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애플 스토어는 광장을 닮았다.
2020년 말 유튜브를 통해 애플의 새 스마트폰 '아이폰12'가 최초 공개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중과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디자인이나 성능이 아닌 충전 어댑터의 행방이었다.
애플은 공식적으로 구성품에서 충전 어댑터를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스마트폰이라는 하나의 플랫폼에 모든 것을 '더하는 ' 혁신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애플이 이번엔 당연히 있어야 할 무언가를 '빼는' 일로 다시 한번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국내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앞다퉈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누리꾼들 또한 댓글로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나는 소식을 듣고 도리어 무릎을 탁 쳤다.
이건 애플이 경쟁자들에게 보내는 선전포고이자 의미심장한 메시지였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 이상의 자사 제품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에 근거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삼성은 새 모델 '갤럭시 s21'의 구성품에서 어댑터를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이든 애플이든 선택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이다.
다만 재미있는 건 내 주변 건축하는 동료들은 압도적으로 아이폰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고 건축가는 애플을 쓰기라도 하는 걸까.
비슷한 수많은 제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결정적 이유는 의외로 아주 작고 별것 아닌 데 있을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 대수롭지 않은 무언가를 '디테일'이라고 부른다.
애플 스토어는 디테일에 대한 애플의 집념이 건축으로 발현된 사례이다.
전 세계 25개국 약 500여 곳에 들어선 매장들은 단순히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소매점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다만 방문자로 하여금 애플이라는 일종의 '커뮤니티 공간'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사야 할 물건이 있어야만 찾아가는 다른 전자제품 매장과 달리 친구와 함께,
연인과 데이트로, 혹은 아무 이유 없이도 그곳을 찾아 유유히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 방증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머무리고, 교류하는 장소로서 애플 스토어는 현대 도시에서의 '광장'과도 같다.
유럽의 광장들을 떠올려보자.
길을 걷다 보면 저 멀리 옹기종기 않아 있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까이 걸어가면 어느새 길은 자연스럽게 광장과 하나가 된다.
그 곁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어느새 나 또한 이 광장과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된다.
애플스토어는 다만 외부 공간이 아닌 건축이기에 필연적으로 도시의 거리보부터
벽으로 구획되어 닫힐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으로서 작동할 수 있도록 몇 가지 건축적 수법을 도입하여 이를 극복했다.
도쿄 최고의 번화가 오모테산도 초입에 위치한 '애플 스토어 오모테산도'역시
이러한 수법에 충실하여 만들어진 건축이다.
이곳의 전면 파사드의 높이는 무려 9.5m다.
아파트 세 개 층에 달하는 높이지만 이를 떠받치는 기둥은 없어 천장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얇은 차양처럼 느껴진다.
그 아래로 실내의 건축과 실외의 거리를 구분하는 유일한 경계벽은 한 장의 투명한 유리다.
그뿐만 아니라 커다란 유리를 고정하고 지탱하기 위한 구조체 또한 유리로 되어 있다.
무려 다섯 장을 겹쳐 만든 멀리언은 투명성을 유지하면서도 금속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유리를 이용해 지진과 바람 등 각종 하중을 견디고자 했던 건축가와 엔지니어의 노력의 산물이다.
유리의 표면 처리, 색상, 볼트의 크기와 체결 방식, 체결 위치까지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덕분에 완벽하게 투명해진 건축의 전면부에서 유일하게 시야를 가리는 건 사과 모양의 로고뿐이다.
밖에서 들여다보이는 애플 스토어의 내부는 마치 사과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길가의 작은 광장처럼 보였다.
거리를 걷던 사람 누구라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스레 건축의 내부로 들어설 수 있는 까닭이다.
광장 가운데 있어야 할 분수를 대신하는 건 매장 중앙에 있는 나선형 계단이다.
위로 솟구치는 투명한 물줄기 대신 아래층으로 돌아 내려가는 투명한 나선형 계단은
손임을 자연스럽게 체험 공간으로 이끈다..
건축가의 도시 : 공간의 쓸모와 그 아름다움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