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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에 길을 묻다
장원재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 2007년 3월 / 148쪽 / 5,000원
▣ 저자 장원재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연극학으로 석사학위를, 동 대학교 로열할러웨이 칼리지에서 비교연극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극 및 공연 관련 분야의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으며, 각종 프로젝트에도 참가하고 있다. 참고로 필자는 1991~2000년까지 영국에서 유학하며 유럽선수권대회와 월드컵,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현장에서 관전하며 스포츠평론가로 활약했고,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아이디어로 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자문위원, 대한축구협회 기획자문위원 및 기술위원으로도 활약했으며, 현재는 대한축구협회 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속을 알면 더 재미있는 축구 이야기』, 『Again 2002』,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셰익스피어와 페미니즘 영화』, 공저로 『자유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예술』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현대사회에서 스포츠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핵심적인 사회제도 가운데 하나이고, 공동체를 통합하는 유효한 수단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 거대한 산업이다. 아울러 스포츠만큼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실현한 분야도 없다. 그런데 그러한 스포츠 산업 가운데 그 어떤 종목보다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산업화에 성공한 것이 ‘축구’인데, 현재 207개 회원국을 거느린 FIFA(국제축구연맹)는 UN(국제연합, 191개 회원국)이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199개 회원국)보다 조직이 크다.
그런데 우리는 왜 박지성의 유럽 축구 리그 진출에 열광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22명의 선수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기꺼이 관람료를 내고 경기장을 찾는 것일까? 선수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사 입으며 그들의 이적 소식에 왜 울고 웃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축구가 이미 인류에게 하나의 스포츠 종목을 넘어 사회 제도이자 문화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대한민국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세계 4강에 오르며 전 세계인을 경악케 했고, 2006 독일 월드컵까지 본선 7회 진출(6회 연속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하여, 이제 축구는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국제 경쟁력을 지닌 당당한 문화상품으로 성장했는데, 문제는 이러한 브랜드 파워를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면 그에 걸맞은 노력이 따라야 한다.
참고로 K리그 14개 구단의 연간 예산과 N리그(2부 리그), 대학과 초ㆍ중ㆍ고등학교 팀들이 사용하는 비용만을 합산하더라도 한국 축구는 매년 5,000억 원이 넘는 재원을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축구를 통해 실현하는 재정적 이익은 거의 없는 편이다. 바꿔 말하면 구단주와 참가자들의 호의가 사라지는 순간, 축구판 전체가 순식간에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한국 축구’라는 브랜드를 유지ㆍ강화하는 노력의 첫 단계는 바로 K리그를 위시한 한국 축구 산업을 ‘고용과 이익을 동시에 창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산업으로의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한국 축구가 ‘꾸준히 영업 이익을 내어 고용과 소비를 창출하고, 국내외 투자자들을 지속적으로 유치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공적인 축구 산업화를 실현했고 축구가 문화상품의 지위를 획득한 서유럽 국가(특히 잉글랜드)의 축구 시스템을 벤치마킹 모델로 삼고 있다. 즉 유럽 축구에서 우리 실정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한국 축구를 위한 시스템 구축은 어떤 방향에서 이뤄져야 하는지를, 조직 운영, 수익 구조, 선수 시장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한편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 산업에 관한 한, 세계 50위권 밖에 있는 변방국가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한국 프로축구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한국 축구의 장기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운영 방식을 개선하여 자체 이익을 실현하는 산업으로 육성해야 하는데, 수출과 수입을 동시에 진행하여 막대한 국부를 창출하고 세계 경제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하루빨리 세계 스포츠 무역 네트워크에 참여해야 하고, 국내적으로는 국제 표준 시스템을 도입하여 산업 고도화를 이룩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고 영업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기는 관광이나 스포츠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이 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렀을 뿐 아니라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낸 한국 축구가 이제 더 이상 투자 대비 산출결과가 형편없는 분야라는 오명을 벗고,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이 인정하는 하나의 문화이자 제도로 당당히 서기 위해 ‘산업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한국 축구의 현재를 진단하고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룩해낸 유럽 축구, 그중에서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중심으로 한국 축구의 산업화 가능성을 찾아 나서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우선 유럽 축구의 산업화 원동력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조직운영, 수익구조, 선수시장을 짚어나가며 한국 축구의 산업화를 위한 다양한 생각들을 펼쳐놓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1 왜 축구 산업화인가
01 축구, 스포츠로 볼 것인가 산업으로 볼 것인가 / 02 주식회사 한국 축구의 가능성
2 유럽 축구를 벤치마킹하라
01 유럽 축구 vs. 남미 축구 / 02 유럽 축구 산업의 성공 동력
3 프리미어리그는 어떻게 조직ㆍ운영되는가
01 유럽 축구의 뼈대, ‘피라미드 디비전 시스템’
02 피라미드 디비전 시스템의 선진성과 한국형 모델 시안
03 프로와 아마추어의 만남, FA컵 대회의 활성화 / 04 짚고 넘어가야 할 산, 리그컵의 허점
4 수익 구조를 뜯어보면 ‘돈’이 보인다
01 프리미어리그의 수입원 / 02 축구장 안팎의 이미지 상품 만들기 / 03 축구 역사의 상품화
04 경기는 한 편의 스포츠 드라마 / 05 축구 중계의 선진화
5 선수 이적 시장을 분석하라
01 자족형 보호무역 리그와 수출 주도형 자유무역 리그 / 02 선수 이적 시장의 메커니즘
03 유럽 축구계의 새로운 기업 문화, 인수합병과 윈윈전략
에필로그
유럽 축구에 길을 묻다
장원재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 2007년 3월 / 148쪽 / 5,000원
1 왜 축구 산업화인가
축구, 스포츠로 볼 것인가 산업으로 볼 것인가 / 주식회사 한국 축구의 가능성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거대 산업이다. 그리고 축구 산업화 전략의 핵심은 산업구조를 개혁하고 시장을 개척하며, 고용을 증대하고 경영 수지를 개선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논의(첫째, 리그 전체의 조직과 운영을 거시경제학적인 차원에서 논의. 둘째, 판매 방식을 개선하여 신상품을 개발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자세히 살펴보자.
현재 한국의 축구 시장에 투입되는 금액은 연간 5,000억 원을 웃도는데, 이처럼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데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을 내는 구단이나 조직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참고로 K리그를 움직이는 주 동력원은 각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재벌기업인데, 재벌기업은 프로축구단을 그룹 홍보 차원에서 운영하며, 심지어는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유지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여기에 한국 축구가 당면한 문제점이 얽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컨대 소액 주주운동이 탄력을 얻을 경우, 영업 이익을 내지 못하는 프로구단은 하루아침에 해체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불합리한 세제와 법 규정도 프로 구단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구단이 경기장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분류되어 고율의 세금이 부과되는 실정이다.
참고로 축구 산업화에 성공한 유럽의 경우 시장의 완성은 도입, 성장, 성숙의 세 단계를 거쳤는데, 도입기에는 소수의 열혈 팬만이 존재하며, 대다수 소비자는 잠재 고객으로 남아 있게 된다. 성장기는 표준 모델이 정착함으로써 구입과 소비가 용이해지고, 대량 생산과 소비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단계인데, 이 단계를 거쳐 축구가 삶의 일부이자 문화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성숙기가 도래하게 된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2006년 현재 도입기에서 성장기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볼 수 있겠으나, 앞서 언급한 대로 이러한 발전 동력이 축구팬들의 내적 욕구보다는 재벌기업들의 호의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한국 축구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함과 동시에 산업화를 위한 다양한 실마리를 갖고 있고, 이런 맥락에서 축구 산업화에 성공한 유럽의 프로축구, 정확히 말하면 서유럽의 각 리그를 통해 한국 축구의 산업화 전략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2 유럽 축구를 벤치마킹하라
유럽 축구 vs. 남미 축구 / 유럽 축구 산업의 성공 동력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의 남미 리그는 한국 축구가 벤치마킹할 대상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유럽 리그에 비해 생산성이 지극히 낮기 때문이다. 반면 서유럽 리그는 축구를 사회제도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고, 사회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축구를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공감대 위에서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1888년 프로 리그를 출범시킨 잉글랜드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 각 구단의 수입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참고로 1998년 기준 잉글랜드 리그의 축구 산업 규모는 1,500억 파운드(약 240조 원)였지만, 2006년 현재는 그 규모가 2,500억 파운드까지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의 원동력으로는 첫째, 구단 내부적으로는 주식회사 제도를 적극 도입한 것과 둘째, 외부적으로는 TV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을 들 수 있겠다.
한편 영국의 경우 1970년대에 주식회사 형태의 구단이 출현했으나, 1990년대 이후 몇몇 선도 구단이 기업공개를 통해 증시에 상장을 시도하면서 ‘프로 구단’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즉 이전까지는 스포츠 구단으로서 성격이 강했다면, 1990년대 이후 일반 기업의 성격으로 진화해 갔다는 이야기다. 보충 설명하면 축구 산업이 ‘폐쇄적 서비스 산업’이라는 협소한 영업 지대에서 벗어나, 축구계 바깥의 거대한 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며 전체 시민을 투자자와 소비자로 끌어들이는 너른 시장으로 진입한 것인데, 금융권에서 대규모 융자를 받을 길이 열렸다는 점도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그런데 한국 축구 산업도 과도기를 거쳐 성숙기에 접어들면, 모든 구단은 주식회사로 기업 형태를 바꾸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프로 구단에 대한 평가는 일반 기업보다 엄정해 질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프로축구단은 시즌 중에 거의 매주 주주총회를 열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예로 1994/1995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가는 팀의 성적과 비례하며 등락을 거듭했고, 1996/1997 시즌 중 밀월 구단은 부진한 성적으로 경영자가 문책을 받았고, 직원도 20명이나 해고되기도 했다.
한편 미디어의 입장에서 축구는 고정 팬을 확보한 상품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스포츠 경기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고 스포츠 인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선기능 외에 막대한 광고료 등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축구의 입장에서 미디어는 축구라는 상품을 대중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며,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게다가 ‘경기 중계’ 이외에 선수의 사생활, 흘러간 명승부, 옛 스타들의 현재 모습 등 ‘축구’라는 문화 상품의 판매 방식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시각에서 유럽 프로 리그는 산업화 성장기에, 방송국과 공중파 프로그램의 정규 편성과 독점 방영권 판매를 맞바꾸는(trade-off)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아울러 1990년대 들어 케이블 TV와 위성방송을 도입함에 따라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자, 비(非)공중파 방송국들은 공중파와 경쟁하지 않는 영역에서 축구라는 콘텐츠를 통한 블루오션 확보 전략을 수립했는데,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가 특정 구단의 경기를 연습 경기까지 모두 중계하는 채널(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방송), 볼의 흐름과 상관없이 경기 내내 특정 선수의 움직임만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를 도입하는 것 등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문제는 K리그 경기가 방송사들의 구매 경쟁을 유발할 만큼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참고로 2007년 현재 한국 축구 상품 가운데 미디어 프로그램으로서 확실한 경쟁력이 있는 상품은 대표팀이 출전하는 A매치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팀 경기와 K리그를 인위적으로 연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제 ‘한국 축구가 구체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할 제도와 대상은 무엇일까?’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다음 장부터 유럽 축구 산업을 대표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조직과 운영 방식, 수익 구조, 선수 이적 시장의 메커니즘을 분석해보자.
3 프리미어리그는 어떻게 조직ㆍ운영되는가
유럽 축구의 뼈대, 피라미드 디비전 시스템/ 피라미드 디비전 시스템의 선진성과 한국형 모델 시안
유럽 축구 리그의 뼈대는 자체 구장을 가지고 매주 경기에 참가하는 구단들이 상위 리그부터 하위 리그까지 수십 팀 단위로 편제되어 있는, ‘피라미드 디비전 시스템(pyramid division system)’이다. 보충 설명하면 1부 리그부터 2부, 3부, 4부 리그에 이르는 피라미드 디비전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리그마다 연중 리그를 벌여 각 리그 상ㆍ하위 팀이 자리바꿈을 하는데, 피라미드 디비전 시스템은 경기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다수의 우수한 선수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한다. 참고로 한국에서 연중 리그에 참여하는 팀은 K리그의 14개 프로 구단과 2부 리그 격인 N리그의 12개 구단이 전부라, 유럽식 기준으로 보면 한국 축구는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소수의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리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축구를 국제적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업계가 납득할 수 있는 국제 표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하겠다.
한편 피라미드 디비전 시스템의 가장 큰 묘미는 업다운(up-down) 시스템이다. ‘업’이란 상위 리그 진출을, ‘다운’이란 하위 리그로의 강등을 말하는데, 구체적인 시행 세칙은 챔피언십 챌린지리그의 우승팀과 준우승 팀은 자동적으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고, 3위와 6위, 4위와 5위 팀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을 치르고, 이 경기의 승자 두 팀이 단판 승부로 프리미어리그 막차 티켓의 향방을 결정짓는다. 그런데 상위 리그 소속이냐 하위 리그 소속이냐에 따라 팬들과 언론의 관심, 수익 창출 가능성 등이 달라지므로, 상승과 하강은 구단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팀 운영과 수익 창출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K리그의 규모를 확대할 묘안은 없을까? 먼저 유럽 축구 리그를 살펴보면, 잉글랜드의 경우 프로팀들은 거의 모두 각급 도시를 연고지로 하는데, 대개는 한 도시가 한 팀을 보유하는 것이 관례지만, 인구와 경제력, 축구팬 수, 기타 여건 등을 고려하여 두 팀 이상 보유한 도시도 있다. 흔히 한 도시를 연고로 하는 두 팀의 대결을 ‘로컬 더비’라고 부르는데, 라이벌 의식이 팽배한 이들 경기는 여타 리그 경기에 비해 언론과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모은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원(삼성, 시청), 대전(시티즌, 한국수력원자력), 인천(유나이티드, 한국철도), 울산(현대, 미포조선), 부산(아이콘스, 교통공사), 창원(경남 FC, 시청) 등의 잠재적인 로컬 더비가 있다. 문제는 서울이다. 인구 1,000만이 넘는 도시에 축구팀은 FC 서울이 유일하다. 즉 축구 부흥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은 서울의 축구 시장을 개발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발상을 전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실력, 예산, 기타 여건을 모두 충족하며 곧바로 리그에 참여할 수 있는 팀이 얼마든지 있다. 예로 현재 대학축구연맹 산하에는 70개 이상의 남자 대학팀이 존재하는데, 학원 스포츠가 스포츠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고, 축구 전문 인력의 수급 통로로 기능하는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대학 축구를 K리그와 N리그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만남, FA컵 대회의 활성화
상위 리그 팀과 하위 리그 팀이 한 합을 겨룰 수 있는 기회는 없는가? 있다. 유럽에서는 FA컵 대회라는 제도적 장치를 이용하고 있다. 유럽 모든 나라의 FA컵 축구대회는 거대한 축제 마당인데, 일류 프로팀부터 두메산골 동네 축구팀까지 원하는 팀은 모두 참가하여 자웅을 겨룰 수 있기에, 참가 팀만으로 따지면 각국의 FA컵은 최대 규모의 축구 대회다. 물론 하위 팀의 참가를 보장해 준다고는 하지만, FA컵 대회의 패권은 거의 매번 최상위 리그 소속팀의 차지가 된다. 중요한 것은 하위 팀이나 동네 팀이 일류 팀과 동등한 조건에서 맞붙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946년부터 매년 가을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이 대회는 국내의 실업팀과 대학팀, 군팀 등 성인 축구팀들이 모두 참가해서 그 해 한국 축구의 실질적인 챔피언을 가려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19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하고,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아마추어 팀들만 참가하게 됨으로써 대회의 의미가 점차 퇴색되었다. 이 때문에 프로와 아마추어 팀을 통틀어 한국 축구의 최강팀을 가리는 FA컵을 창설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런 열망에 힘입어 1996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주최로 FA컵 대회가 시작되었다. 문제는 한국 FA컵 대회가 팬들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 스포츠의 흥행 성공을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는 경쟁 상품과 정면 대결을 슬쩍 비껴가는 일정 조정이다. 따라서 FA컵 대회의 독자적 권위를 살리고 팬들의 흥미를 끌어 모으기 위해, 결승전을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 일주일 전으로 앞당기는 것은 어떤지 제안하고 싶다.
4 수익 구조를 뜯어보면 ‘돈’이 보인다
프리미어리그의 수입원
우리나라에서도 축구, 야구, 농구, 씨름, 복싱 등의 프로 스포츠가 있으나 매출액이나 사회적 관심도를 기준으로 보면 미국이나 유럽의 그것과 비교하기가 부끄러운 수준이다. 참고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각 구단의 수입원은 입장 수익, 경기장 시설 임대, 스폰서와 경기장 광고, 경기복(개별 구단 별도 계약, 리그 전체 계약 모두 가능), TV 중계료, 기념품 판매, 서포터스 커뮤니티, 식ㆍ음료 판매, 축구 기금, 증권시장 등이다. 입장 수익은 말 그대로 티켓 판매금액을 말하는데, 유럽의 티켓 판매 방식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한 경기에서도 고급 좌석과 마니아 좌석, 일반 좌석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는 사실이다. 이 밖에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티켓, 프로그램 등 각종 인쇄물의 후원을 받고, 축구화 같은 선수들의 개인 장비에도 광고주가 붙는다.
결국 프로 스포츠를 융성케 하는 데 있어 핵심은 경기 외적 요소를 얼마만큼 창조적으로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새로운 수입원을 개발하고, 이 수입원들을 하나로 묶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 즉 축구를 하나의 스포츠를 넘어서 사회제도이자 문화로 정착시키려면, 여러 각도에서 축구를 소비할 수 있는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축구장 안팎의 이미지 상품 만들기 / 축구 역사의 상품화
선수 개개인이 만드는 시각적 이미지는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축구선수의 이미지만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명’도 상품화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브라질인데, 1958 스웨덴 월드컵 우승의 주역 디디, 바바 등은 부르기 좋은 발음을 조합한 애칭이다. 한편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 대다수 국민들이 월드컵에 대해 조금은 심드렁해 하는 것 같다. 2002년 이후 워낙 수많은 월드컵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 탓이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방관할 수는 없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가 거둔 성과는 우리 민족의 놀라운 자산이고, 이 자산을 창조적ㆍ긍정적ㆍ미래지향적 에너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로 ‘월드컵의 날’을 제정하여 월드컵을 회고하고, 월드컵에 얽힌 이야기와 상징들을 집중적으로 만나보는 행사를 갖는 것은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한편 축구와 관련된 파생상품을 만드는 고전적인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축구의 역사를 구축하는 일이다. 즉 과거의 경기나 뒷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정리하며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프로 스포츠는 자체의 세계를 형성하고, 역사적 평가가 필요한 의미 있는 행위로 인식되게 되며,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끌어올리는 계기로도 작용하게 되는데, 유럽 축구는 이런 점에서 꾸준히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예로 알프레드 램지의 추억을 들 수 있는데, 전설적인 축구 지도자인 램지 경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잉글랜드 축구계는 1999년 5월 첫 주의 모든 프리미어리그 경기 시작에 앞서 선수와 관중이 1분간 묵념을 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그리고 램지 시대의 필름이 방송 전파를 타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의 경기 비디오가 시중에 깔렸으며, 그의 동료와 선후배, 그의 휘하에서 선수 생활을 한 축구인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30여 년 전의 일들이 역사 속의 사건이 되어 생생하게 되살아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발전적인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로 2002년 월드컵을 위해 기증된 제주도의 강창학 구장 등인데, 이런 연장선에서 동대문운동장의 추억도 상품화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경기는 한 편의 스포츠 드라마 / 축구 중계의 선진화
축구 문화가 발전하려면 축구가 축구장 밖에서도 소비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드라마 기법을 도입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핵심은 이미지와 이야기인데, 이미지는 앞에서 언급했으니 여기서는 ‘이야기를 만드는 법’에 대해 살펴보자.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전 세계 축구팬과 언론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은 경기는 6월 7일 삿포로에서 벌여졌던 ‘죽음의 조’,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일전이었는데, 숙명의 격돌을 두고 영국의 일부 신문들이 ‘복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전의를 불태우자, 아르헨티나 언론이‘적반하장도 유분수’라며 발끈하고 나섰다.
영국인들의 초점은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벌어진 ‘신의 손’ 사건(마라도나의 손이 명백한 핸들링 반칙이라는 주장)과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전에서 베컴의 퇴장(베컴이 파울을 당하고 엎드린 자세에서 시메오네에게 발길질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메오네가 고통을 호소하며 넘어질 만한 타격은 아니었다는 것)에 이은 승부차기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편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베컴의 경우 파울의 강도가 아니라 ‘비신사적 행위’가 문제였던 만큼 시메오네가 과장된 연기를 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퇴장감이었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또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마라도나의 신의 손은 명백한 오심이지만,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전을 생각하면 ‘피장파장’이라고 맞섰다. 그런데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악연은 이뿐만이 아니라 두 나라는 실제로 전쟁을 벌인 적도 있었는데, 포클랜드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튼 잉글랜드는 2002 한-일 월드컵 그 경기에서, 마이클 오언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베컴이 골로 연결하여 승리함으로써, 아르헨티나의 뜨거운 눈물이 홋카이도의 차가운 바다 속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한편 현대사회에서 축구와 관련된 가장 주요한 파생상품은 축구 중계인데, 중계의 형식과 내용을 끊임없이 개혁하지 않는 한 대중은 차츰차츰 중계를 외면하고, 나아가 축구 경기 자체에 대한 관심을 접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 권투는 그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아무튼 앞에서 언급한 유럽의 예처럼 다양한 감상 통로를 개설하지 않고, 축구를 오락으로만 생각하고 그러한 맥락에서 중계를 계속하는 한, 한국의 축구 중계 시장은 내일도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가 될 수밖에 없다.
5 선수 이적 시장을 분석하라
자족형 보호무역 리그와 수출 주도형 자유무역 리그
핀란드와 터키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국 리그를 운영하는데, 핀란드의 경우 2002 한-일 월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 참가한 대표선수 40여 명 가운데 12명이 서유럽 리그 소속이다. 반면 터키의 경우 외국 리그에서 뛰는 대표선수가 세 명을 넘어서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내수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수출에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선수들을 수출하는 문제는 대표팀의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문제와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데, 수출 지향주의는 단기간에 경기력 향상이 가능하나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고, 자국 리그 우선주의는 단단한 토대를 구축할 수 있으나 성과가 나려면 비교적 오랜 세월이 지나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 축구는 어느 길을 택해야 할까? 필자는 여기서 프리미어리그와 동남아 축구 그리고 한국 축구의 행복한 동거를 꿈꾸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 축구는 동남아의 상위 리그로 기능할 수 있으며, 유럽에 선수를 공급하는 ‘가공무역 리그’의 역할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보충 설명하면 동남아에 다녀온 사람들은 한류 열풍의 위력을 안다. 넓은 맥락에서 보면 이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일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축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민 스포츠다. 만약 K리그의 한 팀이 동남아 선수를 스카우트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나라 국민들의 관심이 K리그, 나아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쏟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K리그를 중계하는 정규 방송이 생기고 그 선수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상주하는 한편, 소속팀이 입는 운동복과 같은 상품을 구입하자는 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박찬호 이후 메이저리그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단기간에 얼마나 빨리 높아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선수 이적 시장의 메커니즘
유럽 축구계의 이적 시장은 연간 거래 총액이 10조 원을 웃도는 거대한 시장이다. 아스날이 10억 원에 구입한 니콜라스 아넬카를 3년간 활용하고 1999년 8월 레알 마드리드에 넘기면서 받은 이적료가 480억 원이라는 사실과 아약스 암스테르담이 자체 소년 구단에서 양성한 선수를 유럽 내 다른 구단에 되팔아 거의 매번 몇 십 배의 차액을 남긴 일 등은 이적 시장의 기대 수익성을 단적으로 웅변하는 사례다. 한편 각 구단이 이적 시장에서 늘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K리그가 유럽 리그에 선수를 수출하는 경유지나 가공무역 리그의 역할을 떠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흔히 이적료는 ‘종전 투자에 대한 보상’의 성격이 있다. 그러므로 선수 이적은 세계 축구계 전체를 놓고 보면 확실히 소득 재분배의 효과가 있는 국제무역의 속성이 나타난다. 아울러 이적 시장의 활성화는 ‘고용 안정, 투자 확대, 축구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진다. 참고로‘경기’ 이외에도 ‘선수’라는 상품을 거래하는, 즉 판매 상품을 다변화하는 일은 소규모 구단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또 이것은 최종 소비자인 유럽의 명문 구단에도 이익이다. 왜냐하면 선수 계약 시 실전에서 얻은 신뢰할만한 데이터를 가지고 거래할 수 있으므로, 낭비 요소를 줄여 효과적인 투자의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K리그가 이러한 기능과 역할을 기꺼이 담당할 의지나 의사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유럽 축구계의 새로운 기업 문화, 인수합병과 윈윈전략
1999년 5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리그의 한 구단을 매입하고 아프리카 출신 인재들을 테스트하는 창구로 활용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스카우터들의 출장 경비와 발굴한 선수들을 테스트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한다면, 아프리카 리그에 발을 걸쳐놓고 구단을 직영하는 편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K리그도 해외 구단 매입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 이런 투자를 진행하여 성과를 올리고 있다.
한편 제3세계의 구단을 매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럽 주요국의 구단 간에도 숨 가쁜 합종연횡이 횡행할 조짐이다. 1999년 9월 17일에는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인터밀란과 그 전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디비전 1로 추락한 잉글랜드의 찰튼 애슬래틱이 유럽 축구 사상 최초로 전략적 제휴 관계를 선언하여 유럽 축구계에 화제를 뿌렸는데, 인터밀란은 37명 내외의 1군 선수 중 실전 경험의 기회가 적은 대기 선수 예닐곱 명을 번갈아 가며 무료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찰튼 애슬래틱에 공급하고, 찰튼 애슬래틱은 이들을 정기적으로 기용하여 경기 감각을 잃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것이 계약의 골자였다. 인터밀란은 주전 선수들이 부상당하거나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에도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대규모의 대기 병력을 확보하는 셈이며, 찰튼 애슬래틱은 적은 예산을 가지고 우수한 용병을 제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에 두 구단의 이익이 합치하는 지점에서 손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서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회 구조와 역사의 전개 방향이 유럽보다는 한국에 좀 더 가깝다고 본다면, 우리도 그들에게 경제성장 모델뿐 아니라 축구 발전 모델도 얼마든지 수출할 수 있다. 선수를 수출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리그 시스템 자체를 수출하는 것이다. ‘한국 축구 산업화’란 어떤 면에서 축구라는 인기상품을 두고 ‘공장 건설 - 운영 -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턴키 베이스(Turn-key base)’ 형태로 플랜트 수출을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방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