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흥산 산행기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장암면
https://blog.naver.com/jydecor/220672919762
● 산행개요....2014년 07월 25(금)...13:55(부여군 임천면 면사무소 주차장)→14:00(산행시작)→14:04(목은 이색선생 영당)→14:12(대조사 갈림길)→14:16(대조사, 휴식 13분)→14:40(성흥사 갈림길)→14:43(성흥산성 주차장)→14:50(성흥산성)→15:01(성흥산)→15:13(성흥산성 주차장)→15:28(임천면 면사무소 주차장)
<임천면으로 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소나무 숲>
<임천면 면사무소와 성흥산>
<목은 이색선생 영당>
● 성흥산이란...성흥산(260.1m)은 충남 부여군 임천면과 부여군 장암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모산은 원진지맥 상의 198.3m봉이다. 놋점이고개 부근에서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로 이어지는 원진지맥이 198.3m봉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는데, 이 중에서 동남쪽으로 가지를 친 산줄기가 한고개를 지나면서 빚어 올린 봉우리가 성흥산이다. 성흥산을 일군 산줄기는 임천면 칠산리에서 그 맥을 금강에 넘겨주고 있다.
<목은 이색선생 영당>
<대조사로 이어지는 도로>
<대조사 미륵보살입상과 명부전>
<범종루>
<원통보전과 석탑 및 석조미륵보살입상>
● 산행안내...성흥산은 임천면 군사리와 구교리 및 장암면 지토리 등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가 있다. 답사자는 임천면 군사리의 임천면 면사무소에서 대조사를 거쳐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임천면 면사무소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해 답사를 하였다. 이 코스는 성흥산성 주차장까지는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어 산책하듯이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면사무소에 도착하면 면사무소 입구에 도로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는 우측 도로를 따라 올라가도록 한다. 도로 입구에 부여 가림성 솔바람길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을 지나 올라가면 목은 이색선생 영당이 나오고, 영당을 지나 올라가면 팻말(대조사 0.3km, 임천면사무소 0.7km, 각시바위 50m, 성흥산성 1.1km)이 있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여기서 우측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대조사가 나온다. 대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전설에 의하면 한 노승이 큰 바위 밑에서 수도를 하던 중에 관음조 한 마리가 바위 위에 앉는 것을 보고는 깜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느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해 있어 절 이름을 대조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용화보전과 석조미륵보살입상>
<용화보전>
<석조미륵보살입상>
<부여읍지>에는 이 절이 인도에서 범본 율장을 가지고 돌아와 백제 불교의 방향을 달리한 겸익이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사적기를 참작하여 기록한 현판에는 527년에 담혜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창건주에 관한 설은 다소 다르지만 대조사가 6세기 초에 창건된 것만은 확실하다고 한다. 6세기 초에 창건한 대조사는 고려 원종 때 진전장로가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보전과 용화보전 및 명부전과 산신각, 범종각과 요사채 등이 있으며, 원통보전 뒤에는 보물 제217호로 지정된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크기에 비해 세부 묘사가 부족하며 조각 기법이 세련되지 않는 점이 관촉사의 미륵보살상과 흡사하다.
충남지방에 이런 거대한 석불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은 이 지방에서 유행한 미륵신앙 때문이라고 한다. 아울러 원통보전 앞에는 충남 문화재자료 제90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삼층석탑은 석불과 같이 고려 초기에 만든 것으로, 이전에는 옥개석만 있었으나 1975년에 옥신이 발견되어 복원하였다. 이 석탑은 이 지방에 있는 다른 석탑과는 달리 통일신라 이후에 유행한 3층 석탑의 전통을 잇고 있다 한다.
<석조미륵보살입상>
<석탑과 범종루>
<석탑과 원통보전 및 용화보전>
대조사에서는 갈림길로 되돌아간 다음, 우측 도로를 따라 올라가도록 한다. 올라가면 성흥사 갈림길이 나온다. 이 갈림길을 지나 올라가면 팻말(성흥산성 0.27km, 대조사 0.9km, 산림욕장 0.5km)이 있는 성흥산성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는 우측에 보이는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도록 한다. 올라가면 성흥산성과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가 나온다.
성벽 길을 따라 우측으로 올라가면 팻말(솔바람길 0.4km, 성곽길)이 있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사적 제4호로 지정된 성흥산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 위해 만든 성으로, 둘레가 800m인 토석혼축산성이다. 성벽의 겉면은 석축으로 만들었고 안쪽은 호를 파서 흙으로 쌓아 만들었다. 남, 서, 북문지와 군창지, 우물터 세 군데 및 토축보루의 방어 시설을 갖추고 있다.
원래는 가림성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한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는 동성왕 23년(501년)에 위사좌평 백가를 시켜 가림성을 쌓고는 이를 지키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성을 축성한 백가는 동성왕이 자기를 이곳에 보낸 것에 불만을 품고는 난을 일으켜 동성왕을 살해하였다. 하지만 무령왕이 즉위하면서 난은 진압되었고, 백가는 참형을 당해 백마강에 던져졌다고 한다.
<대조사 주차장과 성흥산 능선>
<원통보전>
<명부전>
<대조사에서 성흥산성으로 이어지는 도로>
<성흥산과 성흥산성>
아울러 가림성은 백제시대에 쌓은 성곽 중에서는 유일하게 성을 쌓은 연대와 당시의 지명이 남아 있는 곳이라 한다. 팻말이 있는 갈림길에서는 성벽을 따라 걷다가 성 뒤쪽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도 되고, 이곳에서 좌측 오르막길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가도 된다. 좌측 오르막길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가면 향토유적 제8호인 유태사지묘가 나온다.
유태사지묘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유금필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유금필 장군은 황해도 평주 사람으로 923년에 마군장군이 되어 골암진에 침입한 북번을 평정하였으며,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운 분이다. 사당은 유금필 장군이 후백제를 섬멸하고 난 후, 이곳 임천에 머물렀을 때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이곳 백성들이 세운 것이다.
당시 이곳에는 패잔병들의 노략질이 심하였고 전염병과 흉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하였는데, 장군은 군량을 나누어 주고는 둔전을 운영하여 민심을 수습하였다 한다. 해서 이를 감사하게 여긴 백성들이 이곳에 사당을 세운 것이다. 941년에 장군이 죽자 태조가 충절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성종이 <태사유공지묘>라는 어필 현판을 내렸다 한다.
성흥산 정상은 이곳에서 잠시 더 올라가면 정자를 지나 나온다. 정상에서는 한고개 방향으로 하산을 해도 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간 다음, 도로를 따라 내려가도 된다. 답사자는 반바지를 입고 올라간 탓에 잡초가 많은 성벽 길을 포기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간 다음, 그곳에서 도로를 따라 면사무소로 하산을 하였다.
<성흥산>
<원진지맥>
<성흥산>
<금남정맥과 금강 방향>
<대흥산 방향>
<성흥산성과 느티나무>
<성흥산성>
<임천 성흥산성 느티나무>
<계룡산과 금남정맥>
<대둔산과 금남정맥>
<성흥산성>
<임천 성흥산성 느티나무>
<성흥산성>
<유금필 장군 사당>
<유금필 장군 유적지>
<정상부의 정자>
<성흥산 정상>
<논산시와 금남정맥>
<성흥산>
'성흥산'지도크게보기 | 길찾기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출처] 성흥산...충남 부여군 임천면, 장암면|작성자 산지기
Ref.http://blog.daum.net/cozygarden/11774704
첫댓글 충남 부여군 [지도]가 잘 요약 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