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와 '금새'라! '둘 가운데 하나는 틀린 말'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은 <우리말 서당>에 처음 오시는 분들이 분명할 게다. 보기글을 보자.
* 회초리로 맞은 자리가 금세 발갛게 부풀어 올랐다.
* 밥 한 그릇을 금세 다 비웠다.
웬만한 사람들은 '금세'를 '금새'로 써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글쎄 '금세'가 맞는 말이다. 무슨 뜻이냐고? 모두 다 알 듯이 '지금 바로'라는 뜻이다.
그러면 '금새'는? '금새'는 이런 시간적 개념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다. 말뜻이 '물건의 값. 또는 물건 값의 비싸고 싼 정도'이므로... 많이 쓰이는 비슷한 말로는 '시세(時勢)'나 '금'이 있다. 이때 '금'은 바로 '금을 놓다, 금이 비싸다, 금을 매기다'에 나온 '금'이다. '금새'는 이 '금'에 일종의 접미사 구실을 하는 '-새'가 덧붙은 것으로 보면 된다. 이 '-새'는 '모양새, 생김새, 품새'에 나온 새와 비슷하다.
그러면 왜 '금세'가 '지금 바로'라는 뜻이냐고? 어렵게 말하자면, 그렇게 쓰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금시(今時)에'가 줄어든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보자. '금새=금+새', '금세=금시+에'.
이렇게 꼴을 따져 보니 헷갈릴 것도 없겠다. 다음 보기글에 나온 '금새/금세'가 맞는지 보자.
* 올 가을 배추 금새를 보니 김장도 줄여야 하겠소.
* 재동은 금세 돈을 모두 잃고는 천장만 쳐다봤다.
하나 더!+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두 팀이 3대 3으로 비긴 뒤 마지막 7차전이 남았다면 대개의 신문들은 이렇게 제목을 뽑을 것이다.
* 한국시리즈 최종전/ OO - XX 진검승부
이때 '진검승부'는, 그야말로 '한판 붙는다'거나 '열심히 싸운다'는 뜻으로 쓴 말. 그러나, '진검승부'는커녕 '진검'도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말이 아닌 것이다. 왜 우리말이 아닌지, 왜 쓰지 말아야 하는지 알아 보자.
벌써 짐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역시 까닭은, '진검'이나 '진검승부'가 일본말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眞劍(신켄)'이라는 말을 '진짜 칼'이라는 뜻으로 쓴다. '목검'이나 '목도', '죽도'에 대해 상대개념으로 쓴 것. 사무라이의 나라답게 도검(刀劍)에 관한 한 분류도 세밀하고 말 자체도 많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구분이 그리 필요 없었다. 무기로써 칼을 보거나 만질 기회가 일본보다야 훨씬 드물었으니 가짜냐 아니냐를 따질 필요가 없이 그냥 '칼'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이런 일본에서 진짜 칼을 들고 하는 싸움인 '신켄쇼부(眞劍勝負)'는 '목숨을 건 진지한 승부'를 말한다(물론 '진짜 칼로 하는 검도 경기'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이 신켄쇼부의 결과는, '이기느냐 지느냐'이기도 하지만 그건 또한 '사느냐 죽느냐'였던 것이다. '열심히 싸운다'거나 '치열하게 싸운다'는 표현치고는 정말 일본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살벌하지 않은가?
이런 살벌한 '신켄쇼부'라는 일본말의 한자 표기 '진검승부'를 아무런 비판 없이 가져와 쓰고 있는 것이 우리 신문들이다. 조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운동 경기마다 '진검승부'라고 붙이고 있으니, 지는 쪽은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 한국 언론의 생각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신문들, 대단하다!
'마지막 한판'이나 '한판 대결', '외나무 대결'이나 '한판 승부'같이 찾아보면 갈아 쓸 말이 널렸으니 대체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늘 그렇듯 마음만 먹으면 이미 새 세상은 열려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