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룰라가 7살 때에 그는 땅콩과 오랜지를 팔며 구두닦이를 하는 거리의 소년이었다
1956년 14살 때 부모가 이혼하자 어머니와 함께 상파울루에서 하루 12시간 고된 노동을
하는 공장에 다니면서 밤에 직업훈련소에서 선반공 자격을 따서 나사 제조공장 선반공
으로 일하다가 18살 때 작업중 프레스에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고 산업재해로 해고되어
어려운 시기를 만나게 된다.
"나는 회사 사장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훌륭한 기술자가 되는게 내꿈의 전부였다."
✥ 1966년 금속공장으로 직장을 옮겼고 1968년 맏형의 권유로 브라질 최대 노조 가운데 하나
인 금속노소에 가입하였고, 이때부터 노조 활동에 정열을 쏱았고 1975년 브라질 역사상
최고의 찬성표를 얻어 노조 위원장에 선출되면서 그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군사정권의 경제정책을 반대하며 노동자 임금인상 데모를 주도하고, 1978~1980년까지 파
상적으로 파업을 주도하다 국가안전보장법 위반으로 체포되어.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
았으나, 나중에 군최고재판소에서 무죄로 석방되기도 하었다.
- 1980년 룰라는 노동운동가와 지식인들이 규합하여 노동당(PT)을 출범하면서 정계에 태풍
의 눈으로 떠올랐다.
1982년에는 상파울루 주지사선거에 처음 입후보했지만,득표율 4위로 패하기도 한다.
- 그러나 대중들 사이에서 카리스마적인 인기를 얻어 1986년 상파울루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 1989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동당 후보로 출마하여 페르난도 코롤 데 멜로에게 패했으며,
- 1994년과 1998년 대선에서 두번 모두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조에게 고배를 마시기도했다
- 2002년 10월 27일 대선에서 61.3%를 얻어 38.7%를 얻은 여당후보 조세 세하에게 압승을
을 거두고 브라질의 35대 대통령이 되었고, 2006년 재선에도 성공하였다. 선반공 출신의
노동조합 지도자가 1989년 이후 4번만에 당선되면서 브라질 역사상 처음으로 야당좌파
정권이 출범하게 되었다.
- 선거 기간중 공격을 받은 것은
"룰라는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
"룰라는 글도 못 읽는다"
"룰라는 영어도 못한다"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지지율 80%의 대통령은 이렇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 대통령 룰라
- 대통령 당선증을 받으며 "태어나서 처음 증서를 받아본다."라며 눈물을 흘린다.
초등학교 졸업도 못해본 룰라가 처음 시행한 것은
① 인구의 4분의 1 이 겪는 빈곤문제 해결과
② 심각한 국가부채를 해결해야 했다
빈곤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다"
월 소득 120헤알(약 7만1500원)미만 가구에 소득의 절반 이상인 70헤알
(약 4만1700원)을 지급하여 야당으로 부터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와 같이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 할 것이다"라는 비난과 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3년에는 350만 가구에
2006년에는 1,110만 가구에
2010년에는 1,280만 가구에 지원
브라질 인구의 4분의 1 (4,000만명)이 경험하는 저소득층 생계지원 프로그램
(Bolsa Famillia)는 또한 엄격한 전제 조건을 통하여 생활안정으로 유도한다
반드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것, 결석율이 15%이상이면 지원불가
✥ 정책 추진결과
정부의 생활보조금을 발판으로 한걸름, 한걸음 나아가는 브라질의 빈민들 2,000만명이
중산층으로 도약하면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빈부 격차가 좁혀지자 소비가 늘고,
기업들이 활기를 띠면선 시장이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룰라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한가지 그건 가난에 걸었던 희망이었다 "왜 부자를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는데,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말하는가" 만약 내가 실패했다면
그건 빈민들의 실패였을 것이다.
결국 룰라의 임기 8년동안 브라질은 국가부채를 모두 해결하고,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다. "볼사 파밀리아는 효과적인 사회정책의 모범이다." -세계은행(IBRD)-
대통령 집권 2기(2007 ~ 2010)
룰라의 재임기간 동안 브라질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해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전환됐고, 세계 8위 경제국으로 성장했다. 또한 빈민들에 대한 식량 무상제공,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등의 복지정책 등이 높은 호응을 얻었다. 룰라는 보수세력을 러닝메이트로 지목했고, 우파정당과 정책연합을 구성하는 등 반대 성향의 세력들과의 소통에도 노력했다.
2010년 12월 29일 여론조사기관 센수스·이보페가 룰라의 퇴임을 앞두고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룰라 대통령에 대한 브라질 국민의 지지율은 87%였다. 룰라가 태어난 상파울루 주의 지지율은 95%를 넘었다.
룰라는 퇴임연설에서
"모든 업적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
대한민국의 룰라를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