. 머리 속이 하얗게 비어 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선뜩한 느낌에 눈을 뜬다 ‘왜 내가 젖은 옷을 입고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데 이렇게 누워 있단 말인가?’ 괴괴한 느낌이 엄습한다. 아! 그렇지 지금 내가 태극종주를 시작했고 밤새도록 갈 길을 찾아 헤매다가 지쳐 잠시 바위 밑에 주저 않아 누어버리지 않았던가. 깜빡 잠이 들었었고 몸이 식어 한기에 눈이 떠진 것이다.
밤새 헤매고 있었다.
한계리 들 머리부터 잘못 들었다. 어쩌다 제대로 마루 금을 찾아 걸을 때는 가끔 리본도 발견한다. 잘 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은 없어지고 캄캄한 절벽이 나타나거나 덩굴 혹은 무성한 잡목 숲이 가로 막아 선다. 다시 돌아서 제자리를 찾는데 무진장 애를 먹고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이러기를 밤새 몇 번째 계속 하고 있다. 이제 새벽녘 이번엔 워낙 멀리 벗어나 버렸는지 제자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다. 두 시간이 넘게 헤매고 있다. 같은 장소를 몇 번씩이나 왔다 갔다 반복한다. ‘아니 다시 여기란 말인가?’
방향 감각도 거리 개념도 이제 거의 상실된 상태다.
이미 여러 차례 제 길을 벗어나 아득한 밀림 속을 헤치고 다니다 보니 혼과 기가 거의 다 빠져 나가 버렸다. 한마디로 정신이 없다. 배낭에 달아 멘 스틱과 물병이 달아나 없어졌다. 덩굴에 걸려 넘어졌고 바로 앞이 절벽이다. 이때 왼쪽 손가락에 상처가 났고 피가 흐른다. 그러나 상처는 깊지 않다. 얼굴은 나뭇가지에 수 없이 후들 겨 맞았고 한 마디로 혼비백산 상태다.
이제 6시경 날이 밝아온다.
주위가 훤하게 밝아오니 몇 시간째 헤매던 장소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길 잃은 지점이 곧 바로 파악된다. 바로 가야 될 길이 풀섶으로 덮여있다. 설사 밝을 때라도 놓칠 수 밖에 없게끔 길은 자연스럽게 소실되어 있고 그리고 가면 안될 방향으로는 갈 길처럼 바닥이 뚜렷하니 나 같은 초보들은 백발백중 잘못 갈 수밖에 없다. 설악태극 한계리 들 머리에서 안산 구간은 정식 등산로가 아니다. 인적마저 드물다. 그러니 풀과 낙엽으로 길은 덮여있고 가물가물 흐려져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크고 작은 봉우리를 만나거나 길이 갈라지는 곳에선 고도의 찍기 기술이 필요하다. 다행히 리본으로 안내가 되는 곳은 무사 통과지만 만약 잘못 찍으면 알바행 노선을 탈 수 밖에 없다.
너무 무모하게 대들었다.
무엇을 믿고 가보지도 않고 길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산을 어찌하여 이 밤에 혼자 찾아 들었단 말인가? 그래도 다행이다. 날씨가 맑고 좋았다. 바람도 없다. 비도 오지 않고 안개도 없다. 길을 잃고 이리 저리 헤맬 때도 그리 겁나지 않았고 두렵지 않았다.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결국 고생은 엄청나게 할 것이다.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갖은 고생을 다 겪을 것이다. 그리고 종주를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은 절대 보장될 것이다. 조난 당하지 않고 다치지 않고 내 발로 걸어서 다시 집으로 그리고 직장으로 복귀할 것이다. 두려움의 반대는 믿음이다. 마음속에 이러한 확신과 믿음이 있으니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다. 다만 조급하고 실망스럽고, 아쉬울 뿐이다. 가야 할 시간에 가야 할 구간을 놓쳐버린 것이 아쉽고, 쓸데없이 허비한 체력이 아깝다.
어찌할 수 없다.
이번 산행은 애당초 되는 싹수를 보니 철저한 지옥훈련으로 마무리될 것 같다. 결코 순조롭지 않을 것이며 이번 훈련을 통해 야간산행, 홀로 산행, 독도법, 사전계획의 치밀성, 그리고 무모함에 대한 견제, 한계상황극복 등 종주 훈련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껏 살아 오면서 설익고 성숙하지 못하고 미숙한 내 인생공부도 곁들어 과외로 받을 것이다.
산속을 헤매면서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게 되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직장을 생각한다. 어리석었고 참지 못했으며 이해가 부족했다. 더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부끄럽다. 죄송하다. 반성과 회한이 저절로 나온다. 사선이 눈 앞에 어른거리는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서 그런가 화도 미움도 사라지고 이해 못할 것이 없어 보인다.
2008년도 휴가는
설악산 태극종주를 통해 체력훈련, 극기훈련 그리고 인격수양 등 다목적 교육을 받고 있다. 마음을 이렇게 정리하니 조급하고 안타깝고 복잡한 생각이 조금씩 수그려 든다. 앞으로 남은 시간에 어떤 상황들이 전개될까?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게 모두 훈련과목 이라 생각하자. 훈련교관 설악의 지시대로 차분하게 끝까지 잘 견뎌 3박 4일 훈련을 성공적으로 이수하자.
인천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홍천행 시외버스를 탔다. 일요일 오후 수도권을 역으로 빠져 나가는 차라 막힘 없이
이때까지
이날 밤중에 벌어질 혹독한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무엇을 믿고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단 말인가? 머리에 헤드램프가 그리 밝지 않아 후래쉬를 들었다. 진부령 방향으로 조금 걷다 보니 공사현장이 나온다. 바로 이 근처가 들 머리가 틀림없을 것인데 도저히 찾을 수 없다. 길인지 아니지 구분이 안 되는 희미한 것을 따라 무조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발단은 여기서부터 시작 되었다. 첫 들 머리에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밤이 새도록 헤매기 시작한 전초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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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밝아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이젠 길도 찾았고 더 이상 잃어 버릴 염려도 그리고 여지도 없다. 그야말로 생각대로 마루 금을 따라 저 멀리 대청봉을 향해 내쳐 달리기만 하면 된다. 악몽 같은 지난밤은 속히 잊어버리자. 저 멀리 산 아래 펼쳐져 있는 운해를 내려다 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이 있어 初가을의 설악은 청명하기 그지 없다. 이름을 모르는 새빨간 작은 열매 나무가 너무 예쁘다.
아직 안산을 한식간 이상 거리로 남겨 두고 있다. 잠시 쉬기로 했다. 그리고 뭘 좀 먹어야 했다. 어제 홍천에서 산 김밥을 꺼내 입에 넣으니 영 넘어가지 안는다. 물이나 마시자. 한 개 남은 수통 뚜껑을 열고 물을 들이키다가 아! 하고 딱 멈췄다. 아!! 큰일이다. 물이 없다. 물이 부족한 것이다. 과연 여기서부터 안산을 거처 대승령, 귀때기청을 지나고 까마득한 서북능선을 넘어 중청 대피소까지 가는데 식수를 구할 곳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래도 우선 확인이라도 해보자. J3크럽 서울지역 운영을 맡고 계신 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타깝게도 물이 없단다. 역시 “중청 대피소까지 식수를 구할 곳이 없다”며 바쁜 아침 시간에도 친절한 설명과 함께 걱정까지 해 주신다. 방금 물을 마셨는데도 갑자기 목이 타기 시작한다. 지금 0.8리터 수통에 반 밖에 남지 않은 물을 다 마셔 버린다 해도 갈증이 해소될 것 같지않다. 방법이 없다. 갈증을 참는 수 밖에. 일단 가보자.
남은 물을 아껴야 하니 목이 타도 참는 수 밖에 없다. 일단 수통에 입을 대면 남기지 못하고 전부 마셔버릴 것 같다. 맑고 청명한 가을날 더없이 좋은 이 멋지고 아름다운 설악산 산행을 목마름의 고통과 싸워가며 해야 되다니 비통하기까지 하다.
어디 누구에도 탓할 곳은 없다.
어차피 예정된 일이고 이것 역시 하나의 훈련 과정일 것이다. ‘0.4리터의 물만 가지고 안산을 넘고 설악서북능선을 거처 중청대피소까지 가는 게 오늘 훈련이다. 타는 목에 침을 삼키면서 안산을 넘었다. 안산을 넘었으니 기념으로 물을 조금 마셨다. 걸음이 느리다. 힘을 쓸 수가 없다. 힘이 안 난다. 멀리 조망은 멋지고 훌륭하다. 그 비경을 보면서 흥을 못 느끼고 오히려 심란하다.
11를 넘겨 남교리 삼거리에 도착했다.
십이선녀탕을 지나 남교리까지 7키로. 여기서부터 국립공원 설악산의 정식 등산로다. 이정표도 있고 길도 좋다.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포기하고 내려갈까. 계속 가다가 목이 말라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대개 사람이 물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탈수 현상의 끝은 어떻게 되는가? 그래도 아직 250ml 정도 물이 남아 있고, 날씨가 그리 덥지 않으며 천천히 걸으니 땀을 덜 흘려 탈수는 막을 수 있을 거야.’ 먼 곳으로부터 인기척 소리가 들린다. 희망이 보인다. 가자!
가까운 대승령에 도착하기 전 사람을 만났다. 반갑고 기뻤다. 연세 드신 분들이 장수 대에서 출발 남교리까지 산행 중이다. 바로 물 구걸을 했다. 아!! 불행하게도 물이 없다. 세분 중 한 분이 작은 생수병에 반 정도 남겨두고 있다. 차마 그것 마저 마셔버릴 수 없다. 그것이라도 마시란다. 반정도 마셨다. 그리고 남은 물병을 배낭에 꽂아드렸다.
대승령!
여기서는 갈등 없이 곧바로 갈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 시간이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 보다가 한 모금씩 목을 축이면서 계속 가고 있다. 정신이 아득하다. 멀리 귀떼기청봉이 바라보인다. 저 아득한 봉우리 넘고도 얼마나 더 가야 하나. 오르고 내리 고를 반복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설악의 서북능선이 바로 이 순간 나에겐 지옥인 것이다. 살아서 체험하는 지옥! 지옥에 가면 뜨거운 불 속에서 목이 타는 갈증의 고통이 있다고 들었다. 당연 물을 주지도 않고 먹을 수도 없다. 물을 주되 바짝 마른 혓바닥에 한 방울씩 찍어 준다고 했다. 목이 타는 갈증의 고통을 더 느끼도록, 살아 죄를 짓고 죽어 지옥가면 받는 형벌, 지금 겪고 있다. 그런데 여기는 지옥이 아니고 설악산 서북능선 이다.
멀리 귀떼기청봉을 앞두고 또 아득한 계단을 만났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계단입구에 털썩 주저 않았다. 깜빡 잠이 든다. 그러나 가야 한다. 한참을 갔다. 귀떼기청봉 1.4키로!! 이곳은 아까 벌써 지나온 곳이 아닌가? 이런! 이런! 아까 계단에서 잠시 쉬고 출발할 때 아무 생각 없이 꺼꾸로 간 것이다. 데쟈뷰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돌아 간다. 지금쯤 귀떼귀청봉에 올라서야 하는데 알바 아닌 알바를 또 한다. 거반
저 멀리 서쪽 능선으로 해가 뉘 엿 하게 기울어져 가고 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맑은 가을 늦은 오후의 설악을 조망한다.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경관이요 시간인가? 아! 지독한 목마름의 고통만 없다면. 대략
사람은 대개 지는 해를 보면 의지가 약해지는 것일까? 봄보다 가을이 더 우울하고 아침보다 저녁이 더 희망적이지 못하다. 한계령 삼거리에 도착했다.
포기하는 게 아니다.
일단 오늘 내려가서 물을 마시고 쉬었다가 내일 다시 시작하자. 결국 대청봉을 포기하고 한계령 휴게소 방향으로 걸었다. 아! 아쉽다. 내리막 길을 걸으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조금만 더 참고 힘을 내야 했는데 왜 이리 쉽게 꺾이고 말았을까? 붉게 물든 저녁놀과 저 기울어져 가는 해 때문에 그런 것인가? 속절없이 해를 탓하면 무얼 하나. 한계령 휴게소 1.8키로 지점에서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물을 마셨다. 혓바닥이 쓰다. 휴게소에 도착하면 물을 어떻게 마셔야 할까? 물! 물! 물! 물을……
거반
늘 붐 비는 광경만 보아온 한계령휴게소다. 황량하다. 넓은 주차장은 비어있다. 서두르지 않고 바로 매점 식당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우선 1리터를 마셨다. 그리고 수통을 채웠다. 갑자기 몸이 더워진다. 다시 땀이 나기 시작한다. 밖으로 나와 넓은 주차장을 거닐었다. 혹시라도 속초 방향으로 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을까 해서. 차가 가끔씩 들고 나기는 하는데 히치하이크를 하기엔 마땅치 않다. 다시 매점에 들어와 속초 가는 버스가 있는지 물었다. 있단다. 7시 30분차가 있고 표를 끊어야 한단다. 표를 사서 찻길에서 기다려 버스를 탔다. 승객은 나 홀로 기사와 단 둘이서 한계령 고개를 넘어 속초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쉴 곳을 정해야 한다.
요즘은 여관보다 찜질 방이 좋다. 택시를 타고 괜찮은 찜질 방에 데려 주길 원했다. 고속버스 터미널 부근이다. 같은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천천히 먹었다. 이제 산을 내려왔고 지옥을 벗어나 다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돌아 온 것이다. 물을 마셔 갈증을 해소했고 밥을 먹어 배고픔을 달래고 있다. 진한 목마름의 고통에 짓눌려 배고픔의 고통은 느끼지 조차 못했다.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 오고 있다. 눈이 떠지고 정신이 든다.
꼬박 하루가 더 지나서 등산화를 벗었다. 따뜻한 온탕에서도 한기를 느낀다. 몸 속의 에너지가 거의 고갈되어 체온 유지가 잘 안 되는 것일까? 몸은 말끔하게 씻었는데 기분은 말끔하지 못하다. 아직도 갈증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밥을 먹었으나 뱃속이 허한 것도 같고 머리와 다리 등 온몸이 무겁고 마치 풍선처럼 퉁퉁 부은 것 같아 개운치 못하다. 양쪽 어깨가 배낭자국으로 벌겋게 되었고 거기가 쓰리다. 바세린을 발라 문질러 주었다. 찜질 방내 PC방에서 설악산 태극종주 공부를 한 시간 이상 더하고 잘 곳을 찾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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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행을 어떻게 하나?
한계령으로 가서 어제 밤 하산한 지점부터 다시 시작할까? 아니면 속초 해맞이 공원 들 머리에서부터 시작할까? 어디서 하든지 밤을 새워서 가능하면 오늘 중으로 끝을 내야 한다. 내일 저녁때는 복귀해야 하는 시간 제한에 걸려 있다.
지팡이(스틱)가 없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봄 지리태극에도 쓰지 않았고 이번에도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설악은 워낙 빡 세다 기에 출발 전날 밤에 부랴부랴 한 쌍을 구입했다. 그것도 꽤 비싼 물건인줄 처음 알았고 배낭에 달아맨 솜씨가 허술했던지 첫날 밤 한번 써보지도 못했는데 달아나 버렸다. 남은 구간이 험산준령 스틱이 필요하지 않을까? 구입하려면 아무래도 출발이 늦어질 것 같다. 그냥 가기로 한다. 뛰지 말고 천천히 걸어 넘어지지 말자. 그리고 무릎을 조심하자.
택시를 타고 대포항에서 내렸다.
날씨는 맑고 신선하다. 비릿한 항구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어시장 쪽에는 사람이 꽤 북적거린다. 길옆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었다. 옆
마레몬즈호텔 뒷길이 들 머리라.. ‘훤한 대낮에다 선배들의 시그널이 깔려있으니 첫날 한계리 들 머리처럼 길 찾는 고생은 안 하겠지……’
아! 또 오산이다. 호텔 뒤 안을 벗어나자 마자 길은 갈라지고 또 다시 헤매기 시작한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종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개 짖는 소리를 따라 들었다. 개 집이 층층이 쌓여 있는 개 사육장이 나온다. 수 많은 개 때가 자지러지듯이 짖어댄다. 그런데 길은 없다 이리저리 헤매고 있으니 더욱 짖어댄다. 귀가 따갑고 짜증이 난다. 다시 돌아 나왔다. 영 엉뚱한 곳에서 헤맨 것이다. 문제는 갈림길이다. “이 길이다” 는 확실한 안내가 없으니 이길 저길 기웃거려 한참을 찾아야 한다. 간신히 찾아 가다 보면 또 갈림길. 무덤은 왜 이리 많은가. 리본이 있기는 한데 부족한 듯 하고 갈림길에서는 그다지 효과도 없다. 그나마 밝은 낮 시간이라 이리저리 헤매기는 해도 첫날 밤처럼 덩굴 속에 빠지거나 바위 절벽을 만나는 그런 고생은 없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시간은 한없이 지체되고 진도는 영 나가지 않고, 힘은 힘대로 빠지고, 날은 더워 땀은 비 오듯 하는데 초장부터 영 재미가 없다. 산행을 하다 보면 쉽게 길이 잘 찾아 지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계속 헤매는 수도 있다. 그런대 이번 산행은 너무 심한 것 같다. 종주기를 읽다 보면 모두가 쉽게 찾고 무리 없이 진행하는 것 같은데. 감각이 무디어 진 것인가? 아니면 타고나기를 방향 감각이 부족한 산행 부적격자로 태어난 게 아닐까? 자꾸만 자신감이 상실되어 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가혹한 훈련을 시작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충실한 한 마리 똥개가 되자.
거의 3시간을 소모해서
달마궁봉을 넘어 4시 10분경에 계조암 암자 밑 휴게소에 도착했다. 산채 비빔밥을 시키고 비닐봉지를 요구했다. 마구 비벼가자고 비닐봉지에 막 넣으려는 순간 주인 아주머니가 보더니 “아저씨 뭐하세요?” 한다. ‘산에 가서 먹으려고 한다’고 하니 아저씨 혹시 J3크럽 태극 종주하시는 거 아니냐고 한다. 머뭇거리다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진작 말씀을 하시지 주먹밥으로 싸서 드릴 건데 밥을 더 넣어 주겠다고 그릇을 빼앗아 간다. 그리고 지금 시간에 산을 넘기가 힘들 다며 아저씨하고 한번 통화를 해 보란다.
이 집 사장님이 J3크럽 태극종주 하시는 분들과 잘 알고 여러 정보를 가지고 계시는 것 같다. 마치 지리산 태극 밤머리재 쉼터 사장님처럼. 시내로 외출 중이라며 전화를 걸어 넘긴다. 우선 길 안내를 물으니 지금 늦은 시간이라 가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가는데 까지 가겠다고 우기니 들 머리를 안내해 주면서, 리본은 공단 직원들이 수시로 제거해 버리니 거의 없고 길도 분명치 않아 어두워지면 길 잃어버릴 공산이 매우 크다고 한다. 더구나 혼자서 웬만하면 가지 않는 게 좋을 거라며 다시 한번 권유를 해 온다. 매우 친절하신 분 같다. 고맙다. 오랜만에 나눈 대화였다. 짐을 꾸리니 감자전 하나를 덤으로 주신다.
흔들바위 옆을 지나 내 갈 길로 쑥 올라갔다.
검은 호스를 따라 올라가다 호스가 끝이 나는 지점부터 정말 길은 희미해 지기 시작한다. 숲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바로 옆이 울산바위라 오르내리며 떠드는 사람소리가 크고 선명하게 들려온다. 고개를 넘어 다시 내리막이다. 아직은 어둡지는 않고 해는 거의 지고 있는 것 같다. 황철봉 길을 잘 찾아 들어야 하는데..,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 잘 가고 있다. 얼마를 가니 멀리 차 소리가 들린다. ‘아! 미시령 옛길과 만난다더니 벌써 그렇게 되었나?’ 흐르는 계곡물을 만나고 조금 가다 보니 넓고 편안한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 한참을 갔다. 아무래도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닌 것 같다. 반대로 가는 것이 분명하다. 길을 벗어났다. 다시 돌아섰다. 오던 길을 되돌아 갈라진 지점을 찾으려 올라갔다. 한참을 가도 찾을 수 없다. 길이 없어진다. 이런!! 또 길을 잃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도대체 내가 보기엔 갈라진 곳을 못 만났고 그냥 외길만 따라 왔는데, 어디에서 갈림길이 있었고 방향을 벗어났단 말인가? 이젠 어두워졌고 사방이 캄캄하다. 물이 마른 계곡 돌 밭을 따라 올라 가다가 찾기를 포기했다. 이러다 아까 가던 길도 잃어 버릴 것 같다. 아까 가던 잘난 그 길을 계속 따라가면 뭐든 나올 것 같다. 그 끝에서 다시 시작해야겠다. 돌아서서 오던 길을 가는데 그것도 헛갈린다. 이리저리 방황한다.
정상 행로에서 벗어난 잘못 가던 길을 다시 찾았다. 거의 한 시간을 계속 길을 따라 걸었다. 평평한 지대에 비교적 큼직하게 난 이 길이 아마 미시령 옛길이 틀림없다. 이 길을 찍어 건너 황철봉을 향해 가야 하는데 그 지점에서 놓쳐버린 것 같다. 이대로 쭉 가면 어디가 나올까? 차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고 가까워진다. 드디어 끝 지점에 보인다. 꽤 큰 개울이 가로막고 개울건너 울타리가 쳐있다. 널찍한 바위로 된 개울 바닥에 물이 발목까지 잠길 것 같다. 그냥 첨벙 건너 철조망 울타리를 넘으니 건물이 보인다. 국립공원 설악산 관리소다. 옆에 민가가 보이고 불이 있어 접근했다. 집 식구들이 거실에서 저녁식사 중이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거꾸로 묻는다. 어디 가시냐고? 어디를 찾느냐고? 황철봉쪽으로 등산 중인데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하니 황철봉을 모른단다.
도움이 안되니 다시 나와 아까 계조암 휴게소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위치를 대충 설명하니 속초 부근까지 많은 거리를 잘못 내려왔다고 한다. 지금쯤 황철봉에 도달해야 할 시간인데 거기까지 간 게 시간상 당연하다고 한다. 오히려 잘 됐다고 하며 더 이상 진행하지 말고 거기서 자고 다시 시작하라 한다. 다시 시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고 물었다. 다시 한번 더 권유를 하고 알려 준다. 우선 미시령 옛날 찻길을 찾아 그 길을 따라 미시령 정상 휴게소까지 가서 거기서 황철봉행 들 머리를 찾아 올라야 한다.
바로 옆 미시령 찻길이 보인다.
‘요금 내는 곳 1Km’ 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일단 찻길로 올라섰다. 올라선 찻길이 옛날 구 길이다. 아래로 새로 난 길이 보이고 차들이 정신 없이 내달리며 저 앞에 터널 통과 후 요금 내는 톨게이트가 보인다. 나는 미시령 옛길로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방향을 잡아 조금 올라 가니 ‘정상7Km’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길이 좋아도 시간 반은 걸릴 것 같다.
9월 30일 화요일, 오늘
옛길은 차가 거의 안 다닌다.
혹시 지나가는 차라도 있으면 히치하이크라도 해 볼까 기대해 보지만 차를 구경할 수 없다. 그런대 반대 방향으로 지나가는 차는 두 번 보았다. 인재에서 속초 방향으로 그러나 나는 속초에서 인재 방향으로 정상을 향해 가고 있다. 캄캄한 밤중 황량한 고갯길에서 불을 켜고 지나가는 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저 차 속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차 안에 있는 사람은 나를 보고 뭐라고 할까? 이 밤중에 혼자서 미시령 고개를 걸어서 넘는 사람을 보고. 멀리 속초시내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좀더 멀리 유난히 반짝이는 큰 불빛은 속초 앞 바다 오징어 잡이 배일 것이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좀 세차다. 그리고 춥다. 길은 좋지만 그래도 오르막이라 꽤 숨이 찬다. 흘린 땀이 바람에 말려 나갈 때 한기를 느낀다. 걷기가 지루해서 좀 뛰어 볼까 하고 뛰었다. 역시 뛸 만큼 몸의 여유가 없다. 발 바닥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온 몸이 다 고통스럽다. 그냥 계속 걷기로 하고 가뿐 숨을 몰아 쉬었다. 정상이 가까워 오니 바람소리가 제법 크다.
드디어 정상이다.
주차장, 휴게소 매점, 주유소 모두 불이 꺼지고 사람은 없다. 깜깜하다. 넓은 주차장에 황량하게 바람만 분다. 매점 앞 음료 자판기에만 불이 들어 와있다. 잘 만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려 보았다. 3동의 매점 건물 중 2동은 영업을 중지하고 폐점 시켜 버렸다. 후레쉬 불빛으로 본 내부는, 창고처럼 온갖 집기 비품들이 쓸어 널 부러져 있고 문은 커다란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혹시 문이 열리면 들어가 자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화장실은 영업중인 매점 건물 안에 있고 출입문이 잠겨있으니 없는 것과 다름없다. 어디에도 바람을 피해 들어갈 만한 곳이 없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데 자판기 옆에 알미늄샤시로 지은 조그만 움막이 있다. 미닫이 문을 열어 보았다. 아! 열린다. 후래쉬로 내부를 비춰 보았다. 크고 작은 빈 종이 박스와 쓰다만 의자 등 비품들로 가득하다. 내부 한쪽엔 마대포대에 무슨 약품 같은 게 몇 포대 쌓여있다. 넓은 비닐도 있다. 조금만 정리하면 충분히 잠잘 공간이 나올 것 같다.
문을 열고 망설임 없이 쑥 들어 갔다.
천장이 낮다. 키가 작아 다행이다. 헤드램프를 벗어 청정에 메달아 불을 밝혔다. 큰 박스를 치우고 작은 박스로 깔개를 만들어 바닥에 깔았다. 자전거를 포장했던 큰 박스는 두 쪽으로 갈라 앞쪽 문과 뒤쪽 약품포대 쪽에 세워 차단 막을 했다. 비닐은 꽤 넓고 비교적 깨끗한 게 3장이나 있으니 잘 때 이불 삼아 덮으면 딱 좋았다. 내부를 대충 정리하니 잘 자리가 꽤 괜찮다. 종이 박스로 겹겹이 깐 바닥은 냉기가 차단되고 쿠션까지 주고 있다. 또 다행히 큰 박스가 있어 허술한 문틈 외풍을 막아주고 약품 냄새를 가려준다. 덮을 비닐 이불까지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신발을 벗고 바닥 앉아보니 아늑하고 편안하다.
배낭 속 내용물을 꺼내 옆에다 가지런히 정리했다.
다행히 얇은 은박지 깔개를 챙겨 왔기에 종이박스 위에 그걸 깔았다. 잠 자리가 한결 깔끔해진다. 자리 정돈이 마무리 되었으니 이제 식사를 해야겠다. 비닐 봉지 속에 먹을 것을 살펴보니 김밥 한 줄과 아까 휴게소에서 비벼 넣은 비빔밥에 감자전이 하나 있다. 오래된 것부터 먹어 없애야 되기에 오늘 아침 대포항 편의점에서 산 김밥을 우선 먹기로 했다. 먹기 전에 냄새를 확인했다. 쉰 냄새가 없다. 입에 넣어보니 쉬지 않았고 먹을 만하다.
잘 자리가 해결되고 마음이 편하니 식욕이 당긴다.
꼭꼭 씹어 물과 곁들어 먹으니 맛이 좋다. 단무지가 없어 좀 아쉽다. 식사를 마치고 옷을 하나씩 있는 대로 모두 껴입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 갈 때 갈아 입을 옷에다 비옷까지 모두 껴입었다. 바깥은 휘 이익 바람이 불어대며 꽤 쌀쌀한 날씨다. 바람이 차단된 움막 안에 여러 벌 옷까지 껴입으니 냉기는 못 느끼고 오히려 답답할 정도다. 바람소리와 문 흔들리는 소리가 꽤 요란스럽고 시끄럽다. 그러나 이 정도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 아닌가?
만약 길을 제대로 들었다면 지금 상황이 어떨까?
황철봉을 넘어 마등령가는 저 황량한 산을 밤이 새도록 걸어야 할 것이다. 길만 제대로 찾아 간다면 못할 것이야 없지만 힘든 여정이 될 것이고 엄청난 고생을 감수해야 될 것이다. 다행이다. 길을 잃어 고생하지 않고 미시령 정상에서 잠을 잘 수 있으니 고마운 일 아닌가? 어차피 이번 산행은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정된 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여러 시간 다양한 훈련을 받아 오고 있다. 때로는 숨이 넘어갈 정도의 힘든 고생으로 긴장도 되고, 짜증도 났지만 때로는 편하고 즐거울 때도 있다. 늘 돌파구는 마련되어 있고 안전은 절대 보장해 주고 있다. 이렇게 아늑한 잠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내겐 기적이고 잊지 못할 사건이다.
발 바닥을 어루만져 마사지를 한다.
오늘 하루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이고 고마운 게 아직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 봄 지태 때는 발바닥 물집으로 고생했다. 하루를 정리해본다. 오늘 역시 진종일 길 찾기로 하루를 보냈고 결국 길을 잃어서 이런 특별한 곳에서 밤을 보낸다는 사실에 피시 웃음이 난다. 배낭을 배고 누웠다. 그리고 비닐을 이불처럼 끌어 덮었다. 다리를 쭉 뻗으니 발이 문에 닿는다. 눈을 감으면 금방 잠이 들 것 같다. 불을 껐으나 바로 옆 자판기 불빛으로 그리 어둡지 않다.
바로 그때
강한 불빛이 내부로 확 비쳐 들며 자동차 한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잠깐 쉬었다 가겠지 생각했다. 내가 자는 움막과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고 계속 부스럭거리고 있다.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 일어나 밖을 내다 보았다. 남녀 둘이서 흰색 승합차 문을 모두 열어 젖히고 왔다 갔다 하면서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 차가 고장 나서 차를 고치고 있나? 한참을 그렇게 움직이더니 차문이 닫히고 조용해진다. 이제 출발하려나 보다. 그러나 기다려도 차 시동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괜히 신경이 쓰이고 찜찜하다. 저 놈의 차가 빨리 사라져야 편히 잠을 잘 텐데 바로 코 앞에 불청객이 와 있다고 생각하니 영 기분이 안 좋다. 눈에 잠이 쏟아진다. 잠이 들었다.
신세대 댄스그룹 공연장에 내가 와있다.
요란한 음악과 함께 멤버들이 신나게 춤을 춘다. 공연장은 해변 같기도 하고 산이나 계곡 같기도 하다. 추운지 더운지 흐린지 맑은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되는 날씨에 밤인지 낮인지도 분간이 안 된다. 기쁜지 슬픈지도 구분이 안 되는 어느 혼미하고 이상한 장소에 내가 와 있다.
눈이 떠 졌고, 꿈이었다.
오줌이 마렵다. 그런데 밖이 소란하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쿵쿵 울리고 아악 거리는 젊은 여자 애들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남자 애들 목소리도 들린다. 또 다시 일어나 밖을 내다 봤다. 문을 열어 젖힌 승용차 한대가 서있고 젊은 남녀 두 쌍이 떠들며 춤추고 담배 빨고 차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한바탕 놀고 있다. 도대체 저 놈들이 어디서 와서 이 조용한 미시령 정상을 마치 도깨비 불 장난하듯이 놀고 있단 말인가? 머리맡 전화기 뚜껑을 열어 시간을 보니 새벽 두 시가 가까워 오고 있다. 저 놈들이 떠드는 시끄러운 소리에다 오줌까지 마려워 눈이 떠진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상한 꿈은 잠결에 들렸던 저것들 음악 소리에 기인한 것일 것 같다. 아까 부스럭거리던 그 승합차도 그대로 서있다.
참으로 이상한 밤이다.
저것들이 언제까지 놀까? 남자가 여자를 잡으려 하고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신이 났다. 그런대 날이 샐 때까지 오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저 놈들이 도깨비가 틀림없고 날이 밝기 전에 분명 어딘가에 숨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 애들이 오줌이 마려운가 보다 화장실을 찾아 매점으로 올라가더니 다시 내려온다. 문이 잠겨 볼일을 못 본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자는 움막 쪽으로 오고 있지 않는가? 순간 오싹하다. 저것들이 어쩌자고 이리로 온다 말인가? “제발!! 여기는 화장실이 아니야!!” “오면 안돼!!” 다행이다 종이 박스로 가려진 움막 문은 열리지 않았고 바로 움막 옆 어둑한 곳에 실례를 하신다. 세찬 소리를 내며 꽤 긴 시간 많은 양을 쏟아낸 것 같다. 다시 차로 돌아 갈 땐 신나게 소리치며 서로 경주하듯이 뛰어간다. 차문 닫히는 소리가 크게 나고 자동차 불빛이 한차례 마치 서치라이트처럼 빙 돌더니 바로 사라져 버린다.
정적이 찾아 왔다.
이젠 바람도 없다. 조용하다. 잠이 다시 들기 위해선 오줌을 누어야 한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날이 차다. 방금 여자 애들 볼일 본 곳이 시커멓게 넓은 면적이 젖어 있다. 나도 그곳에다 볼일을 봤다. 시원하다. 잽싸게 들어와 누웠다. 비닐 이불을 댕겨 덮었다. 몇 시에 일어날까? 자는 데까지 자보자.
(
네 시 반 핸드 폰 아람이 울린다.
또 한차례 잠이 깼다. 아람을 끄고 더 잤다. 잠이 잘 들지 않는다. 그냥 누워 비몽사몽하고 있다. 날이 새길 기다린다. 다리를 쭉 쭉 뻗어 스트레치를 했다. 그러다 깜빡 또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여섯 시다. 주변이 훤하게 밝아 졌다. 일어나 옷을 벗고 배낭을 꾸리고 짐 정리를 했다. 종일 시달릴 발에 바세린를 듬뿍 발라주고 양말도 갈아 신었다. 행장을 다 꾸리고 지난밤 잘 자게 해준 고마운 숙소, 기념사진 하나를 남기며 밖으로 나왔다. 춥지 않고 흐릿한 날씨다. 밤새 세워져 있던 차에서 문이 다시 열리고 남녀가 밖으로 나온다. 등산복 차림이다. 분주하게 행장을 챙기고 있다.
다가가 인사를 했다.
친절하게 응대를 해준다. 밤새 차가 서 있었기에 혹시 차에서 주무시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지금 백두대간 종주 중이고 오늘이 마지막 미시령-진부령 구간을 시작할 것이다. 종주 내내 주로 차에서 잠을 잤단다. 차 내부를 보니 뒤 의자를 없애 침대처럼 꾸며있고 침낭과 이불이 실려있다. 침대 밑에는 물통을 비롯하여 여러 짐들이 들어차 있다. 침대차로 훌륭해 보인다.
속히 출발해야 한단다.
늦으면 공단직원이 나오기 때문에 서두러 출발하지 않으며 안 된단다. 나의 행선지를 묻는다. 황철봉을 지나 대청봉을 거처 한계령까지라고 하니, 어제 자기들이 지나온 코스라 한다. 둘 부부가 다부지고 산을 아주 잘 탈 것 같아 보인다.
오늘이
백두대간 14일째인데 마지막 구간이라고 하니 대단하다. 전남 광주에서 오셨다. 봄 지태 때도 광주 분을 만났는데 그분도 산속에서 날아다니시는 분이다. 광주 사시는 분들 산을 좋아하고 산을 잘 타는 것 같다. 사과 두 개를 배낭에 넣어 주신다. 내가 잔 움막 앞에서 한 커트 부탁하고 각각 반대 방향으로 올랐다. 나와 그분들 공히 철조망 개구멍을 통과해야 오늘 산행이 시작된다. 철조망 통과 후 미시령 휴게소를 훤히 내려다 보이는 초입 능선에서 서로 손을 흔들어 장도를 기원했다.
오늘은
별탈 없이 목적지인 한계령까지 갈 수 있을까? 오늘 중으로 집에 돌아가야 한다. 속초에서 막차가 몇 시에 있는지 모르지만 늦어도
날씨가
흐릿하고 영 좋지 않다. 황철봉을 향해 첫 번 오르막을 올라 숨 고르기를 하는데 빗 방울이 떨어진다. 많이 올 비 같지는 않아 보인다. 비를 맞으며 계속 걸었다. 빗방울이 굵었다 가늘었다 한다. 바람도 불기 시작한다.
드디어 그 유명한 황철봉 너덜바위를 만났다. 이젠 비도 많이 오고 바람까지 불며 주위가 어둑해진다. 너덜을 타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위가 미끄럽다. 조심해야지! 조심해야지! 그러다 보니 속도가 아주 늦다. 오르고 또 올라도 도무지 끝이 없어 보인다. 드디어 제1황철봉 정상이다.
또 다시 알바다.
지겹다. 정상 삼각점을 보지 않고 서북쪽으로 길을 찾아 빠져야 하는데 정상까지 올라 다시 올라온 너덜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오를 때 너덜 우측으로 올랐고 다시 좌측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바람에 실린 비는 세차고 너덜은 앞에 펼쳐 있으니 마음 정리가 안 된다. 한참 내려가다 아무래도 이상하여 전화기를 뒤져 전화를 걸었다. 우선 아침에 만난 분들과는 통화가 안돼, 드디어 J3크럽 방장님께 SOS를 구했다. 우선 황철봉 반대쪽도 여전히 너덜 길 이냐고 물었다. 아니다 라고 한다. 잽싸게 내려온 너덜을 다시 타고 정상에 올라 사방을 뱅뱅 돌아 보았다. 서북 방향이라….? 길이 있다. 나무에 묻혀있다.
조금만 주의 깊게 주시하면 찾을 걸 놓쳤다. 너덜 길을 오르고 내리고 전화기를 꺼내 전화하고 30분 이상을 허비했다. 누굴 원망하랴! 내 눈이 어둡고 산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고, 주의력이 약한 미숙아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 훈련 받고 있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자. 감히 설악 태극종주를 하겠다고, 어림없다. 아직은 부족하다. 충분히 내공부터 길러라! 지금 종주가 아니라 종주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빗속을 무사히 너덜지대를 빠져 나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다. 길도 찾아 들었고 이제 늦은 아침을 먹어야겠다. 비는 계속 오고 피할 곳은 없다. 적당한 장소에 않아 좀 쉬기도 해야겠다. 나무 젖 가락을 만들어 어제 만든 비빔밥 봉지를 열었다. 먹기엔 보기가 좀 흉물스럽다. 흡사 음식물 쓰레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곤드레씨들이 담벼락 으슥한 곳에 한 무더기 쏟아 논 것처럼 보인다. 우선 냄새를 맡으니 새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한술 떠서 입에 넣으니 차가운 느낌이 썩 좋지는 않지만 먹을 만 하다. 맛있게 냠냠 밥 한 톨까지 다 먹고 비닐 봉지는 돌돌 말아 묶었다. 물을 마시고 아까 얻은 사과를 베어 물었다. 달고 시원하다. 비는 여전하고 얼굴 가득 빗물이 흐르니 간지럽다. 눈으로 자꾸 들어가는 빗물을 훔쳐내기 바쁘다.
오늘도 나의 의도는 여지없이 박살 났다. 비가 오니 몸과 마음은 무겁고 의욕은 상실되고 걸음은 한없이 느리다. 우선 마등령이라도 찍고 보자. 이 구간도 어제 달마궁능선 못지않게 조망이 꽤 괜찮을 텐데 비가오니 보이는 것이라곤 겨우 길이나 찾아갈 정도, 산 전체를 마치 회색 장막을 둘러 씌운 것 같다. 미시령-마등령 그리 쉬운 구간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너덜 지대도 여럿 있고 오르내림이 심한 곳이 여럿 있다. 좋은 날 산 우들과 여유를 가지고 산행한다면 재미있을 코스이기도 하다. 마치 공룡능선처럼.
드디어 오후 1시경에 마등령에 도착했다.
올라오는 산행 객들에게 물었다. 대청에서 몇 시에 출발했냐고? 대부분 7-8시간 걸린 것 같다. 앞으로 대청까지 7-8시간, 다시 한계령까지 3-4시간, 도합10-12시간, 지금 거의
결국 시간 제한에 걸려 버렸다. 지금 공룡을 타고 대청을 향해 간다면 오늘 돌아갈 수 없다. 아쉽지만 포기다. 지금까지 64시간을 허비하고도 설악의 심장부를 관통하지 못한 채 하산해야 한다. 비통하다. 그리고 참으로 한심하다. 내 나름대로 이번 산행을 그냥 종주 훈련이라고 선언하고 자위해 왔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막상 하산하려니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돌이켜 보면 이번 종주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길에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게 길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 가보지도 않고 길을 모르는 상태에서 종주란 백전 백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 길을 알고 나를 알면 종주 성공이다. 이번 산행에서도 실제 산행한 거리는 종주거리 보다 더 많을 것이다. 긴 거리를 제구간을 벗어나 알바로 걸었다.
또 하나 충분한 식수와 식량이다. 큰 산에서 물이나 식량이 떨어지면 쉽게 조달이 안 된다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터득했다.
큰 산은 늘 겸손하고 조용하고 단정하며 치밀하고 세심한 사람을 허용한다. 덜렁대고, 무모하고 오만한 자에겐 허용하지 않는다. 도와주지 않고, 지켜주지 않으며, 보호해 주지 않는다. 자신을 돌이켜 볼 줄 알아야 하며 산과 대화할 줄 알아야 한다. 산이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자만이 밤과 낮을 가로 질러 긴 산행을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종주는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치밀하지 못했고 의욕이 앞섰고 무모했다. 그리고 겸손하지 못했다. 돌아가자! 이나마 다치지 않고 다시 돌아갈 수 있고 또 많은 것을 터득하지 않았는가? 이번에 터득한 산 경험과 훈련을 바탕으로 다음을 도모하자. 좀더 내공을 축적하고 좀더 공부에 매진하자. 그리고 미래를 위해 이번 종주훈련을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자.
비선대까지는 계속 가파른 내리막이다. 지팡이를 쓰지 않고 3-4일간 설악산을 오르내리니 다리가 아프다. 하산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산도 인생도 하산을 잘 해야 한다. 바쁠 것이 없으니 최대한 천천히 계단을 세며 내려간다. 금강굴을 보고 싶다. 몇 번 지나치기만 했을 뿐 아직 보질 못했다. 철 계단을 올라 가는데 비교적 젊은 부부인데 서로 분위기가 안 좋아 보인다. 지나치면서 언뜻 “광주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저기를 못 올라가 보고 돌아 가는 게 말이 되느냐” 잔뜩 짜증 섞인 남자의 음성이 들린다.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다. 굴 앞에서 앞 산을 조망하니 시원하다. 옛날 고승(원효)께선 어떻게 이곳을 오르내리시며 수도를 했을까? 지금처럼 계단은 물론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일을 타고 암벽등반을 한 것일까? 금강굴! 볼만한 곳이다. 올라 오길 잘 했다. 아까 그 남자 짜증낼 만하다.
설악공원에서 버스를 탔다. 속초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는다. 산우에게는 못 간다고 답해 주었다. 아니 그리고 워낙 때가 때인 만큼 같이 갈 자리도 없단다. 산우는 2일 목요일 밤 일을 마치고 설악산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생각이 온통 설악산에 가 있다. 다시 달려가 남은 구간을 마저 마쳐야 될 것이 아닌가? 설악이 잡아 끌고 있다. 설악 줄기와 끈이 묶어 있다. 풀지 않은 채로 돌아왔고 끊을 수 없으니 다시 가서 풀어야 한다. 메인 채 살 수 없다. 마구 잡아 당기고 있다.
산악회에 전화를 걸었다.
금요일 밤 출발 버스가 있으나 만석이고 대기자가 4명이나 된다고 한다. 코스는 바로 내가 남겨둔 구간과 똑 같다. 한계령, 대청봉, 공룡능선, 마등령, 그리고 비선대로 하산. 무조건 간다고 했다.
(
3일 개천절
금요일 휴일을 가족과 함께했다. 저녁때 아내와 시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다. 그때 어제 떠난 산우로부터 전화가 왔다. 낭패가 난 일이 발생했다고. 허술한 산악회에서 산장을 예약하지 않아 설악산 꼭대기에서 잘 곳이 없단다. 시방 밖에서 자야 할 산행 객이 백 명이 넘는다고. 연휴라 설악산이 붐 비는 구나. 방법이 있을 리 없다.
내게 특별한 산우는
오늘 새벽 장수대에서 출발 중청 대피소까지 왔다. 긴 거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연세가 좀 있다. 며칠 전 극심한 갈증으로 고통 받았던 그 지독한 서북능선을 통과한 것이다. 더 이상 움직이지 말고 계속 대피소에서 버티라고 했다. 결국 나중엔 예약한 자나 예약 못한 자나 구분이 없을 것이고 앉을 곳이라도 찾아 밤을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이제 몇 시간 후면 나도 설악산으로 달려간다고 하였다.
버스 통로에 깔 판을 깔고 앉으니 오히려 의자 보다 편한 것 같다. 살짝 누워 보았다. 더 편하다. 밤 10에 출발한 버스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가득 태워 설악산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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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휴게소를
엄청난 무리가 왔다. 몹시 붐빌 것 같다. 그리고 길이 많이 막힐 것 같다. 마치 도로에 차가 막히듯이 칵 막혀 진행이 안되기도 한다. 서둘러 곧 바로 산을 향해 올랐다. 조금 험로에선 역시 막힌다.
며칠 전 초 죽음이 되어 내려오던 길을 오늘 새벽은 힘차게 올라간다. 여러 무리를 추월하고 중청에 도착하니 날이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다. 중청대피소는 저작거리 새벽 시장과 같다. 접근하기도 싫다. 날씨도 흐릿하니 대청도 오르기 싫다. 사람은 많아 넘쳐 나고 길을 막혀 지체되니 그냥 갈길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바로 희운각으로 내려섰다.
희운각에서 아침을 먹었다.
싸온 주먹 밥을 맛있게 먹고 물을 채워 곧 바로 출발했다. 재 작년 늦가을 바로 오늘처럼 이 구간을 산행한 적이 있다. 그때는 비가 왔다. 그래서 그런지 공룡으로 향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 홀로 공룡을 탔었다. 그러나 오늘은 많은 사람이 공룡으로 들어 선다. 사람이 많고 길이 가파르다 보니 가다 서다 반복한다. 산우를 어디쯤에서 만날 수 있을까?
어느 가파른 오르막을 한차례 끝내고 마루턱 숨돌리는 곳에 아주 돋보이는 산행 객 한 분을 만났다. 올해 83세 비박 장비를 챙겨 비박을 하면서 산행을 즐기신다고 한다. 딱 봐도 행장이 무거워 보인다. 저 무거운 짐을 지고 저 연세에 설악 공룡을 탐닉하다니 대단하다. 감히 삶의 희망을 본다. 한 고개를 더 넘어서 드디어 산우를 만났다. 반갑다.
날씨는 쾌청하지는 않으나 비교적 맑고 조망이 그런대로 괜찮다. 동행하는 어느 분은 동해 바다까지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그건 욕심이다. 그 분은 비를 맞으며 공룡을 지나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망은 더욱 선명해지고 더 멀리 보인다. 그리고 조금씩 더워지기도 한다.
역시 공룡 등줄기에서 느끼는 설악의 비경은 감탄할 만하다. 멋지고 아름답다. 지구상에 딱 하나 있는 태곳적 신의 작품. 물론 더 나은 곳도 버금가는 곳도 있지만 설악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푸른 색에서 붉은 색으로 변하고 있다. 짙은 푸른 색, 짙은 빨간 색, 그리고 두 색갈이 섞인 수 많은 색깔들이 어우러져 있다. 파스텔 색조의 전형적인 가을의 색깔을 보고 있다.
수 많은 사람이 공룡등뼈에 올라와 있다.
가고 오고 교통정리가 안 된다. 그래서 막히고 서로 엉킬 때도 있다. 붐 비는 산행은 늘 피해 왔다. 그런데 오늘은 어쩔 수 없다. 참고 즐기면서 가야 한다. 밤새 고생한 산우가 힘이 없다. 배낭을 바꿔 멨다. 내 것 보다 조금 더 무거워 보이니 도와줄 거라곤 그것 밖에 없다.
쉬엄쉬엄 진행하여 12시경에 마등령에 도착했다.
역시 또 하산을 잘 해야 한다. 산우의 무릎이 영 신통치 않다. 가파른 내리막을 잘 마무리 해야 할 텐데. 여기서 내려가면 여러 우여곡절 겪고 비록 긴 시간은 소요되었으나 짜깁기 종주는 하게 되는 샘이다. 언뜻 보기엔 애를 쓰며 고생을 무릅쓰고 기어코 종주를 끝냈다고 보지만 엉터리 짝퉁이고 함량 미달이다. 종주라고 할 수 없다. 규정된 정상 품질의 종주를 하기 위해 훈련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 훈련을 통해 종주 못지않은 고생을 했고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축하고 싶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자. 다음이 있어 기분이 좋다. 다시 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무사히 잘 내려왔고, C지구 버스 주차장까지 지루한 걸음을 다 마쳤다. 안녕 설악! 곧 다시 올 것이다. I will come back Hear Soon!
(안내 리본)
(한계리 운해)
(시그널)
(안산 조망)
(한계 삼거리)
(해맞이 들머리 부근 개집)
(청대산 아래 샘)
(달마궁능선 조망)
(울산바위 휴게소)
(산채비빔밥)
(흔들바위)
(미시령 구길)
(미시령 숙소내부)
(미시령 숙소내부)
(백두대간 팀)
(미시령 숙소 앞에서)
(황철 너덜바위)
(금강굴)
(83세 비박 산행객)
(공룡에서 산우와)
감동적인 산행기입니다. 동네 앞산에서 길을 잃고 총소리에 놀라 포기한 제가 부끄럽군요
생생한 산행기에 긴장이 놓이질 않네요 존경스럽습니다. 존경!!
산행기 읽고 눈물이 날것같아 겨우 참았습니다....으앙.....며칠후 설악태극길을 떠날계획입니다 걱정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