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둘쨋날 - 2014년 4월 6일(일요일)
대구(大邱)...는 별로 매력이 없어 보였다. 여행의 목적지로 삼기에는 너무 도회적(urbane)어서 그랬을까? '뭐, 서울이랑 별반 다를 게 있겠어??' 뭐, 그런 생각.... 그래서 정작 팔공산에 들러 동화사를 거닐면서도, 파계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서도, 이 대 도시 속으로는 별로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거 같다. 그저 북대구 IC를 지나면서, 길게 램프에 늘어서 있는 차들을 측은하게 보면서, 하, 빠져나가려면 시간 꽤나 걸리겠네, 저사람들... 뭐 그냥 그런 감정들....
그러던 차에, 아내가 이번 경주 답사 마치고, 대구를 보고 싶다고 했다. 작년에, 정작 경주 답사였지만, 실질적인 여행지는 '삼국유사'의 고향 '군위'였던 것처럼 말이다...
어제 경주가 마라톤이다, 벚꽃축제다, 식목일이다 해서 길이 꽉 막혔던 때문에 진땀 꽤나 흘렸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대구에서는 KBS 주최 대구 마라톤 대회가 열린단다.... 그래서 도시 중앙 대로들이 1시 30분까지 통제된다고..... 이론적으로는 어제 대구를 왔다가 오늘 경주를 갔으면 좋았을텐데, 집사람의 그 빌어먹을 공무원 출장비 규정 때문에 그건 불가능하다고.... 톨게이트가 경주로 찍혀야만 돈을 준다나... 그래서 하이패스도 못쓰고 종이 통행권을 받아서, 톨게이트에 늘어서서 현금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챙기고.... 식비는 1인당 한 끼에 6600원(이것도 10% 인상된 거라나....!!)이고, 숙박비는 1인당 2만원(니놈들이 이 돈으로 잘 곳을 찾을 수 있으면 어디 해 봐라!!).... 그지같다, 정말....
그래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마라톤을 쫓아다닌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쨌든 대구에서 마라톤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 마라톤 코스를 피해서 다녀보기로 했다. 1시 30분만 넘으면 풀리니까....하고.
톨게이트를 나와서 시내를 흐르는 신천을 따라 나 있는 신천대로를 달릴 때만 해도 좋았다. 한강이 없어서 그렇지, 신천대로는 올림픽대로보다 가로수도 많고 해서 오히려 더 상큼하다. 차들도 잘 달리고...
원래는 83타워를 가려고 했는데, 지도에서 이 신천 가까이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차를 돌렸는데..... 앗, 그건 나의 실수.... 앞쪽 하늘에 헬기가 날고 있다... 헬기... 마라톤... 차량 통제...
그 길은 바로 마라톤이 열리고 있는 달구벌대로[이름이 너무 재밌다!!!!]로 이어져 있고, 그 대로를 가로질러야만 '방천시장'으로 갈 수 있었다. '김광석....'은 바로 그 방천시장 남쪽 끝 뚝방길을 따라 나 있었으니까... 꼼짝도 안 하고 서 있는 차들 속에 갇혀 있다가 가까스로 틈을 비집고 차를 돌려 골목길로 진입해 차를 적당히 세워놓고, 마라톤 관계로 텅 비어 있는 대로를 지나 방천시장으로 들어갔다. 시장 초입에서 사람들에게 물으니 잘 모르던데, 그래도 이럭저럭 찾아가 보니 거기에 바로 김광석이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면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가는 날이 장날.... 달구벌대로는 마라톤 관계로 통제되어 한 쪽이 텅 비어 있다. 그것도 우리차가 가야할 쪽이...]
[달구벌대로와 방천시장이 만나는 뚝방길 벽을 따라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나 있다.]
초입에는 벤치에 앉아 기타치며 노래하고 있는 김광석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고, 그 뒤로 500여 미터 정도 뻗어 있는 뚝방길 벽에는 그를 기리는 온갖 그림과 커리커쳐, 사진이 그려져 있으며, 그 길 중앙 쯤에는 기타치며 노래하는 모습의 동상도 자그마하게 세워져 있다.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사랑했지만', '그날들[my favorite song!!]', '나의 노래', '서른 즈음에', '일어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이등병의 편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변해가네', '바람과 나', '너에게', '먼지가 되어', '광야에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작품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홀연히 생을 마감한 김광석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방천시장 일대라 한다. 사실 그가 대구 사람이란 것도 대구를 들러보기로 한 후에 알았다. 들리는 말로는 이 시장에 있던 어느 전파사집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정작 이곳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어떤 사람들은 그건 맞긴 하지만, 그 전파사는 이미 없어졌다고 한다. 암튼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젊은 나의 한 시절을 돌아보는 것 같아 가슴 한켠이 찡~하다.
이 방천 시장 자체도 그렇다. 주변의 삐까번쩍한 빌딩들 사이에, 그것도 달구벌대로의 뚝방길 아래에 잔뜩 몸을 낮춘 모습으로 숨어 있는데, 상가들도 내가 1960년대 살던 그 어렵던 괭이부리마을의 모습을 아직도 살짝 살짝 엿볼 수 있을 만큼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길을 포함한 일대가 대구 근대화 골목투어 4코스라고 하더라만....
[불꽃 삶을 살고 이슬처럼 사라진 광석! 여기 대구에서 느닷없이 그를 만나다.]
[이렇게 김광석이 하는 포장마차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도 있다......]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게 해 주는 시장의 안쪽 골목 마을....]
'김광석'과 헤어진 후, 우리는 '대구 근대화 골목 투어 2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대구에는 중구청이 지정한 다섯 개의 근대화 골목 투어가 있는데, 그 중에서 2코스(근대문화골목)를 택한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코스가 있는 지 몰랐지만, 아내가 미리 조사해 왔기에, 몇 번 코스인지도 모르고 따라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제2코스라고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이 제2코스에 대한 일간지의 설명을 보자:
"(제2코스는) 청라언덕이 있는 동산의 선교사 주택에서 투어가 시작된다. 1910년대에 건립된 선교사 블레어주택(교육·역사박물관)과 챔니스주택(현 의료박물관), 스위츠주택(선교박물관)을 볼 수 있다. 동산에서 3·1만세 운동 길을 따라 내려오면 계산성당이 나타난다. 1902년 지어진 계산성당은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두 개의 종각이 솟아 ‘뾰족집’으로 불렸다. 마당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름은 ‘이인성 나무’. 일제 강점기 ‘천재 화가’로 불린 대구 출신 이인성(1912∼50)이 1930년대 그린 ‘계산동성당’ 그림에 나오는 나무다. 이곳은 1950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계산성당 옆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을 오는가’를 쓴 저항시인 이상화(1901∼43)와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서상돈(1850∼1913)의 고택이 있다. 고택 옆 남성로에는 약령시가 있다. 약전골목으로 불리며 한의약박물관과 200여 곳의 한약재 관련 업소가 들어서 있다.'
그 중 우리가 찾아 본 곳은 제일교회~서상돈 생가까지다.
이런 코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보니까, 우린 무작정 '동산병원'을 찾아 갔다. 계명대 병원이기도 한 동산병원은, 다른 대학병원들과는 달리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병원 본관은 고색찬연한 '붉은색' 벽돌 건물로 되어 있다. 이 2코스를 여행할 경우에는 주차는 이 병원 주차장에 하면 된다. 세 시간이 가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주차요금은 3800원 정도 밖에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난다. 이때 가능하면 광장에 있는 주차빌딩 같은 곳에 하지 말고,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빠져 나가서 언덕위로 차를 몰고 올라간 후 적당한 곳에 주차하면 된다. 그래야 나중에 차를 찾아 돌아와서도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된다. 청라언덕을 넘어 언덕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니까.... 물론 우리처럼 서문시장까지 다 돌아보려면 그냥 여기다 하는 것도 괜찮고....
주차를 하고 주차장을 빠져 나와 '의료선교박물관' 찾아 나섰다. 잠시 언덕을 돌아 올라가자, 대구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언덕이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박태준의 '동무생각', 바로 그 청라(靑蘿) 언덕이더라...
암튼 이 '청라언덕'에는 당시 선교사로 와서 이곳에 정착했던 Miss Martha Switzer, Blair 목사, 그리고 O. Vaughan Chamness목사의 사택 등 서양식 주택 3채가 눈에 들어 온다. 당시 백성들의 그 허접한 집들 위러 언덕위에 자리잡은 이 사택들은, 요즘도 멋져 보이는데, 당시 그들의 눈에는 정말 대궐같이 보였겠다는 생각이 살짝 스치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이 분들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 너무 많으셨지만..
Switzer의 사택은 현재 선교 박물관으로, Blair 사택은 교육 및 역사박물관으로, 그리고 Chamness 사택은 의료박물관으로 사용중이다. 한가지 tip....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내부 공개가 없다.... 즉, 우리부부는..... 공쳤다....
이 의료선교 박물관 입구에서 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서양 사과'의 효시가 된 사과나무다. 동산의료원 초대 원장인 존슨 선교사가 미국산 묘목을 70여 그루 들고와서 심었는데, 그 중 미주리 품종만 살아 남아, 지금의 대구 사과나무의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대구사과의 할배 나무... 헐, 원래 미국산 미주리 품종이었다니...!!!]
'원조 할배 사과나무' 뒷쪽에 보이는 것이 동산의료원 100주년 기념 종탑인데, '담장허물기' 운동이 일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담장을 허문 것이 이 동산의료원이라나? 그래도 그 기념 종은 없앨 수 없어 여기에 옮겨 왔다고 한다.
[마치 미국의 자유의 종을 보는 듯....]
그 종탑 뒤로는 장님이 아닌 이상 눈에 안 띨래야 안 띨 수가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강암 교회가 버티고 서 있다. '청라언덕'을 압도한다. 바로 '제일교회'다. 원래는 자그마한 벽돌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서울의 충현교회에 비견될 만큼의 어마어마한 크기로 언덕위에 세워져 있다. 물론 '구' 제일교회는 언덕 아래에 따로 있다. 구 제일교회는 대구/경북지역 최초의 기독교 교회라고 알려져 있다.
[화강암 돌 건축물인 '신 제일교회'의 모습...충현교회에 비견된다.]
교회를 보고 나서 의료박물관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대구동산병원의 구관 현관을 옮겨 놓은 것이 있고, 바로 그 옆에 박태준의 '동무생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기맡으며
너를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재밌는 것은 대구가 낳은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 박태준 선생이 계성학교 시절 있었던, '백합'으로 상징화된 여학생과의 로맨스를 시인 이은상님에게 털어 놓았는데, 그 얘기를 듣고 이은상님이 시를 써 주셨고, 그 시를 다시 원래 이야기 소유자인 박태준 선생이 곡을 붙여 완성한 거라는 거.... ^-^;;
학창시절, 유난히도 노래, 그 중에서 우리의 가곡을 너무나도 좋아했던 나였지만, 그래서 이 노래를 천 번은 불렀겠지만, 이놈의 '청라'가 뭔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런데 까맣게 까먹고 있다가, 여기서 느닷없이 그 의문이 해결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아, 청라가 푸른 담쟁이란 뜻이고, 백합은 박태준선생님 사모하던 여학생이 시로 승화된 것이구나, 그걸 봄 언덕에 빗대어 이은상님이 시로 만드시고, 그걸 다시 박태준선생이 곡을 만들고... 너무도 기뻤다.... 남들 눈이 있어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맘 속으로 목청껏 다시 불러 본다.
[봄에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필적에.... 느닷없는 박태준선생과의 만남이 너무도 기뻤다...]
선교박물관과 의료박물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언덕 아랫쪽을 나 있는 계단길이 '대구 3.1운동 길'이다. 대구 사람들은 그냥 90계단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길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도심으로 모여들고자 학생들이 통로로 이용했던 '솔밭길'이었다고 한다. 2003년 대구시에서는 이 90 계단길을 '3.1운동길'로 지정하고 관리하고 있는데, 지금도 벽에는 구한말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사진들 아래 씌여 있는 설명들을 하니씩 읽어 보면, 당시의 시대상과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대구 3.1운동 길을 내려가면서 사진과 글을 통해 당시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서상로에 내려와서 뒤돌아 본 '청라언덕'의 모습]
[뒷 이야기는 3편에서 이어가야 하겠네요... 얘기가 자꾸 길어져서... -_-;;]
|
첫댓글 대구는 섬유공업 도시라는 것과 따로 국밥만 있는 줄 알았더니 역사적인 곳들이 많군요.
사모님의 사전 조사 덕분에 여행기가 풍족해 지고, 보는 이들은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신 제일교회의 모습은 유럽의 어느 교회와도 견줄만 하네요. 대구에 가면 꼭 들러 보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구출신 유명인사들이
참으로 많네요
대구관광은 뭐가있나 했으나
많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