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게를 지나 산티아고로
-유은실 작가의 '순례주택'을 읽고-
작가는 자신의 삶을 능가하여 작품을 쓸 수 없다.
그러므로 작품은 그것을 창조해 낸,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순례 주택을 읽고 나서, 갑자기 이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해 궁금해졌다. 아주 소소한 이야기가 소재인 듯 보이지만, 며칠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문장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읽을 때는 웃으며 빨리 읽어내려간 부분도, 마치 부메랑과도 같이 내 마음을 뒤로 당겨 내며 내 속을 울렁이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었다.
유은실 작가는 동화와 소설등 다양한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삶의 따뜻함을 전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모든 작품에서는 ‘유은실’이란 한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독특한 건, 작은 우리의 삶의 일상적인 소재들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유머라는 장치 속에 잔잔하게 녹아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유머가 이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어느 순간 닿아 있는 것도.
유은실의 작품 <나의 독산동>에서 주인공 은이는 ‘이웃에 공장이 많으면 생활하기 어떨까?’라는 문제의 답으로 ‘시끄러워 살기가 나쁘다’란 정답 대신 ‘매우 편리하다’는 오답을 체크했다. 그 동네에는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과, 늘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 공동체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네 집, 내 집 따지지 않고 함께 양육하며 성장해가던 곳이었다. 그 독산동이야말로, 순례주택의 모델이며, 유은실 작가가 자라왔고, 순례씨가 성장해왔고, 세입자들과 함께 이루어가고자 하던 그런 공동체가 아니였을까.
순례주택은 목욕탕의 세신사로 번 때돈을 모아 순례주택을 짓고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가는 70대 순례씨가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앞으로 노년에 주택의 삶을 꿈꾸며 준비하고 있는 나에겐, 이 소설의 배경이 아파트가 아니라 ‘주택’이어서 왠지 더 반가왔던 것 같다.
순례씨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런 자신과의 약속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활발한 환경활동가는 아니었지만, 포장하는 검은 비닐을 아끼려 직접 반찬통을 가지고 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입주민들과는 함께 작은 환경실천 약속들을 지켜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소신과 철학을 확고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순례씨가 개명을 한 부분이었다. 원래 이름인 순례(順禮: 순하고 예의바르다)에서 순례(巡禮:순례자에서 따온 말로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으로 개명을 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보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글자인데, 과연 개명이 필요한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것이 가장 순례씨다운 고집스런 철학이 묻어나는 점이기도 했다.
순례씨의 확고한 신념과 일관적인 태도들은, 나로 하여금 잃어버린 마음의 소리에 다시 귀 기울 수 있게 해주었다. 어느 순간 나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지점이 있었다. 남도 좋은 만큼 나도 좋아야 하는, 그 무언가를 조율하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내가 더 우위를 차지하는 반복적인 수순을 밟고 있었다. 자신도 제대로 못살면서, 남을 위한다느니, 공동체를 위해 사는 것은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야라며 나의 상황과 조건을 합리화했고, 더 확실하게 타인과는 선을 긋는 삶을 살아왔다. 때로 ‘마음의 숙제’들을 할 기회들이 찾아올 때, 선한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마음 한 끝을 움켜쥐고, 내 안으로 틀어버린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일군’들에게 내줄 공간이 있어서 감사하다는 순례씨가 좋아하는 말중에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는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이 이이 땅에 부르심을 받고, 이곳에서 모두가 공평한 시작점에서 순례를 시작하게 된 순례자들이다. 우리들 중 다수는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잠시 잊은 채, 순례자의 자리에서 이탈해 벌써 오랫동안 ‘관광객’으로 머물러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나도 건물주인 순례씨가 부러웠다. 그 다음은 순례씨와 입주조건을 협상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순례주택에 세입자로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순례씨와 같은 이웃이 내 옆에 꼭 한명쯤은 있어야 할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국어책의 감탄어를 자주 사용하고 싶어하는 순례씨의 소원만큼이나, 나 또한 독립적이고도 주도적인 마인드를 가진 ‘한 사람의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란 단순히 나이가 아닌,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는 사람들이라고 순례씨가 정의를 내릴 때, 지금까지 어찌어찌 살아보려고는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자기 힘을 잃어버린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어쩌면 내 삶은, 순례씨의 개명전의 이름 ‘순하고 예의바르다’는 그런 정적인 상태에 머물렀었는지도 모르겠다. 개명 후 그녀의 이름 뜻처럼, ‘여행하는 순례자’가 되어 좀더 동적으로, 이제는 뚜벅뚜벅 길을 나서야 할 때가 된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막연한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각자의 주문을 외우며 살아간다. 더 많이 가지고, 더 큰 성공을 향해 나가던 수직 지향적인 삶은, 순례 주택을 딛고서 세입자 한사람 한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했던 순례씨의 수평 지향적인 삶과 확연히 대조된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지구별을 사는 어린 순례자들에게 나 또한 미안한 맘이 든다. 성적보다 생활지능이 훨씬 높았지만, 칭찬 한번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우리 집의 어린 순례자에게, 이제는 좀 더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겠다.
지금 우리의 삶을 지치게 하고, 잠시 멈추어진 구간이 있다면, 서로에게 '알베르게(순례자들이 이용하는 숙박시설)' 같은 존재로 옆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함께 순례의 길을 걸어가며, 기꺼이 서로를 디딜 수 있도록 삶을 내어주는 진정한 순례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가족은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다. 선군, 신선과 임금......교회에서 배운 ‘순례자’의 이름으로 잘 어울렸다. 세상 욕심 털어 버린,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는 –순례자
억척스럽게 사셨지만, 찬송가를 부를때는 삶을 초월한 순례자처럼 보이셨던 할머니....이제 ‘모두 빛나고 높은 저곳’으로 가신 할머니들이 그립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때, 잠이 오지 않을 때, 무심히 설거지를 할 때......나는 머니들처럼 그 순례자의 노래를 부른다.>>
괴롬과 죄가 있는 곳......나 비록 여기 살아도......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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