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9, 목요일
리움 미술관 ,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1954- )전
겨울 날씨에 긴장하여, 목도리에 장갑까지 단단히 둘러매고 나섰는데, 바람없는 파란 하늘이다. 야외정원에 전시된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들을 감상하는데, 작품 주변의 물은 얼었는데, 해는 따사롭다.
친구들은 조금씩 늦게 도착한다하지만,이 여유를 즐기느라 지루할 틈이 없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설치 미술작가인 아니쉬 카푸어는 인도계 영국인이다.
나는 그의 작품을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첫번째는 1990년이후의 void(공허) 시리즈인데, 섬유유리와 안료를 사용한다.
그는 왜 작품마다 빈 공간, 구멍을 뚫어놓았을까?
나는 '나의 몸, 너의 몸'이라는 작품을 보았을 때, 왕가위 감독의 '2046'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양조위가 앙코르 와트의 오래된 나무에 구멍을 뚫고,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그 구멍에 대고 이야기하고 진흙으로 막아버리는 장면이다.
오래된 원시림같은 그 곳에, 영원히 비밀을 묻는 그 장면은 그 애절함과 간절함때문에
아직도 내 마음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나의 몸 너의 몸'(My body your body), 1999, 빨강객 정사각형안에 깊은 구멍이 뚫려있다.
아니쉬 카푸어의 그 구멍에는 근원적인 것, 원초적인 것에 대한 비밀스러움이 있다.
사막을 여행한 사람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반원의 하늘에 떨어질 듯 박힌 별을 바라보며,
그 무한한 우주 공간속에서 모래알처럼 작은 자신을 경험한다 한다.
어둠, 빈 공간은 우리에게 그러한 생각을 하게 한다.
수백만년의 시간과 거대한 우주 속의 나를 생각하게 한다.
아니쉬 카푸어는 작품 속에서 그 공간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관람객들을 그 구멍, 공간속으로 끌어들여, 가장 원초적인 질문에 부딪히게 한다.
그의 작품 중 void 시리즈는 특히 직접 눈으로 보아야만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작품들을 사진으로만 본다면, 일견 회화작품처럼 느껴질 수 있어, 입체감을 느낄 수 없다.
'노랑'(Yellow)은 6m*6m의 정사각형의 노란색 안에 해를 하나 그려놓은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동그라미는 3m의 깊은 구멍이다. 1999
'땅'(The earth) 또한, 원모양의 파랑색 벨벳조각하나를 바닥에 놓아둔 것 같다.
하지만 파랑의 깊은 구멍이다. 1991
void시리즈의 그 구멍은, 스테인레스재질로 만든 '동굴'이라는 작품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가 창조한 빈 공간, 동굴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도, 구멍 속의 감정과 다를 바 없다.
어린 시절, 동네 한 귀퉁이에 버려져있던 낡은 드럼통 속에서 오지않는 술래를 기다릴 때,
느끼던 외로움, 서글픔 등이 떠오른다.
그는 거시적인 세상속의 미소한 나를 떠오르게 한다.
2000년대 들어 붉은 왁스로 만든 '자가 생성' 시리즈는
좀 더 직접적으로, 근본적인 세상을 생각하게 한다.
"나의 붉은 모국'의 검붉은 왁스는 지구 내부에 꿈틀거리고 있을 마그마를 떠오르게 하고,
오래된 지구의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
짐수레에 실린 붉은 왁스을 천천히 돌리고 있는 추는,
떨어지는 바위를 산 위로 계속 끌어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같다.
또한 긴 시간, 거대한 공간 속에서 수없이 삶과 죽음을 계속하고있는 모든 생명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
나의 붉은 모국(My red homeland), 2003, 왁스, 유성물감, 철구조물과 모터
야외 공간에 전시된 최근작 스테인레스 작품들도 그가 추구해 온 예술 세계와 맥을 같이한다.
이 작품들은 갤러리가 아닌 밖에 전시된 공공미술로,
대중과 한층 밀접하게 소통한다.
거울과 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표면에, 하늘을 품고, 나무를 품고, 근처의 건물들을 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품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품는다.
우리는 이 작품들을 통해 세상 속의 나를 본다.
이 작품들은 재미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 사람들과 호흡하고 있는 도시 속의 나를 바라본게한다.
큰 나무와 눈(Tall tree and the eye),2009, 스테인레스 스틸
하늘 거울 (Sky mirror), 2009, 스테인레스 스틸
현기증(Vertigo), 2012,스테인레스 스틸
어떤 비평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물리적인 경헌과 형이상학적 경험을 함께 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에는 대중성과 철학성이 함께 녹아있다.
그가 인기있고 예술성있는 작가인 이유가 거기 있는 듯하다.
첫댓글 드디어 애니쉬 카푸어 전시 다녀오셨군요^^
선계님의 멋진 전시후기를 읽고 있자니 한남동의 겨울풍경을 비추고 있을 카푸어의 하늘거울을 또 들여다 보고 싶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