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축 수업하던 날
류 근 만
지난 금요일 이른 아침이다. 날씨가 화창하다. 덩달아 마음이 분주하다. 사실은 토요일과 일요일 아내와 1박 2일 외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금요일에 출발했으면 좋은 일정인데 강의를 들으려고 토요일에 출발할 계획을 했다.
그런데 목요일 저녁에 갑자기 강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금요일 글쓰기 강의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단축한다는 연락이었다. 정오가 넘어 끝이 나는 수업인데 한 시간을 단축해서 끝낸다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쾌재를 불렀다.
여행 목적지는 며칠 전 일간 신문을 보고 정했다. 강진 마량 놀토수산시장이다. 이곳은 365일 열리는 곳이 아니다. 5월부터 10월까지 매주 주말에만 열린다고 한다. 여행경험이 별로 없고 정보를 접하기도 쉽지 않아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다. 지난달 22일 마량면 마량항에서 문을 연 놀토수산시장은 코로나 여파로 2년간 문을 닫았다가 지난해 재개장했다고 한다. 지난달 29일과 지난 6일에 1만 명이 훨씬 넘는 방문객이 몰렸다고 한다.
놀토수산시장은 3최(最) 3무(無)를 내건 봄~가을 대표 수산시장이다. ‘3최’는 최고로 신선하면서 품질 좋고 저렴하다는 의미이다. ‘3무는 외국산이 아닌 국내산만 사용하고, 여름철 해산물에서 발생하는 ’비브리오패혈증‘이 없을 만큼 청결 상태를 유지하면서 관광지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바가지요금이 없다는 뜻이라 한다. 어느 관광지든 선전하는 내용을 보면 비슷비슷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구미가 당긴다.
여행을 가려면 나이가 들었어도 어린애들처럼 마음이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목적지가 놀토수산시장인 만큼 외지의 관광객과 지역민들이 많이 모일 것으로 예상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마침 금요일 단축 수업으로 점심 전에 출발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장거리 운전을 해본 경험이 없으므로 은근히 겁도 났다. 장장 다섯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금요일 아침에 분주히 움직였다.
우선 주유소에 가서 자동차 연료를 가득 채웠다. 서비스 센터에 가서 간단히 차량 점검도 마쳤다. 평소보다 십 분 전에 시작하는 강의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서두른 것이다.
강의는 11시 조금 넘어 끝났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강하기 때문에 사전 출발 준비를 마친 우리 부부는 곧 출발할 수 있었다.
서대전 톨게이트 요금소를 지나 호남 고속도를 달렸다. 차량 소통이 원활하다. 날씨도 좋아 기분도 상쾌했다. 한 시간여를 싱싱 달려 오수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미리 준비한 간편식으로 점심도 해결했다.
나는 호남고속도로는 달려본 경험이 별로 없다. 공사장이 왜 그리 많은지, 고정식 과속 단속 장비도, 단속 카메라도 많다. 요즈음 단속이 심한 것을 고려하여 속도를 초과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다 보니 피로함도 더 했다. 한 시간 넘게 운전하다 벌교 졸음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가슴이 확 트인다.
아직 거리가 꽤 남았다. 보성녹차휴게소에 들렸다. 커피를 주문하려는데 절차가 복잡하다. 옆을 보니 로봇이 커피를 판다. 젊은 고객의 도움을 받아 주문하고 로봇이 건네주는 커피를 받아 마셨다. 직접 주문하는 커피보다 가격도 저렴하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상냥한 목소리로 친절하다. 아직 접해보지 못한 문화에 낯설다. 곁눈질하고 젊은 사람한테 물으려니 나이가 들고 있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애초 예상보다 다소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리가 한산하다. 바람도 없고 해안치고는 너무 조용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숙박 시설도 보이고 행정기관도 보인다. 마침 도착하여 주차한 곳이 보건진료소다. 역시 공직자 출신이라 행정기관이 편해 보였다. 진료소에 들어가 숙소와 저녁 식사할 곳을 상담했다. 친절하게 대해 줌에 고마움을 느꼈다. 면사무소 직원과 상의해서 알려주겠다면서 잠시 기다리란다. 기다리는 동안 해변을 한 바퀴 돌았다. 진료소 직원이 메모한 것을 건넨다. 숙소의 전화번호, 찾아갈 주소까지 자세히 적혔다. 전화까지 해 놓았다고 한다.
소개받은 숙소에 가서 여장을 풀었다. 주인 역시 상냥하고 친절하다. 식당에 가서 싱싱한 활어회로 저녁을 주문했다. 피로를 풀기 위해 술도 한 병 주문했다. 술은 그곳에서 많이 소비하는 ’잎새 소주‘다. 싱싱한 수산물에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식당을 나오니 취기도 있고, 바람도 시원하다. 혼자서 주말에 열린다는 놀토시장을 한 바퀴 돌아봤다. 여기저기 플래카드도 걸리고 안내판도 보인다. 수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중앙정부의 지원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안내판을 보니 주변에 이름난 관광 명소도 꽤 많다. 볼거리도 먹거리도 많은 관광지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시간을 냈으니 넉넉하게 돌아보고 싶다.
그런데 아내는 걷는 것을 힘들어한다. 집을 나설 땐 언제나 약봉지로 가방을 채운다. 아내는 숙소만 지키고 먹는 재미만 맛보려 한다. 전에도 대부분이 나만 홀로 죽이다. 여행을 가봐야 별로 재미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큰마음을 먹었다. 꾹 참고 앞으로 많은 여행을 터득하기 위해 세심하게 배려하려고 다짐을 했다. 기회가 잦다 보면 확실히 변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해변과 주변을 한 시간 이상 걸었다. 기분도 상쾌하고 피로도 확 풀린다. 오늘 개장하는 수산시장도 둘러봤다. 아직 준비된 것은 없다. 한산하다. 열 시에 수산시장이 개장되고, 오후 두 시에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수산물판매장에서 싱싱한 농어를 사서 회를 쳤다. 그리고는 식당에 가서 아점(아침 점심)으로 두 끼 식사를 마쳤다.
오늘의 일정은 아내와 의견이 달랐다. 나는 모처럼 나온 여행인데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관광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피곤하다며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아 난 아쉬웠지만 할 수 없이 아내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대전 집으로 향하는 아내의 얼굴이 환해진다. 나 역시도 집으로 오는 길은 집을 떠날 때보다 수월했다. 즐거워하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에 유유도 생겼다. 잠시 한 여행인데도 역시 아내는 집이 좋은가 보다.
평소 여행을 안 해본 초보자라 아쉬움이 많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두 번 세 번 하다 보면 아내도 자꾸만 나가고 싶어 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속도가 빨라진다고 한다. 백수로 보내는 시간을 여행에 가속 페달을 밟고 싶다. ’단축 수업‘ 덕분에 아내와 함께 첫발을 뗄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 재차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