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일: 1991년 4월 6일
민초의 '뼈박사' 김일주 옹
제목: "50년 간 병자에게 헌신한 대가는 구속이었지"
요점: 파골·관절염·마비환자 숱하게 나아가
골절된 아이 그 자리에서 뼈 맞춰줘
일제시대 때 일본인 접골사에게 배워
50년 '손맛'이 배인 독보적인 뼈기술
세상에는 약도 많고 의사도 많다지만 막상 병에 걸리고 보면 귀한 게 약이요, 만나기 힘든 게 용한 의사이
다. 요즘같이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병들이 속출하는 세상에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병이 나면 병원에 달
려가고 약국을 찾는 게 우리의 일반적인 습관이다. 그렇지만 병원에 간다 해서 꼭 병을 고쳐 주는 용한 의사가
맞아 주고, 약국에 간다 해서 명약(名藥)을 준비하고 있다 주는 것은 아니다. 이 약 저 약을 먹어 보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가 병을 고치지도 못하고, 가산만 탕진한 채 자포자기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부지기
수로 보아 왔다.
하지만 병이 있으면 분명 어디엔가는 약이 있고, 나름대로 독창적인 치료 원리를 터득하여 사람의 질병을
귀신같이 치료해 주는 의사도 있게 마련이다.
삼천포시에서 시골 냄새가 나는 길을 따라 찾아가 만난 김일주(金鎰注 취재 당시 73세)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김 옹은 스무 살 무렵 터득한 의술의 지혜로 골절과 으스러진 뼈는 물론, 첨단 장비로 중
무장헸다는 양방병원에서조차 두 손들어 버린 관절이 굳어져 오는 병, 디스크, 류머티스 관절염을 귀신같이 고
쳐 내는 명의로 소문이 나 있다. 또 헐벗고 병들어 찾아오는 이웃을 무료로 돌보는 초야의 인술자로도 소문이
나 있다. 그렇지만 소위 의사면허라는 걸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학위 없는 '뼈박사'요, 허가받지 않은 인술
자라고도 할 수 있다.
김 옹의 집에 들어서니 허름한 한 평 남짓의 시골방에 환자들이 가득 넘치고 남루한 차림의 한 촌로(村老)
가 오는 객(客)을 담담히 맞아 주었다. 평생을 그늘에 가려 산 듯한 고뇌에 찬 표정과 남루한 옷차림, 그리고
한 방 가득한 난치성 환자들, 모든 게 맞물려 기이한 생각부터 먼저 들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기이한 생각은 몇 시간 동안 김 옹과의 만남에서 이내 바뀌었다. 줄을 잇는 난치병 환자와 그
들을 치료하는 김 옹의 진지한 모습, 그리고 환자들이 들려주는 치료담은 인술이란 무엇이며 진정한 의술의 지
혜란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었다.
김 옹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대개가 수 년 또는 수십 년 동안 병원을 전전해도 병을 고치지 못하고 병원
에서 두 손 들어 버린 환자, 팔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선언을 받아 불구가 될 지경에 몰린 환자, 돈이 없어 병
원조차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어떤 환자이건 김 옹은 받아들이고, 김 옹의 손을 거친 환자들을 치
료되어 멀쩡히 활동하곤 한다.
이런 사실에 대해 진주에서 온 이순분(취재 당시 51세 여자)씨는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이씨는 허리가 굳
어져 오면서 허리에 두툼하게 혹이 나 십수 년 간 허리를 못 쓰다가 김 옹을 만나 고친 장본인.
"지난 몇 달 간 치료를 받으면서 보았는데, 업혀서 왔건 기어서 왔건 할배한테서 치료를 받으면 끝내는 온
전한 몸으로 서서 걸어 나간다 아닙니꺼. 이렇게 뼈를 잘 보고 고치는 사람은 타고 났지 배워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거라예. 돈 없고 병원에서 낫지 못해 삶의 희망을 포기한 불쌍한 이웃에겐 구세주와 같은 분이라예."
필자도 이미 김 옹의 명성은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터였다. 필자에게 귀띔을 해준 분은 그의 초등학
교 3학년생 아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져 팔이 골절되었는데, 정형외과에 몇 달 간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지만 낫지를 않았다고 한다. 정형외과에서는 X-레이 사진 판독결과 접골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좀더
기다려 보자고만 하였다. 그러나 병은 점점 악화되어 아이는 통증이 심해 밤에도 잠을 못자고 '징징' 우는 상황
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마침 이웃 사람이 김 옹의 이야기를 해줘 치료를 받았는데, 김 옹은 아이의 골절된 팔
을 살살 만져 보더니 아이의 입에 수건으로 재갈을 물리었다. 그리곤 아이의 부모에게 아이가 움직이지 못하도
록 양 쪽에서 꽉 붙잡게 하고, 일순간 아이의 팔을 잡아 틀면서 어긋난 뼈를 맞추었다고 한다. 순간 아이는 자
지러지게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언제 아팠냐는 듯이 팔을 휘둘러 보라고 하자 그 자리에서 팔을 휘두르게 되
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필자가 찾아간 날도 허리와 목 디스크 환자, 뼈 부러진 환자가 줄을 잇고 있었고, 이들은
한결같이 병원을 전전해도 병을 낫지 못하다가 김 옹을 만나 비로소 몸이 나아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모두
들 신기에 가깝다고 말하는 김 옹의 의술실체는 무엇인가. 50대 중년의 허름한 농군을 치료하는 과정을 잠깐
엿 보기로 하자.
"어떻게 아파 왔소?"
"옛날부터 다리가 아팠는데, 며칠 전부터 허리까지 아파서 왔어예."
"그럼 웃통을 걷고 엎져(엎드려) 보소."
다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할 뿐더러, 구부정해 엉금엉금 기다시피 찾아온 50대 농부는 옷을
걷고 방바닥에 엎드렸다. 김 옹은 투박하면서도 거칠은 손으로 일단 엉치뼈를 지압하듯 꾹꾹 눌러 본 다음, 툭
불거져 나온 등뼈를 죽 훑으며 "많이 굳어 있는데" 하고 혼자말을 하였다.
"아저씨 이거 나술려면 8개월은 가것소. 나하고 한번 치료해 볼거요, 병원에 가 볼거요."
비록 투박하고 거친 손이지만, 김 옹은 이내 병의 진단을 마친 듯하다.
"아저씨 등뼈는 모디(마디) 사이에 염증이 꽉 차 굳어졌소. 왼쪽 다리도 이미 팍 곯았소. 뼈 모디 사이에
염증이 고여 다리가 올라 붙었소."
"원래 다리가 아팠지 허리는 요짐 와서 아팠어예."
"등뼈가 굳어져 피가 다리로 가지 못하고 신경이 막혀 있으니, 다리가 저리고 쓰질 못하는 거요. 본인은 느
끼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몇 십 년 전부터 모르는 사이에 허리가 염증으로 굳어지고, 허리 밑 염증이 엉치뼈에
내려 붙었소. 이젠 도가 지나쳐 염증이 허리 위로 점점 올라 붙고 있소. 지금꺼진 다리만 아팠지만, 이젠 허리
가 아파 올 거요. 그대로 놔뒀다간 만성되어 점점 위로 굳어져 목도 굳고 머리도 아파 오요."
김 옹은 툭 불거져 나온 등뼈를 한 5분여 간 꾹꾹 열심히 눌러 풀어주면서 뼈를 점차 제자리에 맞춰 주었
다. 그리고는 안티프라민을 넓게 바르고, 그 위에 백지를 붙였다. 그런 다음 판지를 다시 대고, 마지막으로 반창
고를 붙여주었다. 등에서의 치료가 끝나자 이번엔 옆으로 눕게 하여 양쪽 다리 길이를 대어 보았다. 놀랍게도
왼쪽 다리가 약 10cm 정도 짧았다.
"아저씨 쪼매 아프더래도 참으소."
그렇게 말하곤 왼발을 구부려 무릎이 배쪽으로 닿도록 몇 번 힘껏 올려 붙였다. 그럴 때마다 엉치뼈에서
우두둑 우두둑 소리가 나며 환자는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이내 김 옹은 발바닥을 짚어 보며 이제 신경이
조금 통한다고 말하였다. 양쪽 발을 대어 보니 신기하게도 왼발의 짧은 길이의 정도 차이가 5~6센티쯤 될까,
확실히 줄어들어 있었다. 엉치뼈 부위에도 안티프라민을 넓게 바르고, 그 위에 종이를 붙여주었다. 그리고는 혈
액순환에 좋은 한방 처방을 써 주었다.
"매일 와야 하나예?"
환자는 좀 전의 고통은 이내 잊고 김 옹의 치료에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열흘만에 한 번씩만 오소. 농사도 바쁘고, 쉬면 손해니 치료하며 일해도 돼요. 이제 한 달만 지나면 달라
질 거요. 염증이 등뼈 모디 사이를 꽉 막고 굳어 있으니 신경이 통하지 않는 거요. 또 피가 펌프질돼 밑으로 쫙
내려갔다가 쳐 올라오지 못하니 마비가 오고 병이 올 수밖에 없는 거요. 이제 계속 치료 받으면 염증 덩어리가
풀어져 등뼈를 타고 밑으로 내려오는데, 염증이 모디 사이에 들어올 때마다 굉장히 아플 거요. 그때만 주의하면
돼요. 그간은 다리만 아팠겠지만 이젠 전신이 아파 올 거고만. 아픈 곳은 이상이 있는 곳이요. 병이 나술려면
(나으려면) 참는 게 문젠데, 참아야 나술 수 있소. 염증이 일단 모디를 넘어서면 괜찮다가, 또 그 밑 모디 사이
에 걸리면 굉장히 아프요. 나중엔 발바닥이 털보숭이마냥 부풀어오르는데, 그 염증이 삭아져 내리면 몸이 괜찮
아질 거요. 술·닭고기·돼지고기는 삼가해요."
김 옹의 치료원리는 아주 간단하다고도 할 수 있다. 살살 주무르고, 문지르고, 어긋난 것은 바로잡아 주고,
굳은 건 풀어주고, 막힌 건 통하게 하고, 으스러진 뼈는 제자리를 찾아줘 뼈에서 스스로 진이 나서 붙게 하는
것이다.
이런 김 옹의 치료법은, 병이 났다 하면 갖가지 기계를 동원하고 이리저리 해부하고 검사다 뭐다 해서 한
바탕 소란을 치러야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필자에게는 너무도 '간단'하게 보이기만 하였다. 그리고 저렇게
하고도 그 많은 난치병들을 고쳤다는 말들이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였다. 그러나 인체의 골격에 대
해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김 옹의 치료법이야말로 간단하면서도 부작용 없이 인체를 온전하게 만들어줄 수 있
는 치료법이란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인체는 뼈가 어긋나거나 파골이 되면 혈행장애가 일어나 관절이나 파골 언저리에 있는 경혈에 압박이 가해
져 심한 통증을 받는다. 인체의 뼈가 어긋나게 되는 것은 일시적으로 관절에 심한 충격이 가해짐으로써 생기는
경우와, 그렇지 않고 만성적으로 관절에 어혈과 염증이 쌓임으로써 생기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뼈를 바로잡아 주고 뼈마디에 쌓인 어혈과 염증을 풀어 주는 것이 치료의 근본이라 하겠다. 또 뼈는 스스로 진
액을 내어 붙는 성질이 있으니, 부스러진 뼈조각을 제자리에 모아주는 것이 파골 치료의 근본이라 하겠다.
이런 치료의 근본원리는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아니라 하겠다. 문제는 어긋나고 부러진 뼈를 맞추는
기술이다. 김 옹의 치료방법이 외관상 단순하게 보이지만, 그의 손에 의해 각종 난치병이 고쳐지는 건 그 속에
50년 동안 쌓아온 '뼈박사'의 기술이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의 손은 비록 투박하지만, 어느 기계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인체의 뼈를 정교하게 감지할 수 있는 '맛'이 배어 있다고 하겠다.
한편 이렇게 환자를 봐 주고 김 옹이 받는 대가는 온 이들이 담뱃값이나 하라고 놓고 가는 몇 푼. 이것도
김 옹은 극구 사양하는 게 예사였다. 이렇게 의술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김 옹의 지론을 어릴 적 시집와 그와
고락을 같이 해오고 있는 배양순(취재 당시 68세)씨는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그 전엔 동네사람에게 부러진 뼈 고쳐 주고 술 한 잔 먹는 게 고작이었지 돈 받는 것 생각도 안 했소. 동
네사람끼리 서로 돕고 산다 생각했지예. 그리고 할배가 근본적으로 환자에게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아요. '돈을 생
각했다면 젊었을 때부터 가마니로 벌어 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때도 돈 생각을 안 했는데, 더구나 이제 늘그
막에 돈을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무슨 돈 욕심을 내냐'고 내가 때로 돈 타령을 하면 그렇게 말해요. 돈을 밝
히면 이 짓도 오래 못 하고, 뼈 부러지고 썩어가 빙신(병신) 돼가는 사람 봐 주는 것조차도 못 한다고 막아요.
그저 아프고 병들어 찾아오는 이웃을 고쳐주고 서로 돕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기라."
지금도 김 옹은 10년 전에 80만원에 주고 얻은 허름한 전셋집에서 살 뿐, 평생 대가를 바라는 것 없이 동
네나 주위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환자를 봐주고 있다고 한다. 김 옹의 가난에 찌든 모습엔, 어느 한 구석
고량진미로 호의호식하며 살아온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개를 잡아 매다가 개줄에 걸려 팔목이 부러졌다는 이동복(취재 당시 84세) 할아버지는 자기 같은 사람에겐
특히 돈을 줘도 받지 않는다며, "할배가 이 세상에서 좋은 일 많이 하려고 천심(天心)을 타고났다"고 고마워 했
다.
이런 김 옹이지만 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경찰에 불려가기도 하고, 환자를 피해 피난 아닌 피난 생활을 하
기도 했다.
"십 년 전 함양에서 경운기 타고 가다 뛰어내려 다리가 바스러진 청년이 있었어요. 이 사람이 병원에 가도
못 고치고 결국엔 할배를 찾아 왔는기라. 병원에선 썩어 오니 끊어 내자 하는 다리를 아홉 달 만에 고쳐 줬는
데, 이 사람이 일곱 달 동안 일 못한 돈 받아 내려고 경운기 가해자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경찰에
낸 기라. 그런데 경찰에선 병원에서도 못 고친 다리를 어떻게 귀신같이 고쳤느냐고 물으니, 무슨 문제가 되겠나
싶어 돈 만 원 주고 할배한테 고쳤다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버린기라. 그게 문제가 되어 경찰에서 잡으러 왔
어, 일단 경찰에선 사람 고친 것은 중요하게 생각치 않고 왜 면허 없는데 환자 몸에 손을 댔느냐고 잡아 가두
어 버려. 아, 이러니 할배가 '나 억울해서 못살겠다. 병원에서 수백 만원 주고도 못 고치고 끊어 낼 다리, 처자
식 딸린 젊은 사람 그저 불쌍해 고쳐 준 죄뿐인데. 내가 돈 많이 받아 먹었나. 나 억울하다'고 며칠 간 경찰 유
치장에서 하소연 하더니 숨이 차 기절한기라. 그대로 적십자병원에 실려가 산소 호흡시켜 회생하고, 집행유예 2
년으로 진주 재판소에서 재판 받고 풀려 났지."
김 옹의 처 배양순 씨는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며 이번에도 책에 내서 괜히 잡혀가지 않을까 걱정부터 하
였다.
"그 뒤 집에 들어앉았는데 그래도 환자들이 줄을 서요. 할배 없다고 해도 삼십 분이건 한 시간이건 기다리
겠다고, 마루고 어디고 죽치고 앉아 할배 찾아오라고 해요. 자기만 살짝 고쳐 주라고, 절대 말썽나지 않게 할
테니 자기만 살려 달라고 매달려 하소연해요. 할배는 그때 몸이 쇠약해져 기침이 심하였는데, 기침 소리도 낼
수 없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골방에 숨어 있었어요. 그래도 저 사람들 다리 끊어 내고 빙신 될텐데 우찌 할 거
냐고 걱정해요. 늙은 사람은 그래도 괜찮은데, 젊은 사람 빙신 만들어 우찌 하냐고 걱정해요. 논에서 일하면 논
에 쫓아 들어와 신발 벗은 채 도망치고, 산에 나무하러 가면 우찌 그리 알아냈는지 산에까지 쫓아오고. 어느 땐
밤에 쫓아 들어오고. 그렇게 지내니 아들이 '아부지 환자가 저렇게 찾아와 성화인데 안 봐 줄 수도 없고, 그렇
다고 봐 주면 또 경찰서에서 잡으러 올테니 일단 조용해질 때까지 부산 형님 집에 가 계시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요. 그 길로 그 많은 환자 뿌리치고 논 팔고 소까지 팔아 고향을 떠나 부산에 가는 길에 삼천포에 사는 딸
네집이라도 들렸다 가자고 한 게 십년 째 눌러앉게 된 기라. 그간 할배는 개 키우고, 나는 쥐포공장 다니며 겨
우 연명했지. 아무도 모르게 7년 간 들어앉아 개만 키우니 개집 할아버지로 통했는 기라. 삼천포에 와서 깊숙
이 숨어 살면서 누가 알아보고 또 찾아올까 길갓집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고."
그러나 병을 고치고자 하는 환자들의 소망은 어쩔 수 없는 것. 병든 사람이야 자신의 병을 고쳐 준 사람이
생명의 은인이고 명의이지, 면허나 박사학위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약 3년 전에 고향 함양에 사는 마흔 살을 먹은 사람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 왔어요. 삼천포에 있다는 막
연한 소문을 듣고, 자기 병은 할배 만나야 죽든지 살든지 판가름 난다며 몇 달을 삼천포를 샅샅이 뒤졌다는기
라. 자기는 병원에 수십 군데 다니고 돈도 많이 버렸으나 결국엔 낫지 못하고, 이젠 할배가 고쳐주지 않으면 자
기 병 고쳐 줄 사람도 없고 그래요. 그러면서 처자식 꼼짝없이 굶겨 죽이게 생겼으니 죽어도 봐 줄 때까지는
가지 않겠다고 마루에 주저앉아 꿈쩍도 않는기라. 이제는 환자를 봐 줄 수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인기라."
그래서 젊은 사람에게 적선하는 셈치고 진단을 해보니 등뼈가 어긋나 모세혈관이 터져 허리를 못 쓰는 병
이었단다.
"그때 뼈를 맞춰 주고 혈관을 통하게 해 한 달도 못 가서 고쳐 줬지."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 지나자 남해 사는 임종수란 사람이 교통사고로 목 척추를 다쳐 찾아왔단다. 이 환
자는 진주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예전에 김 옹에게 뼈를 고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것이다.
"한두 달 치료해 주었는데 하루는 이 사람이 다 나았다고 인사하러 왔어요. 그러곤 '할배, 남해 고향에 가
면 친척들이 허리 아프고 목 아픈 사람 천지인데 내 보내 주고마. 아픈 사람 오거든 아무도 모르게 살짝 치료
해 주소.' 그러고 가더니 아니나 다를까 남해 사람이 봉고차로 무더기 져서 찾아왔어. 할배도 나이 먹어 힘들어
이제 안 하려 해요. 그래도 급해서 찾아오는 사람 그냥 보내지 못하고 다시 봐 준 게 이제 2년이 넘어 버렸소.
삼천포에 숨어 사는데, 이 두 사람이 소문을 내 이제 또 사방에서 환자들이 몰려 와요. 병원에 가서 수백만 원
에서 수천만 원 주고 못 고치는 병, 또 몇 년을 가도 못 고쳐 잘라내 빙신되는 걸 말짱하게 고쳐 내니 사람들
이 성화를 부릴 수밖예요."
김 옹의 아내 배양순 씨는 병을 고쳐 보겠다는 사람들의 뜻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나이 많은 사람은 병을 앓다가 죽으면 되지만, 젊은 사람은 청춘이 아깝다 그거라. 그러니 내 맘으론 그래.
내가 경찰서에 붙들려 갈망정 젊은 사람이 빙신되는 건 고쳐 줘야 된다는 생각이야. 젊은 사람이 빙신되면 그
건 큰 일이라. 그걸 몰라주니 답답한 기라."
김 옹은 환자의 사정은 몰라주고, 자신의 의술을 막는 세태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였다.
"면허 없어서 힘든 게 많아요. 경찰서에서 오랄까 겁도 나고, 만약 허가 없는데 빙신 만들어 봐요. 당장 말
썽이 나서 잡혀가지. 병원에서 못 고친 사람, 빙신 될 사람 고쳐 내주니 말썽이 없지."
배양순 씨는 면허 낸 사람은 사람 못 고쳐도 되지만, 면허 없는 사람은 사람 살려 내도 죄가 되는 세상이
라며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외국에선 병만 고치면 된다는데 왜 우리 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면허를 따지는지 모르겠다고 탄식을 하였다.
이런 사정을 듣고 있던 진주에서 온 김희중(취재 당시 54세 남자)씨는 "병신 되고 돈 없는 이웃을 위해 병
을 고쳐주는 분에게 상을 줘도 시원치 않은데, 왜 잡아가고 못 하게 막으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누가 이런 의
사를 병을 못 고치게 하고 잡아간다면 모든 사람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젊었을 때 군대에서 허
리를 다친 뒤 오른쪽 반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조차 없이 반신불수가 되었다가 김 옹을 만나 완치되어 청춘
을 다시 되찾은 기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 옹은 면허를 내는 것에 대해서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일제 땐 기술이 있으면 선생님 하며 쫓아다니며 치료를 받고 대우를 해 주었어. 면허라곤 전혀 신경 안
써도 됐지. 광복 후에도 면허 내 보았자 번듯하게 병원 차려 놓고, 결국엔 환자 돈만 더 울궈내는 짓만 하게 되
지 무엇이냐 싶어 면허를 안 냈지. 우리 성미에 면허 내고, 돈 벌고 하는 것 하곤 취미가 안 맞아. 그저 아파서
집에 찾아오는 사람, 이웃 사람 치료해 주고 서로 돕고 살면 그만이지."
일제말기에 허벅다리가 으스러진 함양 경찰서장 어머니를 몇 달 만에 낫게 해주었는데, 경찰서장이 놀라면
서 이런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다며 20원만 주면 허가를 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당시 20원
은 큰 돈일 뿐 아니라 자기는 환자를 보고 돈도 안 받는데, 허가 내려고 돈을 갖다 주면 나중에 환자에게 돈을
받아 내야 하니 그게 맘에 안들어 거절했다고 한다.
김 옹이 접골을 배운 것은 17살 무렵. 당시 산판 관리하던 일본인 야마구치라는 사람 밑에 들어가 배웠다
고 한다.
"당시에 고령 임씨, 함양 우루묵 김씨, 산청 김씨 등 일곱명이 배웠는데 모두 죽고 나만 남았지. 그 사람들도
모두 뼈 보는 덴 귀신이었소. 내가 나이가 가장 어렸지."
김 옹이 접골을 배우게 된 것은 우연히 일어난 하나의 커다란 사건 때문이었다. 김 옹의 고향은 함양이다.
17살 먹던 해에 돈을 벌 목적으로 월급을 많이 주는 벌목하는 산판일을 하러 산청으로 갔단다. 하루는 아름드
리 나무를 자르던 중 나무가 쓰러지면서 발등이 찍혀 발등 뼈가 으스러지고, 왼쪽 발등이 완전히 절반으로 접
혀졌다고 한다. 이걸 산판을 관리하던 일본인 야마구치라는 사람이 약 7개월 동안 치료하여 말짱히 고쳐주었다
고 한다. 김 옹은 양말을 벗고 그때 상처를 보여 주었는데, 흉터가 발등 전체에 깊숙이 남아 있었다.
"그때 앉은뱅이 신세가 되어 그 집에서 기거하며 찾아오는 사람 뼈 고치는 걸 어깨 너머로 배웠지. 상처가
나아가니 가만 앉아 있음서 일을 거들어 주었는데, 나중엔 접골하는 것 배워 보라고 그래. 환자가 오면 선생은
일일이 뼈를 손으로 만져주며 또 사람 형상 그려 가며 뼈의 생김새, 그 원리, 뼈의 역할, 뼈가 어떻게 움직이고
병이 왜 생기는지, 또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해 줘. 2년 배워도 잘 모르겠더군. 그래서 조선인은
머리가 돌이라고 야단도 많이 맞았어. 볼따구도 많이 두드려 맞고. 치료할 적에 일본말을 많이 쓰는데, 말이 안
통해 설움도 많이 받았지. 그걸 다 배우느라 머리 아프고 골병도 많이 들었고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 고집이 있
어 끝까지 배웠지, 못할 짓이 그 일이었고만. 사람 속의 뼈를 훤히 꿸 정도로 혹독하게 교육 받았어. 한 3년 지
나니 어느 정도 치료하는 데 자신이 붙고 눈이 떠졌고만. 그러니 일본 사람이 잘한다고 칭찬도 해줘."
그 뒤로는 김 옹이 치료해 준 환자는 부지기수다. 뼈가 부러진 사람은 예사이고, 산에서 나무하다 굴러 내
려 온 바위에 치여 허벅지 뼈가 으스러진 사람, 교통사고 당해 다리를 잘라 낼 지경에 이른 사람, 집 고치다 무
너져 내린 지붕에 깔려 다리가 탈골 된 사람, 허리 못쓰는 사람, 전신이 굳고 신경 마비가 온 사람, 디스크에
걸린 사람,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사람, 신경통이 심한 사람, 중풍에 걸려 아들에게 업혀 다니는 할머니 등.
이 중에서 부산에 사는 이철환(취재 당시30세 남자) 씨는 김 옹의 의술이 너무 신기한 나머지 후계자가
되어 김 옹의 의술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중학교 때 공을 차다 허리를 다쳐 병원이란 병원은 다 전전하
다 결국은 고치지 못하고 10여 년을 폐인이 되다시피 살아 왔다고 한다. 그러다 김 옹에게 치료 받고 1년 만
에 완전히 나았다고 한다.
"예전엔 뼈가 부러진 사람이 많이 찾아왔는데, 요샌 급작스레 류머티스 관절염·디스크·신경마비 환자들
이 많이 찾아와. 이런 병은 아마 음식 탓으로 오지 않나 싶지. 요새 농약 안 친 농산물이 어디 있나. 하다못해
나무새 하나도 농약 치는 세상이고, 공해 중금속 오염이 심한 세상이니……. 독약이 뼈 사이에 끼니, 모디(마디)
마다에 염증이 쌓여 굳어져 가고, 그러니 뼈를 타고 흐르는 신경이 막히고, 혈액도 제대로 펌프질하여 말초까지
보내거나 다시 거두어 들이지 못하니 이상이 올 수 밖에. 인체의 뼈구조는 까치집이라. 허리에서 한 가닥씩 사
방으로 뻗어 나가고, 그게 또 마디마디에서 두세 가닥씩을 번져 나가고, 신경도 뼈를 타고 퍼져 나가. 그러니
인체의 기둥인 허리가 아프면 전신이 병들어 오고 굳어 오지."
김 옹의 의술이 널리 알려지자 10여 년 전에 남원의 모 병원에서는 병원에 와서 치료를 같이 하자고 제의
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돈 벌려는 욕심도 없고, 나이 많은 처지에 기술은 있으나 면허 없다는 이유로 지혜가
부족한 사람 밑에 들어가 일할 수는 없는 일이라 거절했단다.
최근에는 부산의 한 물리치료 박사가 김 옹을 찾아와 배워가기도 했다고 배양순 씨는 들려준다.
"부산의 한 의사가 작년 겨울에 자기 병원에서 못 고치고 포기한 환자들이 귀신같이 나았길래, 어데 가서
고쳤냐고 물었다는 거야. 환자들이 삼천포 아무개한테 가서 나았다고 말해주길래 소문을 듣고 배우려고 찾아왔
다는 거야. 한 이틀 집에 묵으며 할배가 뼈를 맞춰 대는 걸 유심히 관찰하대요. 그러더니 할배처럼 귀신같이 뼈
를 맞춰대고 할려면 자기는 죽어도 못 하겠다고 해요. 세상에 허리만 잘 봐도 돈 천지로 식구들과 평생 먹고
산다며, 허리 고치는 것만 배워 갔어요."
허리만 하나 제대로 고쳐도 벼락부자가 되는 세상. 그렇지만 김 옹은 허리뿐만 아니라 전신의 뼈를 고쳐주
고도 치부를 꾀한 구석이라고는 어디 한 군데도 없다. 조그만 기술이라도 이용해 일신의 편안함을 꾀하는 이
세상에 그의 우직한 심성(心性)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한편 김 옹은 병원 치료에 대해 불신이 대단하다. 특히 뼈를 수술하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
"병원은 뼈의 원리에 대해 모르요. 뼈가 으스러지면 제자리를 찾아 주지 않고 기부스(깁스)부터 해요. 그렇
게 뼈가 한 덤뱅이(덩어리)로 굳으니 다리가 오그러지지도 못하고 뻗정다리가 돼요. 무릎뼈도 엉뚱한 데 붙고,
복숭아뼈도 엉뚱한 데 붙어요. 그러니 제대로 작동이 안 되지. 굳은 건 아무리 해도 나술 수 없소. 그렇지 않으
면 수술하자고 달려들어요. 수술해서 뼈에 구멍을 뚫고, 철사로 보듬질해 놓고, 거기에서 염증이 생기면 또 수
술해서 이중삼중으로 골병들이고, 그러다 보면 팔다리 잘라내 병신 되는 일도 있어요. 이골 난 것은 제자리에
맞춰 주고, 파골된 것은 살살 주물러 제 선에만 놔 주면 진이 나 간단히 낫는 게 뼈요. 그걸 가지고 몇 달이고
병원에 잡아두고, 수술해대고 하니 사람이 골병들 수 밖에요. 수술을 해대면 신경이 끊어지고, 신경이 끊어지면
염증이 밑으로 쓸려 내려가지 못하고 막혀 있으니, 잘못하면 뼈가 아물지 못하고 썩어 오는고만. 그러니 병원이
뼈를 제대로 모른다고 할 수 밖에. 뼈라는 건 살살 주물러 제 선에만 맞춰 주면 진이 나서 서로 붙어 낫는 것
이지, 수술이나 약으로 붙이는 게 아니고만."
이렇게 뼈의 치료 원리에 대해 설명을 마친 김 옹은, 이제 자신은 서산에 걸친 해라고 씁쓸히 웃음을 짓는
다.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돈도 필요 없으니 병들어 가는 이웃을 맘 놓고 치료해보는 것이라는 김 옹의 말을
뒤로 하며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