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조기와 농약범벅으로 상징되던 중국농산물이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후원 하에 드디어 저가 · 고품질이라는 신무기로 재무장해 한국시장을 융단 폭격할 준비를 갖췄다.
중국산은 곧 저급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음에도 국내 김치시장에서 이미 중국산이 식탁을 장악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농산물의 국내 수입액 비중은 1995년 7.3%에서 2005년 23.8%로 세 배 이상 높아졌다. 고추, 마늘, 파 같은 양념 채소류와 팥, 들깨 등은 100% 중국산이며, 땅콩, 당근, 양파, 생강 등도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통계로 볼 때 이미 국내생산량은 시장수급 조절기능을 상실한 상태이고, 더욱 무서운 사실은 중국이 자국 내 수요에 따라 수출물량을 널뛰기하듯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어명근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중국의 농산물 수급 중장기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농업이 토지집약에서 노동집약으로, WTO 가입 후 수출 주도형으로 바뀌고 있다”고 밝히면서 중국의 농정 변화 방향과 수급전망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와 분석이 절실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농산물로만으로는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중국의 작황에 따라 국내 소비시장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소비자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우리정부가 할 일은 국내 농산물의 수급계획을 다시 세우거나, 수입선의 다변화로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길 뿐이다.
공산품으로서 세계시장의 공장이 된 중국은 이제 농산물로서도 ‘빅 브라더’처럼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가공할만한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가고 있다. 한미FTA로 멍든 농심은 중장기적 외환(外患)인 DDA로 억장이 무너지려하고, 코앞의 중국은 완벽한 강펀치를 날릴 수 있도록 스파링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정부의 적극적이고 치밀한 계획으로 생산된 농산물이 수급마저 자의적으로 조정할 때,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식량문제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물론 혹자는 국내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고품질 농산물을 개발하고 선진 마케팅을 도입하여 개방 파고를 넘어설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진정한 한국적 농업의 틀을 만들 수 있다고 역설하고는 있다. 그러나 정부와 농민이 혼연일체가 돼 체계적인 품질관리와 수급시스템으로 무장된 거대국가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이 해답은 우리농업인 스스로의 자구책 강구만으로는 역부족이고, 정부의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정책입안과 대응시스템을 갖추는 일뿐이다.
그렇지만 작금의 세태를 보건대 재외국민 보호라는 지상임무를 망각한 채 ‘전화번호를 어디서 알았느냐’는 어이없는 대응으로 도마에 오른 외교부 영사관식 자세로 대처한다면 우리 농업정책의 미래는 없을 수밖에 없다.
어명근 연구위원의 지적대로 중국이 세계 농산물 시장의 가격 순응자(順應者)에서 가격 설정자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당국은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농업정책과 수급변화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농업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어 위원의 주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삶의 기본인 식량문제를 중국에만 의존하다가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때는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가? 이런 상황 설정이 대기업에 기대어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살아가는 하도급업체의 비애와 비교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나 자칫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는 오우천월(吳牛喘月)의 교훈을 되새겨 우리 모두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않는다면 협상시한에 쫓겨 영하의 도심에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농심을 외면한 채 진행되는 한·미FTA협상의 재판이 될 것이고, 결국 수천 년 지속된 우리 농업의 신토불이(身土不二)는 그저 농협중앙회 건물에 걸려있는 걸개그림에서나 찾아 봐야 할 과거의 유물로 전락될 최악의 운명을 맞이할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