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멸의 신성가족 _김두식
현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사법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던 만큼 법조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은 상태였기 때문인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사태 등 법조계 비리가 언론을 통해 속속 드러나자 사람들은 내심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요즘은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장관후보자에 지명됨으로써 그에 관한 뉴스 기사가 연일 도배되고 있다. 입법, 사법, 행정 중에 가장 나의 삶과 멀게 느끼지는 사법의 영역이 우리 생활로 껑충 들어온 느낌이다. 공정함과 정의가 최고의 가치일 것 같은 사법부가 국민들에게는 어렵고, 가까이 하기 싫고, 불공정하다고(그리고 그 무엇보다 돈과 끈이 중요할 것 같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들에게 그런 인상을 심어준 사법부 내부의 사정은 어떠할까? 이 책은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법조계 내부자를 비롯하여 법조계와 가까운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과 재판을 경험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저자이자 연구자가 만난 사람들은 판사, 검사, 변호사, 법원 공무원, 경찰, 변호사 사무실 직원, 신문기자, 교수, 철학자, 시민단체 간사, 결혼소개업자, 비정규직 노동운동가, 소송 경험자 등 스물세명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들의 인터뷰를 녹취한 후 녹취록을 분석하며 질적연구를 수행했는데, 저자 또한 법조계에 몸 담았던 사람이기에 대상자들의 발언 이면의 의미를 추측하기도 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분명 이 책이 법조계에 대해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논조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법조계 내부의 입장에 상당 부분 동의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법조계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교육계의 모습이나, 교육계 내부자로서 겪는 어려움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재판거래(돈을 받고 재판 결과를 바꾸거나 청탁에 관한 사항)에 대한 판사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그런 일이 지금도 가능한가? 있다고 해도 1997년 이전일 것이다’라든가 ‘청탁이 있어도 재판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 배석 판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사실 ‘촌지를 받는 교사’나 ‘자격 미달 교사’에 대한 교육계 외부의 사람들의 카더라 통신에 대해 나도 늘 그렇게 답변했다. “아직도 돈을 받는 교사가 있다구요? 옛날에나 있었겠죠.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또는 “그렇게 행동하는데 민원이 안 들어가요? 요즘 시대에 교사의 그런 행동이 용납 가능하긴 한가요?” 물론 나 또한 촌지나 과한 체벌, 상식 이하의 교사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100%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의 사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치 다수의 교사가 그러하고, 교육계가 청렴하지 않다는 세간의 인식에 대해 불쾌감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또 옆에서 누가 ‘지켜본다면’ 판검사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며, 일에 치여 안쓰러울 지경이고 청렴하고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텐데...’라는 점도 동의 되었다. 이와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나도 ‘학부모들이나 외부 사람들이 와서 학교 내부의 모습이나 업무 처리 절차를 본다면 저런 오해를 하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을 종종 했기 때문이다.
가장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판사들의 살인적인 업무량에 관한 부분이었다. 지인을 통해 판사들이 정말 엄청난 업무량을 가지고 있으며 사건 하나도 제대로 살피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사건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사정에 인간적인 연민이 들었다. 나도 업무에 치여 교육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된다고 느꼈던 경험,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시간적으로나 마음적으로 여유가 없어 빨리 처리하다보니 깊이 있게 고민하고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교사로서 자괴감을 갖게 했었기 때문에 특히 공감되었던 것 같다.
청탁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도 주변인들로부터 청탁을 받았으나(전화 한 통이라고 해 달라는) 전달을 하지 않거나, 직접 청탁(혹은 접대)을 받아도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부분도 ‘인간적으로’ 상당부분 동의한다. 물론 책에서처럼 청탁을 한 당사자들로 하여금 청탁의 효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있다고 오해하게 만들었다는 부분을 지적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평소 인간적인 친분이 있고,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접대(술, 골프 등)를 받았다면 나중에 얽힌 일이 있을 때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상당히 인정이 되면서도, 동시에 공적관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적관계(친구, 선후배 등)도 직무관련자(사법계)일 것 같은 법조계 사람들은 사생활과 인간관계를 차단시켜야하냐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내가 김영란법에서 황당했던 부분이 부조나 선물에 관한 사항이었는데, 대부분의 직장 동료나 친구가 교사인데 직무관련자라며 순수한 의도까지 청탁으로 보고 금액을 규제하거나 처벌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었다. 가족, 친지, 친구 등 가까운 사람이 나름의 절박한 사정으로 사정을 얘기하고 부탁하는데 전달을 안 하는 것 이상으로, 단호하고 매몰차게 거절하라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요구가 아닐까? 법조인이든 교사이든 공무원이든 공직에 있는 사람에게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나 책에서 언급된 정도까지도 제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며 바람직한 것일까? ‘거절할 수 없는 돈(혹은 안전한 돈)’이나 ‘거절할 수 없는 관계’에 관한 부분도 양가감정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책에서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비록 전달이 되지 않더라도 전화 연락이라도 할 수 있는 관계가 특권이라는 지적이나 도제식 법관양성제도가 가진 문제점, 판사일 때 실력을 쌓고 그 이후에 변호사로 진출하는 문제, 돈 문제 때문에 변호사에서 판사로 돌아오기 힘든 구조, 법조 출입기자와 인간적인 친분이 쌓여 제대로 감시자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구조, 또 특종을 원하는 기자와 재판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는 법조계의 결탁, 판사 한 명 한 명이 독립 기관이지만 사실은 독립적일 수 없다는 현실(표준화, 규격화) 등이 그것이다.
실없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권위적인 판사, 엄숙한 법정 분위기에 피고인이 주눅 들고 알아서 기게(?)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편 부럽기도 했다. 업무량이 버겁지만 법조인의 수를 늘릴 경우 질적 하락을 우려하는 것도 일부 동의한다. (법조인의 수를 늘리는 것을 반대하는 의견을 모두 밥그릇과 특권 지키기로 매도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280~282쪽(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는 점, 기한에 맞춰 판결문을 써야하는데 시간 낭비 된다는 점, 위증이 판치는 법정에서 지혜와 직관으로 진상을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등)은 옳다고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인간적으로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나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응보적 정의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진실 규명과 공정한 판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교직에 몸담으며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당사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진실과 공정함, 상대방에 대한 강한 처벌 보다는 공감과 의사소통이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공부와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에 판사들의 고충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우연찮게 법의 아주 일부분을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느낀 점은 법이 생각보다 꽤 치밀하다는 것이었다. 사회의 공분을 살 만한 사건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격분하며 생각보다 적은 양형에 재판부를 욕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그 결과가 내 성에 차지 않더라도 재판부가 법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렸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접근하여 초법적으로 재판 결과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다. 사실 법은 단죄하는 목적보다는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법의 엄정함과 처벌을 더 중시하는 듯해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법조인과 교사가 되는 사람들이 타고난 수월성이나 자격 취득을 하기까지 노력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내가 법조계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우선 이 두 집단은 청렴과 공정함이 다른 어느 집단보다 사회적으로 많이 요구되며, 집단 구성원이 균일하고, 특별한 양성 과정 및 선발 시험을 거쳐야한다. 외부인이 중간에 들어오기 어렵고, 사적인간관계가 동일 집단 안에서 다수 구성되어 집단 내 평판이 중요하면서도 치명적이다. 각 개인은 독립적으로 자신의 일(교사는 학급 교육과정의 구성과 학급운영의 자율성, 판사는 판결)을 할 수 있다고 하나 사실은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다는(사회적으로도 잘 용납하지 않으려고 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 교사들조차 학창시절에 주변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 공정한 시험에서 합격한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어려서부터 천재소리를 들으며 어려운 과정과 시험을 통과하고 그 안에서도 치열한 경쟁과 검증을 거치는 법조계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과정의 치열함을 보상받을 수 있을만큼 보수가 좋은 것도 아니고 근무여건이 좋은 것도 아닌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도 외부인들은 부당한 거래가 있는 듯이 불신하니 얼마나 힘들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란 어떤 사람에게는 남은 인생과 재산이 걸려 있고,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까지 걸려있을 만큼 절박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판사를 비롯한 법조계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하나라도 부당한 일이 일어나거나 불신을 주는 일은 사라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는 교육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 교사로서의 나의 마음가짐과도 같다. 다만 법조계, 사법부에 대한 문제를 법조인 개인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물론 이 책의 저자도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제공하고, 사건을 충분히 검토를 하고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만한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들이 최고의 엘리트이지만 돈과 명예 보다 단 1%라도 정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마음과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는 자부심을 더 가치 있게 둘 것이라 믿고 있다.
이번 책은 내일 만날 동료교사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과연 이 책을 좋아할지.... ^^;;;
첫댓글 우와 대단합니다.
우왕~ 선생님 후기 정말 감사합니다!! 교육계랑 닮았다는 생각은 못해보았는데 똑 닮았네요.
우앗!!!생생한 후기 감사합니다!!
전달 인증샷이요^^ 책바람 널리~ 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