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은행나무 생각
이완주
자료에 살펴보면 은행나무는 약 2억년의 역사가 숨어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화석이다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에 딸린 갈잎 키큰 나무로 중국이 원산이다
우리 나라 중국 일본 등지 곳곳에 암수로 잘 자라고 있다 봄 여름에 푸른 잎이
무성하고 가을에 노오랗게 물드는 은행잎이 참 아름답다 그 은행잎이 여학생
일기책 갈피에 놓이는 사랑도 받는다 긴 역사를 두고 살아 온 은행나무와
내가 만난 인연은 수십년에 지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나무와 잎새를 사랑하던
은행나무와 추억 속에 얽힌 그 인연을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1970년대 말경에 서울 강서구 옛지명으로 역말이라는 곳에 집을 마련했다
그 당시 집 주변 환경은 도시 속의 시골 풍경이었다 계절 따라 소쩍새,뻐꾸기,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기도 하고 겨울철에는 뒷산 눈밭에 퍼덕이며 우는 꿩 소레에
놀라기도 했다 새움 돋는 봄철이면 찾아온 제비가 집 처마에 집을 짓기도 했다
울 안에는 높이 솟은 참죽나무에 까치집이 덩실 얹혀 있어 한결 운치가 좋았다
집안에 여러 종류의 나무,이쌩화 식구들이 들어 차서 뜰은 공간이 점점 좁아져 갔다
나무들 중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중 한 은행나무는 뜰 모퉁이에서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 말로는 해방전 일제시대인 1930년대초부터 1940년대 초무렵에 심겨진 나무로 추측했다 암나무인지,암수동체 나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은행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해마다 은행열매도 풍성하게 열렸다
세월 따라 은행나무는 키가 더욱 커 가고 몸집도 불어나서 집 울안에 거목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걱정도 뒤따랐다 거센 바람부는 날 밤이면 나무가 넘어지거나 가지가
부러져 이웃을 해치지 앉을까? 걱정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주변에서 조심해야한다는
경고 소리도 들려 왔다
낙엽지는 늦가을이 오면 동네 골목길에 노오랗게 쌓인 은행잎을 돠담아오는 연례행사를 치러야 했다 거두어온 은행잎을 겨우내 말리고 태우기도 하면서 밝아오는 새해를
설계하기도 하고 푸른 새봄을 기다리곤 했다
1990년 들어 서면서 재개발의 광풍이 온 동네를 휩쓸었다 살던 주택이 헐리고 빌라촌으로 탈바꿈했다 주변의 4,5층 건물에 둘러 싸여 도시속 섬처럼 버티다가 어쩔수 없이 시류에 따라가게 되었다 이 무렵 집안 은행나무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거나 다름
없었다 몸집이 한아름 반이나 되는 거목이 되어 뿌리 부분을 떠서 옮겨 심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살던 집을 해체하던 그날을 돌이켜 보면 은행나무에 대한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기술자들이 나무베기 작전계획을 세우고 가지마다 줄을 걸어 전기톱으로 잘라 내려오고 포크레인으로 나무 뿌리 마저 뽑아서 은행나무 목숨이 끊이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제 또 다른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하겠다 1957년 내가 중학 2학년 때 생물반에서 은행나무 묘목 두 그루를 얻었다 그 당시 2년 또는 3년생쯤으로 보이는 한자 남직한 손가락 굵기의 외줄기 모양이었다 셋방살이 형편에 은행나무 묘목을 심을 만한
땅이 없었기에 마침 서울에 자주 올라오시던 숙부님편에 충청도 대산 고향땅으로
내려 보냈다 숙부님은 나무를 잘 보살펴 주셨다 그리고 가족 안부 전하시듯 나무의
안부를 자주 들려 주셨다 우리 고향집은 약 300년에 걸쳐 10대를 이어 종손들이 살아 왔다 지금은 숙부님 셋째 아들이 종가를 지키고 있다 이 종가에 사셨던 선조들은 모두 지척에 마련된 가족묘원에 정렬하여 누워 계신다 이 고향에서 출생하시고 조선시대 무관 벼슬로 이곳저곳 일하시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흙에 묻히신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의 미래도 훤히 눈에 보이는 듯 마음을 일깨워 준다
고향의 은행나무 두 그루 중에 하나는 집 안에 다른 하나는 집 밖에 뿌리를 내리고
농촌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 왔다 은행나무가 좋은 시절만 누린 건 아니다 어느 핸가
은행나무잎이 혈액순환에 좋다하여 은행잎 채취꾼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은행잎이 홀랑 다 벗겨지는 수모를 당한 고난도 있었다 서울에는 그런 은행나무 수모가 없었으나 그 당시 전국적으로 은행나무는 많이 유린 당했던 모양이다 올해 누리는 은행나무 나이는 68세이다 나보다 10년이 어리지만 서울에 살던 은행나무처럼 도시주택문화 발전에 희생 되어 도중에 목숨 잃을 우려는 없다 충남 대산 고향 은행나무는 앞으로 100년,200년 아니 길게는 창원의 천년기념물 팽나무처럼 300년,양평 용문사의 1.100년 되는 은행나무보다 더 장수 복을 누리는 은행나무가 되길 빈다 고향에 가까이 잠들어 계시는 조상들의 기운을 받아 누리며 내가 마련해 보낸 은행나무 두 그루 천년 만년 아니 억만년 길이 살아가길 마음 깊이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