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사이트에서 가공을 마치고, 익산 금마 현장으로 옮겨왔습니다.
(참! 이동네 사람들은 다 익산이라 하지 않고 '이리'라고 합디다.
'이리'라 하면 이리역 폭발 참사 때 가수 하춘화를 등에 업고 튀었다던 코메디언 고 이주일 선생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멀리 익산 시내가 보이고, 뒤쪽으로는 금마 저수지가 있습니다.
동네 이름은 '동고도리' 라는 곳인데, 교회 첨탑뒤로 석양이 물드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몇 개월 동안 땀 흘려 만든 통나무 구조물을 옮겨 와서 어셈블하는 일이 그리 만만치는 않지만,
아름다운 장소에 걸맞는 랜드마크를 남기는 일이라 두근거림과 설렘을 감출 수 없습니다.
다섯 명의 로그빌더로 구성된 팀은 눈빛만으로 서로의 역할을 다하며,
때로는 동료의 작업을 지원하기도 하고,
서로 상대방의 작업을 검사하는 "크로스 체크'를 통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전을 수행해 나갑니다.
집을 짓는 과정 중 가장 군대식 명령 체계가 보여지는 시기가 이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현장에선가 건축주로부터,
" 이렇듯 특공대와 공병대를 섞어 놓은 듯한 팀의 작전을 보게 되다니 놀랍습니다."
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일사분란한 모습으로 실 로그부터 한 단 두 단 쌓아 올립니다.
해체하면서 뚫어둔 전기 배선 구멍과 설비 배관을 하면서 쌓아야 하겠죠? ㅋㅋ
자세히 살피면 부재 하나하나가 다 고유 번호가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금마 시내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네요.
교회와 여자중학교의 모습이 숲과 어울려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물론 샌딩해 가며 쌓는 통나무의 맨살도 예쁘고요.
저는 그날 크레인에 올라 앉았습니다.
그래서 총괄 지휘의 책임을 벗고 비교적 헐렁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습니다.
도비(통나무 집는 집개)와 슬링에 의해 옮기고, 올리고, 내리는 과정 모두가 지휘자의 손끝 수신호를 따라 정확히
붐대를 움직여야 하는 역할 때문에 잠시라도 눈을 딴 곳으로 돌릴 수조차 없습니다.
아마 구경하는 건축주 내외분과 친인척들도 마음 조리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주 특별한 모습이 눈에 들어 옵니다.
통나무와 통나무사이 그루브 부분입니다.
대개 유리 섬유를 넣어 단열도를 높이는데,
바람이 아주 심할 때 유리섬유 가루가 날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걸 방지하려고 브레스 랩을 자루처럼 바느질해서 그 속에다 유리섬유를 넣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며 어떤 빌더는 "이것은 배마루식 단열법"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창했습니다.
아직 다른 곳에서 이렇게 하는 걸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저와 함께 했던 빌더 가운데 다른 통나무학교 교장으로 나가기도 하고,
팀을 이끄는 팀장이 된 헤드빌더가 많으니 최소한 그 분들은 이 방법을 고수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 작업을 할 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카고 크레인이 힘을 좀 쓸 것처럼 보이지만,
중량의 상량보를 매달아 팔을 길게 뻗는 일은 정말 위헙합니다.
전복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날도 붐대를 최대로 길게 뽑고 붐대를 숙였는데 중심에 한 발 가량 못 미친다고 수신호가 왔습니다.
18미터의 크레인이 골조 바로 곁에 붙기엔 경사가 생기질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기엔 무거운 종도리를 들고서 골조의 종심까지 보낼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정오까지는 종도리를 올려야 만 하는데....
좋은 날과 시를 택해 오라 권했던 나의 방정맞음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이젠 크레인의 위치를 옮기지도 못할 처지....
등줄기엔 땀이 폭포처럼 흐릅니다.
사태를 파악 못한 친지를 비롯한 참관인은 신기한 듯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흔들리는 도리를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크레인을 멈추고 내려와 고백했습니다.
"가족 친지 여러분!
상량보는 미리 결합해 보고 다시 내려,
상량 날에 여러 대중 앞에서 축하와 재미를 곁들인 집짓기 중 가장 재미있는 행사로 치뤄집니다.
전날 결합되었던 것을 일부러 쐐기를 박고선 아주 정교히 들어가는 듯이
나무 들메로 쿵!쿵! 박아 건축주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도 하는 일인데요...."
"오늘 상량은 도리가 아주 길고, 어제 마당의 복토로 말미암아 상량보를 미리 올려보지도 못했거니와,
크레인과 건물의 높이가 여유를 갖지 못해 아주 위험한 상태가 되었으니,
안전한 곳으로 후퇴하시어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마음 속으로는 이러다가 붐대 뿌러지고, 종도리 떨어뜨려 두 동강 나는 험한 사태가 생기지는 않을까?
가슴이 두근두근....
손가락은 달달달....
땀은 흘러 크레인 레바가 미끄럽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다!!
와이어를 최대로 감아 올리고는...
"자! 한 번 만에 꼽아야 합니다"
"붐대 숙이면 다시 올릴 순 없어요! 종도리 자르기 전에는..."
붐 하강 레바를 쓰으윽 밀었다.
일초..이초.... 삼~~~초!. 낚싯 줄로 통해 미세하게 전달되는 감각...
낚시할 때 봇돌이 모래 위에 닿는 극히 작은 안착감!
아! 제자리에 제대로 들어 가는 구나!
쓰으~윽! 뿌석!!
그 순간 팀장이 둘째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고서 빙긍빙글 돌렸다.
와이어 다운 신호다.
그렇다면 정말 한번에 제자리로 쑤~욱?
사선으로 던지듯 내린 종도리를 포스트 상단 상투에 한번에 꽂아 넣은 것이다.
휴~~
가슴을 쓸어 내린다.
급히 고개를 돌려
크레인 뒤 2번 잭을 보니 한 자쯤 들려있다.
모든 관객은 상량도리를 보고 있고,
나는 넘어 갈듯이 치들린 2번 잭을 보고 있다.
크레인이 앞으로 엎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순간 떠올랐다.
씨름판을 그린 단원의 그 민속화...
모두가 씨름하는 두 사내에 집중하는데, 혼자 딴 곳을 보는 엿장수.......
딱! 지금 나의 모습이다.
상량문을 읽고 있을 텐데....
사고치고 반성문 읽는 분위기다.
젊은 건축주 내외의 눈빛만은 의미심장하다.
돼지 아가리에 봉투가 제법 두툼하다.
멀리서 온 빌더의 부인에게 차비 하시라고 봉투 서너 개씩 나누어줬다.
어떤 빌더는 애인이라며 야릇한 여인을 데리고왔다.
나는 이 자리서 둘이 애인 사이인 것을 증명해 보라고 했다.
말 떨어지기 무섭게 둘은 귀를 잡고 뽀뽀를 했다.
관객 모두가 박수를 치며 애인이 확실하다고 보증을 섰다.
파마하시라고 봉투를 세 개를 주긴했지만,
수상한 낌새가 없어지지는 않았다. ㅋㅋ
진짜애인이면 다들 보는데서 뽀뽀를 하겠는가? (봉투 받으려고 난 그 짓 안 한다.ㅋㅋ)
상량식 분위기가 후끈 달아 오른다.
기회를 봐서 건축주를 오색띠에 묶어 달아매야 한다.
새신랑 달 듯이 거꾸로 매달고 북어로 발바닥을 후려치면,
비명소리 날때마다 부인이 지갑을 열 것이다.
어디 한번 죽어봐라. ㅋㅋ
잘 못 되면 나도 거꾸로 매달릴 수 있다. ㅠㅠ
쇠고기 국 끊이던 동네 아줌마에게도 봉투 하나씩 돌리고,
나이 많은 분들에게도 하나씩 드렸다.
전날 빌더들에겐 신발과 기능성 상의 한 벌씩 돌렸는데...
이러다 적자 날까 염려 된다.
그때 건축주께서 쓰윽 다가오더니 비밀스럽게 봉투 한 장을 찔러주었다.
아니 뭘?? 하면서 포켓 속에서 손가락을 봉투 속에 집어 넣으니
딱 한 장.
빳빳한 촉감!
동그라미가 많은 듯 오들거리는 질감!
더욱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의지가 불 타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