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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은 잠시 방향을 살핀 뒤 여비가 충분한지 확인하고자 여인이 준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 안에는 빳빳한 신권으로 1천환이 들어있어서 일한은 깜짝 놀랐다. 일천환은 지금(2026년 현재)의 원화가치로 1천만 원 이상에 해당한다.
‘그 여인이 참 배포가 크구나. 하기야 내가 도움을 준 것에 비하면 이것이 과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
이렇게 자위하며 발걸음을 옮길 때 뒤에서 매아리가 빈정거린다.
“어디서 오늘 돈 좀 버셨나 보죠?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게 도도하셨군요.”
일한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가씨, 어서 갈 길로 가시오. 저는 상관하지 말고. 그 동안 고마웠소.”
“정 그러시다면 제가 공자님을 모셔다 드리겠어요. 제가 말을 가져왔으니 제 말에 타세요.”
“아니오. 고맙지만, 그냥 마차를 타고 가겠소.”
“그렇다면 제가 잡아드리죠.”
“아니오. 그냥 가시오.”
일한은 사양하며 지나가는 이두마차 한 대를 잡았다.
“서쪽 부여문夫餘門까지 가주세요.”
부여문은 서쪽의 큰 성문 가운데 하나로 서쪽 성벽 중간쯤에, 큰 공원과 붙어있다.
일한이 마차에 오르자 매아리도 잽싸게 같이 오른다. 일한은 그녀를 힐끗 돌아본 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홀객잔으로부터 화평로를 거쳐 부여문까지 오는 데는 수십 리 거리다. 부여문에 도착하니 해시 초입(밤 9시경)이었다.
부여문에서 내린 뒤 성문을 나가 성문 밖 광장에서 택시를 타고 길림역까지 가는 동안 매아리도 억지로 따라붙었다.
길림역 매표소에서 평양이나 서울 가는 고속열차를 알아보니 자정에 길림에서부터 장춘, 심양, 신의주, 평양을 거쳐 서울까지 가는 고속열차가 있었고, 새벽 두 시에 길림에서 동남쪽의 연길, 청진, 함흥을 경유해 서울로 향하는 고속열차편도 있었다.
일한은 매아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 동안 도움에 감사했어요. 다음에 만날 기회가 또 있을 겁니다.”
“아니에요. 저도 공자님을 따라 갈 거예요.”
그녀는 막무가내다. 일한은 서울에 가서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얻은 후, 나름대로 자신이 당한 환난과 백악산아사달 시 999년 조차 문제를 파고들 심산이었다. 평양은 대한민국 수도였으나 학문과 경제는 서울이 더 발달해 있음을 김일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여자가 왜 나를 이토록 따라 붙나? 단순히 내가 좋아서?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가?’
그 동안의 행태를 분석해보고 직관으로 느껴볼 때, 그녀가 일한 자신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거나 건전하거나 우호적인 게 아닌 듯했다.
‘아, 불가사리 같은 이 여자를 어떻게 따돌린다?’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울에 가서 숨어버릴까? 그러면 이 여자도 제풀에 지쳐 리을성으로 되돌아가겠지?’
그날 자정 서울행 초고속열차에 몸을 실은 김일한과 매아리는 이튿날 새벽 1시경 서울역에 도착했다. 매아리의 숙소를 마련해 주고, 근방의 다른 호텔에서 방 한 개를 얻어 밤을 보낸 일한은 아침에 무작정 거리를 나서서 일자리를 찾았다.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킬 수 없어 그는 개인전자수첩을 이용할 수 없었다.
신분을 숨기고자 그는 우선 시장으로 가서 새 옷과 신을 구입해 갈아입었다. 한 가지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웬만한 직장에서는 인적사항이 전국 전산망에 등록되기 때문에 정체를 은닉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알아보았으나 적당한 일거리를 구할 수 없었다. 자신의 특기인 무예 쪽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어디든 동행하는 매아리를 떨쳐버리는 일이었다.
매아리와 헤어지고자 그는 저녁에 무모한 짓을 감행한다. 대로에 뛰어들어 무단횡단을 실시한 것이다. 다가오는 차들을 용케도 피하며 전력 질주했다.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고 난리가 났다. 어떤 미친놈이냐고 욕하는 소리도 들린다.
광화문 우남광장을 가로질러 반대편 차로를 역시 위험천만하게 횡단한 후, 그는 곧장 인도를 따라 젖 먹던 힘을 다해 내닫다가 골목길로 이리저리 돌았다.
매아리는 일한을 쫓아갈 용기가 없는지 발만 동동 굴렀다. 일한은 매아리가 추적해 오는지 점검한 후 그녀가 오지 않는 것을 보고서도 길거리를 마구 달렸다. 한참 지나 그는 매아리가 완벽하게 시야에서 사라졌음을 확인하고 택시를 탄 후 한강을 건너 강남 쪽으로 갔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그는 일단 매아리를 떼어버렸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몰아쉬며, 그 날 밤 택시에서 내린 곳 근처의 호텔을 찾아 일박하고 이튿날 아침, 사람들에게 국립중앙도서관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서울의 국립중앙도서관은 그가 옥중에서 책을 읽을 때 우연히 알게 된 곳이다. 사람들이 길을 가르쳐주는데, 마침 운 좋게도 도보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었다.
일한은 도서관의 위치를 확인한 후 근처에서 각종 소식지, 인터넷 등을 통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았다. 간신히 하나 찾은 곳이 한식집 주방에서의 설거지 아르바이트였다. 오정부터 저녁 영업을 마칠 때까지다. 주인에게 사정해서, 당분간 그곳에서 잠을 자는 것도 가능해졌다.
남자는 원래 주방에서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칙적으로 그 곳에서 숙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가 워낙 간절히 사정하는지라, 또 그의 인상이 매우 선하고 좋아 보이고 성실해 보였기 때문에 단칸방이라도 얻을 때까지 당분간 머문다는 조건을 달고, 주인 할머니는 그에게 잠자리까지 제공했다.
잠자리와 두 끼 식사 문제가 해결되자 일한은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국립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개관은 오전 9시였다. 그 날 도서관 이용법을 익힌 그는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시간에 맞추어 열두시에 음식점으로 출근했다.
서울은 리을성과 달리 아직도 몹시 더웠다. 길가에 환꽃이 만발하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더위 속에서도 생기가 감돌았다. 서울의 거리는 리을성 밖의 길림시보다 더욱 깔끔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날 음식점 일을 마치고 근무자들끼리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우연히 백악산아사달 시의 국사재현축제 이야기가 나왔다. 동료 아주머니가 그에게 묻는다.
“백악산아사달에서 왔다면서요?”
“네, 그래요.”
“언제 왔어요?”
“며칠 전입니다.”
“지금이 국사재현축제 기간인데, 거기 분위기는 어때요?”
“난리가 아닙니다. 성내는 길거리 전체가 아예 도떼기시장이에요. 전국 각지, 각국에서 온 인파가 넘쳐납니다. 성내 주민등록 인구는 십여만인데, 지금 하루 유동인구가 수백만이에요.”
“나도 한 번 그 축제 기간에 휴가를 내서 가족과 함께 구경을 갔으면 해요.”
잠시 멈칫거리던 아주머니가 묻는다.
“근데, 왜 여기 서울까지 오셨어요? 거기 출신이라면, 그곳은 관광산업이 대단히 발달해 있어서 일자리 잡기도 쉬울 텐데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근데, 황궁 임금님 막내 따님의 남편감을 공개적으로 뽑는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가만있어라, 오늘이 며칠이죠?”
“21일이에요.”
“그 부마간택대회가 금년 국사재현축제 마지막 날인 29일까지 진행될 거예요.”
“어머, 나도 시간 있으면 구경 가보고 싶다.”
일한이 빙그레 웃는다. 다른 아주머니가 그의 말을 받았다.
“우리가 함께 거기에 놀러 갈 방법이 없을까? 임금님 막내딸이 대단한 미녀라고 들었는데, 그녀 얼굴도 보고 부마를 어떻게 간택하는지 구경도 하고.”
다른 종업원이 주인에게 졸랐다.
“사장님, 우리 이번에 휴가도 없이 여름철 내내 삼복더위 속에서 죽도록 일했는데, 한 일주일 정도 문 닫고 모두 휴가를 가면 안 될까요?”
“안 될 거야 없지, 하지만 휴가 후에는 모두 자동 퇴직이야.”
“에이, 사장님 너무하신다. 우리 좀 봐 줘요. 손님도 엄청 많아서 장사가 잘 되었잖아요?”
“일주일 문 닫으면 영업 손해가 얼만데?”
“더 열심히 해서 벌면 되잖아요? 사장님, 오늘 이 총각 보니까, 갑자기 백악산아사달 성에 다시 놀러가고 싶어요.”
“그래요. 많은 가게가 이 기간에 문을 닫고 축제 보러 간다고 해요. 우리도 쉬어요. 네?”
종업원들이 하도 조르자, 맘씨 좋은 주인 할머니는 거절하지 못하고 마침내 승낙하고 말았다.
“야호! 짝! 짝! 짝!”
서로 손바닥을 부딪치는 소리다. 하지만 일한은 난처해졌다. 시간제로 일하는데, 일주일 쉬면 다른 직장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한의 걱정을 알아차린 듯 주인 할머니가 일한에게 말한다.
“총각,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일주일 동안 일한 것으로 치고 선불할 테니까요. 총각 마음씨도 착하고 얼굴도 미남인데, 내가 선심 좀 쓰지 뭐.”
“감사합니다.”
“아이고, 총각! 좋겠다. 얼굴 잘 생긴 거로 한몫 톡톡히 보네. 우리 사장님 짠순이로 소문나 있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내가 총각을 잘은 모르지만, 우리 딸이 있으면 사위 삼고 싶어.”
다른 아주머니가 거들었다.
“우리가 거기 리을성에 가면 총각도 같이 갈 거지? 우리 길잡이가 되어 주어야 하는데?”
“아,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저는 그동안에 할 일이 있어서 올라가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에이, 총각이 빠지면, 쉬어 빠진 총각김치처럼 재미가 없지.”
아줌마들이 너도 나도 난리다. 같이 가자고.
“내일은 집에서 쉬고 모레쯤 2박3일 정도 같이 다녀오지, 총각, 응?”
“가정을 그렇게 오래 비우셔도 괜찮아요?”
일한이 묻자 한 아주머니가 대답한다.
“여기에 남편 있는 여인은 한 사람 뿐이고 모두 혼자예요.”
“저도 남편 허락 받으면 가능해요. 남편도 마침 휴가 중이라 어쩌면 같이 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 때 주인이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놓는다.
“손님들에게 공지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문을 닫으면 어쩌지?”
“손님들에게 죄송하다고 지금 당장 공지하죠.”
“근데 주말 예약 손님들은 어떡하지?”
“이번 주엔 희한하게도 예약손님이 한 팀도 없어요. 하늘도 우리의 휴가를 돕나 봐요.”
“그럼 내일부터 다음 주 금요일까지 일주일간 쉬기로 합시다.”
“야호!”
다들 난리법석이다.
“일한 총각, 같이 갈 수 있죠?”
일한히 완곡히 거절했다.
“제가 내일은 도서관에 가 봐야 하고요, 모레 일요일에는 또 교회에도 가봐야 하거든요. 정말 죄송해요.”
“에이, 교회 하루 쉬면 어때요? 그냥 우리랑 같이 올라가요. 거기서 교회 가면 되잖아요?”
“제가 동행하기는 정말 불가능합니다.”
“왜요? 돈이 없어요? 사장님이 일주일치 주시면 충분할 터인데, 부족하면 제가 좀 보태드릴게요.”
“네, 같이 가요. 우리 팀에서 유일한 청일점인데, 그리고 그곳 출신인데, 총각이 빠지면 총각김치 빠지고, 김이 빠지고, 힘 빠지고 맥 빠지고 재미 빠지고 다 빠지지.”
입담 좋은 아줌마가 너스레를 떨었다.
여인네들은 일한을 데려가고자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정말 제가 좀 곤란한 사정이 있습니다. 여기서 꼭 할 일이 있어서요.”
하지만 여인들은 마치 오랜 만에 만난 친구를 대하는 듯, 일한에게 성화를 부린다.
“아휴! 비싸게 놀지 말아요. 우린 나이 먹고, 총각은 젊다고 혼자 내빼기예요? 그럼 우리 누나들이 너무 섭섭하지!”
난처해진 일한이 잠시 상념에 젖어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동행할 수는 없고요. 글피 월요일 쯤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한은 고향을 피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이것이 혹시 신의 인도하심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어, 같이 하루나 이틀 동안 이분들과 동행하다가 내려오기로 결심했다.
“그래요? 그럼 우리도 모두 월요일에 함께 가기로 해요.”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다들 월요일에 함께 가자고 말한다. 일한은 다소 불안감이 없지 않았으나 이박삼일 동안 이들과 관광객 차림으로 지내다 더불어 내려올 작정으로, 내키지 않은 채 동행에 동의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일한은 한 시간 정도 호흡기도를 한 후 국립도서관으로 직행했다. 도서관에서 200년 전의 백악산아사달 시 임대조차에 관한 자료를 모두 검색해보았다.
대단히 많은 데이터가 화면에 떠오른다. 그 중 조차임대 계약서를 찾아봤으나 그런 자료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럴 듯한 자료 하나는 열람이 불가능한 희귀 고문서로 처리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리을성 조차임대에 관해 연구한 몇 권의 서적을 대출해 자세히 훑어보았으나 별무소득이었다.
무기한 임대차인가, 999년간의 조차인가? 중국이 이런 특혜를 대한민국에 베푼 이유가, 대한민국을 영구 지배하고자 한 계략인가?
사실 200년 전 그 조대차 협정이 체결된 후 한중간 정치경제군사 협력이 가일층 증가하고 그 이전에 이미 양국 간 간편 자유왕래 조치가 취해졌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한국 유입이 대단히 많아졌다.
게다가 중국은 한국인들이 중국어 발음을 익히기 쉽도록, 기존의 라틴문자 중국어 발음표기법 외에 한글로 표기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한글의 장점은 세계의 거의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영어의 f, v, th 발음 등을 한국어로 전혀 표기할 수 없으며 한국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기염을 토한다.
사실 한국 내의 전라도 지방에 존재하는 발음들 가운데도, 현재 국어로는 표기할 수 없는 발음이 있다. 예를 들면, “비미(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는가?” 라고 말할 때의 그 ‘미’라는 발음, “그라졔(‘그러지 예’의 준말), 이?”라고 표현할 때의 ‘이’는 모두 비음鼻音인데, 이는 전라남도 사람들이 매우 흔하게 사용하는 콧소리다.
그 발음은 “잉”도 아니고 “이”도 아닌 그 중간이다.
또한 많은 사람이 대답할 때 사용하는 비음 ‘어’ 발음도 “엉”이 아니고 “어”가 아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의 자모 가운데 지금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 어쩌면 ㆆ나 ㆁ가 그런 비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발음 기호가 따로 없고, 자모의 조합 자체가 발음기호 역할까지 병행하는 한글은 약속에 의해 다른 외국어 발음도 표기하는 것이 거의 무제한 가능하다.
예를 들어 위에서 거론한 f 는 ‘ㆄ’로, v 는 ‘ㅸ’로 표기할 수 있으며 ‘시’와 ‘지’의 중간에 가까운 영어 발음 z 는 ‘ㅾ’ 또는 ‘ㅿ’로, 영어 발음부호 θ 는 ‘ㄸ+ㅆ’, ð 는 ‘ㅼ’로 적을 수 있다.
영어의 r 발음은 ‘ㄹ+ㅇ’으로 표기할 수 있다. 기타 우리 발음에 없는 여러 가지 모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 는 ‘아’와 ‘어’의 중간발음이므로 ‘ㅓㅏ’로 표기하면 그만이다.
중국인들이 중국어의 한글발음기호를 만들 때도, 한국어에 없는 발음은 한글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런 방식을 채택했다.
예를 들어 중국어 zh 발음은 ‘ㅉ+ㄹ+ㅇ’으로 표기한다.
좌우간 999년조차 협정 이후 중국은 통상, 학문교류, 정치, 문화 등에서 한국에 파격적인 혜택을 베풀었다.
중국은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 한국인들이 다수 들어가도 별 표시가 나지 않으나 중국인구가 한국에 대거 유입하자, 이러다가 한국이 중국인들 세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이야기도 오갔다. 중국은 중국대로 한국문화, 한류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중국화, 중국의 한국화가 그 동안 많이 진행된 게 사실이다.
신시배달국의 치우임금과 중국의 공손헌원 시대부터 단군조선을 거쳐 삼국시대까지, 중국인들이 때로 두려워하고 때로 극히 골치 아프게 생각해온 동이족東夷族(우리 한민족) 문제를, 그들이 인종의 완전동화라는 방식에 의해 해결하기로 했는지 모른다는 무서운 느낌에, 일한은 속으로 떨었다.
사실 현재 중국의 “자칭 한족”의 구성혈통 속에도 동이족 혈통이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단군조선의 국력과 문화, 땅덩어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단군조선에 비해 영토가 매우 작고 조선의 문물을 받아들였던 중국의 하, 상, 주는 대개 단군조선을 상국으로 모셨다.
중국이 통일제국을 이룬 후에는, 단군조선이 열국으로 분열되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거의 역전되었지만, 그 후에도 중국이 우리 동이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사실은, 역사에 자주 나타난다.
서한의 무제는 요하서쪽 지방의 위만조선을 점령하고 요하를 넘어 대부여까지 침략했으나 구국의 영웅 고두막 장군에 의해 실패한 적이 있다.
위나라의 관구검, 수나라 문제와 양제, 당나라 태종도 고구려를 정복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나라 무조武照(훗날의 측천여황)가 그녀의 남편 고종을 부추겨 고구려 반역자들과 신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고구려 정복에 성공했지만, 그것도 국토의 일부였을 뿐, 압록강 이북에만도 당나라에 항복하지 않은 성이 11개 이상이었으며, 곧바로 후고구려인 대진발해국이 일어나고 신라까지 가세해 당에 항복한 고구려 땅을 얼마 후 다 차지하고 말았다.
대진발해국이 망한 후 우리민족이 만주를 대부분 잃게 되자 근세고려시대와 근세조선 시대에는 고토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저지당했다. 일제가 우리 땅인 간도지방을 청나라에 넘겨준 것은 20세기 초엽이다. 그 때까지도 우리 조선민족은 조선의 고토 만주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강점기 35년 혹은 40년을 거치고 해방 후부터 만주에 대한 국민 다수의 영토의식이 희박해져, 다수 국민들 가운데 만주가 우리 민족의 발상지이며 우리가 되찾아야 할 고토임을 망각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구한말인 1900년에 태어나 2005년에 106세로 작고한 수재 법학자이자 사학자인 최태영 박사는 자신이 어렸을 때인 한일합방(1910년)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전국민이 요동遼東(요하 동편)을 우리 영토로 알고 있었으나 20세기 말엽에 이르러 그런 의식이 아주 퇴보했다고 탄식했다.
다행인 것은 20세기 말엽부터 민족 사학자, 이른 바 재야사학자들이 사대주의사관과 일제식민사관을 청산하고 국사를 회복하며 고토를 되찾자는 기치 아래, 깊이 있는 학문적 연구를 아우름과 동시 진중한 목소리를 발하는 등 실질적인 조처를 취해왔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과거 한나라와 당나라의 실패를 잘 알고 있는 중국정부는 요동과 만주를 중국영토로 영구 고착화하기 위해 20세기 말엽부터 이른 바 동북공정을 실시해 대진발해국이나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이며 지방정권이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그들이 존경하는 초기 중국수상 주은래周恩來 같은 사람은 중국의 이런 행태를 예견한 듯, 옛 중국 사가들의 춘추필법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대진발해국이 조선의 한 지파였다고 북조선의 관리들 앞에서 갈파한 바 있다.
중국 사관史官들의 못 말릴 춘추필법은 청나라 말기까지도 구태의연해 영국이나 기타 서양 외국 사절이 오면, 그 나라가 칭신稱臣하며 조공朝貢을 바쳤다고 기록하는 등, 역사 사료들을 개그나 코미디 문서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그러다가 중국정부는 서양 제국諸國과 일본에게 수차례나 혼쭐이 난 이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지만, 1949년의 중국대륙 공산화 이후에도 옛 사관들의 춘추필법을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가일층 발전시켜 요동과 만주가 아예 처음부터 중국 땅이었다는 식의 동북공정을 감행했던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일행이 중국을 방문했는데, 중국의 사관들은 그 방문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설마 아직까지 선조 사관들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진 않겠지?
그러나 양심적인 중국 사학자들과 한국 국사학자들의 줄기찬 노력, 한국정부의 강력한 항의 및 국제적인 압력으로 인해 동북공정도 마침내 실패로 돌아가고, 그 와중에 백악산아사달 시 조대차 협정이 한중간에 체결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모든 시도 즉 침략전쟁, 춘추필법, 동북공정이 죄다 실패한 마당에 최후로 중국정부는, 한국을 아예 중국에 동화시켜 중국으로 편입하고자 전대미문의 우려스런 협정을 감행했다는 시각이 옳은가?
사실 회대지방은 그렇게 해서 중국영토로 편입된 지 오래다. 우리 동이족은 뒤늦게 중원中原(서안을 중심으로 한 중국 중부 고원지대, 서토西土)에 들어온 화하족보다, 회대지방 즉 산동반도를 포함해 중국 동부의 평원지대인 화북華北평야에 일천년 이상 먼저 진출했다.
그러나 은나라 때부터 주나라, 춘추열국, 통일제국 진과 한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은 줄기찬 동진東進 침략과 동화정책을 통해 마침내 그곳의 동이족을 화하족과 혼혈시켜 중국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중국 주나라가 초창기인 서기전 11세기에, 회대지방의 동이족 땅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성주成周 즉 낙양성을 새로 조성하고, 외국 사절들을 초빙해 낙양성에서 성주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한 사실은 문헌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때 우리 단군조선의 서쪽 지방 거수국渠帥國(제후국)인 고리국 외 몇몇 거수국의 사절도 참석했음이 문헌에 나타난다.
그러나 요동과 요서, 만주에서 발흥하고 터를 잡았던 한민족이 한반도에 호랑이처럼 먹이를 덮칠 기세로 웅크리고 있는 한, 요동과 만주는 항상 불안했다.
게다가 만주와 회대지방 특히 산동반도 및 한반도는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하나의 생활권으로서, 서로간의 인구이동이 매우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래서 한민족까지 중화족에 영구 흡수하고자 하는 간 큰 결심을 굳힌 채, 제 일보를 내디딘 것이 999년 조대차라는 미끼가 아닐까?
그것이 김일한의 추론이었다.
즉 리을성 999년 조대차는, 그동안 동이족이 강해지고 화하족이 분열해 약해졌을 때를 대비해 우환을 영구히 제거할 목적으로, 한국의 중국화를 재촉하려는 은밀한 시도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무엇일까?
반면, 한국정부는 무얼 노리고, 처음 맛볼 때는 달게 느껴지나 나중에는 영구한 독이 될 이와 같은 백악산아사달 시 999년 조대차 협정을 체결했는가?
대한민국은 왜, 그 조약문에서 고토 요동을 영구히 포기한다고 그토록 쉽게 동의했는가?
두 나라가 나름대로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는가?
일한은 거듭해서 애써 숙고해 보았으나 별무성과였다.
‘어쩌면 열람 불가로 지정된 저 희귀고문서 안에 999년조차 계약서가 있지 않을까? 그 계약서를 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그것을 열람한단 말인가?’
‘내가 아예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취직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일한은 별별 생각을 다해 보았다.
일한은 공상만을 펼치다가 오후 늦게 도서관을 나왔다. 센트럴시티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아래서 어떤 젊은 여인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이쪽으로 올라오는 게 보였다. 척 보니, 바로 매아리였다.
‘아차! 이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어떻게 여길 알고 찾아왔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두 사람의 눈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도망가자니 마치 죄인이 되는 것 같아, 일한은 속으로 움찔하면서 태연하게 걸어 내려갔다.
“흥! 공자님이 저를 따돌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갈 거예요.”
(다음 장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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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6. 7. 10. 장마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