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개구리
(김우종, 동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학석사통합과정 석사 4학년)
한 주의 분과 실습이 끝난 금요일 오후, 나는 집에 돌아와 누워서 쉬고 있었다. 국가고시가 점점 다가오고, 학교 시험이 눈앞에 있는 예민한 시기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으며 모든 것을 잊은 채로 시간을 보내면 정말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밖에서 나의 평온한 시간을 깨는 울부짖음이 들렸다.
“살려주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병동 실습이나 모의 환자분과 실기 연습을 할 때, 나 자신을 ‘학생 의사’ 라고 자신 있게 소개를 한 나지만, 아직 난 실기시험도 보지 않은 학생일 뿐이다. 병원 실습하며 코드블루 소리를 들었을 때와 비슷할 만한 부담감과 긴장감이 실제로 나에게 찾아왔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주변에 나밖에 없을 것 같아 잠옷차림으로 뛰쳐나갔다.
“으어엉, 도와주세요.”
집을 나서며 심폐소생술, 기도 확보하는 법, 부목 고정, 드레싱 등 수많은 실기 항목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지만, 아이를 딱 보았을 때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들고 있는 수조는 금이 가서 당장 부목 고정을 해야 할 정도로 다쳐있었다.
“친구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으어어엉, 개구리가 도망갔어요.”
금이 간 수조와 부족한 물의 양을 보고 수조 속에 남은 올챙이, 개구리들이 죽지 않게 곧바로 집에 들어가 냄비에 물을 담아왔다.
“자 형이랑 같이 찾아보자! 자자 울음 뚝! 운다고 개구리가 집으로 스스로 들어오지 않아! 네가 잃어버렸으니 포기하지 말고 네가 찾아야지! 찾을 수 있어. 형이 도와줄게.”
나에게 개구리는 그냥 시골길에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생물체지만, 개구리소년에게 개구리는 애착을 가지고 키우던 친구와도 같은 존재라서 충분히 위로를 해줬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조금 미안했다.
그렇게 한 마리, 한 마리씩 1시간동안 잃어버린 4마리를 둘이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결국 다 찾았다.
“친구야, 근데 오늘 집에 가서 수조 바꿔야겠는데? 여기 금이 갔어!”
“형 이 냄비 저 주세요. 여기다 담아갈래요.”
“응?”
집에 돌아가서 줄만한 냄비를 찾아보다가, 냄비를 주면 개구리소년의 부모님이 냄비를 다시 들고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이 번거로우실 것 같아서 큰 비닐봉지에 물을 채워 개구리, 올챙이를 담아줬다.
“친구야~ 이제 다 해결됐어! 집이 어디야?”
“엄마한테 전화할래요.”
“문제 해결 됐잖아 친구야, 집 여기 앞이라며? 형이 앞에까지 같이 가줄게! 어머니 전화 받으시면 놀라시고, 바쁘신데 여기까지 오셔야 하잖아. 네가 집에 가서 말씀 드려!”
이렇게 8살 개구리소년과, 26살 학생의사는 두 손을 꽉 잡고 개구리소년의 집으로 걸어갔다. 집으로 가는 동안, 개구리소년의 장래희망, 좋아하는 과목,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는지 등의 주제로 얘기를 하며 조금 친해졌다.
“형 저 울음 뚝 그치고 집에 들어갈게요.”
어머니가 자기 우는 모습 보시면 놀라실 것 같아서, 개구리 소년은 조금만 쉬다가 가자고했다. 그래서 고생한 개구리소년을 위해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도 사주었다.
“형 저 음료수 안주셔도 돼요.”
“응?”
“집에 많아요.”
“그래 형이 선물로 줄게! 나중에 마셔! 장래희망이 수의사라고 했지? 나중에 수의사 꼭 돼서 다친 개구리들 치료해줘!”
“여기서부턴 저 혼자 갈수 있어요!”
이 말과 함께 개구리소년은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집에 돌아와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았다. 사람을 살린 의사처럼 뿌듯했다. 개구리를 잃어버려서 죽을 듯이 우는 아이를 도와주고, 길바닥에 죽어가는 올챙이, 개구리들을 살렸으니 생명을 많이 살린 것은 맞다.
코드 개구리가 울렸을 그 때 나는, 의사로서 응급 상황일 때 시행하는 술기들에 대해서 생각을 했고, 그러한 생각은 아직 의료인은 아니지만 곧 면허를 손에 쥐는 예비 의사로서 미래에 가져야 할 막중한 책임감에서 나온 것 같다.
솔직히 처음 아이의 울부짖음을 들었을 때,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을까?’ 라는 무책임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이의 울음은 정말 누가 크게 다친 것 같은 울음이었고, 1초라도 빨리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소리였다. 평소에 겁이 많은 나도, ‘코드개구리’를 들을 때만큼은 두려움보다 책임감이 앞섰던 것이 아닐까. 눈앞의 시험공부에만 열중하던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의료인으로서 가져야할 책임감과, 개구리소년에게 해줬어야 할 따뜻한 위로를 하는 법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코드개구리’는 언제든 울린다.