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9월 3일 성령강림 후 열 네 번째
성경 ; 출16:2-15, 빌1:21-30, 마20:1-16
제목 ; 아침에는 주님의 영광을 보리라
1.인간의 소외된 상황과 필요성 (인간의 문제점) -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①(원인)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없습니다.
ㄱ.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안에서 살고 있음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ㄴ.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②(과정)주님의 뜻에 맞게끔 쓰임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주를 위해 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ㄴ.주님을 위해서 고난 받을 특권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ㄷ.하나님의 지시는 잘 따르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많습
니다.
③(결과)감사와 만족을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ㄱ.감사를 잊은 채 불평불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ㄴ.교회와 세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하나님의 본성과 활동 (하나님의 치료) - 무익한 우리를 다시 불러주셨
습니다.
①(본질)하나님은 자비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ㄱ.아무 쓸모없는 자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십니다.
ㄴ.백성들의 무례와 억지에도 불구하고 은혜와 사랑을 계속 베풀어주셨
습니다.
②(활동)한없는 사랑을 계속 베풀고 있습니다.
ㄱ.무익한 우리를 주님의 일꾼으로 불러주셨습니다.
ㄴ.예수 믿을 특권과 주를 위해 고난당할 특권까지 주셨습니다.
③(결과)언제나 우리와 함께 동행해주십니다.
ㄱ.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ㄴ.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3.인간의 응답 (건강한 삶) - 우리를 부르신 그 뜻에 맞게끔 살아야 합니
다.
①(준비)하나님의 구원과 그 섭리를 새롭게 깨달아야 합니다.
ㄱ.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와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ㄴ.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②(실천)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ㄱ.주께서 부르신 그 뜻에 따라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ㄴ.복음 전하는 일에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ㄷ.주님의 행사가 우리 맘에 들지 않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겸손히 순
종해야 합니다.
③(결과)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해야 합니다.
ㄱ.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 드려야 합니다.
ㄴ.우리가 사는 것이 교회와 세상에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ㄷ.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보람된 일이어야 합니다.
4.파견사
목사 : 우리에게 항상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무익한 우리를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 만드시려고, 하나님은 사랑
과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인간의 억지와 불평불만에도 불구하
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끊임없이 베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말고 그 뜻에 합당한 인
생을 살아야 합니다.
회중 : 아멘. 우리를 부르셔서 주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것만 해도 감사
할 일이건만, 우리는 감사와 찬양을 잊은 채 불평과 불만을 더 많이 했
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힘쓰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 전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 주께서 우
리를 부르신 그 뜻에 맞게끔 살아감으로써, 교회와 사회에 참으로 유익
한 존재가 되겠습니다.
5.예배에의 부름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십시오. 주께 노래하고, 그분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그
가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전하십시오. 그분의 거룩한 이름은 영광스럽습니
다. 여호와를 찾는 자들은 마음이 기쁠 것입니다. 여호와를 찾고 그분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분 곁을 떠나지 마십시오.
영원하신 우리 하나님, 언제나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크신 복을 베풀어주시려고 우리를 불러주셨
으니, 더욱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이 시간, 우리가 마음과 정성을 다하
여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시고, 하늘
의 신령한 양식을 풍족히 내려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 겸손히 순종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십시오.
무익한 우리를 유익한 존재로 만드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우
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6.공동의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생명의 길을 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주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보람 있는 인생을
살게 하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해서 살겠다는 각오를 했으나, 아직은 세상에 더 많은 관심과 정성
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께서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구원해주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게 하소
서. 또한, 우리가 사는 것이 교회와 사회에 유익이 되게끔 도와주십시오.
우리에게 새 인생을 허락해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성시교독
목사 :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분이 행하신 일들
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십시오.
회중 : 주께 노래하고, 그분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그가 행하신 놀라운 일
들을 전하십시오.
목사 : 그분의 거룩한 이름은 영광스럽습니다. 여호와를 찾는 자들은 마음
이 기쁠 것입니다.
회중 : 여호와를 찾고 그분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분 곁을 떠나
지 마십시오.
목사 : 그분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고, 그분의 기적과 그분이 선
언한 심판들을 생각하십시오.
회중 : 주는 자기 백성이 즐거운 마음으로 나오게 하시고, 자기의 택한 자
들이 기뻐 외치며 나오게 하셨습니다.
다같이 : 이렇게 하신 것은, 그들에게 주의 법을 따르게 하고, 주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8.헌금기도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9월의 첫째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 앞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주
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늘양식을 잘 받아들
여서, 그 말씀에 따라 충실하게 살기를 원하오니, 성령으로 오셔서 언제나
함께 해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 우리가 주께 드린 예물
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룩하게 사용하게 하옵소서. 또한, 바친 손길마다
함께 하셔서 저들의 생업이 풍성하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언제나 우리
와 함께 해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9.예화
1)쓸모없는 녀석 헨리 포드
19세기 말 미국 디트로이트의 한 전등 회사에 젊은 청년이 새로 들어
왔다. 그는 매일 직장에서 10시간을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낡은 헛간
에서 ‘자동 이동 엔진’을 발명한답시고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젊은 녀석이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한다고 꾸짖었고
동네 사람들은 청년에게 ‘쓸모없는 녀석’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연구가 부질없는 일이라 믿었으며 그 자신도 맥이
빠질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의 젊은 아내만큼은 달랐다.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 곁에서 석유 등잔불을 이리저리 비춰 주는 등 헛간에서의
연구를 도왔다. 추운 겨울에는 이가 떨리고 손이 부르트기도 했지만, 남편
을 믿는 그녀의 마음은 변할 줄 몰랐다.
1883년 어느 날 밤, 마을 사람들은 일찍이 들어 본 일이 없는 웬 굉
음 때문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소리
나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청년의 헛간에서는 바로 그 ‘쓸모없는 녀석’이 아
내와 함께 이상하게 생긴 ‘말이 끌지 않는 이동 수단’에 올라앉아 엔진을
부릉거리며 이제 막 밖으로 운전하여 나오는 참이었다.
청년은 마침내 해냈던 것이다. 미친 놈 소리를 들으며 헛간에서 연구
를 거듭한 지 꼭 3년째 되는 해였다. 이 ‘쓸모없는 녀석’의 이름은 헨리 포
드였다.
2)말없이 돌을 치웠더니
어느 왕의 이야기이다. 왕은 크나큰 돌을 길 한가운데 굴려다 놓고서
누가 이것을 옮기나 보려고 숨어 있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지나갔지
만 모두 불평만 할 뿐 그냥 지나쳤다. 얼마 후, 한 농부가 수레에 채소를
싣고 시장에 팔러 가다가 돌을 보고서 말없이 치워 놓았다. 그런데, 돌을
치운 자리에 돈주머니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돈주머니에는 많은
황금과 함께 ‘이 돈은 누구든지 이 돌을 치우는 자의 것’이라는 왕의 편지
가 들어 있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일하는 어떤 일이 생길 때 긍정적
인 자세로 그러한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들보다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리고 그 일을 도와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늘 어떤 일로
불평하는 사람들의 영혼은 메말라가지만, 긍정적인 입장에서 문제해결을
돕는 자들은 영적 성숙과 함께 영혼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3)불평이 많은 한 청년
불평이 많은 한 청년이 왕을 찾아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법을 가
르쳐 달라고 졸랐다. 왕은 잔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 청년에게 주면서 말했
다. “포도주 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오면 성공비결을 가르쳐주겠다.
단, 포도주를 엎지르면 네 목을 베리라.”
청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시내를 한 바퀴 돌아왔다. 그러자, 왕이 물
었다. “시내를 돌며 무엇을 보았느냐? 거리의 거지와 장사꾼들을 보았느
냐? 혹시 술집에서 새어나오는 노래 소리를 들었느냐?”
청년이 대답했다. “포도주 잔에 신경을 쓰느라 아무것도 보고 듣지 못
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바로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세우고 일에 집중하면 주위의 유혹과 비난이 들리지 않을 것이
다.”
일 못하는 사람은 불평이 많다. 분명한 인생관을 갖고 일에 몰입하는
사람은 불평할 틈이 없다.
4)천국에 간 두 사람
두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다. 한 사람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
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게으를 뿐만 아니라 늘 불만불평이 가득한 사람이
었다.
하나님은 세상살이가 어떠했느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부지런한 사람
은 ‘힘들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면서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불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서 자신은 단 한 번도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자기가 살던 집도 좁고, 돈도
마음껏 써 보지 못하였고, 또 자식들도 다 속을 썩이고, 남편도 마음에 안
들고,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었다.’며 계속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그 두 사람이 거처할 곳을 안내해주셨다. 두 사람
은 자신 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사람에게 주
어진 땅은 세상에서 보지 못한 아름다운 신천지였다. 부지런한 사람은 역
시 하늘나라는 아름다운 곳이라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그는 벌써부
터 소매를 걷고 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이내 아름다운 집과 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불만 많은 사람은 똑같은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집도 없고 차
도 없고 무슨 하늘나라가 이러냐?’며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계속
투덜댔지만 소용이 없자, 하는 수 없이 먹을 것을 구하고 잠잘 집을 만들
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집은 이내 오물과 쓰레기로 가득차고, 벌
레들이 기어 다녔으며, 지붕에서는 비가 새고 벽은 금이 갔다. 그 사람의
불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차라리 세상이 더 좋았다며 한탄만 거듭했
다.
얼마 후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심판하시며 다
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난 너희 두 사람에게 똑같은 조건을 허락했다. 하
지만, 한 사람은 그 조건으로 천국을 건설했고, 또 한 사람은 그 조건을
갖고서도 지옥을 만들었구나.”
그러자, 불만 가득한 사람이 하나님께 따져 들었다. ‘천국은 무위도식
하는 곳이지,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곳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끝을 맺으셨다. “천국을 오해하지 말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땅의 논
리가 아니고 애초 천국의 논리였다. 천국의 논리로 살면 그 사람은 지옥에
서도 천국을 건설하며 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천국을 거저 주어도 지
옥으로 만들 것이다. 너는 그와 같은 자이기에 결코 천국의 땅 한 평이라
도 내줄 수 없다. 네가 만든 지옥에서 영원토록 살아라.”
5)참된 만족
헬라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집은 나무통이었다고 합니다. 다닐 때, 그
나무통을 굴리고 다니다가 적당한데 세우고서, 그 나무통 안에 들어가 하
루 밤을 자고 또 아침이 되면 굴리고 다녔습니다.
유명한 헬라의 철학자인 이 사람을 알렉산더 대왕이 만나기를 원해서
어느 날 만났는데, 대왕이 디오게네스에게 ‘무슨 소원이 있느냐?’고 물었답
니다. 그는 말하기를 “특별한 소원은 없고 굳이 말한다면 지금 햇볕을 쪼
이고 있는 중인데, 국왕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방해가 되니, 조금만 옆으
로 비켜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때, 알렉산더 대왕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알렉산더
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걸세.”
디오게네스처럼 ‘자기존재, 자기가치, 자기 처지를 깊이 알고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는 마음이 행복이다’라는 의미였습니다.
다윗 왕도 시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
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나의 자리에서 ‘나의 나 된 것은 주님
의 은혜’ 라는 감사의 고백과 함께 자족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6)마음의 눈으로 만족하기에
새빛맹인교회 성도님들은 중도 실명자가 대부분이다. 많이 아시다시피
이 교회를 개척하신 안요한 목사님은 이청준의 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
서」의 실제 주인공이다.
10여 년 전에, 안 목사님이 독일에서 집회를 하시던 중, 유명 안과 전
문의 부부를 만나셨다. 그들과 함께 눈에 대해 대화를 나누시던 중에 그들
의 병원에 한 번 오라고 해서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 의사는 안
목사님의 눈을 한참 진료하더니 당시의 의술로 시력을 회복할 확률이 99
퍼센트 이상이라며 개안 수술을 권했다.
그런데, 안 목사님은 숙소로 돌아와 안과 수술에 대해 기도하시던 중
에 이런 결론을 내리셨다. ‘내가 볼 수 있을 때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시력
을 잃고 예수님을 만나 새 생명을 얻었는데, 이제 눈을 다시 뜨면 또 죄를
지을까 두렵다. 그리고 시각 장애를 통해 만난 하나님을 전 세계에 다니며
전파했는데, 눈을 다시 뜨게 되면 집회 때마다 은혜를 받으신 분들은 어떻
게 하는가?’ 그래서, 안 목사님은 그 의사를 다시 만나 그 제안을 거절하
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마치 성경 속 인물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안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숙여
진다. ‘눈을 뜨는 것이 나에게 유익하겠지만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계속
감고 있겠다.’라는 살아 있는 신앙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조하문
10.설교예문
♣성령강림 후 열 네 번째
성경 ; 출16:2-15, 빌1:21-30, 마20:1-16
제목 ; 내게 있어서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국어사전에서는 ‘행복(幸福)’이라는 단어를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
쁨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모든 것이
풍족하여 흐뭇하게 느껴지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복(福)’이라는 한자
는 ‘보일 시(示)’변에 ‘가득할 복’(畐)자의 합성어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
가 가득한 것을 보고 만족을 느낄 때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불만(不滿)’은 글자 그대로 ‘마음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
는 상태’를 뜻합니다. 요컨대, 자신이 원하는 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
을 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쉽사리 가름할 수 없
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성격에 따라, 그리고 그 주어진 상황에 따
라, 마음의 상태가 시시때때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 돈 천원만
있어도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수억의 돈이 생겼더라
도 불만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다가 어떤 형편과 조건을 바꿔서 맞추려
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주어진 그 형편에다가 자신의 마음을 맞추는 편이
훨씬 쉽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우리
의 형편이나 조건을 금방 내 마음대로 어떻게 바꿀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의 형편보다 훨씬 더 좋아
지리라는 큰 꿈을 갖고 살아가되, 지금 현재는 그 주어진 형편에다가 자신
의 마음을 맞추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실에
안주(安住)하지 않고, 훨씬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
아가되, 당장은 그 현실을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
다.
어느 날, TV를 보니, 아주 보기 흉한, 그야말로 다 쓰러져가는 집 앞에
서, 한 노인이 서서 TV기자에게 뭐라고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화
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자세히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사연인즉, 그 집은 할아버지가 오래 전에 한참 동안 살던 집이었습니
다. 지금은 다른 곳에다가 번듯한 새 집을 지어서 살고 있지만, 옛날에 고
생하며 살던 그 집을 허물지 않고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래서 세상사는 것이 좀 힘들거나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집을 찾
아와서 옛날에 엄청 고생하던 일을 회상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절에 비할 경우, 지금 겪고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
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안을 되찾게 되거니
와, 평상심도 회복하게 된다고, 그 할아버지는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아무
도 살지 않는 집이지만, 할아버지는 그 옛날에 고생하던 때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 집을 헐어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사는 것이 너무 힘들거나 고달플 때에는, 옛적 일을
회상해보는 것도 괴로운 현실을 이겨내는 하나의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
다. 지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잘 사는 모습과 비교하니까 불만과 불평을
갖게 되는 것이지, 10년이나 20년 전, 자신이 살던 모습을 회상하게 된다
면, 지금 갖고 있는 그 불만이 사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하고 변덕스러운지,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의 자기 형편을 망각하고 있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마
디로 말해서,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고, 언제
나 불만과 불평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포도원 주인이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아침 일찍
이 인력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는 몇몇 일꾼들을 불러서 선택한 다음, 그들
에게 하루 품삯으로 십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포
도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홉 시쯤 되어서, 어쩌다가 인력시장 주변을 지나가게 되었습
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대기하고 있는 품꾼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포도원주인은, 그들의 그런 모습이 안타깝게 여겨져서,
그들에게 적당히 품삯을 따져주겠노라 말하고서는 포도원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인력시장에는 여전히 품꾼들이 일거리를 기다리면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주인은 세 차례나 더, 사람들을 데려
다가 포도원으로 보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품삯을 얼마 주겠다는 말
은 하지 않았습니다. 포도원주인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들의 형
편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그처럼 사람들을 데려갔던 것입니다.
하루해가 다가고, 일을 마칠 때가 되어서, 포도원주인은 일꾼들에게 품
삯을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은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품삯을 계
산해주었는데, 그들에게 십만 원씩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아침 일찍
부터 와서 일한 사람들은, 처음 약속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리
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십만 원이 지급되었습
니다. 물론, 주인이 그들과 처음에 약속한 그 금액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을 하면서 투덜거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인에게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이 사람들과, 온종일 뙤약볕에서 일한 우리를
똑같이 대우하다니, 이럴 수가 있는 일입니까?”하고 따졌습니다. 이에, 포
도원주인이 그들 중에서 가장 불평이 많은 사람을 따로 불러서 이야기했습
니다. “이보게, 내가 자네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가? 자네는 하루 품삯으로
십만 원을 받기로 하고 일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자네는 자네 품삯
이나 가지고 가면 되는 일일세. 내가 모든 사람에게 품삯을 똑같이 준 것
은 내 마음에 달린 것일세. 내 돈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주는데, 무엇이
잘못인가?”
사실, 그렇습니다. 일꾼들이 포도원주인에게 불만을 표시할 아무런 이
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포도원주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 주인이 자기들을 불러주지 않았으면, 그들은 하루를 공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포도원주인에게 감사하다는 말 대신에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들은 몇 시간 전만 해도 자기들의
형편이 어떠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포도원주인이 자
기들을 불러주기 전, 그들은 일당 10만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거리만 있
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건만, 그들은 그러한 처지에 있던 자기들의 형편과 그 입장을 잊어버
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포도원주인이 나중에 온 사람들과 자기
들을 똑같이 대접한다고 해서, 자기들을 불러서 일하게 해준 그 포도원주
인에게 항의하면서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입니까? 손해를 보면서도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후덕한 인심을 보여준
그 포도원주인을 칭찬해주지는 못할망정, 자기들과 똑같이 대우해주었다고
해서 불평하고 있으니,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들입니까?
하지만, 그들의 그런 그릇된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결
코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다른 그 누구와 비교하기보
다는, 바로 우리 자신의 과거와 비교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웃 사
람들과 비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것도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과 비교합니
다.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텐데, 우리는 꼭 우리보다 잘
사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기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이처럼 일그러진 우리 인간의 모습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출애굽기 16장을 보면, 유대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불평과 불만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애굽
사람들이 자기나라 국무총리였던 요셉에 대해서 알고 있던 초기에는 어느
정도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츰 요셉을 모르는 사람들
이 애굽을 지배하게 되자, 유대인들은 완전히 노예상태가 되고 말았습니
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에서 탈출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어 기도했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어 유
대인들을 애굽에서 구출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릴까봐, 일부러 광야로 인도해서 신앙훈련을 시키셨
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은, 바로 그 시기에 있었던 일
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 풍족할 리가 없었습니다. 사실, 아무 것도 살아남
을 수 없는 사막에서 40년 동안이나 생존할 수 있었다는 그 자체가 참으
로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이렇게 불평을 늘
어놨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에는 고기 가마 곁에 앉아서 고기와 밥을 실
컷 배불리 먹을 수 있었는데, 그런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처럼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 차라리, 그때 애굽에서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
라면 좋을 뻔했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종살이하던 유대인들이
무슨 수로 고기와 밥을 실컷 먹을 수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더군다나, 농
사도 지을 수 없고 목축도 할 수 없는 사막에서 고기와 밥 타령을 하고 있
으니, 유대백성들이 얼마나 억지를 부리고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런 억지를 다 받아주셨다는 사
실이, 오늘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하
나님께서 저녁에는 고기를 먹게 하고, 아침에는 밥을 실컷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8)”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말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
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은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서도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원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했기 때문에, 그 후로도 그들은 계속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으며, 심지어는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에게 대들면서 반항을 했던 것
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만 했습
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 있
도록, 모세를 통하여 여러 가지 기적과 권능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그
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했고, 그래서 그들은 계속 원망과 불평을 했
으며, 결국은 광야에서 죽어 묻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려고 한다면,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생의 목
적을 땅이 아닌 하늘에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심이 제한이 없고 끝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땅에서 만족한 인생을 살고자 원한다면, 우리의 욕심
을 완전히 다 버려야 하는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스님들이
무소유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100% 거짓말입니다. 무소유는, 우리가 죽
어야만 이룰 수 있는 과제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욕심을 억지로 없애려
고 할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중요한 일입
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너희 믿음이 자라고, 그 안에서 기쁨을 누
리도록 도와야 한다(1:25)’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있는 것으로 우
리의 욕심을 채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갖
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믿음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즉 믿음 안에서 기쁨을 맛보게 될 때, 우리는 세상에 있
는 것을 갖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많아지게 하려는 것이다(26)’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인생에 있어서 참다운 가치가 무엇인지 알면, 그것으로 인하여
기쁨을 얻게 되고, 또한 그것을 얻게 해주신 주님을 자랑하게 된다는 것입
니다.
물론, 인생에 있어서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은 하나님
의 말씀인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전해주신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기독교
인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고, 또한 그렇게 사는 방법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 말하기를 ‘내게 있어서 산다는 것
은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죽는 것도,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만 있다면, 그 선택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까, 바울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주를 위해서 살고 주를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살고 주를 위해서 죽는다는 말은, 진리 안에서 살
고 진리를 위해서 죽는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다시 표현한다면, ‘하나님
의 뜻에 따라 올바른 인생’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한다면, 예수님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
수를 믿는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처럼 폼 나게 잘 살려고 하는 것을 인생
의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안요한 목사님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청준의 소설 ‘낮
은 데로 임하소서’의 실제 주인공입니다.
안 목사님이 10여 년 전에 독일에서 집회를 하시던 중, 어느 유명한 안
과 전문의 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눈에 대해서 대화를 나
누던 중, 그분들이 운영하고 있는 안과병원에 한 번 오라고 해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의사는, 안 목사님의 눈을 한참 진료하더니, 당신의 의술로 시력을
회복할 확률이 99퍼센트 이상이라고 하면서 개안 수술을 권했습니다. 그런
데, 안 목사님은 숙소로 돌아와서 그 문제로 기도하던 중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내가 볼 수 있을 때에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시력을 잃었고, 그래서 다
시금 주님을 찾게 되어 새 생명을 얻었는데, 이제 다시금 눈을 떠서 볼 수
있게 된다면, 또다시 죄를 지을까 두렵다. 그리고 앞을 볼 수 없어서 만난
그 하나님을, 전 세계에 다니며 전파했는데, 내가 눈을 떠서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면, 내가 인도한 집회에서 은혜를 받으신 분들은 어떻게 되겠는
가?’
그래서 안 목사님은 그 의사를 다시 만나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
다. 그러니까,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수술을 해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좋은 일이지만, 자신을 통해서 은혜 받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수술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판단해서, 수술을 거부했다고 하는 이
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길입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부단히 노력할 때, 우리는 우리 인생의 참된 가
치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는
예수를 믿을 특권은 물론이요, 예수를 위하여 고난받을 특권까지 받았다
(29)’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언제나 기독교인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지금보다 더욱 힘쓰시는 저
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