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 작성자 이주령
(To kill a mockingbird)
이 소설은 1960년에 출간되었다.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 하퍼 리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앵무새 죽이기는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1930년대 경제 대 공황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나 같은 주에서 변호사, 잡지 편집자, 주의회 의원을 지냈던 사람으로 작가의 성장에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소설속에서 주인공 스카웃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애티커스 핀치는 지역사회에서 정의로운 사람으로 존경받고 자녀들에게도 따뜻하고 훌륭한 아버지로 그려진다. 이웃들에게서는 “큰 길에 있을 때나 법정에 있을 때나 늘 한결 같은“ 사람으로, 자녀들에게는 “함께 놀아 주고,책을 읽어 주며, 언제나 예의를 갖추고 공평하게 대해 주는“ 아버지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애티커스는 변호사로 주의회 의원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두 자녀, 젬과 스카웃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다정하고 따뜻하게 아이들을 대한다. 매일 저녁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어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아이들의 질문에 정직하고 성의있게 그리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준다.
스카웃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담임 선생님과 같은 반 아이들과의 갈등을 겪으며 더이상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으니 학교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아버지에게 조르자 애티커스는
“스카웃, 네가 간단한 요령 한가지만 배운다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거야.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거야. 말하자면 그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거야” 라고 조언한다.
젬의 지적대로 ‘몸 속에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으로 취급받는‘ 것이 남부 사회의 현실이었다. 이웰 집안 사람들처럼 ‘내세울 것이라고는 오직 흰 피부 밖에 없는 백인’들에게 흑인은 자신의 울분과 분노를 터뜨리는 희생양에 지나지 않았다.
이웰 가족은 쓰레기장 주변에 기거하면서 국가에서 주는 생활 기금을 받아 연명하지만 그나마도 아버지 밥 이웰이 술을 마시는데 다 써버린다. 밥 이웰의 큰 딸 메이옐라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흑인 청년 톰 로빈슨을 유혹하려 하지만 톰은 이를 거부한다.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된 밥 이웰은 딸을 폭행하고 톰은 그자리에서 도망친다. 밥 이웰의 강요로 메이옐라는 톰을 강간 및 폭행혐의로 고발한다.
정의로운 백인들 중 하나인 테일러 판사의 요청으로 애티커스는 이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된다. 마을의 백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애티커스를 강하게 비난하고 ‘깜둥이 애인’이라고욕설을 퍼붓는다. 이로 인해 스카웃과 젬은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는다. 이성을 잃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싸움을 하거나 이웃의 꽃밭을 망가뜨리는 행동을 하게 된다. 애티커스는 주변의 비난과 욕설을 참아내기 힘들어 하는 스카웃에게
”이제 여름이 오면 너는 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에 대해 이성을 지켜야 할거야… 너랑 젬에게 부당하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할 때가 있어. “ “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 말이다. 아주 중요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있는 문제야. 스카웃,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라고 말한다.
이에 스카웃은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라고 반박한다.
애티커스는 말한다.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돼.“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네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일상생활에서 매일 백인들이 흑인을 속이는 걸 보게 될거다. 하지만 너에게 말해주고 싶은게 있다. 이 말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흑인을 속이는 백인은 그 백인이 누구이건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건 아무리 명문 출신이건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애티커스는 재판 과정에서 원고인 밥 이웰의 거짓을 낱낱이 밝혔고 법정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원고가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전원일치로 흑인 톰 로빈슨에게 유죄를 결정했고 이를 본 소수의 양심이 있는 백인들과 아이들은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 백인 다수의 결정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톰 로빈슨은 상고심에 대한 희망을 잃고 죽기로 결심하고 감옥에서 탈옥을 감행하다 총에 맞에 죽는다.
비록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쓰레기 같은 인간 밥 이웰은 자신의 거짓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애티커스에 대한 보복으로 그의 아이들을 죽이려 한다. 이를 본 이웃, 평생 집에서 나오지 않고 세상과 단절하고 살던 아서 래들리가 아이들을 구하려고 밥과 몸싸움을 하다가 그를 죽이게 된다.
아서 래들리는 세족 침례교 신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세족 침례교 신자들은 즐거운 일이란 하나같이 죄악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죽은 뒤의 세계를 지나치게 걱정하느라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라는 이웃의 말처럼 래들리 집안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과 교류도 하지 않고 폐쇠적인 삶을 살았다. 아서는 창밖으로 아이들이 오가며 성장해 가는 걸 지켜 보았다. 그는 자신을 무서워 하면서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아이들을 아꼈다. 아이들이 지나 다니는 길목에 있는 나무 구멍에 선물을 숨겨 놓기도 하고, 자신을 훔쳐 보려고 몰래 담을 넘다 찢겨진 젬의 바지를 꿰메어 담 바깥에 놓아두기도 하고, 한 밤중에 이웃에 불이 나서 집으로 불이 옮겨 붙을까 봐 도로에 나와서 떨고 있는 스카웃의 어깨에 담요를 걸쳐 주기도 한다.
살인 사건을 담당한 보안관 헥 테이트는 밥 이웰이 래들리와 몸싸움을 하다 넘어지면서 스스로 자기 칼에 찔려 죽은 것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 하겠다고 한다. 테이트는 애티커스에게
“아무 이유 없이 흑인 청년 한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음에 책임있는 자도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죽은 자가 죽은 자를 묻어버리게 하세요.”
“한 시민이 범죄가 자행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은 것이 법에 저촉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이 읍내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한 저 부끄럼 많은 사람을 백일하에 끌어낸다는 것은— 죄악입니다” 라고 말한다.
옆에 있던 스카웃은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빠, 전 이해할 수 있어요. 테이트 아저씨 말씀이 옳아요.” “말하자면 앵무새를 쏘아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죠.“
애티커스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엽총을 사주면서 어치새 같은 다른 새를 죽이는 것은 몰라도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 고 말한다. 앵무새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뿐 곡식을 먹거나 창고에 둥지를 트는 등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이다. 아서 래들리나 톰 로빈슨은 바로 앵무새와 같은 인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편견이나 아집때문에 고통을 받고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용기있고 정의롭고 가슴이 따뜻한 애티커스 핀치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반 인륜적인 인종 차별주의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사람들, 변호사 애티커스, 재판관 테일러, 지역 신문 발행인 언드우드, 그리고 보안관 테이트와 같은 소수의 몇 안되는 사람들이 있어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이들은 변화를 꿈꾸지만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부당함에 당당히 맞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흐름을 주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