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일본 문무왕과 지통여왕
오늘의 이야기는 「만엽집」 권1의 28번 지통여왕의 노래이다.
일본 고교교과서에도 실려있다는 이 노래는 일본인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고대 애창가요 중 하나라고 한다.
「만엽집」은 7세기 후반과 8세기 초에 걸쳐 일본을 통치했던 지배층과 그 반대 세력 지식인들에 의해 읊어진 시가 모음집으로,
‘고대 한국어 가사를 한자로 표기해 놓은 일본식 이두체 노래들'이라는 것이 작가의 반복되는 주장이다.
「만엽집」에 실린 노래가 우리의 옛말 노래라고는 꿈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본의 보수학자들은 중세 이후의 일본어로 이를 해독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우리 고대어가 해독될 리는 없었다.
문맥이 통하지 않으면 <의미불명>, 기껏 해독해도 무슨 내용인지 종잡기 어려운 것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만엽가>는 정녕 일본어로 읊어진 노래인가? 하는 의혹을 품은 양식 있는 일본인들도 있다.
오늘 이야기인 지통여왕의 노래에 대한 일본 학자들의 해독을 우리말로 옮기면 이러하다.
봄 지나고 여름이 온 모양이다. 하얀 옷을 말리고 있는, 아마의 가구야마(香來山)
‘가구야마(香久山/香具山/天香山)’는 일본의 옛 도읍 아스카에 있는 높이 152m의 얕은 산이지만 영산(靈山)으로 불린다.
‘아마’는 일본 옛말로 ‘하늘’, 또는 ‘신이 있는 천상의 세계’를 뜻하며 ‘아메’라고도 발음했다.
그래서 항상 ‘아마노 가구야마’ 또는 ‘아메노 가구야마’라 불려 왔는데 ‘신이 사는 신령한 산’이란 뜻으로 일컬어졌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가야와 신라계의 신 이름이나 보물의 말머리에는 으레 ‘아마’ 또는 ‘아메’가 붙었다고 작가가 말한다.
그러면서 상고시대에 일본에서 살았다는 신라 왕자의 이름은 ‘아메노히보코(天日槍)’요,
일본 최고의 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는 가야계 여신으로 보여진단다.
그리고 아마쓰카미(天津神)는 하늘에서 일본 땅에 강림한 신들의 총칭인데 이들도 가야-신라계 신들의 총칭이라는 작가의 주장이다.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에 걸쳐 농경문화와 철기문화를 가지고 한반도에서 물밀듯이 일본에 건너가 일찌감치 일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영토를 넓힌, 가야, 신라계 집단의 지도자가 ‘아마’, ‘아메’ 이렇게 일본의 신들로 불린 것이란다.
그 당시 한국의 지배 세력은 모계사회 부족이었고 ‘여자’, ‘어머니’를 의미하는 우리 옛말 ‘어마이’, ‘아매’, ‘어매’가 그대로 일본에 옮겨 가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상 세계’, ‘여성 권력자’가 훗날 ‘아마’, ‘아메’가 되었고 훗날 일본에서 왕의 뜻으로 불린 이유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통여왕의 시가 속 ‘아마노 가구야마’는 가야계 고구려 장군이었던 남편 천무왕을 상징하는 산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면서 “일본의 초대 왕으로 치부되는 신무(新武)왕도 어쩌면 천무왕의 즉위 전 행적을 상고 때 이야기처럼 꾸며서 구성해 놓은 가상의 인물로 여겨진다”고 일본인들이 놀라 자빠질 주장을 한다.
「일본서기」에서는 신무왕이 일본 중부지방 정복에 나서기 전에 가구야마의 흙을 빚어서 구운 토기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 보아 가야와 관련이 있는 지배자가 영산으로 받든 산이 가구야마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마노’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본어 해석은 <가구야마가 하얀 옷을 말리고 있다>는데,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는데 산등성이에 눈이 남아있을 리 없다.
작가의 풀이는 아래와 같다.
봄 지나이 / 녀름 올랑가 / 사로 다배는 / 고롬 푸시알 / 아메가 향고매
(봄이 지나니/여름이 오려나보다/하얀 속옷을랑/고름풀어 벗으시는/주상께서 향긋하시니)
그리고 이 노래를 이중가로 해석할 경우에는 아래와 같다.
봄(천무왕의 시대)이 지나니 / 여름(문무왕의 시대)이 오려나 보다 / 신라와 다 닿는 끈을 풀어 벗으시는 / 주상께서 향긋하시니
작가의 이러한 해석은 봄은 천무왕을 상징하고, 여름은 문무왕을 상징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7세기 일본에서는 오행 사상(세상의 모든 현상을 木-火-土-金-水-다섯 가지 요소의 작용으로 보는 고대 중국의 사상)이 유행한 바, ‘
청룡’을 자처한 천무는 ‘木德’, 즉 봄을 상징하고, ‘백호’인 문무는 ‘金德’으로 여름으로 상징되었다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이미 앞선 연재물에서, ‘문무는 천무와 지통의 손자’라는 「속일본기」의 기록이 있지만 실은 문무는 천무의 첫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 지통과는 핏줄이 닿지 않은 의붓 모자간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천무가 죽자 이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일본 문무왕(697-707)을 신라 문무왕(661-681)의 후신으로 보는 일본학자도 있다고 소개하면서 일본 문무왕이 ‘白虎’이었듯 신라 문무왕도 「삼국유사」에 ‘文虎王’이라고도 했으니 그도 역시 호랑이였다.
한자 ‘白’은 고대 음독으로 ‘사로’였다.
이 말이 일본에 건너가 ‘하얀 빛’을 의미하는 ‘시로’가 되었다.
또한 ‘사로’라는 명칭은 6세기 초 지증왕 때까지 신라의 옛 이름이다.
따라서 白=사로=신라의 등식이 되는 것이고 고대 일본에서 신라를 한자로 표현할 때 흔히 ‘白’이라고 표현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白虎’는 신라 문호왕((文虎王)을 지칭한 암호이기도 했던 셈이다.
신라 문무왕은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후손이며 김씨이다.
‘金德’의 사람이었다는 일본 문무왕과 여러 면에서 일치하니 우연치고는 가히 신기한 우연이 아닌가?
따라서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면 지통여왕의 노래 내용은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
작가의 결론이다.
"고대 일본국은 천무 때는 씨뿌리는 봄철이었고, 문무왕 때 율령국가로서의 기초를 튼튼히 다진 여름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통여왕의 입장에서는 남편의 시대는 가고, 바야흐로 애인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흰옷을 말리고 있는 가구야마라니... 지통여왕이 알면 뭐랄지 궁금하다."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30년 전쯤에
광고 : 책 <청와대 비서진이 이 책을 읽는 까닭은...>
1994년 6월 5일자 신문의 <한국인의 트렌드>라는 책의 광고 소제목을 보고 있자니, 작가의 예지력이 놀랍다.
테크놀러지 분야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그의 상상 이상의 천지개벽이 이루어졌지만, 문화적 트렌드는 공감하는 바 크다.
채 열 살에 이르지 않았던 자녀들의 30년 후의 모습이 어느 정도 투영되고 있으니까....
청와대 비서진이 읽는다고 광고하는데, 용산에 있는 비서들은 우물 밖 하늘을 보기는 했을까?
광고 : 책 <포위된 城>
중국 바람이 불어올 때 그나마 <13억 인구에 1원씩만 벌어도..> 하는 책이 아니라 다행이다.
중국식 웃음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후속 작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노벨문학상을 놓친 아까운 소설>이라는 소개가 진짜로 우습다~
광고 : 건강음료 <영진 영천디>
영지와 구기자가 만병통치로 대유행했던 시기이다. 지금도 귀에 들리는듯한 "영진 구론산 바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